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 23

혼불 4권 (29)

"어디만큼 옹게는, 동산이 한나 나오드래. 그래 다리도 아푸고해서 풀밭에 앉었는디. 마침 거그 꺼멍 소 한 마리허고 삘헌(붉은) 소 한 마리가 나란히 엎대어 누워 있어. 배를 깔고. 점심밥 먹고 새김질이나 허고 그러고 있었등가 모르제."그걸 보고 원효 대사가 물었어."너 어뜬 소가 몬야 일어나겄냐?"그렁게 사명당이, 잠깐 지달르시라고 그러고는 괘를 요렇게 빼봉게 화괘가 나와. 불 말이여. 불은 빠알간 안헝가?"옳지."하고는"저 삘헌 소가 몬야 일어나겄소."했단 말이여?"그러냐? 나는 꺼멍 소가 몬야 일어나겄다."스승의 말씀에, 어디 보자, 허고 조께 있응게. 아니 꺼멍 소가 펄떡 일어나네 그려. 아, 이거 웬일이냐, 이상허다, 내가 괘를 잘못 뺐능가."화괘가 나왔으면 뻘건 불잉게 삘헌 소가 몬야 일어나야..

혼불 4권 (28)

"에라이, 빌어먹을놈, 어른이 무신 말을 허면 그렁갑다 허제 꼭 저렇게 어긋장을 놓제. 야 이놈아, 매안에 양반들은 일펭상에 빗은 머리크락, 깎어 낸 손톱 발톱을 하나도 안 내불고 유지에다 싸 둔단다. 그렁 거 다 뽄 보든 못허지만, 알고는 있어야여, 알고는.""헐 일이 그렇게 없다요? 우숴 죽겄네. 그러고오, 그렁 것도 참말로 그랬능가는 모르지만 그랬다고 허드라도 인자 옛날 이애기요. 아재, 수천 양반 못 뵈겼소? 진작에 단벌허고 양복 입고 안 댕기요? 개명해서. 양반 중에 양반이고 종갓집 형제라도 시절이 변허먼 사람도 바뀐당 거, 그것만 바도 알 수 있잖아요? 그것 뿐이간디? 두말 더 헐 거 없이 나랏님이 먼저 상투를 손수 짤렀다는디 머.""나랏님이 그랬다능 건 내 눈으로 직접 보들 안했잉게 머라고 ..

혼불 4권 (27)

춘복이는 노상 그렇게 말했다. 만약에 그것이 그냥 해 보는 말이었다면 장가를 가도 열 두 번도 더 갔을 것이다. 그러나 번번이 고개를 흔들어 버린 중매 자리를, 나중에는 아예 말도 못 꺼내게, 춘복이는 듣는 시늉조차도 하지 않았다."아이고, 알었다. 오냐, 이 빌어처먹을 놈아. 장개도 못 가 보고 죽으먼 몽달구신이 된다는디, 인자 너 알아서 허그라. 니 멋대로 히여."끝내는 그렇게 말을 해 버리고 말았지마는, 그래도 저러다가도 돌아설 날이 있겄지, 싶은 마음을 공배는 버리지 않았다."그런디, 옹구네는 멋 헐라고 그렇게 춘복이 궁뎅이만 바싹 따러 댕기는가 모르겄소. 치매 자락을 꼬랭이맹이로 흔들어댐서."그렇지 않아도, 새얌가에 앵두꽃 핀 날 아침, 비얌굴로 떠나는 새각시 얌례가 꽃 옆에 서서, 안녕히 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