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828

<R/B> 부활 (42) -톨스토이-

42 마슬로바는 이쪽으로 돌아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펴면서 낯익은 침착한 표정으로 두 여죄수 사이를 뚫고 철망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네플류도프를 알아보지 못하고 의아한 듯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녀는 그의 옷차림으로 보아 그가 돈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생긋 웃어 보였다. "저를 만나러 오셨나요?"하고 그녀는 미소 띤 사팔눈의 얼굴을 철망 쪽으로 가까이 대면서 말했다. "만나소 싶었소." 네플류도프는 '당신'이라고 해야 할지, '너'라고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곧 '당신'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그는 여느 때와 같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 당신을 만나고 싶었소....... 나는......." "우물쭈물하지 마!"그의 곁에서 남루한 옷을 입은 남자가 소리쳤다. "훔쳤어, 안 ..

<R/B> 부활 (41) -톨스토이-

41 '그러나 여기에 온 목적만은 수행해야 한다.'고 그는 자기 자신을 격려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관리를 찾았다. 그러자 장교 견장을 달고 콧수염을 기른, 작달막한 키의 야윈 사내가 면회자들의 뒤에서 서성거리고 있음을 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네플류도프는 역시 긴장한채 정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러시다면 집합소에서 계실 때 말씀하실 걸 그랬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만나시렵니까?" "예카테리나 마슬로바입니다." "정치범입니까?"하고 부소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그저 보통......." "그럼 선고를 받았나요?" "네, 그저께 선고를 받았습니다." 네플류도프는 자기에게 호의를 보이는 듯한 이 부소장이 기분을 건드려서는 안 되겠다고..

<R/B> 부활 (40) -톨스토이-

40 네플류도프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골목길에서는 아직도 근처에서 나온 농부가 마차를 끌고 지나가면서 기묘한 목소리로 "우유 사려, 우유, 우유!"라고 외치고 있었다. 간밤에 처음으로 포근한 봄비가 내렸다. 포장되지 않은 곳에서는 파릇파릇한 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뜰에 있는 자작나무에서는 녹색의 솜털이 솟아나고 벗나무와 포플러는 그 길쭉한 향기로운 싹들을 벌렸으며 저택이나 상점에서는 즐비하게 한 줄로 늘어선 노점 둘레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법석거리고 있었다. 겨드랑이에 장화를 낀 사람과 반질반질하게 다림질한 바지와 조끼를 어깨에 걸친 누더기옷 차림의 사람들이 벌써부터 돌아다니고 있었다. 술집 근처에는 휴무일로 풀려나온 사람들로 벌써 붐비고 있었다. 남자들은 말쑥한 반코트에 번쩍거리는 장화..

<R/B> 부활 (39) -톨스토이-

39 소장을 비롯하여 마슬로바에 이르기까지 사제와 이 미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 어느 한 사람도, 사제가 갖은 기괴한 소리로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면서 찬송한 예수, 그 자신이 실은 여기서 행해졌던 모든 일을 금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예수는 사제라는 교사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행하는 무의미하고도 모독적인 요술을 금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딴 사람들을 스승이라고 부르는 일도 분명히 금했다. 또한 회당 안에서의 기도를 금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오직 혼자서만 기도하라고 일렀던 것이다. 그는 회당 안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진리 속에서 행해야한다고 말했다. 특히 예수는 여기서 행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을 재판하고 감금하고 괴롭히고 욕을 보이고 벌을 주는 일을 금했을 뿐만 아니라, 죄수들..

<R/B> 부활 (38) -톨스토이-

38 미사가 시작되었다. 미사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먼저 사제가 일종의 기묘하고 거북스러운 금란 제의를 입고 여러 성인들의 이름과 기도문을 외면서 성반 위의 빵을 잘게 썰어 늘어놓은 다음, 그것을 포도주가 들어 있는 성작 속에다 집어넣었다. 그러는 동안 부제는 쉴 새 없이 자기도 잘 모르는 슬라브어로 된 기도문을, 더군다나 너무나 빨리 읽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기도문을 읽고 있었고, 그 다음에는 죄수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번갈아 가며 찬가를 불렀다. 기도문은 대개 황제와 그 가족의 안녕을 비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도문은 다른 기도문과 함께, 혹은 그것만 단독으로 여러 번 되풀이되었으며, 그때마다 모두들 무릎을 꿇었다. 그 외에 부제가 중의 몇 구절을 낭독했는데, 너무나 긴장된 목..

<R/B> 부활 (37) -톨스토이-

37 이튿날은 일요일이었지만, 아침 5시에 여죄수 감방의 복도에서 여느 날과 같이 호각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펴지자 일찍부터 잠이 깨어 있던 코라블료바가 마슬로바를 흔들어 깨웠다. '징역수'라는 생각에 섬뜩해 하면서 마슬로바는 눈을 비비고 아침이 되면 굉장한 악취가 풍기는 공기를 얼떨결에 깊숙이 마셨다. 또다시 잠에 빠져 망각의 세계에 잠기고 싶었지만, 이미 습관이 되어 버린 공포심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일어나서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죄수들은 모두 잠이 깨어 일어나 있었고, 아이들만 여태 잠자고 있었다. 눈이 튀어나온, 술을 밀매하는 여자는 애들이 깰까 봐 조심하면서 애들 밑으로 겉옷을 살그머니 끄집어 냈다. 폭동죄로 투옥된 여자는 난로 옆에서 기저귀로 쓰고 있는 누더..

<R/B> 부활 (36) -톨스토이-

36 그 날 밤 마슬로바는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뜬 채 누워서, 방 안을 왔다갔다 하는 교회 부집사의 딸 때문에 가려지는 문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빨간머리 여자가 훌쩍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할린의 징역수 따위와는 결혼하지 않고 관리나 서기, 하다 못 해 간수나 간수보와 라도 살림을 차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지 않도록 해야지, 말라 빠지면 끝장이다.' 그녀는 변호사나 재판장이 뚫어지게 자기를 바라보던 일이며, 또 재판소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자기 옆을 지나던 사람들이 줄곧 자기만 바라보던 일들을 상기했다. 그리고 감옥으로 면회와 준 친구 베르타의 이야기를 생각해 냈다. 키타예바 마담의 윤곽에 있을..

< R/B> 부활 (35) -톨스토이-

35 네플류도프는 검사와 헤어진 뒤 그 길로 곧장 미결감으로 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마슬로바라는 여죄수가 없었다. 아마 옛날 이송 감옥에 있을 것이라고 전옥이 네플류도프에게 말해 주었다. 네플류도프는 그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과연 예카테리나 마슬로바는 그 곳에 수감되어 있었다. 검사는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6 개월 전에 극도로 날카로워진 정치적 소요 사태가 헌병들의 탄압으로 더욱 확대되어 미결감의 모든 감방은 모조리 대학생, 의사, 노동자, 여학생, 간호사 들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이다. 미결감에서 이송감까지의 거리는 대단히 멀어서 네플류도프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그가 거대하고 음산한 건물의 문으로 가까이 가려고 하자 보초병이 들여 보내지 않고 벨을 눌렀다. 그러자 곧 간수..

<R/B> 부활 (34) -톨스토이-

34 첫 번째 휴정이 선포되자 네플류도프는 곧 자리를 차고 일어나 이젠 두 번 다시 법정으로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복도로 나갔다. 너희들 멋대로 해라. 그렇지만 자신은 더 이상 무섭고 추악한 희극의 참가할 수는 없다는 결심으로. 검사실이 어디 있는가를 알아보고 네플류도프는 그리고 곧바로 갔다. 사환이 지금 검사가 바쁘다면서 못 들어오게 했다. 그러나 네플류도프는 그 말을 못 들은 척 그냥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의 앞으로 다가온 서기는 보고 자기는 배심원인데 매우 중대한 일로 검사를 만나고 싶으니 전해 달라고 말했다. 공작이란 칭호와 훌륭한 옷차림이 그 말에 도움이 되었다. 서기가 검사에게 자기를 만나러 들어온 데 대하여 노골적으로 불만스럽다는 기색을 들어내며 일어서서 그를 맞이했다. "무슨 용건이시지..

<R/B> 부활 (33) -톨스토이-

33 재판소에 닿자 네플류도프는 복도에서 어제의 그 정리를 다시 만나 어제 판결을 받은 피고들이 지금 어디에 수감되어 있는가, 그리고 면회를 하려면 누구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가를 물어 보았다. 정리는 피고들이 여러 곳에 나뉘어 수감되어 있으며 판결의 최종적인 확정이 선고될 때까지는 면회는 검사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재판이 끝나면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검사님은 아직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럼 재판이 끝난 다음에 뵙겠습니다. 우선 법정으로 가십시오. 곧 시작됩니다." 네플류도프는 오늘 유별나게 불쌍히 느껴지는 정리에게 그의 친절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배심원 협의실로 갔다. 그가 협의실 가까이에 갔을 때 배심원들은 법정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방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