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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2권 (2)

5 덕순의 안해 이씨의 친정에서 유명한 장님에게 덕순이 내외의 사주를 본 것이 있었는데, 내외가 백년해로하지만 자손궁이 부족하여 아들이 없으리라는 말이 있었다. 덕순이가 이씨에게 있는 사주 적은 것을 본 뒤에 "첩을 두어야겠다." " 아들을 못 낳으면 출처하는 수밖에 없다." 하고 이씨의 골을 지른 일이 한두번이 아닌 터이었다. 그날 밤에 이씨가 베개 위에서 "여보세요, 주무세요?" 하고 덕순 의 몸을 건드리니 이때껏 가만히 소리없이 누워있던 덕순이가 갑자기 코를 드르 렁드르렁 골았다. 이씨가 덕순의 몸을 흔들며 "아이구, 곤하게도 주무시네. 다 새 었어요. 고만 일어나 나가시지요." 하고 소리를 죽이어 가며 웃었다. 자는 체하던 덕순이가 "닭도 울기 전에 날이 새어? 가짓말이 일쑤로구려." 하고 머리를..

임꺽정 2권 (1)

제 1장 교유 1 동소문은 원이름이 홍화문인데 동관대궐 동편에 홍화문이 있어서 이름이 섞이 는 까닭으로 중종대왕 당년에 동소문 이름을 혜화문 이라고 고치었다. 홍화문이 혜화문으로 변한 뒤 육칠년이 지난 때다. 혜화문 문턱 밑에 초가집 몇 집이 있 고 갖바치의 집 한 집이 있었다. 그 갖바치가 성명이 무엇인지 이웃에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 까닭 에 그 사람이 듣지 아니 할 때 갖바치라고 말할 뿐이 아니라 그 사람을 보고 말 할 때까지도 갖바치라고 부르고 양민들이 갖바치라고 부를 뿐이 아니라 관 사람 들까지도 갖바치라고 말하였다. 갖바치가 곧 그사람의 성명인 것과 같았다. 그 갖바치가 사람은 투미하지 아니하나 신 솜씨는 투미하여 맞춤은 고사하고 막치도 변변히 짓지 못하므로 그 지은 신을 신는 사람..

임꺽정 1권 (22. 完)

10 주팔이가 시골 내려간 동안에 주팔의 집에는 주팔의 첩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삭불이가 놀러오는 외에는 별로 오는 사람도 없었다. 주팔의 첩이 나이 삼십이 넘었으나 맘은 새파랗게 젊은 까닭에 혼자 지내기가 고적하였다. 삭불이 가 주팔이 있을 때보다 더 자주 오게 되고 낮에 올 뿐이 아니라 밤에도 오게 되 었다. 밤이 늦도록 더위가 물러가지 아니할 때 두 사람이 사발정에 물 먹으러 올라가다가 이웃 젊은 사람들 눈에 뜨이어서 뒷손가락질을 받은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식전부터 날이 흐리더니 해집 무렵에 비가 오기 시작하여 좍좍 내리 는 빗줄기가 놋날 드린 것 같았다. 주팔의 첩은 해먹기가 귀찮아서 찬밥술로 저 녁을 때우고 바깥문을 일찍이 닫아 걸고 방안에 들어 앉았다. 삭불이가 낮에 왔 다 갈 제 밤..

임꺽정 1권 (21)

6 이튿날 새벽에 돌이가 서울 들어오는 길로 주팔이의 집을 찾아왔다. 돌이가 주팔을 보고 밤길을 걸어온 급한 사연을 말하고 이승지의 편지를 얻어 달라고 청하니 주팔이가 "자네가 이승지를 모르는 터이면 내라도 말하겠네만 자네도 친 한 터에 내가 중간에 들어 말한다는 것이 우습지 아니한가? 그러고 자네가 이승 지가 되어 생각해 보게. 자네 친한 사람이 나제를 와보지는 아니하고 다른 사람 을 중간에 놓고 무슨 청을 한다면 자네가 그 청을 들어 주겠나? 두말 말고 자네 가 이승지를 가보게." 하고 사리를 타서 말하므로 돌이는 다시 입을 벌리지 못하 였으나 속으로 생각하기를 '서울 온 뒤로 한번도 만나지 아니한 이승지를 갑자 기 찾아보고 청하기가 맘에 창피하고 또 무슨 토심을 받게 될지도 모르니까 김 서방이나 가..

임꺽정 1권 (20)

3 그날 밤에 돌이와 삭불이가 선이의 집 안방에서 자게 되었는데, 선이 내외가 돌이를 유심히 보는 까닭에 돌이가 얼마 동안 겸연쩍어서 말이 적었으나 선이의 안해가 “총각, 이리 가까이 오구려.” “총각, 이야기 좀 하구려.”하고 연해 ‘ 총각, 총각’하며 다정하게 구는 까닭에 돌이가 마침내 조심성이 풀리어서 너털 웃음을 치며 반죽 좋게 이죽거리게까지 되었다. 삭불이가 간간이 실없는 말을 던지어 여러 사람을 웃기었는데 돌이를 가리키며 “저 함흥 떠꺼머리가 인제 양 주 대적이 될 터이야. 요지왕모 같은 색시를 훔치려는 것을 보지.”하고서 ‘하 하’하기도 하고 “저 떠꺼머리가 맘속에 큰 걱정이 있는 모양이야. 옥황상제하 고 벗 못하는 걱정.”하고서 ‘하하’하기도 하고, 선이의 안해가 돌이더러 총 각, 총각 하..

임꺽정 1권 (19)

20 그 뒤로 돌이는 삭불이만 보면 “색시 선 좀 보러 갑시다.” “어느 날 양주 가시려우?” 조르기도 하고 다지기도 하는데 삭불이는 “아따, 틈이 나지 않네 그려.” “일간 가도록 해보세.” 핑계도 하고 미루기도 하여 그럭저럭 십여 일 이 지났다. 이 말이 어떻게 이승지 귀에 들어가서 어느 날 이승지가 삭불이를 불러 세우고 “네가 돌이 장가를 들여 준다고 같이 선보러 가자구 했다더구나? 가자고 했거든 얼른 갈 것이지, 무슨 일이 있어서 틈이 없느니 있느니 하고 내 일 모레 미루기만 한단 말이냐? 양주가 멀지도 아니한 곳이니 속히 한번 갔다오 너라.” 하고 준절히 일러서 삭불이는 다시 핑계도 못하고 미루지도 못하게 되 었다. 삭불이는 그날로 돌이에게 와서 내일은 정말 떠나자고 말하여 두고 이튼 날 식전에..

제3의 강둑. 종신형 (1,4,3,3)

-독서 리뷰- [[제3의 강둑. 종신형]] >> -우양 기마랑스 로사 作- ***거울이*** 2012.11.12 23:24 올리신 글들 자주 찾아 읽는 동우님의 독자입니다. 좋은 글 읽도록 해주시는 동우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처음 접하는 이 소설. 왠지 슬프고 너무 허전합니다. 인간의 삶이란 정처없는 부초. 그렇게 한평생 살다 가는 거겠지요. ㅠ ㅠ ㅠ ***┗동우*** 2012.11.13 07:12 거울이님을 비롯,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어 오히려 내가 고맙지요. 페이지 뷰의 숫자는 나의 즐거움입니다. ㅎ 동감합니다, 이 소설, 참 슬프고 허전합니다. 이 소설은 오래전 출판된 이문열이 선정한 단편소설집에 수록된 소설. (이문열은 내게 최고의 작가는 아니에요.ㅎ) 참고로 이문열의 짧..

내 것/잡설들 2022.09.22

임꺽정 1권 (18)

16 그날 저녁에 이승지가 손님도 없고 한가하여 다시 주팔의 방에를 내려왔다. 삭불이는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이승지가 거기 앉으라고 말하여 주팔의 옆에 쪼 그리고 앉았다. 이승지가 주팔을 보며 “어린 놈이 푸른똥을 눈다니 간기겠지? 무엇을 먹일까?” 하고 어린아이 먹일 약을 의논하니 주팔이는 “대단치는 않지 요?” 묻고 나서 “포룡환 한 개쯤 먹여 두시지요.” 말하는데 주팔의 말이 끝 나자, 삭불이가 아는 체하고 나서서 “아기네 간기에는 떨어진 배꼽을 살라 먹 이는 것이 제일이랍니다.” 말하니 이승지는 대답이 없이 웃기만 한다. 삭불이는 자기의 말을 그 웃음 속에 묻어버리지 아니하려고 “상약이 방문약보다 나은 수 가 많습니다. 우선 무사마귀 같은 것도 방문약으로야 뗄 수 있습니까만, 마늘쪽 에 낙숫물을 ..

임꺽정 1권 (17)

13 그 뒤로부터 주팔이는 틈만 있으면 암자 밖으로 나가서 숲 사이나 바위 아래 에 혼자 앉아서 부주비전과 망단기결을 공부하고 김륜이 없는 사이를 엿보아서 선생에게 모르는 것을 물었다. 거의 한 달이 되는 동안에 주팔이는 두 권 책에 있는 것을 책 없이 외지는 못하나마 책 보고는 다 알게 되었다. 나중에는 주팔 이가 너무 자주 암자 밖에 나가는 것을 김륜이가 수상하게 생각하여 “형님, 어 디를 혼자서 그렇게 나가시오?” 묻기까지 하였으나 주팔이가 “가을바람 난 뒤 로는 공연히 울적할 때가 많아서 암자 안에 들어앉았고 싶지 않아.” 말하여 김 륜이도 “그러면 형님은 산중에 오래 있지 못할 사람이오.” 하고 웃어버리었다. 어느 날 식전에 선생이 주팔을 불러앉히고 “주팔아, 너는 오늘 가거라. 육칠 삭 같이 ..

임꺽정 1권 (16)

9 주팔이는 이월달에 서울을 떠난 뒤에 급할 것이 없는 길인만큼 중로에서 달소 수를 넘어 허비하고 삼월 망간에 묘향산을 들어서게 되었었다. 묘향산은 희천, 영변, 여원, 덕천 네 고을 사이에 사백여 리 동안에 웅거하고 서리어 있는 겹산 이라 상봉인 비로봉 외에 석가봉, 관음봉, 원만봉, 향로봉, 법왕봉이며 미륵, 칠 성, 지장, 시앙, 가섭, 아난이란 이름 가진 봉이 첩첩이 싸이어 이곳저곳에 솟아 있고, 팔만구암자라는 말이 나고 내산에 삼백육십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도록 절과 암자가 많은 곳이라 서도 대찰로 일국에 이름이 높은 보현사 큰절 외에도 도승의 유적이 많기로 유명한 안심사와 폭포의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상원암 같 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골짝마다 봉우리마다 토굴이나 암자가 없는 곳이 없는 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