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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10) -톨스토이-

10 기소장의 내용은 이러했다. 188X년 1월 17일, 마브리타니야 여관에서 쿠르간 출신의 2등 상인인 페라폰트 예밀리야노비치 스멜리코프라는 숙박객이 급사했다. 당시 제 4관구의 경찰의의 감식에 따르면 사인은 알코올성 음료의 과음으로 인한 심장 파열이라고 판정했다. 스멜리코프의 시체는 사후 3일 만에 매장되었다. 그런데 며칠 후 스멜리코프와 동향인이며 동업자인 상인 티모힌이 페테르부르크에서 돌아와 스멜리코프가 죽었을 때와 그 때의 여러 정황을 살피고나서, 그가 가지고 있던 돈과 다이아몬드 반지를 강탈한 목적으로 독살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혐의로 재조사를 신청했다. 이 혐의는 예심에서 확인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사실이 판명되었다. 첫째, 스멜리코프는 죽기 직전 은화로 3800루블을 은행에서 찾았다. 그러나..

<R/B> 부활 (9) -톨스토이-

9 훈시가 끝나자 재판장은 피고인석으로 얼굴을 돌렸다. "시몬 카르틴킨, 일어서시오!"하고 말했다. 시몬은 신경질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볼의 근육이 더욱 씰룩거렸다. "이름은?" "시몬 페트로프 카르틴킨입니다." 미리 대답하는 연습을 해두었는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막히지 않고 술술 대답했다. "신분은?" "농민입니다." "출생지의 현과 군은?" "툴라 현, 크라피벤스키 군, 쿠판스카야 면, 보르키 마을입니다." "나이는?" "서른넷, 태어난 해는 18..." "종교는?" "러시아 정교입니다." "결혼은?" "아직 안 했습니다." "직업은?" "마브리타니야 여관의 하인입니다." "전과가 있소?" "전혀 없습니다. 원래 저는 지금까지 저..." "전과가 없단 말이오?" "네, 절대 없습니다. 한 번도 없어..

<R/B> 부활 (8) -톨스토이-

8 재판장은 서류를 한번 쭉 훑어본 후, 정리와 서기에게 두세 가지 질문을 던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 피고의 출정을 지시했다. 그러자 곧 가름장 난간 뒤의 문이 열리며 모자를 쓴 두 사람의 헌병이 군도를 빼들고 들어왔다. 그 뒤로 주근깨투성이의 붉은 머리 사내가 먼저 들어오고 잇달아 여자 둘이 들어왔다. 남자는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법정에 들어올 때 엄지손가락을 쑥 밀다시피 하면서 바지 옷솔기에 두손을 갖다 대어 너무 긴 소매가 늘어지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다. 그는 재판관이나 방청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피고석을 응시하며 긴 의자로 다가갔다. 다른 사람이 앉을 자리를 남겨 두고 맨 끝자리에 가 앉아, 재판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뭔가 입속으로 중얼거리는 듯 볼의 근육을 실..

<R/B> 부활 (7) -톨스토이-

7 이윽고 마트베이 니키티치가 도착했다. 그리고 목이 길고 깡마른 정리가 배심원실로 들어왔다. 그는 옆걸음질을 치는 습관처럼 아랫입술도 한쪽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정직하고 대학 교육까지 받은 사람이었으나 술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어느 직장에서도 오래 붙어 있지 못했다. 3달 전에 자기 처를 틈틈이 돌봐 주는 어느 백작 부인의 주선으로 지금의 자리를 얻게 되었는데 오늘날까지 무사히 근무해 온 것을 본이도 기뻐하고 있었다. "자 여러분, 다 모이셨습니까?" 그는 코안경을 쓰고 안경 너머로 방 안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들 모인 것 같소." 쾌활한 성격의 상인이 대답했다. "그럼 확인해 봅시다." 정리가 말하고 나서 호주머니에서 종잇조각을 꺼내어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할 때마다 코안경을 올려..

<R/B> 부활 (6) -톨스토이-

6 재판장은 일찍부터 재판소에 나와 있었다. 훤칠하게 큰 키에 뚱뚱한 사나이로, 희끗희끗한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아내가 있었으나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간섭하지 않는 주의였다. 오늘 아침에도 그는 스위스 태생인 여자 가정 교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이 가정 교사는 지난 여름 동안 그의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남러시아에서 페테르부르크로 여행하는 도중이라서 3시에서 6시 사이에 시내의 '이탈리아' 호텔에서 기다리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래서 그는 작년 여름 별장에서 로맨스를 맺었던 이 빨간 머리의 클라라 바실리예브나를 6시 전에 찾아가려면 오늘의 재판을 될 수 있는 대로 일찌감치 시작해서 얼른 끝내고 싶었다. 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

<R/B> 부활 (5) -톨스토이-

5 네플류도프가 재판소에 출정했을 때 재판소 복도는 벌써부터 슬렁거리고 있었다. 위임장과 서류를 든 수위들이 이리저리 바삐 오가고 있었다.그 중에는 마룻바닥에 발을 질질 끌면서 종종걸음으로 숨을 헐떡이며 서성대는 사람도 있었다. 정리와 변호사와 판사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했으며, 청원인과 감시자가 따르지 않은 피고들은 순서를 기다리면서 기운 빠진 태도로 담장 근처를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그 근처에 앉아 있기도 하였다. "지방 재판소 법정은 어딥니까?" 네플류도프가 한 간수에게 물었다. "무슨 법정 말입니까? 민사 법정과 형사 법정이 있습니다만." "나는 배심원이오." "그럼 형사 법정입니다. 진작 그렇게 말씀하셔야죠.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셔서 왼쪽으로 돌아가시면 두 번째 문입니다." 네플류도프는 그가 가르..

<R/B> 부활 (4) -톨스토이-

4 커피를 다 마시자, 테플류도프는 언제까지 출정해야 하는가를 통지서에서 확인할 겸 공작 영양의 서신에 답장을 쓰려고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로 가자면 아틀리에를 지나가야만 했다. 아틀리에엔 그리다 만 그림을 뒤집어 놓은 화가가 세워져 있었으며, 여러 가지 데생도 걸려 있었다. 그가 2년 동안이나 고심하며 그린 유화와, 여러 가지 데생과, 아틀리에 전체의 조망은 그림으로는 도저히 가망이 없다는 무력감을 환기시켜 주었는데 최근에 와서는 더욱 강하게 그런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감정을 너무나 섬세한 자기의 감수성 탓이라고 설명하려 했지만 어쨌든 그 의식은 매우 불쾌한 것이었다. 7년 전에 그는 자기가 그림에 대해 천부적 소질이 있다고 믿고 군복무를 내동댕이쳐 버렸으며, 예술가적 높은 견지에서 얼마간..

<R/B> 부활 (3) -톨스토이-

3 먼 길을 걸어오느라고 완전히 지쳐버린 마슬로바가 호송병들과 같이 지방 재판소 건물 가까이 이르렀을 무렵, 때마침 그녀를 유혹하여 타락의 길로 몰아넣은 장본인이자 대모의 조카인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플류도프 공작은 아직도 자기 집에서 보료가 깔린 폭신폭신하고 두툼한 스프링이 아주 좋고 높직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는 앞가슴에다 주름이 잘 잡힌 깨끗한 흰 리넨 잠옷 깃을 펼친 채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었다. 그는 무심히 허공을 바라보면서 오늘 해야 할 일과 전날에 있었던 일들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부호이고 사회적 명망이 높은 코르차긴 일가의 딸과 결혼하리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일과, 그 집에서 지낸 간밤의 일을 곰곰 생각하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 탄 담배 꽁초를 내던졌다. 그리고는 ..

<R/B> 부활 (2) -톨스토이-

2 여죄수 카추샤 마슬로바의 과거는 지극히 평범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예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시골에서 살고 있는 두 자매 지주의 소유인 영지에서 일하고 있는 농노의 딸이었다. 결혼도 못한 이 여자는 남편도 없는 처지이면서도 해마다 아기를 낳았다. 그런데 보통 시골에서 그러하듯이 영세만은 받게 했다. 그러나 바라지도 않았는데 생긴 필요 없는 자식이라 해서, 또 일에 방해나 되는 자식이라 해서 젖을 통 먹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내 굶어 죽곤 했다. 다섯 명의 어린애가 이렇게 해서 죽었다. 모두 영세는 받았으나 젖을 먹이지 않았기 때문에 굶어 죽고 말았다. 그러던 중에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는 어떤 집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번째 아기는 계집아이였다. 이 아이도 똑같은 운명에 빠질 뻔했으나, 때마..

<R/B> 부활 (1) -톨스토이-

부활 (1) 톨스토이 이철 譯 제1부 1 아무리 많은 사람이 조그마한 땅덩어리인 지구 어느 한구석에 몰려서 일부러 기름진 땅을 못 쓰게 하려고 해도, 또 땅 위에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게 돌을 깔아 덮어 씌운다 해도, 또한 그 돌 틈새로 비집고 싹트는 풀을 깡그리 뽑아 버린다 해도, 아니면 석탄이나 석유의 매연으로 그 땅 위의 공기를 탁하게 오염시킨다 해도, 그러고도 모자라 온갖 나무를 모조리 잘라내고 거기 깃들인 새나 짐승을 샅샅이 찾아낸다 해도-북적거리는 도시 한복판에서도 역시 봄은 봄일 수밖에 없다. 싹튼 초목이 정말 송두리째 뽑혀 버리지 않는 곳이면 햇볕이 따사로이 비쳐서, 가로수 옆 잔디밭이 있는 좁은 길은 물론 보도에 깔린 포석 사이사이에 파릇파릇 싹이 돋아 마냥 푸르렀다. 자작나무와 포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