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우리들의 작문교실>
-조민희 作-
***동우***
2019.01.07 00:32
'조민희'의 중편소설 '우리들의 작문교실'
조민희는 1974년생 여성작가, 소설속 주인공 은아는 열한살.
내 딸아이가 1974년생이고 내 큰 손녀 비니가 열두살(초등학교 6학년)이랍니다.
홀어머니 밑에 자라는 저 또래 계집아이의 심리.
은아, 기교부림없이 열한살 짜리 다운 진솔한 모놀로그입니다.
엄마에 대하여.
친구에 대하여.
남자아이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떠남에 대하여
++++
<우리 엄마에 대해서 써 보라구? 반 페이지 정도로?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얘기다. 어떤 애도 자기 엄마에 대해 반 페이지 짜리 짤막한 글을 쓸 수는 없다. 일단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공책 한 권을 다 채우고도 철철 넘치게 되어 있는 게 엄마라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이다. 게다가 얘기는 아주 어지럽고 복잡해질 것이 틀림없다. 도대체 무엇에서부터 시작해서 무엇으로 끝을 내야 할지를 모르겠으니까. 우리 엄마가 작년 겨울 내내 매달렸었던 손뜨개 스웨터 정도라면 반 페이지 이내로 어떻게 해 볼 수도 있겠지만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서 쓰라고 한다면 나는 자신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어떤 애도 그런 재주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선생님들이란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쯤은 뻔히 알고 있을 텐데도 자꾸만 안 되는 일을 시키니 말이다.>
<엄마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그런 얘기들을 듣는다. 그리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수첩에 메모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나대로 걱정이 태산이다. 내가 지금 위험한 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의 머리 속이 걱정으로 가득 차는 건 싫기 때문이다. 설령 내게 무슨 끔찍한 일이 생긴다 해도 그 일이 진짜로 벌어질 때까지는 엄마는 까맣게 몰랐으면 좋겠다. 왜냐면.....
왜냐면 엄마에겐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골칫거리라고는 나밖에 없다. 속 썩이는 다른 아이도 없고 열심히 싸워야 할 남편도 없다. 어른이니까 이제 못 살게 구는 친구도 없고 밀린 숙제도 없다. 그러므로 엄마는 다른 걱정거리 때문에 내 걱정을 잊는 일이 없다. 일단 내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걱정거리란 차라리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어느 한 가지를 걱정하다가 지치면 다른 걸 걱정하면 되니까. 한 가지에 대해서만 너무 많이 걱정하면 머리가 이상해질지도 모른다. 그 점이 나는 걱정된다. 엄마는 13 년 동안이나 나 하나 때문에 골치를 썩히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뱃속에 들어 있을 때까지 합쳐서 14 년쯤...>
<위니는 나를 펄이라 부른다.
위니와 펄 노릇을 한 지도 한 달쯤 지난 후에 나는 위니를 엄마의 가게에 데려갔었다. 위니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두 가지 점에 대해서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첫째, 가게에 있는 건 도넛이든 음료수든 얼마든지 먹어도 좋은데 단, 돌아다니면서 먹지는 말 것. 왜냐면 엄마가 질색하니까. 엄마한테 좋은 인상을 주고 싶겠지? 둘째, 그럴 리도 없겠지만, 혹시라도 말야, 아빠 얘기는 꺼내지 말 것. 왜냐면 내가 싫으니까.
위니는 궁금해했다.
"왜 아빠를 싫어하는 거야?"
"이 바보, 아빠가 싫은 게 아니고 아빠 얘기가 싫은 거야."
"왜?"
"엄마가 걱정할까봐."
"뭘?"
"아빠가 없다는 걸 알면 네가 날 특별한 애로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거지.">
<작년에도 이런 제목으로 작문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아이'에 관한 글짓기 말이다. 그 때 나는 작문교실에서 만난 고현우라는 아이에 대해서 꽤나 긴 글을 썼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바보같은 짓이었다. 웬일로 내가 쓴 글이 선생님 눈에 들어 아이들 앞에서 그 글을 읽어야 했다. 그건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아이들 가운데에 고현우를 앉혀 놓고 나는 교단 앞에 불려나와 그 아이에 대한 온갖 좋은 소리를 늘어놓아야 했으니까. 그런데 그 경험의 가장 끔찍스런 부분은 그 아이가 내가 읽고 있는 얘길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는 거다. 딴 사람이 아닌 자기 얘길 하고 있는 건데 그 아이는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글을 다 읽어 갈 때쯤에는 나의 목소리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 아이에게 관심을 끊게 되었다.>
<각자 좋아하는 걸 갖고 있는 채로 잘 지낼 수 있다는 나의 말은 맞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좋아하는 걸 버릴 수도 있다는 위니의 말도 너무나 맞는 말이다. 그런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뭘 내놓으라고 요구할 때가 분명히 있다. 내게 중요한 걸 절대로 버리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우다간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또는 사랑한다는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지도 모르고. 앞으로 스물 셋이 되고 서른 셋이 되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꾸만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건 정말 무섭다. 사랑하는 사람이 뭔가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면 만사 끝이다. 그 이유같은 걸 따지며 싸우기에도 이미 늦은 거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걸 증명하기 위해 내놓으라는데, 그걸 내놓지 않고 말로 잘 설득해서 사랑하는 걸 믿게 할 도리는 없다. 위니는 정말 날 꼼짝 못하게 묶어놓은 셈이다. 바보가 아닌 줄은 진작에 알았지만 이렇게 날 아프게 할 수 있을 줄은 미처 몰랐었다. 언제나 귀찮아지면 달아나버리던 내 방식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다.>
<여차하면 꽁무니를 빼버리기. 그게 내 방식이었다.
위니뿐 아니라 다른 일에 대해서도 늘 그 모양이다. 그 어떤 것도 나를 붙잡아두도록 놔두지 못한다. 힘들어지면 놔버리고 도망간다. 위니는 내가 대단한 줄만 알지 그깟 작문교실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관둬 버린 애라는 건 모른다. 나는 정말 이대로 살아가다가는 우주미아가 될 판이라는 걸 얘기해주고 싶다. 나의 정체는 우주선으로부터 막막한 우주 속으로 떨궈지는 꼬마 에이리언인 것 같다고 털어놓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내가 불쌍해서라도 이런 무서운 고민에 빠뜨리지는 않았을텐데.>
<아직 모르고 있겠지만 그놈의 롤러 블레이드는 감쪽같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어. 어제 아침 이후로 보이지 않아. 내 마음이 변한 걸 알고 화가 나서 제발로 걸어나간 걸까? 그래도 발만큼은 달려 있는 녀석이니까....... 농담이야, 그럴리야 있겠니? 누군가 집어갔겠지. 내 외사촌들 중 하나인지도 모르지. 아니면 우리 엄마가 내다 버렸거나. 위니와 펄, 우리 둘이 힘을 합친다면 범인을 잡아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굳이 그런 소동을 피우고 싶진 않아. 다만 사라질 때가 되어서 사라진 거야. 내년 2월이면 싫든 좋든 우리도 학교를 졸업 해야하듯이 말야. 어쨌든 이제 내게 롤러는 없어.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걸어다닐 거다.
제제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
생각해 봤는데 제제는 어른이 됐을 것 같아. 그게 답이야. 그 뿐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어. 목소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목소리는 잊어버리자, 위니. 어른이 되려면 뭐든 내놓아야 하는 거야. 자기한테 중요한 걸 내놓은 사람들만 어른이 되는 거야. 제제 걱정은 그만 두기로 했어. 제제는 어른이 되는 거야.
혹시 아니? 어른이 되면 어른의 목소리가 생겨날는지. 누가 공짜로 주는 게 아니고 제제의 뱃속에서 말야.
위니, 나는 지금 네가 보고 싶어.>
++++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 짜리 내 두 손녀.
어제 통도판타지아로 떠나 거기서 시방 곤한 잠에 빠져있을겁니다.
다니는 태권도도장에서의 1박2일 수련회라 하지만 그저 노는 걸테지요.
작은 놈은 돌아온 다음날 수술을 받아야하는데, 노는 재미로 긴장하지 않게 되어 다행입니다.
짧은 시간에 마치는 수술이라는데 전신마취를 한다네요. 늙은 할비가 오히려 긴장합니다그려.
이 소설.
또래의 아이를 둔 부모나 조부모들 읽으면 참 좋겠습니다.
내 딸은 소설로 읽어도 좋겠고, 내 손주녀석은 동화로 읽어도 좋을듯 합니다.
세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함께 읽어요.
***동우***
2019.01.10 06:07
'조민희'의 '우리들의 작문교실'
어제 하루 건너뛰었습니다그려. ㅎ
유복자로 태어난 열한살짜리 '은아'의 내면세계.
은아에게서 어머니로부터의 분리불안이 두드러지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유아기는 벗어났다지만 은아는 이른바 사춘기에 접어든 것입니다.
서서히 자의식이 싹트기 시작하는 저 무렵,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회적 자아는 혼란을 겪게 마련이지요.
저 즈음 전두엽의 폭발적 성장으로 뇌구조상 혼란이 발생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극심한 감정상태의 굴곡이 나타난다네요.
은아는 원래 혼자 있는게 익숙한 아이인데 위니와 짝꿍이 됩니다.
타인과의 관계맺기에 대한 은아의 고민...
이 소설의 테마가 거기 있을테지요.
<아마도 내가 위니에게 상처를 줬는지도 모르겠다. 위니를 바보라고 부르고 위니 앞에서 롤러를 타며 뻐긴 것? 아니, 그게 아니다. 나는 언제나 위니를 좋아했고 위니하고만 놀았지만 위니 정도는 즉각 따돌릴 수 있다고 믿었었다. 귀찮을 땐 슬몃 달아나버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위니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위니는 그걸 알게됐다. 붙잡으려하면 벌써 저만큼 달아나는 아이라는 걸 알아차렸던 거다.>
엊그제 열두살짜리 내 큰 손주녀석에게서 슬쩍 엿보았습니다.
사춘기의 기미를..
그 녀석에게 이 소설을 읽혀야겠습니다.
카톡에 나누어 올려서.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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