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고교2년때 잡서(雜書)
<<흙에 스미는 AB형의 피는 30%짜리 사랑이다>>
이상헌
형은 나를 보고 미친 놈이라고 한다.
엄마는 나를 보고 불쌍한 놈이라고 한다.
나는 내가 미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형의 말대로 미친 놈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엄마는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불쌍하다는 날 놔두고 엄마가 죽어 간다.
엄마가 죽어 간다.
그래서 이 미친 머리로 무언가를 생각해 보려 애를 쓰는데 영 무얼 생각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허허한 공간에 텅 걸려있는 그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순도 100%짜리 사랑.......
순도 100%짜리 사랑으로 완벽하게 결합될수 있는 인간관계......
남자와 여자가 벌거벗은채 붙어있을 때?
어쩌면 그게 진짜 순도 100%짜리 완전한 결합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떤 생명체에서 다른 하나의 생명체가 생겨났을 때 그 생명체끼리는 그 순간 순도100%짜리인지도 모른다.
엄마와 나처럼일까?
엄마는 내게 순도 100%짜리인가?
그럼 나역시 엄마에게 순도 100%짜리인가?
아마 엄마는 내게 100%짜리의 순도일 것인데 나는 엄마에게 대략 30%쯤 되지 않을까?
참 허허한 생각들이다.
의사가 형을 구석으로 끌고가더니 자뭇 비통한 듯 말한다.
“곧 임종이십니다.”
형의 얼굴이 약간 씰룩거렸다.
나는 문득 엄마에게 주는 나의 30%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여 몸이 떨렸다.
내 30%짜리 사랑은 곧 주인을 잃게 되는 것인가.
엄마의 숨소리가 헐떡거렸다.
내 30%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형과 나의 손이 엄마의 손 안에 겹처 잡힌다.
“동생을 부탁한다. 이 불쌍한 것을 부탁한다. 너희는 형제야.....”
그리곤..
그리곤 엄마의 숨은 멈추어졌다.
아아. 엄마가 죽었다. 엄마가 죽었다.
30%고... 나발이고 ... 100%다. 진짜 100%짜리 엄마가 죽었다.
비뚜루된 내 머리가 아니라 내 마음은 에덴 동산에서 오직 하나의 아담을 잃어버린 이브였다.
가슴이 찢어진다.
미친 내 머리가 아니라 비뚜루 되지 않은 내 가슴이 찢어진다.
찢어지는 심장에서 나오는 100%짜리를 엄마의 입에 불어넣고 싶어서 엄마의 벌려있는 입술에 입을 가져갔다.
그러나 이미 숨이 멈춘 엄마의 입에서는 퀴퀴한 냄새만이 날 뿐이고 단 1%도 엄마에게 불어 넣어 줄수가 없다.
그 때 형의 손이 어깨에 닿는다.
“그러지 마라. 아무래도 가실 분이었는걸. 너도 인제 정신 좀 차리고 똑바로 살도록 해야지.. 내 장의사에 연락하고 올테니까 잠시 기다려라.”하고 입원실을 나간다.
가실 분이라구? 아니, 정신차리라고? 뭐, 똑바로 살라고? 아니, 그리고 이 사람 지금 장의사를 찾고 있구나. 말짱하구나야. 이 사람은 아담을 잃은 이브가 아니다야.
가슴이 찢어지기는 커녕 귀찮은 한 노친네의 죽음에 만족하고 있구나야. 이 사람은.
내 30%중 얼마쯤 나누어 주지 못할바도 아닌데 아, 이 사람은 안되겠구나야. 도무지 안되겠구나야. 엄마는 저렇게 꼼짝않고 고요히 누워있는데.. 내 30%는 이제 어쩌란 말이냐..
5층 꼭대기의 입원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창을 열었다.
찬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 들어 온다.
저 아래 화단이 아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그 흙에 뿌려질 내 피는 30%짜리 내 사랑이다라고 생각했다.
엄마보다는 행복한 죽음이다.
내게 남은 사랑을 몽조리 쏟으면서 죽을수 있으니까..
창틀에 발을 올려 디뎠다.
몸을 밀었다.
차디 찬 밤공기가 쏴아- 하고 귓가를 달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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