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채식주의자>
-한강 作-
***동우***
2016.05.19 06:17
한강의 채식주의자, 노벨상 버금 간다는 맨부커상을 받았지요.
문학에 있어서 번역의 절대적 역할, 새삼 느낍니다.
'채식 주의자'와 '몽고반점'과 '나무 불꽃'
세편의 연작으로 씌여진 소설입니다..
첫 번째의 '채식주의자', 2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연이어 '몽고반점'도 올리겠습니다. <'나무 불꽃'의 텍스트 파일은 구할수 없네요.>
저 여자 영혜. 마지막 '나무 불꽃'에서 결국 나무가 됩니다.
같은 작가의 前作 '내 여자의 열매'(기 포스팅)에서의 여자가 식물이 되듯이.
<어머니, 무서워요. 내 사지를 떨구어야 해요. 이 화분은 너무 좁고 딱딱해요. 뻗어나간 뿌리 끝이 아파요. 어머니, 겨울이 오기 전에 나는 죽어요. 이제 다시는 이 세상에 피어나지 못하겠지요....봄이 오면, 아내가 다시 돋아날까. 아내의 꽃이 붉게 피어날까. 나는 그것을 잘 알 수 없었다. -내 여자의 열매->
채식주의자, 책 불티나게 팔린다지요,
全文은 친구공개로 남기고 내일새벽 삭제하겠습니다.
공짜로 읽기, 예의가 아닌듯 하여. ㅎ
***eunbee***
2016.05.19 07:12
동우님의 리딩북 덕분에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다시 읽어요. 채식주의자.
'내 여자의 열매'도 리딩북에서 읽었지요. 또 감사!!^^
요즘 들고 나가는 책은(공원, 메트로) 황석영의 손님.
내 독서 선생님 동우님으로부터 비롯된 소설 읽는 참맛,
월사금은 담생에 받으시어요. 빚 갚을 핑계로 다시 만나야지.ㅋ
***동우***
2016.05.20 04:30
'맨부커' 문학상이 대단한 상임은 틀림없는가 봅니다.
덴버의 노루님을 비롯한 여러나라의 은비님 벗님들 기뻐하시는걸 보면.
황석영의 '손님', 나는 아직 읽지 못하였는데.
날더러 독서선생이라 하시니, 킥킥 웃습니다.
그래도 담 생에서 월사금은 꼭 챙길테야요.ㅎ
***하늘의 소리***
2016.05.19 08:39
잘 읽고 갑니다.
내일봐요^
***동우***
2016.05.20 04:31
이따 봅시다. 정목사.
***杏娥***
2016.05.21 13:41
동우님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대단해요~^^
덕분에 다시 한번 더 읽고 갑니다
전 몇해전 이상 문학상 수상 즈음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읽고 한강의 매력에 푹욱 빠졋었죠
덤으로 준 CD음성은 얼마나 나즈막하고 간결한지 ...
올려 주시는 글
넘 감사드려요~~
장미향 처럼 고운 오후 되십시요....
***동우***
2016.05.22 05:19
행아님.
내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 있어 그게 기쁨이랍니다.
좋은 휴일 보내세요, 행아님도.
***동우***
2016.05.20 04:24
<다섯바퀴째 돌자 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어. 목에 걸린 줄에서 피가 흘러. 목이 아파 낑낑대며, 개는 질질 끌리며 달려. 여섯바퀴째, 개는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해. 목에서도, 입에서도 피가 흘러. 거품 섞인 피, 번쩍이는 두 눈을 나는 꼿꼿이 서서 지켜봐. 일곱바퀴째 나타날 녀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축 늘어진 녀석을 오토바이 뒤에 실은 아버지가 보여. 녀석의 덜렁거리는 네 다리, 눈꺼풀이 열린, 핏물이 고인 눈을 나는 보고 있어.>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인류가 언젠가는 야만(野蠻)으로부터 벗어나서 육식습성(肉食習性)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인류에게 식인습성(食人習性)이 사라졌듯이 말입니다.
그렇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나 자신을 임상(臨床)하건대 '소로우'의 예측은 먼 미래에도 인류에게 도래할것 같지 않습니다.
유전공학적 조작과 메커닉한 시스템으로 대량사육(생명의 飼育이라기보다 공산품의 生産이라는게)하여 벌겋거나 허연 육괴(肉塊)가 시장에 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곳곳에 번창하는 고깃집.. 좀 전 목숨이었을 그 살덩이들을 아귀아귀 씹어대는 기름기 번들거리는 입술들..
함께 대기를 호흡하였던 어떤 생명에 대한 연민 한조각 없습니다.
내가 바로 그러하듯 말입니다.
<꿈에 누군가의 목을 자를 때, 끝까지 잘리지 않아 덜렁거리는 머리채를 잡고 마저 칼질을 할 때, 미끌미끌한 안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때, 그러다 깨어날 때. 생시에, 뒤뚱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죽이고 싶어질 때, 오래 지켜보았던 이웃집 고양이를 목조르고 싶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맺힐 때,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을 때, 다른 사람이 내 안에서 솟구쳐올라와 나를 먹어버린 때, 그때……>
<입 안에 침이 고여. 정육점 앞을 지날 때 나는 입을 막아. 혀뿌리부터 차올라 입술을 적시는 침 때문에. 입술 사이로 새어나와 흘러내리려는 침 때문에.... 누군가가 사람을 죽여서, 다른 누군가가 그걸 감쪽같이 숨겨줬는데, 깨는 순간 잊었어. 죽인 사람이 난지, 아니면 살해된 쪽인지. 죽인 사람이 나라면, 내 손에 죽은 사람이 누군지. 혹 당신일까. 아주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아니면, 당신이 날 죽였던가…… 그럼 그걸 감춰준 사람은 누굴까. 그건 분명히 나나 당신이 아닌데. ……삽이었어. 그것만은 확실해. 커다란 흙삽으로 머릴 쳐서 죽였어. 둔중한 울림, 금속과 머리가 부딪히던 순간의 탄성…… 어둠속에서 고꾸라지던 그림자가 생생해. 이번 꿈이 처음이 아니야. 무수히 꿨던 꿈이야. 술에 취하면 예전에 취했을 때 기억이 나는 것처럼, 꿈속에서 지난 꿈 생각이 나. 수없이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였어. 가물가물한…… 잡히지 않는…… 하지만 소름끼치게 확고한 느낌으로 기억돼.>
나도 비슷한 꿈을 꾼 적 있습니다.(정말입니다)
내가 도끼로 사람을 도살하여 사지를 절단하는, 혹은 그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고문하면서 날카로운 칼로 내 살을 저미고 내 육괴의 각을 뜨는. (미끈미끈 징그럽고 굉장히 끔찍한 느낌이었는데 꿈이어서 그런지 통증은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번들거리는 짐승의 눈, 피의 형상, 파헤쳐진 두개골, 그리고 다시 맹수의 눈. 내 뱃속에서 올라온 것 같은 눈. 떨면서 눈을 뜨면 내 손을 확인해. 내 손톱이 아직 부드러운지, 내 이빨이 아직 온순한지.....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인간성에 내재된 잔인성은 본능적 동물성입니다.
내 경우, 고기를 많이 먹은 것과는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만, 공격성과 미움과 분노와 기억과 욕망과 트라우마와 죄의식.... 등과 같은 심리적 동인(動因)은 비슷할런지 모르겠습니다.
며칠전 포스팅하였던 '미셀 트루니에'의 '도임링씨네 꼬마의 가출'에 이런 대목이 있지요.
<그리고는 아담과 하와에게 마술나무의 동산을 떠나라고 명령하고 나무가 없는 들판으로 내몰았어.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야. 인간은 식물의 세계에서 쫓겨나 동물의 세계로 떨어졌지. 동물의 세계가 뭐냐고? 사냥, 폭력, 살인, 공포가 난무하는 세계지. 반대로 식물의 세계는 태양과 땅의 협력 속에서 고요히 성장하는 세계야. 그래서 어떤 종류의 지혜든 간에 모든 지혜는 나무에 관한 명상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지. 숲속에 사는 식물적인 인간을 뒤쫓는 명상 말이야.>
욕망 경쟁 양육강식 폭력 살상 공격 공포 불안 분노...
느끼건대 동물의 세계에 인간이 강녕(康寧)함은 깃들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동물적인 것, 공격성을 띈 것들이 우리 삶을 가식(假飾)하여 인간을 오도(誤導)하는 것들인게지요.
우리를 들러 싼 동물적인 것으로 은유할 만한 것들, 육식(肉食) 뿐이리까.
도시 아파트 회사 자본 학교 식사 화장 의상 선거 전쟁 자동차 전철 비행기 입시 출세 추첨 상점 시장 주식 채권 극장 스포츠 성형 장식 학군 은행 세금 국회 민주주의 스마트폰....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그 누구를 공격할 수도, 해칠수도, 상처를 줄수도 없는... 오로지 수동성의 식물이고자 하는 영혜.
영혜의 존재론적 의식이 이른 곳이 그 경지인가 봅니다.
<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종장의 이 대목, 은유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동박새는 영혜 자신인가요.
한강의 문체는 쉬웁고 섬세하고 여립니다만, 어딘가는 참 어렵습니다.
詩적 이미저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까닭이겠습니다만, 나는 '채식주의자'보다 '내 여자의 열매'가 소설적으로는 더 낳아보입디다.
식물이 되어버리는 그 소설 속의 여자, 평생을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였던 여자였는데 답답하고 시끄러운 고층 아파트의 베란다에 갇힌채 푸르른 식물로 변해 버립니다.
다프네는 아폴론의 동물적 짝사랑을 피하려고 월계수로 변해버렸다지만, 식물로 변하여 베란다 화분에 정착하여 죽어가는 여자가 나는 이 소설의 영혜보다 더 슬펐습니다.
'채식주의자'.
영혜에게서 문득 다자이 오사무가 떠올랐습니다.
욕망하고 분노하는 인간의 속성을 접할 적 마다 다자이 오사무는 얼마나 전율하였고 스스로에게 절망하였던가요.
<나는 화를 내고 있는 인간의 얼굴이 동물 야수의 본성을 보는 것 같아서 너무 무섭다. 이를테면 소가 풀밭에 조용히 누워 있다가 돌연 꼬리를 치면서 뱃가죽에 붙어있는 등에를 후러쳐 죽이는 것 같은, 갑자기 인간의 무서운 정체를 분노에 의해서 폭로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언제나 머리카락이 거꾸로 서는듯한 전율을 느끼며, 이 본성도 인간이 살아가는 자격의 한가지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에게 완전히 절망을 느꼈던 것입니다. -인간실격->
***다나***
2016.05.20 10:16
채식주의자 유명세에 저도 냉큼 책을 사들고 읽었습니다.
짧은 소설이지만 제가 영혜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조금 힘들었다는..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오늘 아침엔 그 뒤 편 몽고반점을 읽으며 출근했는데
연작이라서인지 채식주의자를 읽고 나서 몽고반점을 읽는 맛이
몇 년 전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었던 그 느낌과 정말 다르네요.
그동안 제가 달라졌을까요?
어쨌든 동우님은.. 대단하세요~^^
***동우***
2016.05.21 05:51
무어가 있었나... 다시 들여다 보게 하는 유명세라는 것.
그 유명세의 근원이 맨부커 상임에랴..ㅎㅎ
아무도 날 도울수 없어...
어느 날 꾼 꿈 때문에 고기를 먹을수 없게 된 여자.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자신의 몸이 벌레로 변신한 것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카프카는 그 벌레의 정체를 밝히기를 거부하였다고 하는군요. (나보코프는 딱정벌레 종류라고 추정합디다만)
그러니까 벌레는 굉장히 중의적(重意的)일겝니다.
나는 그것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혜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좀 힘들었다는 말씀.
그 감성 역시 다나님의 힘일터...
다나님 좋아하시는 뮤지컬, 무대에 자신의 정서를 투사할줄 아는..ㅎ
대단이라니, 내 무엇이?
그냥 탱큐 하면서 얼굴 붉힙니다. ㅎ
-독서 리뷰-
<몽고반점>
-한강 作-
***동우***
2016.05.21 05:40
한강의 채식주의자, 우리나라 뿐 아니라 英美에서의 열풍도 대단하군요.
내 눈에는 전에 볼수 없었던 무엇이 있길래..
나도 그렇거니와 다시 꼼꼼하게 읽는 사람 많을겁니다. ㅎ
'채식주의자'중 두번째 '몽고반점'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첫번째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이 화자(話者).
두번째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가 화자.
세번째 '나무불꽃'은 영혜의 언니 인혜가 화자입니다.
무르익어가는 오월의 주말, 좀 무거운 주제인듯 합니다만..
한반도는 난데없이 무더위인데 서유럽은 느닷없는 추위라는군요.
좋은 주말을.
***杏娥***
2016.05.22 00:18
아 ... 몽고반점
연작이지요
좀 어려워요. ㅎ
나무불꽃 안 읽어봤는데
볼수 있겟죠
그럼 이해되려나..,
***동우***
2016.05.22 05:16
어떡해요,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무불꽃 텍스트 파일 구할수가 없네요.
어렵지요, 몽고반점.
그렇지만 어디 속속들이 이해하면서 책읽기를 하는 건가요? 어디.
느낌만으로 족할 터입니다.
나 역시 그렇다오.
***동우***
2016.05.22 04:57
영혜.
그녀는 누구인가요.
아니 하나의 오브제로서, '그녀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어야 할까요.
'채식주의자'의 話者인 남편은 범속하기 짝이 없는 속물입니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는 편안했다. 굳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박식한 척할 필요가 없었고,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허둥대지 않아도 되었으며, 패션 카탈로그에 나오는 남자들과 자신을 비교해 위축될 까닭도 없었다. 이십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아랫배, 노력해도 근육이 붙지 않는 가느다란 다리와 팔뚝, 남모를 열등감의 원인이었던 작은 성기까지, 그녀에게는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는 은근히 아내의 언니 인혜를 탐(貪)합니다.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가치 외의 어떤 것도 믿지 않는 듯 건조한 얼굴, 상투적이지 않은 어떤 말도 뱉어본 적 없을 속된 입술이 그녀의 몸을 탐했을 거란 상상만으로 그는 일종의 수치를 느꼈다. 둔감한 그는 그녀의 몽고반점을 알기나 했을까. 알몸의 두 사람을 상상한 순간, 그것은 모욕이라고, 더럽힘이라고, 폭력이라고 그는 느꼈다.>
'채식주의자'는 속물의 눈으로 아내를 관찰한 기록인데 결코 범속하지 않은 영혜를 느낄수 있는 것은 소설의 행간에서입니다.
'몽고반점'의 화자(話者)인 형부는 탐미주의자입니다.
그에게 영혜는 미칠듯 욕망하는 대상입니다.
<그는 서름서름한 눈길로 아내의 지친, 남편에 대해 얼마간 체념한 듯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음 접하는 어휘 '서름서름'...우리말의 아름다움)
삶에 넌더리가 났을때, 현실의 이미지들이 견딜수 없을때.
남자는 액스터시를 꿈꾸면서 음습한 골방으로 스며들지요.
그리고 금기의 것들을 상상하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합니다.
<그는 문득 구역질이 났는데, 그 이미지들에 대한 자신의 미움과 환멸과 고통 때문에, 그 감정들을 직시해내기 위해 밤낮으로 씨름했던 작업의 순간들이 일종의 폭력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정신은 경계를 넘어, 거칠게 운전 중인 택시 문을 열고 아스팔트 바닥을 구르고 싶어졌다. 그는 더 이상 그 현실의 이미지들을 견딜 수 없었다. 다시 말해, 그것들을 다룰 수 있었을 때 그는 충분히 그것들을 미워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혹은, 충분히 그것들로부터 위협당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 처제의 피비린내가 코를 지르는, 푹푹 찌는 여름 오후의 택시 안에서 그 모든 것들이 그를 위협했고, 구역질나게 했고, 숨을 쉴 수 없게 했다...앞으로 오랫동안 자신이 작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는 그때 했다. 단 한순간에 그는 지쳤고, 삶이 넌더리났고, 삶을 담은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없었다. 십여 년 동안 자신이 해온 모든 작업이 조용히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알았던, 혹은 안다고 믿었던 어떤 사람의 것이었다.>
처제의 엉덩이에 아직 남아있는 몽고반점을 상상하는 순간 그의 머리 속에서 하나의 포름은 완성됩니다.
그것은 예술적 욕망인 동시에 처제라는 분명한 대상을 향한 강렬한 성욕을 동반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순간 이 이미지는 그에게로 왔다. 일 년여의 고갈 상태가 어떻게든 끝나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던, 에너지가 조금씩 뱃속에서부터 꿈틀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던 지난겨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렇게 파격적인 이미지이리라고 그는 짐작하지 못했다. 그전까지 그가 해왔던 작업은 다분히 현실적인 것이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모되고 찢긴 인간의 일상을 3D 그래픽과 사실적 다큐 화면으로 구성했던 그에게, 관능적인, 다만 관능적일 뿐인 이 이미지는 흡사 괴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여인의 엉덩이 가운데에서 푸른 꽃이 열리는 장면은 바로 그 순간 그를 충격했다. 처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과, 벌거벗은 남녀가 온몸을 꽃으로 칠하고 교합하는 장면은 불가해 할 만큼 정확하고 뚜렷한 인간관계로 묶여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정말 하고 싶었어요...그렇게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어요. 그 사람 몸에 뒤덮인 꽃이요...그게 날 못 견디게 했던 거예요, 그것뿐이에요.”
남자도 여자도 미친듯 욕망하여 불꽃 튀는 섹스.
탐미와 식물(植物)의 부딪침인가요.
<모든 것을 고요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녀가 어떤 성스러운 것, 사람이라고도, 그렇다고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식물이며 동물이며 인간, 혹은 그 중간쯤의 낯선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가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을 때, 짓부른 잎사귀에서 흐르는 것 같은 초록빛 즙이 그녀의 음부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향긋하면서도 씁쓸한 풀 냄새가 점점 아릿해져 그는 숨을 쉬기 어려웠다. 절정의 직전에 가까스로 몸을 빼냈을 때, 그는 자신의 성기가 온통 푸르죽죽하게 물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것인지 그의 것인지 모를 싱그러운 즙으로 그의 아랫도리와 허벅지까지 시퍼런 풀물이 들어 있었다.>
동물적 절망과 식물적 환희의... 메타포...
참으로 격렬한 이미지의 충돌입니다.
***동우***
2016.05.22 05:12
어제 작가 한강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그녀도 한때 채식주의자였고 지금도 육식을 불편해 한답니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의 직접적인 목소리는 의도적으로 넣지 않은가 봅니다.
영혜는 관찰(남편)의 대상으로, 욕망(형부)의 대상으로, 연민(언니)의 대상으로 그려집니다.
한강, 그녀는 늘 인간의 폭력성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왔다고 하는군요.
육식, 다른 생명을 해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목숨을 유지할수 없는것인지...
완벽한 인간의 순수한 결벽은 가능한 것인지..
죄의 문제와 구원의 문제...
영혜는 아무도 해치지 않기 위하여 채식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영혜는 나무가 되어 죽습니다. (3편 '나무 불꽃' 텍스트 파일 얻지 못하였지만)
<언니, 내가 물구나무서 있는데, 내 몸에 잎사귀가 자리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응,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잠결에 들은 영혜의 목소리는 처음엔 나직하고 다정했으며, 중간쯤에선 어린아이처럼 천진했으나, 마지막 부분은 짐승의 소리처럼 뭉개어져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생시에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혐오감 때문에 그녀는 흠칫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었다.>
언니 인혜만이 영혜를 연민하고 동생의 고통을 나누어 가지려고 하였습니다.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사람은 살게 마련, 남자라면 누구나 영혜보다 인혜를 원할테지요.ㅎ
이 소설 어렵습니다.
자가의 의도를, 작가 심상의 그림들을 어찌 속속들이 이해하겠습니까.
죽었으면 좋겠어.
죽었으면 좋겠어.
그럼 죽어.
죽어버려.
나 따위, 그저 어떤 절망의 이미저리를 아득하게 느낄 뿐이지요.
모더니즘의 절망, 후기자본주의의 절망, 적극의 절망, 능동태의 절망, 도회의 절망, 관계의 절망...그런 것들.
느닷없이 '빌어먹을'하고 중얼거리는 말론 브란도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원인도 결과도 작정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 그 빌어먹을 절망과 고독으로 뒤틀리고 일그러진, 오로지 미쳐버린 짐승의 헐떡임으로 나누는 섹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그녀는 베란다 난간 너머로 번쩍이는 황금빛 젖가슴을 내밀고, 주황빛 꽃잎이 분분히 박힌 가랑이를 활짝 벌렸다. 흡사 햇빛이나 바람과 교접하려는 것 같았다. 가까워진 앰뷸런스의 사이렌, 터져나오는 비명과 탄성, 아이들의 고함, 골목 앞으로 모여드는 웅성거리는 소리들을 그는 들었다. 여러 개의 급한 발소리들이 층계를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베란다로 달려가, 그녀가 기대 서 있는 난간을 뛰어넘어 날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3층 아래로 떨어져 머리를 박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이 깨끗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못 박혀 서서, 삶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인 듯, 활활 타오르는 꽃 같은 그녀의 육체, 밤사이 그가 찍은 어떤 장면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번쩍이는 육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좋은 휴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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