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재는 실상 도적질과 그것과를 비교해서 어느 것이 좀더 낫다는 판단을 선뜻 내리기가 어려웠다.
“거 보시우! 도둑질할 수 없지요? 그러니 그대루 앉어서 꼿꼿이 굶어 죽어요…… 오온 인간탈을 쓰구서 인간세상에 참례를 했다가 생으루 굶어 죽다니? 그런 천하에 억울한 노릇이 있어요 잘나나 못나나 한세상 보자구 생겨난 인생인걸, 그러니 살구 볼 말이지, 그래 사는 게 나뿌”
승재는 뾰족하게 몰린 꼴새여서 대답을 못 하고 끄먹끄먹 앉아 있다.
“그리구, 여보시우…….”
주인여자는 한참이나 승재를 두어 두고 혼자 담배만 풀썩풀썩 피우다가 문득 긴한 목소리로 그러나 조용조용 건넌방을 주의하면서,
“……장차 어떻게 하실는지야 모르겠소마는, 저 앨 몸을 빼줘두 별수없으리다!”
“네…… 어째서”
“또 팔아먹습니다요!”
“또오”
“네, 인제 두구 보시우.”
“그럴 리가!”
“아-니오!…… 나는 다아 한두 번이 아니구 여러 차례 겪음이 있어서 하는 소리랍니다!…… 아, 글쎄 그 사람네가 그까짓 것 돈 이백 원을 가지구 한평생 살 줄 아시우…… 장사? 흥! 단 일년 지탕하믄 오래 가는 셈이지요. 그리구 나믄 그땐 첨두 아니었다, 한번 깨묵맛을 딜였는 걸 오죽 잘 팔어먹어요? 시방이나 그때나 배고프기는 일반인데 무엇이 대껴서 안 팔아먹겠수…… 두번짼 굶어 죽더래두 안 팔아먹을 에미 애비라믄, 애여 처음 번에 벌써 팔아먹들 않는다우…… 생각해 보시우? 이치가 그럴 게 아니우”
“네에!”
승재는 미상불 그럴듯하다고 고개를 연신 끄덕거린다. 그러고 보니 인제 서울로 올라가서 돈을 보내서 몸만 빼놓아 준다는 것도 생각할 문제일 것 같았다.
“보아서 촌 농가집으루 민며느리라두 주게 하던지…….”
승재는 꼭이 그러겠다는 작정이라느니보다 어떻게 할까 두루두루 생각하면서 혼자말같이 중얼거리는 것을 주인여자가 얼핏 내달아,
“것두 괜헌 소리지요!”
하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건 왜요”
“여보시우. 당신님 저어기 촌 여편네들 거 팔자가 어떤지 아시우? 아마 잘 모르시나 보니 좀 들어 보시우…… 그 사람네라께 여름 한철이나 겨우 시꺼먼 꽁보리밥이나 배불리 얻어먹지, 여니땐 펀펀 굶구 지내우. 옷이 어디 변변허우? 삼복에 무명것 친친 감구 살기, 동지섣달에 맨발 벗구 홑고쟁이 입구 더얼덜 떨기…… 일은 그러구서두 육나오게 하지요! 머 말이나 소 같지요! 도무지 사람 꼴루 뵈들 않는걸!…… 그런데다가 열이면 열 다아 시에미가 구박허구, 걸핏하면 능장질을 하지요! 서방놈이 때리지요! 어디 개팔자가 그렇게 기구허우? 차라리 개만두 못하지……그리니 자아 생각을 해보시우. 그렇게두 못 얻어먹구 헐벗구 뼈가 휘게 일을 하구 그러구두 밤낮 방망이찜이나 받구, 응…… 그러믄서 그 숭악한 농투산이한테, 계집으로 한 사내 셈긴다는 것, 꼭 고것 한 가지, 그까짓 게 무슨 그리 큰 자랑이라구…… 그까짓 게 무슨 그리 대단한 영화라구 그 노릇을 한단 말씀이오? 대체 춘향이는 이도령이 다아 잘나구, 또 제 정두 있구 해서 절개를 지켰다지만, 시방 여니 계집들이야 그까짓 일부종사가 하상 그리 대단하다구 촌 농투산이한테 매달려서 그 고생을 할 게 무어란 말씀이오? 네…… 당신님이 다아 귀여허구 그러신다니 저애만 하더라두 내가 시방 이얘기한 대루 촌에 가서 그 팔자가 된다믄 당신님 생각에 좋겠수? 네…… 나 같으믄 그러느니 차라리 예다 두지요!”
만일 농촌의 여자의 생활이 사실로 그렇다면, 미상불 명님이더러 이 길에서 그 길로 옮아 가라고 한다는 것도 결국 새빨간 남으로 앉아서 나만 옳은 줄 여겨 그걸 주장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싶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정으로 생각하더라도, 이 여자의 말마따나 승재로서는 명님이를 그런 데로 보내기가 가엾어 차마 못 할 것이었었다.
“그러면 저어, 이렇게 좀 해주시까요”
오래오래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두루 궁리를 하던 승재가 겨우 얼굴을 쳐든다.
“어떻게…… 무슨 좋은 도리가 있으시우”
“내가 내일 밤차루 서울루 떠나는데요. 가서 속히 그 돈을 마련해서 보내 디릴 테니깐…….”
“글쎄, 그러신다믄 물러는 디리지만, 시방 말씀한 대루 즈이 부모가 다시 또…….”
“아니, 그러니깐, 차비두 부쳐 디릴 테니 즈이 집으로 보내지 말구서 바루 서울루 보내 주시면
…….”
“아아, 네에 네!…… 그야 어렵잖지요. 그렇지만 즈이 부모네가 말이 없을까요”
“그건 내가 잘 말을 일러두지요. 머 못 한다군 못 할 테니까요.”
“즈이 부모만 말이 없다믄야 졸 대루 해디리지요, 머…… 그러면 그렇게 허시우. 아직두 어린애구 허니깐, 내가 촉량해서 야숙한 짓은 안 시키구 잘 맡아 뒀다가 도루 내디릴 테니 다아 안심허시구 수히 조처나 허시두룩…….”
승재는 주인여자가 말이라도 그만큼 해주는 게 여간 마음 든든하지를 않았다. 그는 방금 앉아서 명님이를 서울로 데려다가 제 밑에 두어 두고 간호부 견습을 시키든지, 또 형편이 웬만하면 공부라도 시킬 생각을 해냈던 것이다.
섬뻑 생각한 것이라도 더할 것 없이 무던했고, 진작 그런 마음을 먹었더라면 양서방한테라도 미리서 말을 했었을 테니, 그네도 참고 기다렸지 이렇게 갖다가 팔아먹진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각다분한 일도 없었으려니 싶어 느긋이 후회도 들었다.
승재는 주인여자더러 넉넉잡고 두 달 안으로는 돈을 보내 줄 테니 그리 알고 부디 잘 좀 맡아 두었다가 달라는 부탁을 한 뒤에 자리를 일어섰다.
주인여자는 마루로 따라나오면서 되도록 일을 쉬이 끝내 달라고, 실상 다른 사람이라면 그 동안의 돈 이자 하며 밥값까지도 쳐서 받겠지만, 젊은이가 마음이 하도 어질어서 그게 고마워서 본금 이백 원만 받겠노라고, 하니 그런 근경도 알아서 하루라도 빨리 조처를 해달라고 도리어 신신당부를 한다. 승재는 이 구혈의 이 여자가 그만큼 속이 트이고 인정까지 있는 것이 의외이어서 더욱 고마웠다.
명님이는 얼굴을 해죽 웃으면서 눈만 통통 부어 가지고 승재를 따라나온다.
대문간으로 나와서 명님이는 고개를 숙이고 섰고, 승재는 잠시 말없이 명님이를 바라다본다. 인제는 나이 그만해도 열다섯이라고 곱살한 게 제법 처녀 꼴이 드러난다. 이렇게 처녀 꼴이 박힌 명님이를 이곳에다가 두고 가는 일을 생각하면 두 달 동안이라 하더라도, 또 주인여자가 다짐하듯 한 말이 있다고는 하더라도 결코 마음이 놓이는 건 아니었었다.
“명님아”
승재의 음성은 한량없이 보드랍다. 명님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쳐든다.
“너, 늘잡구 이 집에서 두 달만 참아라, 응…… 그럼 그 안에 서울로 데려가 주께.”
“서울요”
무척 반가운지 명님이의 음성은 명랑하다. 그러면서 눈에는 구슬이 어린다.
명님이는 눈물이 나게 반갑고 고마웠는데, 승재는 이 애가 슬퍼서 울거니 하고 저도 눈물이 글성글성하고 목이 잠긴다.
“응, 서울…… 그러니깐 참구서 죄꼼만 기대리는 게야? 응”
“네에.”
“어머니 아버지한텐 내 말해 두께시니, 이 집 쥔이 차표 사주믄서 서울루 가라구 하거던 바루 오는 거야”
“네에, 그렇지만 어떻게”
“혼자 못 온단 말이지…… 괜찮아…… 이 집에 부탁해서 전보 쳐달라구 할 테니깐, 전보 받구 내가 중간꺼정 마주 오지? 혹시 형편 보아서 내가 내려와두 좋구…… 그러니깐 맘놓구 그리구 울지 않구 잘 있는 거야”
“네에.”
“아버지 오늘 오신댔지? 밤에 오신댔나”
“밤인지 몰라두 오늘 꼭…….”
“응…… 그럼 내, 내일 떠나기 전에 한번 더 들르마…… 무엇 가지구 싶은 것 없나? 내일 올 때 사다 주께…….”
“없어요, 아무것두…….”
“그럴 리가 있나…… 가만있자, 내가 생각해 봐서 내일 올 때 아무거구 하나 사다 주께…… 그럼 인젠 들어가.”
“네에.”
명님이는 대답은 하고도 그냥 서서 치마 고름만 문다. 승재는 울지 말고 있으란 말을 다시 이르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겨우 돌린다.
근경이 어쩌면 두 정든 사람끼리 떠나기를 아끼는 것과 흡사하다.
어느 사이 옅은 황혼이 자욱이 내려, 두 그림자를 도리어 더 뚜렷이 드러내 준다.
16 탄력 있는 ‘아침’
계봉이는 제가 거처하는 건넌방에서 아침 출근 채비가 한창이다.
옷은 마악 갈아입었고, 그 다음에는 언제고 하는 버릇으로 마지막, 거울에다가 바투 얼굴을 대고서 이이, 이빨을 들여다본다. 그리 잘지도 않고 고른 위아랫니가 박속같이 새하얗게 드러난다.
아무것도 없다. 잇념 밑에 빨간 고춧가루 딱지도 박히지 않고, 잇살에 밥찌꺼기도 끼지 않았다.
소매 끝에서 꺼내 쥐었던 손수건을 도로 집어넣고, 이번에는 방 안을 한 바퀴 휘휘 둘러본다. 방금 벗어 내던진 양말짜박이야 치마야 속옷 들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널려 있다.
셈든 계집아이가 몸 담그고 있는 방 뒤꼬락서니 하고는 조행에 갑(甲)은 아깝다. 그러나 계봉이 저는 둘러보다가 만족하대서,
“노이예츠 나하츠!”
하고 아 베 체 데도 모르는 주제에 독일말 토막을 쌔와린다.
미상불 뒤가 어수선한 품이 종시 그 대중이지 서부전선처럼 아무 이상이 없기는 하다. 그러나 계봉이 저는 나갈 채비에 미진한 게 없다는 뜻이요 하니 오케이라고 했을 것이지만, 요새 그 오케이란 말이 자못 속되대서 이놈이 그럴싸한 대로 응용을 하던 것이다.
팔걸이시계를 들여다본다. 여덟시에서 십 분이 지났다. 지금 나서서 ××백화점까지 가자면 십분이 걸리니, 여덟시 반의 출근 정각보다 십 분은 이르다. 그놈 십 분은 동무들과 잡담으로 재미를 본다. 되었다.
“노이예츠 나하츠!”
한마디 부르는 흥으로 또 한번 외우면서, 샛문을 열고 마루로 나가려다 말고 문득 이끌리듯 환히 열어 젖힌 앞문 문지방을 활개 벌려 짚고 서서 하늘을 내다본다.
꽃이 피느라, 핀 꽃이 지느라 사월 내내 터분하던 하늘이 인제는 말갛게 씻기고 한창 제철이다.
추녀끝과 앞집 지붕 너머로 조금만 내다보이는 하늘이지만 언제 저랬던가 싶게 코발트 한 빛으로 맑아 있다. 빛이 한 빛으로 푸르기만 하니 단조하여 싫증이 날 것 같아도 볼수록 정신이 들게 신선하여 끝없이 마음이 끌린다. 바람결이 또한 알맞다. 부는지 마는지 자리는 없어도 어디서 새로 싹튼 떡잎의 냄새 없는 향기를 함빡 머금어다가 풍기는 것 같다.
계봉이는 문지방을 짚고 선 채 정신이 팔린다. 하도 일기가 좋아서 아침에 일어나던 길로 이내 몇 번째 이렇게 내다보곤 하던 참이다.
옷도 오늘 일기처럼 명랑하게 갈아입었다. 어젯저녁에 형 초봉이가 바늘을 뽑기가 무섭게 부랴부랴 식모한테 한끝을 잡히고 싸악 다려 놓은 새옷이다. 옅은 미색 생수 물겹저고리에 방금 내다뵈는 하늘을 한폭 가위로 오려다가 허리 잡아 두른 듯이 시원한 무색〔水色〕 부사견 치마다.
옷도 이렇게 곱게 입었으니 침침한 매장(賣場)보다도 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저 햇볕을 쪼이면서, 저 바람을 쏘이면서 어디고 아무 데라도 새싹이 피어오른 숲이 있고, 풀이 자라고 한 야외로 훠얼훨 돌아다니고 싶다. 곧 그러고 싶어서 오금이 우줄거린다.
마침 생각하니 오늘이 게다가 일요일이다. 그리고 공굘시 내일이 셋째 번 월요일, 쉬는 날이다.
그게 더 안 되었다. 훨씬 넌지시 한 주일이고 두 주일 후라면 차라리 마음이나 가라앉겠는데, 오늘이 일기가 이리 좋아도 못 놀면서 남 감질만 나게시리 바투 내일이 쉬는 날이라니 약을 올려주는 것 같아 밉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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