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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탁류(39) -채만식-

카지모도 2021. 5. 17.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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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받으면서,

“어이쿠!”

소리를 지르면서 상반신이 앞으로 와락 솟쳤다가는 이어 뒤로 쿵 마룻바닥에 주저앉는다.

이만만 했어도, 태수는 집에다가 사다 둔 ‘쥐 잡는 약’을 먹을 필요가 전연 없었을 터인데 뒤미처,

“이놈!”

하더니 방망이는 연달아 그를 짓바수기 시작한다.

“이놈!”

하고,

“따악.”

하면,

“어이쿠!”

하고,

“이놈!”

하고,

“퍼억.”

하면,

“아이쿠!”

하고, 그래서,

“이놈!”

“따악, 퍼억.”

“어이쿠!”

이 세 가지 소리가 수없이 되풀이를 한다.

건넌방에서는 식모와 계집아이가 문을 반만 열고 서서 겁에 질려 와들와들, 아이구머니 소리만 서로가람 외친다.

안방의 그 이부자리 위에서는, 앞으로 엎어진 김씨의 몸뚱이가 쭈욱 펴진 채 손끝 발끝만 가느다랗게 바르르 떤다. 치달아오르는 극도의 분노가 모질게 맺힌, 최초의 일격은 그놈 하나로 넉넉히, 배반한 아내의 골통을 바숴뜨리기에 족했던 것이다.

피는 흥건히 흘러, 즐거웠던 자리를 부질없이 싱싱하게 물들여 놓는다.

문경 새재 박달나무는 홍두깨 방치로 다 나간다는 아리랑의 우상(偶像)은, 그러나 가끔가다 피의 사자(使者) 노릇도 하곤 한다.

아닌밤중에 여자들의 부르짖는 비명과 남자의 거친 노호 소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처음이야 구경삼아 한두 사람이 모인 것이나, 이어서 셋 넷, 이렇게 여럿이 모이자 그들은 집안의 형세가 졸연치 못한 것을 알고는 단순한 구경꾼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지 못했다.

그들은 무언의 동맹을 맺었다. 잠긴 대문을 흔들었다. 마침내 소리를 쳤다.

대문이 요란히 흔들릴 때에야, 탑삭부리 한참봉은 비로소 정신이 들어 방치질을 멈췄다. 그리고는 다시금 정신이 나는 듯이, 발 아래에 나가동그라진 태수의 몸뚱이를 내려다본다.

태수는 모로 빗밋이 쓰러져서 꽁꽁 마디숨만 쉬고 있지, 몸뚱이며 사지는 꼼짝도 않는다. 얼굴로 유카다로 역시 피가 흥건히 흐르고 젖고 했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이상하다는 듯이 한참이나 태수의 그 꼴을 들여다보다가 몸을 돌이켜 우르르 안방으로 들어간다.

안방에 엎으러진 김씨의 몸뚱이는 인제는 손끝 발끝을 가늘게 떨던 것도 그만이고, 아주 시체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김씨의 시체 옆으로 가까이 가서, 이윽고 들여다보더니 차차로 눈을 흡뜬다.

그는 단지,

‘이렇게 되었나!’

하고 이상해하는 양이다.

당장 눈앞에 송장이 두 개나 나가동그라져 있고, 그리고 제 손으로다가 죽이기는 죽였으면서, 그러나 지금 마음 같아서는 아무리 해도 제 자신이 저지른 일인 성싶지가 않던 것이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피 묻은 방치를 힘없이 떨어뜨리면서 넋을 잃고 우두커니 서서 있다.

그리고 미구에 순사가 달려와서 고랑을 채울 때까지도 그렇게 서서 있었다.

한편 형보는…….

그처럼 전화로 탑삭부리 한참봉한테 고자질을 하고는, 시치미를 뚜욱 떼고 제 방으로 들어가서 누웠노라니까 가슴은 좀 두근거려도, 오래 끌던 일이 아무려나 인제는 끝장이 나나 보다고 속이 후련했다.

그는 안방에서 태수와 초봉이가 재미나게 놀고 있는 것을 귀로 들으면서,

‘오냐, 마지막이니, 맘껏 놀아라.’

하고 싱그레니 웃었다.

아홉시가 되어 태수가 게다를 딸그락거리고 나가는 것을 그는,

‘이 녀석아, 그게 바로 지옥으로 난 길이다.’

하고 또 웃었다.

태수를 따라나갔던 초봉이가 대문을 잠그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형보는 어둔 속에서 혼자 싱글벙글 웃으면서, 저 혼자 속으로 주거니 받거니 야단이다.

‘인제는 네가 처억 내 것이란 말이지’

‘아무렴, 그렇구말구.’

‘그러면…… 오늘로 아주 내 것이 될 테라’

‘물론 오늘 저녁으로 조처를 대야지…… 그래서 인감증명을 내놓아야, 딴 놈이 손도 못 댄단 말이었다.’

미리서 계획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제 말대로 이미 제 것이 되어 있는 초봉이를 바로 안방에다가 혼자 두어 두고서 그냥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는 초봉이가 잠이 들기를 기다렸다. 시간을 기다리자니 무던히 지리하기는 했어도, 그는 끄윽 참고 기다렸다.

아홉시가 지나고 다시 열시를 치는 소리가 들리자, 이만하면 초봉이가 잠도 들었으려니와 가령 태수가 오늘 밤에 무사해서 돌아온다더라도 한 시간은 여유가 있겠은즉, 꼬옥 좋을 때라고 생각했다.

‘불시로 돌아오면…… 또 나중에 알고 지랄을 하면’

‘이놈! 꿈쩍 마라, 이렇게 엄포를 해주지…… 오늘 저녁에 무사히 돌아온대도, 내일 아니면 모레는 때갈 텐데.’

형보는, 태수가 설혹 잡혀가서 문초를 받더라도 소절수 심부름을 해준 형보 제 이름은 결단코 불지 않으려니 하고, 그의 처음 다짐한 말도 말이거니와 의리를 믿고서 의심을 않는다.

이런 것을 보면 그는 악독할지언정 둔한 편이지, 결코 영리하거나 치밀하진 못한 인물이다.

그래 아무튼 만사태평으로 유카다 앞을 여미면서 살그머니 문을 열고 나선다. 조용하다.

“아즈머니 주무시우”

막상 몰라 나직한 목소리로 불러 본다.

아무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는 살금살금 걸어서 안방 미닫이 앞으로 간다. 귀를 기울여 본다. 고요한 방 안에서 확실히 잠든 숨소리가 사근사근 들려온다.

형보는 약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어찌하지 못하고 살그머니 미닫이를 열고서 우선 고개만 들이민다.

오십 와트의 전등을 연초록 덮개로 가린 은근한 불빛 아래, 흐트러진 타월 자리옷과 남색 제병 누비이불 위에다가 아낌없이 내던진 하얀 넓적다리며, 머리칼이 몇 낱 흐트러져 내린 평화로운 잠든 얼굴, 이것을 구경하는 것만도 형보한테는 우선 중값이 나가는 향락이다.

초봉이는 초저녁에 태수가 나간 뒤로 바로 잠이 들었었다. 그는 오래간만에 혼자 자리에 누워 보니, 사지가 마음대로 뻗어지고, 후텁지근하지 않고 한 것이 어떻게나 편한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마음놓고 편안히 잠이 들었던 것이다.

억척이요 얌전하다는 그의 모친 유씨는 딸을 학교에 보내는 승벽은 있어도, 딸더러 시집을 가서 남편 없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고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은 가르칠 줄을 몰랐었다.

형보는 이윽고 싱긋 웃고는 방으로 들어서서 미닫이를 뒤로 소리없이 닫는다. 초봉이가 깨서 앙탈을 하더라도 그것을 막이할 준비는 되어 있지만, 그래도 그는 조심조심 걸어 내려가서 전등 스위치를 잡는다.

그는 아까운 듯이 한번 더 초봉이의 잠든 맵시를 내려다보다가는 딸꼭 전등을 꺼버린다.

초봉이가 경풍이 나게 놀라 몸을 뒤틀면서 소리를 지르려고 할 제는 억센 손바닥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바로 귓바퀴에서 재빠른 소리로 숨가쁘게,

“쉿! 떠들면 태수가 죽어…… 태수는 시방 싸전집에서, 그 집 여편네하구 자구 있으니깐…… 그리니깐 내가 나가서 한마디만 쑤시면 태수는 남편 한가한테 맞아죽는단 말이야. 태수를 죽이잖으려거든 괜히 꼼짝 말구 가만히 있어야 해!”

초봉이는 경황중이라 이 말을 조곤조곤 새겨서 그 진가를 분간할 겨를은 없으면서도, 그러나 거듭쳐 놀라운 것만은 사실이어서 다만 정신이 아찔했다. 하는 동안에 형세는 여전하고 조금도 유축이 없다.

대체 이러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전연 할 바를 알 수가 없다.

그는 다급한 나머지,

‘어머니는 이런 것도 아시련만!’

하는 생각이 언뜻 났으나 물론 아무 소용도 없었다.

아무리 용을 썼자 일은 그른 줄 알면서도 그는 몸을 뒤틀어 댄다. 그러나 종시 꼼짝도 할 수가 없다.

소리는 어쩐지 지르기가 무섭기도 하려니와, 지르자 해도 입이 막혔다.

원 세상에 이럴 도리가 있을까 보냐고 안타깝다 못해 죽을 힘을 다 들여 가까스로 몸을 한번 비틀면서,

“으으응.”

소리를 쳤으나 미처 힘도 쓰다가 말고 고만 그대로 까무러쳐 버렸다.

초봉이가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마침 열두시를 쳤다. 그는 아까 일이 꿈결같이 아득하여 도무지 정말인가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허망하다 못해 혹시 정말로 꿈이나 아니었던가 하여 새삼스럽게 정신이 드는 것이지만, 그러나 아득할 따름이지 분명히 꿈은 아니요 어엿한 생시다. 생시여서 몸은 그렇듯 (허망한 게 곧잘 미덥지도 않은 순간의 소경사이었음에 불구하고 결과되어 나타난 사실은 너무도 똑똑하여) 절대로 무시해 버리거나 씻어 버리거나 하지를 못할 영원한 더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초봉이는, 어둠 속에서도 제 몸뚱이가 내려다보이는 것 같아 오싹 진저리를 친다. 더럽고 께림한게 사뭇 구역이 나는 것 같았다.

그는 가마솥의 쩌얼쩔 끓는 물에다가 몸뚱이를 양잿물이라도 두어 가면서 푹푹 삶아 냈으면 한다. 아니 그것도 시원칠 않으니, 드는 칼로 어디를 싹싹 도려 냈으면 한다.

그러나 생각하면 가사 그 짓을 한다고 한들 엎지른 물이 도로 담아질 것이 아니요, 하니 속 후련할 것은 없을 노릇이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하는고’

조지듯 스스로 묻는 말에, 기다리고 있던 듯이 대번 서슴지 않고 나오는 것이,

‘죽어야지!’

하는 대답이다.

죽어야 하겠고, 죽어서 잊어버리기나 하지 않고는 도저히 마음을 견뎌 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것은 한 개의 순수한 결벽이다. 이 결벽으로 하여 죽음을 뜻한 초봉이는, 죽어야 할 또 하나의 다른 이유를 깨닫고,

‘옳다! 죽어야 한다!’

하면서 아랫입술을 지그시 문다. 그제야 정조라는 것--남의 아낙으로서 정조를 더럽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초봉이는 손으로 어둔 발치를 더듬더듬, 벗어 놓았던 옷을 걷어 입고 도사리고 앉아 한 팔로 턱을 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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