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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2권 (17)

21 계양산은 부평읍내서 엎드러지면 코가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는 읍의 진산 이니 이 산 안에 명화적이 당을 짓고 있는 것은 말하자면 명화적이 부평부사와 이웃하여 지내는 셈이었다. 도호부사로 진무영장을 겸한 부평부사가 비위를 눅 게 가지어 이웃 대접을 예에 맞도록 하여야망정이지 혹시 성깔을 부리어 큰소리 를 지를 양이면 계양산에서 울려나가는 소리가 동헌 대들보를 흔들었다. 그때 부평부사가 나이 젊은 탓으로 동헌에 들어앉았기가 갑갑하여 고려 이상국의 놀 던 자취를 찾아 계양산 명월사에를 올라가려고 하니 이방이 부사 앞에 나아가서 “계양에는 만일사가 좋다 하옵니다. 안전께옵서 행차합시기도 편하옵고 바다 경치를 내다봅시기도 좋사옵고 또 절도 명월보다 훨씬 낫습니다. 명월사는 높이 있다뿐이옵지 산이 가리어 ..

임꺽정 2권 (16)

17 그 늙은이는 홀아비의 혼자 살림으로 조그만 통노구에 밥이나 죽이나 끓여서 소금찬으로 먹고 지내는 터이었다. 길가던 사람이 혹시 날이 저물어서 자고 가 게 되면 자기네 행중 양식을 자기네 손으로 끓여먹게 하는데, 퉁노구를 빌리고 나무를 줄 뿐이지 막무가내로 다른 청하는 것은 받지 아니하였다. 손이 양식을 가지지 아니하여 굶어 자게 된다고 쌀 한 보시기 떠주는 법이 없었다. 늙은이가 꺽정이를 귀엽게 여기어서 없던 법을 개시하여 자기 양식으로 대접하는데 장사 라 양도 클 것이라고 퉁노구에 가득히 밥을 지어 많이 먹으라고 권하기까지 하 였다. 저녁을 먹은 뒤에 늙은이가 꺽정이의 집 일도 물어보고 꺽정이의 공부도 물어보고 하는 중에 갖바치의 말이 나니 “내가 평산 박연중에게서 갖바치의 말 을 들은 일이 있다..

임꺽정 2권 (15)

13 유복이가 창 던지는 공부를 동무들에게까지는 숨기었지만, 그 어머니는 속일 래야 속일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 어머니 눈에 들킬 때마다 사설을 듣고 또 야 단을 맞았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무어라고 사설을 하거나 또는 야단을 치거나 말거나 유복이는 꾸준히 창을 던졌었다. 한번은 그 어머니가 유복이를 붙들고 “하라는 글은 아니하고 말라는 장난만 하니 어찌할 셈이냐? 너의 나이도 인제 는 셈들 때가 되지 않았느냐? 너 하나를 바라고 사는 어미 생각을 좀 하려무나. ”하고 사정을 하다가 유복이의 입에서 시원한 대답이 떨어지지 아니하여서 “ 네가 어미 생각을 아니한다면 나는 오늘이라도 죽는다.”하고 발악하다시피 말 하였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 듣기만 하던 유복이가“어머니, 왜 그러오? 내가 아 버지의 원수를..

임꺽정 2권 (14)

9 꺽정이가 누이의 고생을 안 뒤에는 실상 죄없는 금동이를 밉게 볼 뿐이 아니 라 갖바치에게도 전과 같이 다르지 아니하였다. 금동어머니가 시어미 노릇 못되 게 하는 것을 갖바치가 전혀 모를 리 없을 것인즉 알면서도 짐짓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니 이것이 곧 시아비 노릇을 잘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느 날 밤에 심의는 자기 집에 가고 갖바치와 꺽정이가 단둘이 앉아 있었는 데 갖바치가 장감이란 책을 펴서 놓고 새겨 이야기하여 가르쳐주다가 걱정이의 얼굴에 딴생각하는 빛이 있는 것을 보고 “고만 듣기가 싫으냐?” 하고 물은즉 꺽정이는 “아니오.” 하고 고개를 흔들고 “안에서 무슨 말소리가 나는 것 같 아서요.”하고 맘이 갈린 까닭을 말하였다. 갖바치가 책을 덮고 “사람 있는 데 말소리 나기가 예사이지.” ..

임꺽정 2권 (13)

5 섭섭이의 사내 동생이 꺽정이니 꺽정이도 섭섭이와 같이 별명이 이름이 된 것 이다. 처음의 이름은 놈이었던 것인데 그때 살아 있던 외조모가 장래의 걱정거 리라고 “걱정아 걱정아.” 하고 별명 지어 부르는 것을 섭섭이가 외조모의 흉 내를 잘못 내어 꺽정이라고 되게 붙이기 시작하여 꺽정이가 놈이 대신 이름이 되고 만 것이다. 꺽정이가 어릴 때부터 사납고 심술스러워서 아래위의 앞니가 갓났을 때에, 무엇 에 골이 나서 우는 것을 그 어머니가 “성가시다, 우지 마라”하고 꾸짖으며 젖 을 물리었더니 꺽정이가 젖을 이로 물어서 젖꼭지를 자위가 돌도록 상한 일이 있었고, 불과 너덧 살 되었을 때에 그 아버지와 겸상하여 밥을 먹는데, 저의 아 버지에게만 국그릇을 놓았더니 꺽정이가 아무 말도 없이 뜨거운 국그릇을 들어 ..

임꺽정 2권 (12)

제 6장 제자 1 심의의 집에는 행랑방이 둘이 있는데 한 방에는 상길이 내외가 있고 다른 한 방에는 홀어미 모자가 있었다. 그 홀어미는 아들의 이름이 유복이라 심의의 집 에서 유복 어멈이라고 불렀다. 유복 어멈은 본래가 황해도 강령 사람으로 남편 이 허무한 죄에 서울로 잡혀오게 되어서 그 뒤를 따라왔다가 남편은 옥에서 죽 고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을때에 갖바치의 지시로 심의의 집에 와서 행랑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유복 어멈의 남편은 농군이었다. 그러나 아이적에 글방에 다니 며 꼬부랑 글자 낱을 배워두었던 까닭에 구실집 수 적은 것쯤은 곧잘 알아보아 서 동네에서 대접을 받던 농군이었다. 서울로 잡혀오던 해 여름에 가뭄이 몹시 심하였는데 품꾼 두 사람과 같이 밭벼의 이듬을 매다가 새들새들한 벼포기에 정 이 ..

임꺽정 2권 (11)

7 남곤, 심정이가 전에 여러 명현을 모함한 것은 판국을 뒤집어 권세를 잡으려 고 꾀한 것이요, 후에 여러 사람을 살해한 것은 신변의 위험을 없이 하려고 꾀 한 것이었었다. 후에는 권세 잡은 대신과 중신이 고변을 받아가지고 역적모의로 몰아서 조치한 것이나까 꾀가 용이하였지만, 전에는 조정의 판국을 뒤집느니만 큼 용이한 꾀로 될 것이 아니었었다. 만일에 궁중 세력이 유리하게 돌지 못하였 다면 남곤, 심정의 백 가지 천 가지 꾀가 모두 소용이 없었을 것이었다. 남곤, 심정이가 이것을 잘 알았던 까닭에 심정이가 척분을 연줄 삼아서 경빈을 끌 뿐 이 아니라 홍경주같이 어리석은 위인과 손을 맞잡아서 희빈을 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희빈과 경빈의 힘만으로는 임금까지 끌기가 용이치 못하였을 것인데 젊은 왕비 윤씨가 조..

임꺽정 2권 (10)

3 이판서 집에서 창녕으로 낙향할 때에 이판서가 갖바치를 보고 “자네는 어찌 하려나? 이번에 같이 가세.” 하고 권하는 뜻을 보이었으나 갖바치는 “나는 오 나가나 매일반이지만 가속들의 내두 처지가 서울 있는 편이 나을 것이라 따라갈 것이 없습니다.” 하고 서울에 떨어져 있을 뜻을 말하였다. 이판서 부인이 같이 이사하자고 우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을쇠로 행세하는 덕순이가 “나 같은 신 세에 다른 갈 데가 없는 것은 고사하고 주인대감 내외분이 정답게 말씀하는 것 을 거역하지 못하여 창녕을 따라가겠으니 당신도 같이 가십시다. 구차한 목숨이 살아 있는 동안은 든든히 지나게 가십시다.” 하고 사정을 말하였으나 갖바치는 “실상 내가 좀 서울 있으면 남의 아들들을 맡아줄 터이니까 남에게 좋은 일이 야.” 하고 모호..

임꺽정 2권 (9)

6 덕순이가 상투를 풀어 귓머리를 땋은 뒤에 머리꽁지에 흰 오라기 당기를 들이 고 흰 무명 고의적삼만 입고서 웃옷을 입지 아니하고 망건 자죽을 가리려고 머 리를 수건으로 동이고 짚신을 신고 나서니 훌륭한 총각 상제라, 아무리 눈밝은 포교라도 이 총각이 김사성댁 둘째 자제로는 알아낼 수 없게 되었다. 덕순이가 을쇠로 변하여 가지고 갖바치와 같이 흥인문 밖에를 나왔다. 이판서가 두 사람 이 왔다는 말을 듣고 곧 방으로 들어오라 하여 갖바치는 장지 밖에 앉고 덕순이 는 갖바치 옆에 섰는데, 덕순의 옷깃이 눈물에 젖을 뿐 아니라 이판서의 눈에도 눈물이 돌았다. 갖바치가 말을 하기 시작하여 이판서와 이런 말 저란 말 하는 중에 이판서의 맏아들 함동이가 들어왔다. 함동이가 갖바치를 보고 친숙하게 인사 하였다. 이판..

임꺽정 2권 (8)

2 덕순이가 집 문간에를 와서 보니 밤도 늦지 아니하였는데 대문은 벌써 닫히었 다. 들창에 불빛이 보이는 행랑방이 없지 아니하나 문 열라고 소리치기가 어려 운 까닭에 사랑 뒷담께로 돌아가서 담을 넘어 들어왔다. 사랑방, 수청방 할 것 없이 불이 켜 있는 방이 하나도 없다. 사방이 캄캄하였다. 덕순이는 사람 없는 사랑마당에 주주물러 앉아서 대성통곡을 하고 싶었으나, 억지로 참고 안중문간 에 와서 중문을 밀어보니 역시 빗장이 걸리었다. ‘어머니도 아니 계시고 젊은 동서끼리 집을 지키고 있으니까 밤 저녁이면 집안이 휘휘해서 일찍 문을 닫히는 게다.’ 하고 생각하며 덕순이는 발씨 익은 대로 다시 사랑 뒤로 돌아와서 안으 로 통한 일각문 담을 뛰어 넘어왔다. 아무리 뛰엄질 잘하는 덕순이가 사뿐 뛰었 다고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