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뷰리플 썬데이 (4)

카지모도 2022. 3. 2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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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24세 즈음.

주간한국 꽁트 응모, 낙선.

 

 

<Beautiful Sunday>

-이상헌-

 

그 날 일요일 아침 그 다방 안은 왜 그렇게 북적거렸는지.

나름 대로들 레-저의 무장을 갖춘 선남 선녀들의 즐거움에 겨운 떠들썩함이 그득하였고 스피커는 헤이헤이뷰리풀 선데이를 악써 외쳐대고 있었다.

그 곳에서.

 

장대가 비죽이 솟아 오른 낚시꾸러미를 옆에 놓고 영어사전을 뒤적이고 있는첫 눈에도 어딘가 촌티가 흐르는 안경 낀 녀석이 선객으로 앉아있는 좌석에여드름자국이 벌건 얼굴에다 빨간 등산모를 비스듬히 재껴 쓴 녀석이미안하다고 말은 하지만 기실 당연하게 권하는 레지아가씨의 합석 권유에 의해서 마주 앉게 된 것은 전혀 우연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낚시 가시는군요.”

그 쪽은 등산이로군요.”

. P산을 오를 겁니다우리 인사나 합시다. B대 최영탭니다.”

반갑습니다. N대 박순병입니다.”

“N그럼 짱코아세요그 자식 지독한 모주꾼인데.”

그럼요우리 학교 명물인걸요.”

어쩌구하면서 대화가 어우러지게 된 것은 전혀 우연이랄수도 없는 일이었다.

 

등산모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앞에 앉은 촌티흐르는 안경에게 커다란 제스추어로 열심히 자기 얘기를 떠벌려 놓는 축이었고결국 영어사전을 쑤셔 넣고야 만 안경 쪽은 바야흐로 등산모가 상대에게 노리는바 바로 그것인 주눅이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산을 밥보다 더 좋아하는 놈이지만 지난 겨울 설악산 빙벽에 붙어 있었을 때는 다시는 내 이 짓 하나 봐라하고 마음 독하게 먹었지만 어떻겁니까꽃 피고 새 우는 계절이 왔으니 또 산에 오를수 밖에요.”

오늘 가신다는 그 P산은 그러니까.. 말하자면... 올해 형씨의 산행에 맛뵈기같은.. 일종의 준비운동같은 것이로군요.”

사실 P산이란 곳은 동네 뒷동산을 면한 느슨한 산록에 행락 천막만 잔득 늘어서 있는 그런 곳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안경의 이런 반응에,

오우천만에기사도모르세요기사도.”

하고 대답하는 등산모의 워-카는 번쩍번쩍 광이 나고 있었는데 필경 구두닦이의 전문적인 솜씨임이 분명했다.

아아여자분과 가시는군요.”

글세 우연히 알게 된 계집애 하나가 어찌나 산에 한번 데려가 달라고 졸라대는지 성가셔서 그저 한번 P산이나 데려가는거죠.”

애인이신가 봅니다.”

하고 안경이 말하자 등산모는 터무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원 형씨도산에 한번 데려간다고 그게 애인이라면 차사주고 술사주고 영화보여주는 애들걔들도 죄다 애인이게요형씨도 참.”

스케일이 크시군요...”

본격적으로 주눅이 들어버린 안경은 뒷머리를 긁었는데 그 목소리에는 진정한 부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는 몇 번 으흠 으흠하고 목구멍을 추스리더니 진지한 폼으로 등산모 쪽으로 몸을 수그린다.

실은.. 저도 오늘 어떤 여학생과 낚시를 같이 가기로 했거든요.”

형씨도아아그야말로 애인이신가 봅니다.”

등산모가 눈을 동그랗게 하며 짐짓 놀랍다는 듯이그렇지만 양 입술가에는 주름잡힌 비꼬움을 머금은채 말을 받았으나 안경의 진지한 표정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에요아니예요저번 미팅때 처음 만났을 뿐인걸요사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난 서울여자를 그때 처음으로 가까이 만난거였어요그 때 내게 취미가 뭐냐고 묻지 않겠어요근데 내가 처음 서울의 대학에 들어 온 다음 제일 걱정스러운 것이 이거였거든요남이 물을 때 과연 내 취미를 무어라고 해야 하는가라는.... 짚신 두어축 허리에 차고 고향 묏산 산신봉에 올라가는 것이 설악산 빙벽타는 형씨처럼 등산이 취미라고 하겠어요아니면 장마철 물불은 강암바위 밑으로 곤두박질하는 그 따위로 수영을 취미라고 하겠어요그래서 도시사람도 제법 즐겨하는 낚시를 대외용 내 취미로 하기로 했죠사실 시골에서는 장대 하나 못에 던져 메기를 올리는 것보다 재미있는게 없거든요그래서 낚시를 좋아한다니까 자기도 낚시를 한번 해보고 싶다지 뭡니까같이 가겠다는 겁니다글쎄...”

그러나 안경낀 녀석의 진지함에 대하여 그 장황한 얘기는 듣는둥 마는둥 등산모는 엉뚱한 내용으로 대꾸한다.

낚시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꼭 해 보고 싶은 낚시가 있어요거 왜 있잖아요영화에 나오는 그런거 말예요대양에서 요트를 타고 거대한 다랑어와 사투를 벌이는.”

역시 형씨는.. 형씨와 얘기하다 보니까 더 자신이 없어지네요낚시라는 어줍잖은 취미도 그렇고 서울 여학생도 그렇고.. 에이오늘 그냥 혼자서 J못이나 가서 붕어를 낚던지 학교 도서관에나 박혀 있는건데..”

형씨는 정말 보기드문 쑥이십니다여자라는 건 말이죠남자가 다루기에 달린 겁니다조금 있다가 걔 나오거든 한번 보세요.”

서울 여자는 정말 갈피를 잡을수 없고... 자신이 없어서...”

안경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이런 제 꼴의 자괴감때문인지 영 똥 마려운 자세로 엉거주춤 의자 끝으로 내려 앉으며 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 싶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일찌기 나같은 놈을 사귀어 뒀으면 교육 좀 시켜 드리는건데... 근데 지금 몇십니까?”

등산모의 시계는 이미 뒷주머니에 전당표가 되어서 고히 접혀있음을 알 리가 없는 안경이 맞은 편 카운터 쪽의 벽시계를 본다.

아홉시 조금 지났군요.”

그동안 촌놈 하나 주눅들리게 하는데 성공하여 자의식에 빠뜨려 우울한 고백을 듣게 된 등산모는 이제 말이 없고여자를 만났을 때 기지에 찬 멋진 인사말이라도 생각하려는지 지긋이 자세를 바로 잡는다.

 

그로부터 꼭 2 45초후.

등산모의 그 지긋한 포즈는 허물어 지고 말았는데.

출입구 쪽을 향해 앉아 있던 안경이 벌떡 일어나면서 “경숙씨!”하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 “경숙씨?”하며 그 쪽으로 돌아 본 등산모의 몸은 그만 반쯤 곧추세운 자세 그대로 굳어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예의 그 경숙씨께서는 문을 들어서자 다방안을 일별하고는금테의 썬그라스를 끼고 까만 셔츠의 앞가슴 단추를 두 개쯤 풀어 헤치고 그 칼라를 흰색 양복 깃 밖으로 꺼내 벌려놓은 장발 녀석의 곁으로 가 앉으며 무어라고 속살거리더니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금테안경의 그 복장은 안경이나 등산모와는 비교할수도 없이 훨씬 세련된 것이었음은 물론이거니와 녀석의 무릎에 놓인 볼링가방이란 물건 또한장대가 비죽이 나온 낚시꾸러미와 빨간 등산모 혹은 번쩍이는 워카따위보다는 너무나 고급스럽고 세련된 소도구가 아닐수 없었다.

이윽고 두사람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게 되고 말았을 때경숙씨께서는 안경과 등산모 두친구의 그 울긋불긋하고 야릇무쌍한 표정의 얼굴에다 슬쩍 한쪽눈을 찡긋해 주고 나서는금테안경의 무릎 위의 볼링가방을 콩콩 때려가면서 웃어대는 중이었고금테안경 역시 다소 자애로운 얼굴로 두사람에게 빙그시 미소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 날 일요일 아침.

헤이헤이뷰티풀 선데이라고 악쓰듯 불러대는 여자가수의 노래소리에 쫓기듯이 다방 문을 나서면서,

안경 낀 이 녀석에게는 어떻게 하면 깨끗이 도망칠수 있을까하고 끙끙대며 머리를 굴렸던 쪽은 등산모였는데,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맙시다함께 우리 학교 도서관이나 가실까요?”라고 말하려고 했던 녀석은 안경쪽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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