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공부해 가지구 인제 자라면 무얼 할 텐가”
아이는 고개를 들지 않고 곁눈질만 한다. 이 애는 늘 이렇게 침울한 아인데, 오늘은 유난히 더해 보인다.
“자아, 종쇠두 대답해 봐”
“저어…….”
“응.”
“저어…….”
“응.”
“순사요.”
“순? 사”
뒷줄에서 두어 놈이 킥킥거리고 웃는다. 웃는 소리에 종쇠는 가뜩이나 주눅이 들어서 고개를 깊이 떨어뜨린다.
“그래, 순사가 되구 싶다”
“네에.”
“응, 순사가 되구 싶어…… 그런데, 어째서……”
“저어…….”
“응.”
“저어 우리 아버지가…….”
종쇠는 그 뒷말을 다 하지 못하고 손가락을 문다.
“그래 느이 아버지가 널더러 순사 되라구 그러시던”
“아뇨.”
“그럼”
“우리 아버지, 잡아가지 말게요.”
승재는 황망하여, 아까보다 더 여러 놈이 웃는 것을 일변 나무라면서 일변 종쇠더러,
“종쇠, 너, 순사가 느이 아버지 붙잡어가던? 응”
“네에.”
“온, 저걸!”
전서방이라고 살기는 ‘사젱이’에서 살고, 선창에서 지겟벌이로 겨우 먹고 사는데, 며칠 전에 다리를 삐었다고 승재한테 옥도정기까지 얻어 간 사람이다. 그리고 집에는 아내와 종쇠를 맨 우두머리로 젖먹이까지 아이들이 넷이나 되는 것도 승재는 횅하니 알고 있다.
“……그래, 언제 그랬니”
승재는 종쇠 옆으로 내려와서 수그리고 섰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어저께 저녁에요.”
“으응!…… 그런데 왜? 어쩌다가”
“저어…….”
“응, 누구하구 싸웠나”
“쌀 훔쳐다 먹었다구…….”
승재는 아뿔싸! 여러 아이들이 듣는 데서 물을 말이 아닌 걸 그랬다고 뉘우쳤으나 이미 늦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사나운 얼굴로 다른 아이들을 휘익 둘러본다. 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에 겁들이 나서, 죄다 천연스럽게 앉아 있고 한 놈도 웃거나 저희끼리 소곤거리는 놈이 없다.
승재는 이윽고 안색을 눅이고 한숨을 내쉬면서 풀기 없이 교단으로 도로 올라선다.
“그래, 종쇠야”
“네에”
“넌 그래서 순사가 되겠단 말이지…… 느이 아버지가 남의 쌀을 몰래 갖다 먹어두 넌 잡어가지 않겠단 말이지”
“네에.”
“응…… 그래, 느이 아버지를 잡아가지 말려구, 그럴려구 순사가 될 터란 말이었다”
“네에.”
“그럼 남의 쌀을 몰래 갖다가 먹은 아버진 그랬어두 아버진 착한 아버지란 말이지”
“아뇨.”
“아냐”
“네에.”
“그럼 나쁜 아버진가? 종쇠랑 동생들이랑 배고파하니깐 밥해 먹으라구, 그래서 그랬는데.”
“그러니깐 난 아버지 붙잡어 안 가요.”
승재는 슬픈 동화를 듣는 것 같아 눈가가 매워 오고 목이 메어 더 말을 하지 못했다.
술이 얼큰해 가는 동행 제약사는 저 혼자 흥이 나서 승재의 몫으로 들어온 여자까지 둘 다 차지를 하고 앉아 재미를 본다. 색주가집이라고는 생전 처음으로 와보는 승재는, 술은커녕 다른 안주짜박도 매독이 무서워서 손도 대지 않았다.
여자들의 행동은 상상 이상으로 추악한 게 완연히 동물 이하여서 승재로는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제약사는 두 여자를 양편에다 끼고 앉아서, 한 손으로는 유방을 떡 주무르듯 하고 한 손으로는…… 그래도 두 여자는 어디 볼때기나 만지는 것처럼 심상, 심상이라니 도리어 시시덕거리면서 좋아한다. 승재는 차마 해괴해서 못 본 체 외면을 하고 앉았다.
“여보, 난상? 난상”
제약사는 지쳤는지, 이번에는 여자 하나를 끼고 뒹굴다가 소리소리 승재를 부르면서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연신 눈짓을 한다. 그래도 승재가 못 들은 체하고 있으니까,
“……아, 난상두 총각 아니우? 자구 갑시다, 자구…… 아인(一圓)이믄 돼. 내 다아 당허께…….”
하고 까놓고 떠들어 대면서, 일변 짝 못 찾은 다른 한 여자더러 눈을 끔적끔적한다.
그 여자는 알아듣고서 얼른 승재게로 달려들더니 여부없이 목을 얼싸안고 나가뒹군다. 승재는 질겁을 해서 버둥거려도 빠져나지를 못한다.
“이 양반이 분명 내신가 봐”
여자는 조롱을 하다가, 어디 좀 보자고 손을 들이민다. 승재는 사정없이 여자를 떠다밀치고 벌떡 일어서서 의관을 찾는다.
“가 가만, 잠깐만, 난상 난상…… 정말 재미나는 구경이…….”
제약사는 비틀거리고 일어서더니 지갑 속에서 오십 전짜리를 한 푼을 꺼내 들고는 승재의 몫이던 여자더러,
“너 이거 알지”
“피이! 오십 전!”
“얘, 서양선 금전을 쓴다더라만, 조선서야 어디 금전이 있니? 그러니깐 아쉰 대루 이놈 은전으루, 응”
“오십 전 바라군 못 하네!”
“그럼 이놈만 ………면 일 원 한 장 더 준다!”
“정말”
“네한테 거짓말하겠니? 염려 말구서 ………기나 해라. 얘, 얘, 그렇지만 아랫두린 다아 ………야 한다? 응”
“그야 여부가 있수!”
“자아, 난상 구경하시우. 이건 서양이나 가예지 보는 거라우. 그리구 더 놀다가 ………허구 가요, 네”
제약사는 성냥갑 위에다가 오십 전짜리 은전을 올려놓고 물러앉고, 재주를 한다던 여자는 별안간 입었던 치마부터 ……기 시작한다. 승재는 누가 잡을 사이도 없이 문을 박차고 나와서 신발도 신는 둥 마는 둥 거리로 뛰어 나섰다. 그는 은전을 ……다니까 혹시 입으로 무슨 재주를 부리는 줄만 알고서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 모자도 못 쓰고, 외투도 못 입고, 혼자 떨면서 돌아오는 승재는 속에 메스꺼워 몇 번이고 욕질이 나는 것을 겨우 참았다.
이것이 작년 겨울 어느 날 밤에 약제사가 승재의 사처로 놀러 와서는 색시들 있는 데를 구경시켜 주마고 꾀는 바람에, 승재는 대체 어떻게 생긴 곳이며 생활과 풍토는 어떠한가 하는 호기심으로 슬며시 따라왔다가 혼띔이 나보던 경험이다.
승재는 전연 상상도 못 한 것이어서, 어쩌면 사람이 (더욱이 여자가) 그대도록 타락이 될까 보냐고 여간만 분개한 게 아니다. 그는 작년 겨울의 이 기억을 되씹으면서 온통 색주가집 모를 부은 개복동 아랫비탈 그 중의 개명옥(開明屋)이라는 집으로 시방 명님이를 찾아온 길이다.
오늘 야학에서 일찍 여섯시까지 시간을 끝내고, 교원 두 사람더러 내일 밤차로 떠날 듯하다는 작별을 한 뒤에 이리로 이내 오는 참이다.
아직 해도 지기 전이라 손님은 들지 않았고, 이방 저방 색시들이 둘씩 셋씩 늘비하니 드러누워 콧노래도 부르고, 누구는 단속곳바람으로 웃통을 벗어 젖히고서 세수를 하느라 시이시 한다. 끼웃끼웃 내다보는 색시들이 죄다 얼굴이 삐뚤어져 보이기도 하고, 볼때기나 이마빼기나 코허리가 썩어 들어가는 것을 분으로 개칠을 했거니 싶기도 했다.
승재는 그의 말대로 하면, 이런 곳은 인류가 환장을 해서 동물로 역행하는 구렁창이었었다. 환장을 않고서야 결단코 그렇게 파렴치가 될 이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러므로, 승재는 제 소위 ‘환장을 해서 동물로 역행을 하는’ 여자들을 그 허물이 전혀 그네들 자신에게 있는 줄만 알고 있는 게 되어서 그들을 동정하고 싶은 생각보다는 더럽다고 침을 뱉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명님이는 승재가 찾아온 음성을 알아듣고 반가워서 건넌방에 있다가 우루루 달려나온다. 그러나 승재와 얼굴이 쭈뻑 마주치자 해죽 웃으려다 말고 금시로 눈물이 글성글성하더니 몸을 홱 돌이켜 쫓아 나오던 건넌방으로 도로 들어가서는 울고 주저앉는다.
명님이는 실상 어째서 우는지 저도 모르고 울던 것이다. 이런 집에 와서 있게 된 것이 언짢거나 슬프거나 한 줄을 아직 모르겠고 그저 덤덤했다. 다만 안 된 것이 있다면,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있는 ‘우리집’이 아니어서 호젓한 것 그것 한 가지뿐이다. 그러니까 승재를 보고 운 것도, 차라리 반가운 한편, 역시 어린애다운 농암으로 눈물이 나온 것일 것이다.
명님이가 눈물 글썽거리는 것을 보고서 승재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옳게 처량했다.
저렇게 애련하고 저렇게 순진하고 해보이는 소녀를 이 구렁창에다 두어 ‘환장한 인간들로 더불어 동물로 역행’을 하게 하다니, 도저히 못할 노릇이라 생각하면 슬픈 것도 슬픈 것이려니와 그는 다시금 마음이 초조했다.
승재는 암만 동정이나 자선이란 제 자신의 감정을 위안시키기 위한 제 노릇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라는 해석은 가지고 있어도, 시방 명님이를 구해 주겠다는 이 형편에서는 그런 생각은 몽땅 어디로 가고 없다. 또 생각이 났다고 하더라도 그 힘이 이 행동을 막진 못할 것이었었다.
그새 사흘 동안 승재는 제 힘껏은 눈을 뒤집어쓰고 납뛰다시피 했었다. 물론 승재의 주변이니 별수가 없기는 했었지만, 아무려나 애는 무척 썼다.
사흘 전, 밤에 명님이가 찾아와서 몸값 이백 원에 팔렸다는 것이며, 내일 밝는 날이면 아주 이 집 개명옥으로 가게 되었다고, 그래서 작별을 온 줄로 이야기하는 말을 듣고는 펄쩍 뛰었었다. 그는 그동안 명님이네 부모 양서방 내외더러 자식을 몹쓸 데다가 팔아먹어서야 쓰겠냐고, 그런 생각은 부디 먹지 말라고 만나는 족족 일러 왔고, 양서방네도 들을 만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이 갑자기 이렇게 될 줄은 깜박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 승재는 당장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양서방네한테로 쫓아가려고 뛰쳐 일어섰으나 양서방은 그 돈을 몸에 지니고 아침에 벌써 장사할 어물(乾魚物)을 사러 섬으로 들어갔다는 명님이의 말을 듣고 그만 떡심이 풀려 방바닥에 펄씬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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