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서 시뻘건 선지피라도 쏟아져 나오도록 부르짖어 백천 말로 저주를 해도 시원할 것 같잖던 분노와 원한이건만, 다직 몇 마디를 못 해서 부질없이 설움이 복받쳐올라, 처음 그다지 기승스럽던 악은 넋두리로 화하다가 필경 울음이 터지고 만다.
제호는 쫓기듯 휭하게 대문께로 나가고, 형보는 배웅삼아 그 뒤를 아그죽아그죽 따른다.
“어 참, 대단 죄송스럽습니다!”
대문간에서 형보는 무엇이 어쩌니 죄송하다는 것도 없으면서 죄송하다고 인사를 한다.
“아, 아닙니다. 원 천만에!”
뒤도 안 돌아다보고 씽씽 나가던 제호는 마지못해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이내 달아나 버린다.
제호는 시원했다. 형보도 시원했다. 둘이 다 시원했다.
초봉이는 방문턱에 엎드린 채 두 손으로 얼굴을 싸고 흑흑 서럽게 느껴 운다. 송희는 자지러져 울면서 엄마의 겨드랑 밑으로 파고든다.
식모가 난리에 넋을 잃고 우두커니 부엌문에 지여 섰다.
대문간에서 형보가 도로 들어오다가 식모를 힐끔 보더니,
“거, 올라가서 애기나 좀 안아 주지? 응”
하는 게 제법 바깥주인이 다 된 말씨다. 식모는 그냥 주춤주춤하고 섰다. 시키지 않더라도 아기가 우니 안아다가 달래 줄 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집안이 갑자기 난리를 몰아 때려 짜였던 질서가 뒤죽박죽이 되고 마니, 식모도 습관 치인 제 일이 남의 일같이 서먹거리고 섬뻑 손이 대지지를 않던 것이다.
“어 참, 그리구 말이야…….”
형보는 몸을 안 붙여 주고 낯가림을 하듯 비실거리는 식모를 다둑다둑 타이르듯,
“……인제 차차 알겠지만, 오늘부터는 내가 이 집의, 어 참 바깥주인이란 말이야…… 그러니 그리 알구 있구…… 그리구 집안이 좀 소란했어두 별일은 없으니깐 머, 달리 생각할 건 없단 말이야, 알겠나…… 응, 그럼 그렇게 알구서, 아씨 대신 집안일이나 이것저것 두루 잘 좀 보살피구…….”
형보는 계집과 살 집을 한꺼번에 다 차지한 요량이다. 사실 제호는 그 두 ‘집’을 몽땅 내놓고 가기는 갔으니까.
식모는 형보의 말을 듣고 서글퍼 웃을 뻔했다. 세상에 첩은 그날로 나가고 당장 갈려 든다지만, 이건 사내가 이렇게 하나가 나가고, 하나가 들어오고 하다니 도무지 망측했던 것이다.
초봉이는 아무리 울어도 끝이 없는 설움에 마냥 자지러졌다가 겨우, 보채면서 파고드는 송희를 그러안으려고 고개를 쳐드는데 마침 형보가 마루로 의젓이 올라서고 있었다.
그는 형보가 선뜻 눈에 뜨이는 순간, 설움에 눌려 속으로 잠겼던 분이 이것저것 한데 똘똘 몰려 그리로 쏟쳐 올랐다.
“옜다, 이놈아, 네 자식!”
와락 일어서면서, 악을 쓰면서, 안아 올리던 송희를 그대로 형보한테다 휙 내던져 버리면서 하느라고 미친 듯 날뛴다.
마루청에 떨어질 뻔한 아이를 어마지두 형보가 움키기는 했고, 그러나 그전에 벌써 제정신이 든 초봉이는, 아이구머니 이를 어쩌느냐 싶어 가슴을 부둥켜 안는다. 방금 시퍼런 칼날이 번쩍하는 것만 같고, 간이 떨렸다. 아이는 까무러치듯 운다. 수각이 황망하고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할수 없으니깐 악만 부쩍 더 난다.
“오냐, 이노옴! 계집의 원한이 오뉴월에 서리 친다더라! 두구 보자. 네가 이놈 내 신세를 갖다가 요렇게 망쳐 주구! 오냐 이놈!”
초봉이는 이를 보드득 갈면서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형보를 노려본다. 그러나 앙칼지게 노리기는 해도 실상 그것은, 형보가 혹시 칼을 뽑아 들고 송희를 해치지나 않는지 그것을 경계하기에 주의가 엉키고 만다.
“아, 네가 정녕 이럴 테냐”
형보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눈을 부릅뜬다. 만약 한옆으로 칼을 뽑아 송희한테다가 겨누면서 그랬으면 꼼짝 못 하고 초봉이는 (제법 그걸 가로막자고 달려들기는커녕 오금이 지레 밭아서)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두 손을 합장하고 개개 빌고 말았을 것이다.
형보는 짐짓 보아라고 아이를 한 손으로다가 등덜미 옷자락을 움켜 고양이 새끼 다루듯 도옹동 쳐들고 섰다. 아이는 네 손발로 허공을 허우적거리면서 그런 중에도 엄마를, 엄마를 부르면서 기색할 듯 자지러져 운다.
초봉이는 겁을 냈던 대로 형보가 칼부림을 않는 것이 다행했으나 안심할 경황은 없고, 당장 송희가 저리 액색하게 부대끼는 정상을 차마 못 보아, 몸을 홱 돌이켜 안방 아랫목 구석에 가서 접질리듯 주저앉는다. 하릴없이 항복은 항복인 줄이야 저도 알기는 하지만, 차라리 항복을 한 것이 안타깝기보다 도리어 송희가 곤경을 면할 것을 여겨 다행했다.
“괜히 그리다간 네 눈구멍으루 정말 피를 보구 만다!”
형보는 안방으로 대고 눈을 흘기면서 씹어 뱉는다. 그러나 형보 역시 큰소리는 해도 이 깽깽 소리가 나는 생물을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었다. 치켜 올려서 품에 안아 보았으나 평생 아기라고는 안아 본 일이 없으니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귀찮은 깐으로는 골병이 들거나 뒤어지거나 조금도 상관없으니 마루청에다가 내동댕이를 쳤으면 좋겠었다. 그러나 제 자식인 체, 소중해하는 체, 우선은 그렇게 해야 할 경우라 함부로 다룰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이는 우는 사발시계처럼 그칠 줄을 모른다. 골치가 띠잉하고 정신이 없다. 벌치고는 단단한 벌이다. 이대로 한 시간만 있으라면 단박 미치고 말 것 같았다.
민망했던지 식모가 와서 팔을 벌리니까 그만 다행해서,
“잘 달래서 재던지 허게…….”
하고 넌지시 내맡기고는 일변 혼자말로 탄식하듯,
“……것두 다아 에미 잘못 만난 죄다짐이다! 고생 면하려거든 진즉 뒤여지려무나!”
초봉이는 이 소리가 배가 채이기보다 형보의 입잣이 밉살스러웠다.
송희는 식모한테 안겨서도 엄마를 부르면서 떼를 쓴다. 초봉이는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왔으면 선뜻 받아 안겠는데 눈치 없는 식모가 답답했다.
식모는 송희를 달래느라 성화를 먹는다. 얼러 주기도 하고, 문도 뚜드려 소리를 내주기도 하고,
그래도 안 그치니까 마당으로 대문간으로 요란히 설레발을 놓고 다닌다.
한동안 그러다가 식모도 준이 나서 할 수 없이 안방으로 들어오고, 송희는 엄마한테 안기기가 무섭게 울음을 꿀꺽 그치면서 대주는 젖을 움켜다가 쭉쭉 소리가 나게 빨아들인다. 오래 울어서 젖을 빨다가도 딸꾹질을 하듯 느끼곤 한다.
초봉이는 하도 가엾어서 볼기짝을 뚝뚜욱 두드려 주면서,
‘어이구 내 새끼를 누가 그랬단 말인가! 어이구 가엾어라!’
이렇게 귀애하고 얼러 주고 하고 싶어도 마루에 앉은 형보가 열적어 못 한다.
송희는 아직도 눈물이 눈가로 볼때기로 흥건히 묻었다. 엄마가 손바닥으로 가만가만 씻어 주니까, 젖을 빨다 말고 말끄러미 엄마를 올려다보다가 금시로 입이 비죽비죽하더니,
“엄마!”
하면서 울먹울먹한다. 노염이 새롭다고 역성을 청하는 것이다.
“오-냐, 워야 내 새끼!”
초봉이는 마침내 형보를 꺼릴 겨를도 없고, 제 입도 같이서 비죽비죽 해주면서 소리가 요란하게 볼기짝을 뚝뚜욱 쳐준다. 송희는 안심을 하고서 도로 젖꼭지를 문다.
초봉이는 이 끔찍이도 소중하고 귀여운 것을 품안에서 떼어 놓다니, 그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항차 그 어떠한 흉악한 해를 보게 한다는 것은 마음에 상상만이라도 하는 것부터 어미가 불측스런 것 같았다.
방금 일어난 풍파는 초봉이로 하여금 더욱 힘있게 애착과 애정으로써 송희를 끌어안게 해주었다.
송희를 곰곰이 들여다보는 동안, 비장하게 솟아오르는 것은 일찍이 제 자신에 있어 본 적이 없던 하나의 용기이었었다.
물론 솟아오른 그 용기도 적극적인 것은 못 되고서 소극적이요, 그래서 몸을 살리려는 태가 아니고, 몸을 죽이려는 태에 지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본시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났고, 치어나기를 그렇게 치어난 초봉이에게 오늘이야 그렇지 않은 것을 바람은 억지일 것이다.
송희는 인제 노염도 다 풀리고, 젖도 배불러 엄마가 안은 대로 무릎 안에 버얼씬 드러누워 엄마 얼굴을 말끄러미 올려다보면서 쏭알쏭알 이야기를 하는지 노래를 하는지 저 혼자만 아는 소리를 쏭알거리면서 마음을 놓고 한가하게 놀고 있다. 송희는 엄마한테만 있으면 울어지지도 않고 심심하지도 않다. 좋고 편안하다. 입으로는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한다. 입이 고프면 바로 그 앞에 단 젖이 있다. 빨면 쭉쭉 나온다. 눈으로는 엄마의 얼굴을 본다. 보면 재미가 있다. 손이 심심하면 엄마 젖꼭지를 만진다. 발이 심심하면 손이 가서 쥐고 같이 논다. 다 좋다. 편안하다.
초봉이는 송희가 이러한 줄을 잘 안다. 오늘은 더욱 그렇다.
이 살판에서도 송희는 엄마가 있으니까 이렇게 편안히, 이렇게 마음을 놓고 잘 있지를 않으냔 말이다. 천하없어도 송희는 이대로 가축을 해야 하고 그러자면은 초봉이 제 한몸은 아무래도 좋았다.
칼을 맞아도 좋고, 시뻘건 불꼬챙이로 단근질을 해도 좋고, 그러하되 아무라도 송희의 털끝 하나라도 다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말고, 누가 송희한테 눈 한번이라도 크게 뜨고, 소리 한번이라도 몹시 질러도 안 될 말이다.
내 몸뚱어리는 송희를 위하연 굳센 무쇠방패가 되어야 하고, 그도 부족하면 큰 바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추운 때에는 뜨뜻한 솜이 되어야 하고, 비가 올 때에는 우장이 되어야 하고, 바람이 불 때에는 바람막이가 되어야 하고, 어둔 밤에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배고파할 때에는 밥이 되어야 하고.
내 몸뚱어리는 이미 버린 몸뚱어리다. 두 남편에 벌써 세 남자를 치르어 온 썩은 몸뚱어리다. 이런 썩은 몸뚱어리가 아까워서 송희의 위험을 막아 주기를 꺼릴 필요는 조금도 없다. 차라리 썩은 몸뚱어리를 가지고 보람 있게 우려먹으니 더 좋은 일이다.
형보? 좋다, 형보는 말고서 형보보다 더한 놈도 좋다. 원수는 말고 원수보다 더한 것도 상관없다. 송희만 탈없이 편안하게 기르면 그만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했을 때에 초봉이는 깜짝 놀라 몸을 떤다. 대체 어느 겨를에 저 장형보의 계집이 되기로 작정을 하고서 시방 이러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제 자신이 모르기는 몰랐어도 인제 보니 이미 그러기로 다 작정이 된 것만은 사실인 것이 분명했다.
호 하고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온다. 제가 저를 생각해 보아도 너무 갈충머리가 없는 것 같았다.
마침 마루에서 형보의 캐액 하는 기침 소리가 들렸다. 초봉이는 새삼스럽게, 제 몸에서 형보의 살을 감각하고, 뱀이 벗은 발 발등 위로 지나가는 것같이 오싹 진저리가 치었다.
부엉이처럼 마루에 가서 지켜 앉았던 형보는 열시 치는 소리를 듣고 마침내 방으로 들어왔다. 초봉이는 이미 각오한 바라 속으로,
‘오냐, 그렇지만 기왕 그렇게 하는 바에야 나도 다아…….’
이렇게 마음을 도사려먹었다.
형보는 그래도 점직함이 없지 못해, 비죽 웃더니 윗목으로 넌지시 비껴 앉으면서 슬금슬금 초봉이의 눈치를 본다. 이윽고 있어도 (실상 다시 발악을 할 줄 알았던 초봉이가) 아무 반응도 없이 외면만 하고 있으니까 우선 마음을 놓고 처억 수작을 끄집어낸다. 그러나 위협 같은 것은 싹 걷어치우고 없다. 말도 좋은 말로, 조르듯 타이르듯 순하다.
인제는 더구나 별수가 없지 않으냐. 그러니 부디 마음을 돌려라. 너만 고집을 세우지 않을 양이면, 너도 좋고, 자식한테도 좋고, 또 나도 좋고 다 두루 좋잖으냐.
아까 박제호더러도 이야기를 했지만, 돈 오륙천 원을 들여서 장사를 하는 게 수입이 상당하니 너의 모녀는 웬만한 호강이라도 시키면서 먹여 살릴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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