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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30) -톨스토이-

30 자물쇠가 철거덕하면서 마슬로바가 감방 안으로 들어오자 모두들 그녀를 쳐다보았다. 교회 부집사의 딸까지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마슬로바를 보았으나 곧 다시 말없이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코라블료바는 올이 굵은 자루에 바늘을 꽂고 안경 너머로 의심스러운 듯 마슬로바를 찬찬히 보았다. "어머나! 돌아왔군. 난 꼭 석방될 줄 알았는데."하고 나직하게 사내 같은 쉰 음성으로 코라블료바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징역형을 받은 모양이군." 노파는 안경을 벗고 바느질감을 침대 옆으로 치웠다. "지금 우리는 할머니랑 이야기하고 있었어. 곧 석방될 거라고. 잘하면 돈도 받을지 모른다고 말했지."하고 건널목지기는 노래하듯 재빨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셈이지? 우리 추측이 빗나간 것 같은데 그래. 하느..

<R/B> 부활 (29) -톨스토이-

29 마슬로바가 수감되어 있는 감방은, 길이가 6.3미터, 폭이 5미터의 큰 방을 두 개의 창이 있었고 벽에는 튀어나온 페치카와 금이 간 나무 침대가 방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간에 있는 문 건너편에는 꺼멓게 그을린 성상이 하나 걸려 있었고 촛불이 켜져 있었으며 그 밑에는 뽀얗게 먼지가 앉은 국화 꽃다발이 걸려 있었다. 왼쪽 문 뒤에는 마룻바닥이 꺼멓게 된 곳이 한 군데 있었고, 그 곳에는 몹시 냄새가 나는 변기통이 놓여 있었다. 방금 점호를 끝낸 여죄수들은 어제부터 밤을 보내기 위해서 수감되었다. 이 감방에 수용된 자는 모두 열다섯 명으로서 여자가 열두 명이고 어린아이가 세 명이었다. 아직 날이 어둡지 않아서 두 여자만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 여자는 죄수복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R/B> 부활 (28) -톨스토이-

28 마슬로바는 저녁 6시가 되어서야 겨우 감방으로 돌아왔다. 평소에 걷지 않던 다리고 15킬로미터나 되는 자갈밭을 걸어왔으므로 지치고 발이 아픈데다가, 뜻밖에도 중형을 선고받아 맥이 풀렸는데 무엇보다도 배가 몹시 고팠다. 휴식 시간에 호위병들이 그녀 옆에서 빵과 삶은 달걀을 맛있게 먹을 때 군침이 돌았기 때문에 배고프다는 것을 실감했으나, 그들에게 구걸하는 것은 치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세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먹고 싶다는 생각도 나지 않고 다만 피로만 느꼈을 뿐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 뜻하지 않던 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혹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방금 귀에 들어온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는데 자신을 징역수로서 생각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

<R/B> 부활 (27) -톨스토이-

27 '창피스럽고 정나미 떨어질 일이다. 정나미 떨어지고 창피스러운 일이다.' 네플류도프는 낯익은 거리를 따라 집으로 발길을 향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미시와의 대화에서 느낀 답답한 감정은 그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형식적으로는(만일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면), 그는 그녀에게 공명정대하여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본질적으로는 그는 자기를 그녀와 결부시켰으며 그녀에게 약속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오늘은 자기가 그녀와 도저히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을 뚜렷이 느꼈던 것이다. '창피스럽고 정나미 떨어질 일이다. 정나미 떨어지고 창피스러운 일이다.' 미시와의 관계뿐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다고 느끼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모든 것이 더럽고 부..

<R/B> 부활 (26) -톨스토이-

26 소피야 바실리예브나 공작 부인은 이제 막 정성을 들인 아주 영양이 풍부한 저녁 식사를 끝마친 후였다. 그녀는 자기가 식사하는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항상 혼자 먹곤 했다. 파히토스카(옥수수 이파리로 말아놓은 가느다란 궐련)를 피우고 있는 그녀의 침대 옆에는 그녀가 마실 커피가 놓인 조그만 테이블이 있었는데, 공작 부인은 시원한 검은 눈과 고른 이와, 아직도 나이보다 더 젊은 티를 내려는 암갈색 머리의 가냘프고 훤칠한 부인이었다. 공작 부인과 의사와의 사이에는 스캔들이 떠돌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이 때까지 그런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으나, 지금 그 일이 문득 생각났는데, 기름을 발라 번질번질한 턱수염을 좌우로 멋지게 갈라 붙인 의사가 그녀의 의자 옆에 있는 것을 보자 속이 메스껍도록 불쾌..

<R/B> 부활 (25) -톨스토이-

25 "어서 오십시오, 공작님. 여러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코르차긴가의 상냥하고 뚱뚱한 문지기가 영국제의 돌쩌귀가 달린 참나무 대문을 소리 없이 열면서 말했다. "지금 식사중이십니다만, 공작님만은 모시라는 분부셨습니다." 문지기는 층계 쪽으로 들어가서 2층으로 연결된 벨을 눌렀다. "누가 와 계신가?" 네플류도프는 외투를 벗으면서 물었다. "콜로소프 씨와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씨, 그 외에는 모두 집안 식구들뿐입니다." 층계 위에서 연미복에 하얀 장갑을 낀 말쑥한 하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공작님, 어서 올라오십시오. 방으로 모시라는 분부십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층계를 올라가서, 이제는 익숙해진 호화롭고 넓은 홀을 지나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는 자기 방에서 한번도 나와 본 적이 없..

<R/B> 부활 (24) -톨스토이-

24 재판장과의 대화와 신선한 바깥 공기 때문에 네플류도프의 마음은 다소나마 진정되었다. 그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겪은 감정은 여느때 느끼던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그 자신이 너무 긴장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 상상도 못할 정도로 놀라운 우연이군! 그리고 나는 그녀의 슬픈 운명을 도와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야 한다. 그것도 한시라도 빨리 해야 한다. 지금 곧 말이다. 그렇다. 지금부터 재판소로 가서 파나린이나 미키신, 둘 중 한 사람의 주소만이라도 알아봐야겠다.' 그는 유명한 한 사람의 변호사 이름을 생각해 냈다. 네플류도프는 재판소로 되돌아오자, 외투를 벗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첫 번째 복도에서 파나린을 만났다. 그는 그를 불러 세우고 잠깐 볼일이 있다고 말했..

<R/B> 부활 (23) -톨스토이-

23 표트르 게라시모비치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재판장은 배심원 협의실에서 돌아오자 선고문을 읽어나갔다. 188X년 4월 28일, 황제 폐하의 칙령을 받들어 N지방 재판소 형사부는 배심원 여러분의 결의에 따라 형법 제 771조 제 3항 제 776조, 제 777조에 의거하여 다음과 같이 선고한다. 농민 시몬 카르틴킨(33세)과 평민 예카테리나 마슬로바(27세)에 대하여 이 양인은 형법 제 28조를 적용하여 공민권과 일체의 재산권을 박탈하고 카르틴킨은 8년, 마슬로바는 4년의 징역에 처한다. 평민 예브피미야 보치코바(43세)는 형법 제49조에 의거하여 공사의 특권 일체를 박탈하고, 3년간 금고형에 처한다. 본건에 관한 재판 비용은 등분하여 피고들에게 부담시키기로 한다. 단, 그들에게 그 능력이 없을 경우에는 ..

<R/B> 부활 (22) -톨스토이-

22 드디어 진술을 끝낸 재판장은 점잖게 자문 질의서를 집어 앞으로 가까이 나온 배심원장에게 건네 주었다. 배심원들은 마침내 퇴정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무엇이 부끄러운지 몸둘 바를 몰라하며 줄줄이 뒤이어 배심원실로 갔다. 그들 뒤로 문이 닫히자, 헌병 하나가 그 문에 다가서서 칼집에서 군도를 빼어 어깨에 세우고 문 옆에 보초를 섰다. 판사들도 모두 퇴정했고, 피고들도 끌려나갔다. 배심원들은 배심원실로 돌아오자마자 아까처럼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법정의 자기 자리에 앉았을 동안 모두들 뭔지 모르게 느끼고 있던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던 태도는 배심원 협의실에 들어가 담배에 불을 붙이기 시작하자 씻은 듯이 사라졌고,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 여자에겐 ..

<R/B> 부활 (21) -톨스토이-

21 피고들의 최후 진술이 끝난 후, 자문 질의 사항의 제출 형식에 관해서 당사자간의 협의가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며, 그것이 결정되자 재판장이 요약된 사건을 개진했다. 사건을 개진하기에 앞서 그는 분명하고 거침없는 말투로 배심원들에게, 강도는 강도이며, 절도는 절도이고, 폐쇄된 장소에서의 약탈은 폐쇄된 장소에서의 약탈이며, 개방된 장소에서의 약탈은 개방된 장소에서의 약탈이라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 설명을 하면서 특히 그는 자주 네플류도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 사람이야말로 자기가 말하는 중대한 사실을 이해하고 동료들에게 이해시켜 주리라는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배심원 일동이 충분히 이 사실을 납득했다고 짐작했는지 이번에는 또 다른 사실을 부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