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89. 2

카지모도 2016. 6. 2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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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35 1989. 2. 1 (수)


새벽 깨다.

내가 일어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가 나를 깨운다.

무거운 머리, 또 무엇이 나의 수면의 마을을 이토록 어지럽혔을까.

이 세력은 분명히 느낄수 있는데.

내가 엑소시스트를 알리야 있겠냐마는 엎드린채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만을 계속 무슨 주문처럼 읊는다.


느닷없이 떠오르는 소월의 시.

울지않아도 될터인데 굳이 울고자하는 조선사람의 시.

접동새는 얼마나 서러운지.


15336 1989. 2. 2 (목)


이제 어머니에 대한 어떤 슬픈 念은 완전히 가라앉았는가.

어제 어머니께 가다.

10시 넘어까지 맥주마시며 어머니, 형수, 조카들과 함께 종교얘기,영화얘기.....

어머니의 진정한 기쁨은 과연 무엇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건가.

낭비하는 여생이 되지 마셔요. 어머니.

가치있는 생명으로 인식하세요.

거짓뿌렁을 불식하시고, 이제 하나님께서 주신 진실함으로 어머니의 피붙이들과 정을 나누고, 그것이 어머니의 기쁨이 되셔요. 어머니. 나의 어머니.

이제 어머니를 향한 슬픈 원망은 접을랍니다.

내 마음이 견디지 못하겠으니까요.


3월초. 일본 여행 가신다고.


내일 모레 우리집에서 모두 회동키로.

기쁘고 재미있고 유익할뿐 아니라 돈독한 핏줄끼리의 우의를 다지는 모레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나의 집.

나의 가족. 나의 피들.

그래, 나의 위안, 나의 힘, 나의 군거적 순종... 아, 나의 삶.


내일이면 英이 고등학교 결정.


15337 1989. 2. 3 (금)


英이 영도여자고등학교.


5시 깨어나다.

김이 서린 유리창, 밖은 추운 모양이다.

어제 저녁 이상구박사의 TV 프로그램 보면서 성경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첨단과학이 결코 성경의 것과 배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서의 가르침안에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유익한, 현대 첨단과학의 단서가 있다.

그 단서에 의하여 현대의학은 사람의 건강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법을 제시할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구씨는 과거에 '죽으면 흙이 된다'에서 지금은 '영원한 영혼'있음을 깨닫고 그의 의학은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현상을 초월함을 인식하는 것. 기적을 신앙함으로써 그의 과학은 비로소 힘을 얻게 되었다.

기도하는 행위는 건강에 유익함이 과학적으로 증명될수 있다는.

또한 내면적으로는, 기도하는 행위보다 고귀한 것은 인간성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엎드려 기도.

어머니, 내 어머니의 진실. 그 가치관, 신앙에서 얻는 건강한 여생, 그 속에서의 기쁜 삶.

아내, 감사, 신앙의 성숙, 순종 온유 감사의 삶.

아이들, 참됨, 정직, 지혜로운 부모.

내일, 참되고 사랑에 찬 모임, 우리라는 인식의 장.


15338 1989. 2. 4 (토)


어제 보너스 수령.

회사마치고 시내 나간다.

아답타, 아락실, 충전약, 담배 한볼, 토큰 사고.

가로쓰기의 성경과 찬송가 사고,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오늘의 문제시인 선집'구입.

집에 돌아오니 가로쓰기 성경은 아이들이 며칠후 아빠생일 선물로 사다 놓았다.

그리고 등을 긁는 할아버지손도.

가로쓰기 성경은 두권이 되었지만 내가 갖고싶은 것을 헤아려 주는 아이들이 기쁜 것은 물론이다.


오늘을 위하여 이틀째 술을 마시지 않는다.

새벽.

내 책상앞 앉아 성경을 펼친다.

출애급기.

기도.

오늘 어머니와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아버지 나의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어, 모든 식구의 마음 속에 오해, 시기, 불만등 온갖 부정적인 찌꺼기들이 없게 하십시오.

이제 사랑과 신뢰와 위로와 이해 넘치는 그런 코이노니아의 세계를 이 관계들에 베풀어 주십시오.

어머니가 참된 진리에 가치를 두시고 참된 기쁨과 건강 속에서 여생을 보내게 하여 주십시오.

아내의 장한 측면, 좋은 점만 더욱 크게 느끼게 하여, 모자란 점 나쁜 점은 감싸 어루만질수 있은 사랑을 이 황량한 남편짜리의 마음 속에 불어 넣어 주십시오.

사춘기의 미묘한 심리에 잠겨있는 英이를 올바르게 키울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俊이에게 용기와 씩씩함을 주심시오. 형네를, 媛네를, 처가를, 이웃을, 인류를...


15339 1989. 2. 5 (일)


어제 밤 어머니와 형네 오시다.

저녁과 술한잔 걸친 형과 형수는 돌아가고 어머니와 네명의 아이들은 안방에 잠든다.

새벽.

코이노니아는 어느만큼 이루어졌을까?

지금 감사한 것은 어머니가 내 집 안방에 주무시고, 조카아이들과 이 신새벽을 맞을수 있는 이 새벽이다.


어머니,아내,아이들,형,형수,조카들...

어머니를 중심한 주위의 피붙이들.

한이 아닌 기쁨의 관계이게 하소서.

俊의 방, 옆에는 아내의 새벽잠.

나는 엎드려 기도.


15340 1989. 2. 6 (월)


어제 신새벽 어머니, 아이들과 동삼동 해변길을 걷는다.

태종대까지는 가지 못하고, 어제의 일출은 그다지 장관이 아니어서 아쉽다.

아침들 먹고 돌아간 어머니, 조카들.


오늘은 설이다.

아이들 미리 건내준 생일선물중 하나인 팬파이프의 찬송가 테이프,

작게 울려 퍼진다.

이틀간 어머니와 가족들의 나눔, 그것을 감사드린다.

충만케 하소서. 모두의 마음 마음 속에 사랑의 따뜻함만이 가득하게 하소서.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15341 1989. 2. 7 (화)


어제밤 숙직, 그러나 숙직원에게 맡겨놓고 땡땡이처서 돌아 오다.

숙직 다음날 허용된 늦은 출근 덕에, 6시 일어나 모처럼 긴 시간동안 내 방 책상 앞에 앉아 경건한 독서에 잠긴다.

베드로 전서.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고백'의 예전 일독때 밑줄 친 부분을 다시 읽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께 이르는 도정, 그 하나님에 대한 철학적인 인식론은 딱딱하지 않고 정말 감동적이다.

기도.

나의 하나님.

하나님께 이르는 문은 깨달아 추구되어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순식간에 엄습하여 홀연 발견되어지는 그 무엇.


<밤>

한낮, 12시 조금 안되어 俊 손잡고 외출.

버스타고 영도다리를 건너서 두 부자는 책방을 기웃기웃, 그러나 책은 사지 않는다.

구루마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산다.

송창식 노래, 박윤관 클라식 기타 찬송가집.

지금 듣는 기타소리는 피아노와는 다른 물건이다.

기타의 현을 뜯는 소리는 마음줄을 뜯는 소리,

그 소리를 점잖게 듣고 있는 저 능청스런 俊이의 표정이란.


15342 1989. 2. 8 (수)


비내리다. 올 겨울비는 다소 심하다.

명절 연휴후의 첫날, 출근율 40%.

확실히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가보다.


15343 1989. 2. 9 (목)


철지난 여성지에서 오려 내 책상 유리 밑에 깔아 놓은 금강산과 백두산 사진들.

금강산의 기기묘묘한 경치.

백두산 천지의 신비로운 정적이 느껴진다.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

드레퓌스사건, 러시아 10월 혁명등의 역사적인 진실들, 좀 지나친 진보주의자의 시각으로 역사를 보았지만 그러나 이것이 역사의 진실일 것이다.

우리가 받아 온 교육으로서의 역사인식이란 많은 오류가 있을 것이다.


며칠전, 함석헌옹 세상을 뜨다.

몇 안되는 존경할수 있는 분인데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15344 1989. 2. 10 (금)


어제 현장의 그 말못할 곤비함.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겐지. 악의와 천박함이 난무하는 진흙밭의 현장이라는 곳.

경멸하면서도 한없이 경멸하면서도, 비굴한 웃음으로 타협해야 하는 이것이 내 가족을 위한 생존의 근거여야 하는가.

천박하고 악의에 찬 엉터리 칼날에 상처받는 영혼이라면 어찌 온전할수 있을손가.

아, 무디게 하여 주소서. 뻔뻔스럽게 하여 주소서. 고래 힘줄같은 신경줄을 주소서. 얼굴에 철판을 뒤집어 씌워 주소서.

이토록 섬세하고 여린 신경줄로서는 견디기 어렵습니다.


말씀하소서. 혹 자유로와 지라고, 혹 벗어나라고, 다른 소명을 주시려고 지금 저를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로 만들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그 양철지붕위에서 어서 뛰어 내리라고 말입니다.

분명하게 말씀하여 주소서.

새벽.

수면제로서도 잠재울수 없는 피흘리는 영혼, 이 상처를.

그러나 어제, 술속으로 도망가지는 아니하였다.


15345 1989. 2. 11 (토)


어제 홀로 술마시고 늦은 잠자리 들었으나 꿈도 없는 숙면 취하다.

새벽 일어나 한편의 시를 읽고.

기도.


이상구박사의 위마연구소 건강 프로그램.

뉴 스타트. (NEW START)-

NUTRITION(영양), EXCERCISE(운동), WATER(물), SUNLIGHT(햇볕), TEMPERANCE(절제), AIR(공기), REST(휴식), TRUST(믿음).

그러나 이 한국의 치열한 산업사회, 이 척박한 문화 풍토에서 어찌 사랑과 신뢰와 휴식과 믿음으로 건강을 유지해 간다는 것이 가능하겠는지.


어제밤 술잔을 기울이며 끄적거린 단상.

나는 사회의 계층이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 인간군의 원래적인 차별이 있다는 게 아니라, 사회의 문화풍토에서 성립된, 개관 가능한 부류마다 하나의 등급을 부여할수 있다는 말이다. 그 등급은 정신적으로 어울려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군거적 분류이기도 하다.

그 분류의 기준은 부르죠아라던가 프로레타리아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맑스 엥겔스적인 계급분류는 아니다. 단지 문화적 등급일 뿐이다. 혹 이것은 영혼의 동류끼리의 분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혼의 등급. 인간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등급을 알아야하고 그 등급에 맞는 분수를 지켜야 한다. 추악한 위선자의 등급짜리가 분수모르고 날뛰어 선량인의 등급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기주의자의 등급짜리의 분수, 질투자의 등급짜리의 분수, 위선자의 등급짜리의 분수.

조선소의 현장에는 자신의 등급의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인격이 많이 있으니.


15346 1989. 2. 12 (일)


어제도 늦도록 술, 의형제를 표방하는 박두성씨와 박필갑.

그들 관계의 과장된 과시의 폼은 일견 유치하지만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일요일, 나가는 현장, 단지 경제적인 것 밖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나의 일터.

내일이면 우리 딸 이수린양은 중학교를 졸업하는데, 이 현장이란 우리 딸과는 너무도 닮은 구석이 없다.

시내에 가 만년필 사다.

J도 아이들과 함께 나가서 책과 선물을 산 모양이다.


푸르게 푸르게 저토록 평화롭게 담겨있는 바다.

루오의 또다른 그림 오려 액자에 장식한다. 베로니카.

골고다를 오르는 예수님 얼굴의 땀을 닦아드렸던 처녀.

그림 속의 베로니카는 예수님의 순결한 눈동자를 그대로 닮았다.

닦아드린 그 수건에는 고통받으시지만 지고한 평화의 예수님 성안이 찍혔다던가.


15347 1989. 2. 13 (월)


꿈- 많은 친척 등장, 박정권때 무슨 반정부 모의에 연루된 작은 아버지와 고모부들. 무슨 반체제의 명문가인데 그 자부심들이 대단하고, 사촌들은 독재에 항거한다는 숙연한 분위기.


자리에 엎드려 기도.

오늘 英이 동삼여중 졸업.


월요일, 익숙한 그 아득한 느낌.


15348 1989. 2. 14 (화)


구강 속은 늘 편편치 못하다.

오른 쪽 턱밑에 멍울이 만저지는데 이것은 전부터 컨디션 좋지않을 때 자주 있었던 것이고.


이상구 박사의 말은 옳다.

욕심없고 평화로운 마음이 평화로운 육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라도 평화로운 예수님의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이 범부로서 가능하겠는가?

더구나 이 산업사회의 현장에서.

그러므로 외부에서 오는 신비로운 힘을 기대하는 것이다.

스스로는 불가능하니까 외부에서 심어주는 평화로움을 의존하는 것이다.

이상구박사의 방법론의 핵심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俊 방에 앉아 전도서 읽다.

과연 악인 의인이란 하나님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두 헛되고 헛된 것인데.

그러기에 창조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전도서의 오의를 어렴풋이 감득한다.

보상이나 도달함 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닌 실존함으로 느끼는 피조물의식.


15349 1989. 2. 15 (수)


따뜻한 겨울, 목욕거르는 아침.

자리에 엎드린채 시편 40 읽다.

기도.

마음에 품은 악독,입술로 꾸미는 궤계,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

나는 어찌할수 없는 아담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덕목과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죄의 덩어리인가.

고결하시고 순결하시고 한없이 부드러우신 그 분.

나의 예수님, 나의 하나님.


아이들, 세상에 단 둘뿐인 오누이, 英이와 俊이.

이 세상 그 무엇도 깨뜨릴수 없는 사랑과 우애로서 자라주기를.


현장의 생활인들, 결코 부유하지도 유식하지도 않지만 자신의 경제를 위하여 그들은 얼마나 진지한 근로를 영위하는가.

비록 그것이 소유의 목적뿐일 삶일지라도 그 진지함을 폄할 수는 없다.

존재를 표방하는 나의 삶의 양식 또한 진지하다고 생각되지만 자칫 몽상가의 속성의 그것이 아닐까 두렵다.


어제 이덕찬씨에게 늘어놓은 궤계와 변설.

이 아침 참 부끄럽다.

나 역시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며 약한 사람에게는 강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비열한 속물인 것을, 진지한 생활인인 그에게 도덕가인양 무슨 변설이란 말가.


15350 1989. 2. 16 (목)


올 겨울 참 비도 자주 내린다.

어두운 새벽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어둠 속에 누워있을 저 바다에도 비는 내린다.

책상 앞 앉다.

기도.

어머니, 아내, 아이들, 형네, 媛네, 처가, 친척, 이웃, 회사....

간구의 Priority.

눈물흐르다.

순결한 새벽의 기쁨.


피의 일요일, 10월 혁명.

민중. 노동자 농민을 향한 불같은 사랑. 트로츠키, 외로운 늑대. 혁명에의 끓어 오르는 열정. 레닌, 투명한 의식의 냉정함, 비젼있는 혜안.

러시아의 혁명은 실로 장대한 낭만의 드라마다. 한편의 아름다운 서사시다.

바쿠닌을 생각해 보라. 그 낭만적인 무정부주의자를. 로자 룩셈부르그는.

프랑스혁명과 같은 라틴적인 피비린내는 없다.


얼마 전 내한하여 들려준 러시아 모스코바 방송합창단의 화음과 같은, 슬라브적인 영혼의 울림이 있고 광대함과 눈덮힌 평원과 투명한 얼음의 감각.

억압받고 고통받는 민중에 대한 무한한 애정...


15351 1989. 2. 17 (금)


어제 아침 어머니 오시다.

허영과 과장과 떠들석함, 체홉의 여인.

媛이 내려오다.

J와 英이 역으로 마중.


울부짖는 바람 소리에 잠이 깨이다.아직 캄캄한 새벽.

으르렁거리며 바람이 짖는다. 유리창을 때린다.

엎드린채 성경을 편다.

살며시 안방으로 들어오는 俊이, 고모가 사준 돌핀 손목시계가 아이의 마음을 설레게하여 새벽 잠을 앗아간 모양이다.


오늘 俊이 졸업식.

바람이 이렇게 부니까 교실 졸업식이 될 듯.


15352 1989. 2. 18 (토)


어제 媛이 오다.

이제 媛이는 부르죠아인가. 그 사고방식의 생경함.

허영, 지껄임, 돈에서 비롯된 가치관.


어제 이俊 졸업.

잠시 현장을 빠져나가 교실 밖의 창문으로 俊이를 본다.


새벽. 俊 책상 앞에 앉는다.

에베소서.

기도.

사랑이게 하소서. 마음마다 진실한 이해의 성실함이 있게 하소서. 어떤 심령도 경제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오늘 어머니를 중심으로하여 모이는 가족들, 마음 마음마다 진실함과 진지함과 온유함이 함께 있어서 진솔한 모임의 기쁨이 있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제법 추운 날씨, 비는 그쳤을까?


15353 1989. 2. 19 (일)


어제 큰 집에들 모인다.

형과 媛이와 아이들. J와 형수.

어머니는 누워 주무시는데, 어머니가 꿈꾸시는 영혼의 세계는 그토록 떠들썩한 속세의 무엇이 아닐듯하다.

이미 일흔에 들어서신 어머니, 저 영원의 소망을 꿈꾸시는 것은 아닐런지.

소주.

가장 가까운 피붙이끼리의 어떤 형태로든 모임이라는 것은 참으로 뿌듯한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媛이 오늘 올라간다고.


15354 1989. 2. 20 (월)


어제 일요일, J와 교회 참례.

설교 내용.

'영감을 크게 받는 법'

고독으로의 잠수, 피곤의 인내, 영혼의 갈구.


예배마치고 함께 시내나가서 책과 아이들 먹을거 사다.

조성기 야훼의 밤 제4권 '회색신학교'


어제 비디오 빌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또 본다.

BONNIE & CLIDE.

아서 펜 연출.

또 보아도 워렌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의 뛰어 난 연기와 한시대의 아메리카를 그려낸 영화적인 재미는 대단하다.


15355 1989. 2. 21 (화)


어제밤 동삼교회에서의 부전교회 신예철 목사님의 설교들으러 J 혼자 교회 나가다.

이제 내 아내는 크리스찬이 되는 건가. 고맙고도 고마운 사건.


15356 1989. 2. 22 (수)


어제 J가 형수와 아이들과 함께 시내에 나가 쇼핑한 얘기는 날 말할수없이 즐겁게 한다.

또하나 기쁜 소식은 어머니가 나와 함께 관람할 뮤지컬 '에비타'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 이러한 가족간의 정답고, 서로가 서로에게 즐거운, 관계의 소식은 나의 마음밭에 얼마나 감사와 기쁨의 씨앗을 뿌리는지.

늦게 잠자리 들었으나 덕분에 간밤 참 편하고 달콤한 수면 이룬다.

수면의 품질은 양이 아니라 질인 것이다.


따뜻한 새벽. 엎드려 사도행전.

기도.

감사. 감사. 주님 속의 코이노니아.


오늘 SB-351 진수예정.

그리고 오늘 반드시 에비타 티켓을 구해야 한다.

그 날의 예산도 확보중이다.


15357 1989. 2. 23 (목)


나는 바삭바삭 건조한 것을 좋아한다.

끈적끈적한 것은 싫다.

마른 모래와 같이 건조한게 좋지 점액질의 진흙은 싫다.

건조한 것은 깨끗함과 정리된 느낌을 주어 더욱 좋다.

그러나 나는 건조한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때때로 점액질인 것의 끈적끈적한 것에 함몰되어 헤어나지 못한채 그 암시에 끌려 다니는 경우가 있다.

노오란 음란한 환상..

이러한 이중성의 취향은 누구에게나 있을법하지만 나의 경우는 비정상적이다.

너무나 자아의 조절장치가 부실하다.


에비타 입장권 사다.

로얄석 3장.


15358 1989. 2. 24 (금)


어제밤.

제법 쌀쌀한 기온 속에서 겨울비 추적이는 밤바다소리 들으면서 내 방에 홀로 앉아 소주 마시다.

기쁨에 겨운 술.

J가 어머니께 김치 담가 갖다드리다. 그리고 형수 생일에 즈음한 꽃다발 선물도 함께.

얼마나 고운 마음씀이냐. 나의 아내는.

이러한 J가 나를 말할수 없이 기쁘게 하는 것이다.


英이는 워크맨대신 제가 쓰던 카세트라디오는 나에게 인계한다.

그것을 베란다 내 공간에 얹어 놓으니 나의 방은 그만 어느 귀족의 방, 로코코의 궁전이 되고 만다.

베토벤의 피아노트리오 '大公'.


조성기 야훼의 밤 4 '회색신학교.

쉽게, 평이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소설가, 신앙을 위한 구도의 도정을 걸어 온 사람, 한때 소박한 신앙공동체를 이끌었던 사람.

그런데 그는 이제 기독교를 초극한 어떤 세계에 도달하였는지...


인생이란 의외로 단순명료할수도 있는 것.


15359 1989. 2. 25 (토)


어제 SB-348 下架.

큰일 날번한 사고, 김을용직장 부상.

아침부터 징징 잔소리해대는 모씨에게서, 징조가 별로 좋아보이지 않더니만.

빗발 뿌리다.


꿈. 어느 대저택의 어머니는 여 영주...

깨어난 머리속은 불면후의 익숙한 그 증상.

자리에 엎드린채 성경 뒤적인다.

기도.

감사,감사. 긍정이게 하소서. 하나님꼐서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을 감사한 긍정으로 하소서. 아내를 감사, 어머니를 감사, 아이들을 감사, 형네를 감사, 모든 가족님들 감사...

아, 나의 잔은 넘친다. 그렇다.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나의 잔은 넘치도록 충만한 것이다.


어제 저녁 잠시 시청한 이상구박사의 프로그램.

가까운 사람과의, 특히 부부사이의 관계.

이것은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상대에게 바라기 전에 자신이 먼저 변해야한다는 당위성도 여기에 있다.

이 믿음에는 신앙만이 해낼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

종교적인 마음을 갖는다는 것.

사랑, 무욕, 평안, 극기등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할수 있는 그 노하우가 바로 신앙속에 잇는 것이다.


오늘은 어머니와 에비타 관람하고 만찬을 하는 날.


15360 1989. 2. 26 (일)


어제 어머니 모시고, 내 딸 英이 데리고 대연동의 문화회관.

시민회관보다 월등히 잘 지은 예술적 분위기 물씬 풍기는 백악의 건물, 조경과 어우러진 멋진 주위환경. 내부 공간의 붉은 양탄자도 고급스럽고 그렇게 넓지 않은 내부의 무대와 객석의 어레인지도 마음에 든다.

대연동 주위의 환경 또한 대단히 문화적이다.


뮤지컬 '에비타'.

생각보다는 단조롭고 드라마 트루기도 미숙하다.

김경애의 에비타, 유인촌의 페론, 조영남의 체.

스타의 개성적인 빛나는 연기도 없다. 에바의 캐릭터 역시 그저 그렇고 뮤지컬적 엔터테인먼트의 번쩍임도 보이지 않는다.

무슨 브로드웨이 수준의 뮤지컬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내 늙으신 어머니, 내 어린 딸네미가 확 빨려들어갈만한 이벤트라도 무대에서 펼처주기를 줄곧 기대하며 있었는데.

돈을 좀 더 들여서, 멀티비젼따위는 치워버리고, 화려하고 바라이어티하게, 다이나믹하게, 좀 더 웅장하게, Dont Cry For Me Algentina를 부를때에는 모든 관객이 뭉클하여 콧등이 시큰하게...


몇만원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사실은 어머니, 英이,나 이렇게 삼대가 나란히 앉아서 하나의 무대를 주시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하나만으로 내 마음은 넘친다.

빗속을 택시는 달려 광복동입구 동양관광호텔의 스카이라운지-

할머니와 손녀딸 그리고 아들, 이 세 핏줄은 아늑한 갓램프의 테두리 안에서 새우후라이 먹는다.

밖에 비는 쏟아지는데 그 빛의 테두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다시 돌아와 형네의 아파트 거실, 형과 몇병의 맥주.


우리는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그 사랑은 핏줄에게 얼마나 중요한 목숨인지, 이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명제가 얼마나 소중한 덕목인지 이것을 깨닫자. 우리.


일요일의 회사. 충만한 마음밭은 세상에 대하여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감사, 그래 어머니, 그래 英이, 그래 정화...


15361 1989. 2. 27 (월)


새벽에 읽는 팡세, 명징하게 닥아 온다.


월요일의 현장.

어제는 비온후 그토록 화창하더니 오늘은 찌푸려 있다.

윤반장과 김석봉씨와의 싸움 후유증으로 퇴근시까지 어수선.

일방의 주장에만 귀가 얇지 말자.

바위와 같은 육중함으로 판단하라.

靜重如山-

옳고 그름을 가리는데에는 고요하고 무겁기를 산과같이 하라.

차라리 침묵을 지켜라. 그것은 회피가 아니라 가장 현명한 판단이다.

인간성과 그 인간성이 낳은 행위간의 인과관계란 그렇게 쉽게 간파되어 지는 것이 아니다.

교활한 박쥐근성으로서의 말없음이 아닌 진실에 접근코자 하는 침묵의 신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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