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화는 마침 놀음에 불려 나가고 집에 있지 않았다. 태수는 그것이 도리어 잘되었다 싶었지 섭섭한 줄은 몰랐다. 그는 기다리고 있을 김씨의 무르익은 애무가 차라리 마음 급했다.
탑삭부리 한참봉네 집까지 와서 우선 가게를 살펴보았다. 빈지를 죄다 잠갔고, 빈지 틈바구니로 들여다보아도 캄캄하니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이만하면 가겟방에도 탑삭부리 한참봉이 있지 않은 것은 알조다.
그래서 안심을 하고 나니까, 그제야 저 하던 짓이 우스웠다.
‘왜, 내가 이렇게 뒤를 낼꼬? 다 오죽 잘 알고서 데리러 보냈을까봐서.’
그렇기는 하면서도 웬일인지 모르게 전처럼 마음이 턱 놓이지를 않고, 어느 한구석이 서먹서먹해지는 듯싶은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안대문께로 돌아가서 지쳐 둔 대문을 밀고 들어서서도,
“헴, 아저씨 주무세요”
하고 짐짓 기척을 내보았다.
김씨는 태수의 기척이 들리기가 무섭게 앞미닫이를 드르륵 열고 연둣빛 처네를 걸친 윗도리를
내놓으면서 말은 없고 웃기만 한다.
태수는 그의 하고 있는 맵시가 작년 초가을 맨처음 그날 밤과 꼭 같다고 자못 회포 있어 하면서 성큼 방으로 들어선다.
김씨는 이내 웃으면서 옆에 와서 앉으라고 요 바닥을 도닥도닥 가리킨다.
태수는 그리로 가서 털 숭얼숭얼한 종아리를 드러내 놓고 펄씬 주저앉는다. 그는 새삼스러운 긴장과 아울러 임의롭기 큰마누라한테 온 것같이나 마음이 놓임을 스스로 느꼈다.
눈치빠른 계집아이가 건넌방에서 나오더니, 대문을 잠그고 태수의 게다를 치워 버린다.
“그래, 새루 장가간 재민 좋더냐”
김씨가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태수의 빙그레니 웃고 있는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아기 어르듯 한다.
“인전 장가를 갔으니깐 어른인데, 그래두 이랬냐 저랬냐 해”
“아이고 요것아!”
김씨는 손가락으로 태수의 볼때기를 잡아 쌀쌀 흔들다가 그대로 끌어다가는 ×× ×××. 기왕이니 한바탕 깍 물어 떼고 싶은 것을 차마 아직 참던 것이다.
“……장갈 들더니 재롱 늘었구나!”
“헤헤.”
“얼굴이 많이 상했다가? 젊은 것들 장갈 딜여 주면 이래서 걱정이야!…… 그렇지만 너무 그리지 마라, 몸에 해루니라.”
“보약이나 좀 지어 보내 주덜랑 않구서!”
“오냐, 날새 내가 지어 보내 주마. 그렇지만 좀 조심해야 한다!…… 그 애가 온 그렇게두 이쁘더냐”
“응.”
“하하하! 고것이야!…… 그렇지만 너 오늘 저녁은 내 것이다? 약속 알겠지? 한 달에 두 번은 내한테 오기루 한 거.”
“응, 그렇지만 열두시까지유”
“이건 누가 쫓겨가더냐”
“그런데 참, 오늘 저녁에 탑삭부리가 없을 줄은 어떻게 미리 알구서”
태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만큼 그의 마음이 착 놓이지를 않던 것이다.
“그거…… 그런 게 아니라 오늘이 그년 생일이라나? 그리니깐 여니때두 아니구 갈 건 빠안하잖아? 그래 나두 늦기 전에 미리서 다아 요량을…….”
“그런 걸 글쎄 난 미심쩍어서 가겔 다아 딜여다 봤지! 헤헤.”
“그런 걱정을랑 말구서 맘놓구 다녀요, 내가 오죽 알아서 할까 봐”
탑삭부리 한참봉은 불도 켜지 못하고 가겟방에 웅숭그리고 누워서 지리한 시간을 기다린다.
작은집에서 열시에 나왔으니 하마 열한시는 되었음직한테 종시 시계 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또 어찌 생각하면 청승맞은 짓을 하고 있느니라 싶어서 우습기도 했다. 그러나 일변 겁이 나기도 했다. 가만히 팔을 뻗쳐 본다. 머리맡에 놓아 두었던 굵직한 다듬이 방망이가 손에 잡힌다. 조금 마음이 든든해진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아까 저녁때 일곱시가 마악 지났을 무렵에 이상한 전화를 받았었다.
항용 거저 쌀을 보내 달라는 전화겠거니 하여, 네에 하고 무심히 대답을 하는데, 저편에서는 딱 바라진 음성으로 이상스럽게 다지듯,
“여보시오, 한참봉이신가요”
“네에.”
“확실히 한참봉이시지요”
“글쎄 그렇단밖에요…… 뉘십니까”
“네에, 내가 누구라는 건 아실 것 없습니다. 또오 성명을 대디려두 모르실 게구…… 그렇지만, 나는 한참봉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네에…….”
한참봉은 겉목소리로 대답하면서 눈을 끄먹끄먹한다.
그는 선뜻 돈을 어디로 가져오라는 협박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가슴이 더럭 내려앉았던 것이다.
그러나 모르면 몰라도 협박전화치고서 이렇게 음성이 공손할 리가 없다. 또 그뿐 아니라 한참 당년에 ×××을 모집한다면 ×××들이 사방에서 날뛰던 그런 때라면 몰라도 지금이야 그런 건 옛말이지 눈 씻고 볼래야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말씀하시지요”
저편에서 목을 가다듬더니,
“……에, 다름이 아니라, 당장 오늘 저녁에 큰 재앙(災怏)이 한 가지 한참봉 댁에 생기게 된 것을 알으켜 디릴려고 전화를 거는 겝니다…….”
“재애앙”
“쉬위! 떠들지 말구…… 자, 자세히 들으십시오…… 아뿔싸! 지금 가게에 누구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없지요!”
“그럼 맘놓구서 이야길 하지요…… 한데 한참봉 오늘 저녁에 작은댁엘 가시겠다요”
“네에”
탑삭부리 한참봉은 깡총 뛴다.
“하하! 그렇게 놀라실 건 없습니다. 없구…… 에, 이따가 저녁을 자시구 나서 가게를 디린 뒤에 …… 자세 들으십시오!…… 아주 천연스럽게 작은댁으루 일단 가신단 말씀이지요. 댁의 하인이나 부인한텔라컨 말루든지 작은댁에 꼭 가시는 체하셔야 하십니다, 네”
“네에!”
대답이 아니라 바로 신음 소리다.
“그래 그렇게 작은댁으로 가셨다가 말씀이지요. 열한시쯤 되거들랑 어딜 좀 댕겨오시겠다구 하구서 도루 큰댁으로 오십시오. 오시되, 미리서 가게의 빈지문 하나를 안으루다가 걸지 말구서 고리를 뱃겨 놨다가는 글러루 들어오시든지, 혹은 아녈 말루 담을 넘어서 들어오시든지 아무튼 쥐두 새두 모르게 들어오십니다. 아시겠지요”
“네에!”
“그렇게 살끔 들어와서는 그댐엘라컨 가만가만 발자욱 소리두 내지 마시구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들어가서.”
“그-래서요”
탑삭부리 한참봉은 어느결에 다뿍 긴장이 되어 가지고 성미 급하게 재촉을 한다.
“네에…… 그래 그렇게 소리 없이 안으로 들어가설랑은 거저 두말 없이 거저, 안방문을 열어 제치십시오. 그러면 다아 아실 겝니다.”
“아니, 여보시오!”
“글쎄 더 묻지 마십시오, 그러면 다아 아실 겝니다.”
“아니, 여보시오!”
“글쎄 더 묻지 마십시오. 더는 묻지 마시구, 그렇게 하실랴거든 해보시구, 또 내 말이 곧이들리지 않거들랑 고만두시는 게구…… 그러나 종차 후횔랑은 마십시오.”
“글쎄 여보시오!”
“여러 말씀 하실 게 없습니다. 그리구 또 한 가지…… 나는 이 일에 대해서 조금치두 무슨 이해상관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건 참 어찌 생각 마십시오.”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저편은 전화를 끊어 버린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비로소 정신이 들기는 했으나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멀거니 전화통에다가 매달린 채 돌아설 줄을 모른다.
이것은 형보가 정거장 앞에 있는 자동전화를 이용한 것임은 물론이다.
형보는 흔히 신문에서 보는, 샛서방〔間夫〕과 계집이 본서방에게 들키는 현장에서 한꺼번에 목숨을 빼앗기는 경우와 같은 요행수를, 오늘 밤 일의 결과에다가 기대를 했었다. 그리고 아울러 태수가 제 집을 비워 두는 시간을 넉넉히 이용하여 사전(事前)에 우선 초봉이를 조처해 둘 요량이었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그는, 태수가 김씨를 찾아가서 그 몇천 원의 돈을 받으리라는 초저녁 시간을 지정하지 않고, 느직이 열한시라고 했던 것이다.
오늘 저녁의 일은 가령 허사가 되더라도 태수를 법망에 얽어 넣을 방법이 얼마든지 종차로 있으니까 밑질 게 없지만, 혹시 뜻대로 일이 되어서 태수가 죽기만 한다면 미상불 형보한테는 호박이 절로 떨어지는 판이었었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이윽고 수화기를 걸고 신호를 울린 뒤에 천천히 돌아섰다.
그는 도무지 맹랑해서 어떻다고 이를 데가 없고, 허황한 품으로는 누구의 장난 같았다. 그러나 장난치고는 너무나 심한 장난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그러한 장난을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분명코 장난은 아니고.
그러면, 작은여편네가 어떤 놈하고 배가 맞아서 오늘 저녁에 나를 따돌리려고 꾸며 낸 흉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뒤미처 들었다. 이러한 경우에 만만한 건 남의 첩인지 미상불 그럼직하기는 했다.
그러나 실상인즉 작은집에서는, 오늘이 제 생일이라서 제 동무들까지 몇을 청해다가 저녁을 먹고 나서 이어 밤새도록 놀아 젖힐 채비를 차리고 있고, 그래서 조금 전까지 벌써 세 번째나 어멈을 내려보내서 제발 오늘은 가게를 일찍 드리고 올라오시라고 기별을 했는데야!
그러니 혹시 여느때라면 몰라도, 오늘 저녁 일로는 작은집에다가 그러한 치의를 할 계제가 되지 못하고.
그 끝에 자연한 순서로 큰댁 김씨에게 의심이 갈 것이지만, 혹은 평소에 너무 믿음이 도타웠던 탓인지 아직은 미처 그의 생각은 나지도 않고.
‘그러면은’
무엇이란 말이냐고, 고개를 두루 깨웃거리나 통히 종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른체하고 말자니 꺼림칙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게 어떤 놈이길래, 원 어떻게 해서 내 집안 사정이랄지, 또 더구나 오늘 밤에 작은집에를 간다는 것은 아직은 나 혼자만 염량을 하고 있는 터인데 그것을 제가 알아냈느냔 말이다. 귀신이 아니고는 그렇게 역력히 알아맞히진 못할 것이다.
‘귀신!’
아닌게아니라 귀신의 장난 같기도 했다. 하다고 생각을 하니, 별안간 몸이 으시시하면서 뒤가 돌려다보였다.
그러나 실상 장성 센 사람이면 흔히 그러하듯이, 탑삭부리 한참봉도 젊어서 이래로 귀신이라는 것을 믿지를 않고, 그래서 남들이 귀신을 보았네 귀신이 뭐 어쨌네 하는 소리를 시뻐하고 곧이듣지 않던 사람이다. 오늘 일도 귀신의 작희로 돌리지 않았다.
‘에잉! 쯧! 어떤 미친놈이 미친 개소리를 씨월거린 걸 가지구서.’
그는 하다하다 못해, 화풀이 받을 사람도 없는 역정을 내떨면서, 인제는 그따위 허황한 소리는 생각도 않는다고, 고개를 내흔들고 발을 쿵쿵 굴렀다.
그러나 그는 제정신 말짱해 가지고서 그 괴상한 전화의 최면에 본새 있게 걸려들고 말았다. 우선 여덟시쯤 되어서 가게를 드릴 적에, 마치 무엇한테 씌인 것처럼, 빈지문 고리 하나를 벗겨 놓았으니…….
가게를 드리고, 돈 궤짝은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벽장에다가 넣고 자물쇠를 잠그고 대문을 잘 신칙하라고 김씨더러 이르고 한 뒤에, 내키지 않는 대로 작은집으로 갔다.
작은집에서는 은근한 젊은 계집들도 많이 모이고, 잔치도 걸어서, 이를테면 꽃밭에 들어앉은 맥이로되 도무지 흥도 나지 않고 술도 맛이 없고, 재앙이라고 전화로 들리던 쨍쨍하니 딱바라진 그 음성에만 정신이 쏠렸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R/B> 탁류(39) -채만식- (0) | 2021.05.17 |
---|---|
<R/B> 탁류 (38) -채만식- (0) | 2021.05.16 |
<R/B> 탁류 (36) -채만식- (0) | 2021.05.12 |
<R/B> 탁류 (35) -채만식- (0) | 2021.05.11 |
<R/B> 탁류 (34) -채만식- (0) | 2021.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