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88. 12

카지모도 2016. 6. 22.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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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73 1988. 12. 1 ()

 

이제 88년도 한달이 남았을 뿐이다.

무엇을 이루었나?

내 영혼은 더욱 맑아졌는가?

나의 덕은 얼만큼이나 신장되었나?

나의 믿음은 어느만치 굳건해 졌나?

 

어제의 현장은 실로 분주하였다.

화신기업 김사장으로부터 받는 봉투, 기성책정의 고마움 표시라는 명목으로 매달 정기적으로 상납받는 이것은 수뢰일시 분명하다.

이런 것도 주님의 가시라 할까? 어느 곳의 양심은 다소 아프지만 이 아픔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도그마에의한 심리적인 반응 정도일 것이다.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은 행위라는 당위성이 내게는 있다.

 

다시 광주청문회 시작.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 굴복한 과거에 대한 회오와 죄의식, 고뇌의 흔적이 준수한 얼굴에 어려있다. 순수한 이상주의자의 얼굴을 향하여 질문을 던지는 민정당 의원들은 얼마나 산문적인가?

 

나는 보수주의자일 것. 겁쟁이의 요소때문인바도 다분히 있으나 천래적인 게으름과 안일추구의 성품탓인바도 많다.

심성적으로 진보주의자를 표방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표면일 뿐이다.

 

5시 기상.

토마스 아 캠피스 읽고.

주님께 기도.

"주여 내가 패하지 않게 해 주소서.

제발 육체에게 패하지 않게 해 주소서.

현세와 이 현세의 짧은 영화가 나를 속이지 못하게 해 주소서."

 

15274 1988. 12. 2 ()

 

어제 조선부 회식.

어울린 그 인격들이 모두 유치하다고 하지 말자.

결국 취하다.

젖가슴은 물론이고 치모가 내비칠 정도로 벗어부치고 춤추는 무희, 그 포즈는 곧바로 섹스의 동작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환락가도 갈데까지 간 모양이다.

 

시에서 얻은 좋은말 한구절. 김종삼의'어부'

"살아 온 기적이 살아 갈 기적이 된다고"

 

15275 1988. 12. 3 ()

 

Y아무개의 유치한 자기집착은 어디가 끝일까?

유상구취한 그 취향에 알랑거려야하는 내 인내의 한계는 또 어디 쯤일까?

무슨 대단한 엔지니어라고 기술만 코에 걸고있는 그의 정체는 진짜 비과학적인 심술보이다.

내 비겁함과 못난 측면의 모든 것이여!

 

15276 1988. 12. 4 ()

 

이는 교회다녀오고.

이는 연합고사 4일전.

이 치는 피아노 소리.

저 멀리 조감되는 방파제에서는 파시가 열리고 있는지 사람들 북적인다.

흐린 날씨, 그러나 봄날처럼 따스하다.

 

15277 1988. 12. 5 ()

 

갑자기 추워진다.

싫어 싫어 하면서, 안절부절 우왕좌왕하는 현장의 일들.

며칠째 경건은 없다.

쓸쓸함, 그 소란한 현장의 소음 속에서도 들쑤셔오는 쓸쓸한 아픔하나.

어머니, 내 어머니에 대한 아픔 탓.

서울에서 아예 내려오실 생각을 아니하는 어머니. 부산의 아들들과 며느리들에 대한 어떤 섭섭함, 소외감 또는 어떤 불안감?

나는 어머니가 나에 대하여 어떤 떳떳지 못한 부담의 감정을 갖으신걸 즐기는 거나 아닌지.

, 나의 사려깊지 못함이여. 그 다툼(?)이후 나 스스로 어머니와 형네에 얼마나 소원함을 나타냈는지.

어쩌지 못하는 이 자괴감을, 또한 불식치 못하는 이 편협함을...

 

어두운 바다 이쪽, 추운 공간 책상 앞에 앉아 시편을 일고 기도를 드리지만 나란 못난 놈의 성곽은 어찌 이리도 견고한지.

내일 새벽 정녕 경건하여라.

울어라. 울어서 뉘우치고, 전력을 다하여 묵상하라.

한 스푼의 소금도 못되는 이 돼지의 꿀꿀거림을 묵상하고 묵상하라.

 

15278 1988. 12. 6 ()

 

새벽.

추운 방 불밝혀 앉아 경건을 회복한다.

기도. 울다.

경제, 경제, 조금의 도움...

어머니에 대한 이 원망.

원망이 사려를 잃게 하고 편협한 마음만 부추기는데, 주님이 그토록 가르처 주신 덕목을 조금도 갖추지 못한 불순한 영혼을 울다.

추악함이 엄습한다. 너무 추악하여 냄새가 나는 그것이 절절히 엄습하여 깨닫게 한다.

발뒤꿈치처럼 굳어버린 이 추악함을.

변케 하소서. 변케 하소서.

치솟는 울음은 진정 뉘우침인가.

 

"만약 하나님의 은총과 참된 사랑이 깃들게 되면 그곳에는 시기나 편협된 마음이 있을수 없고 自愛도 발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토마스 아 캠피스-

 

15279 1988. 12. 7 ()

 

어제 회사에서 어머니께 전화드리다.

목소리가 명랑하여 내 마음 또한 기쁘다.

일본대사관에서 일본영화 감상하신 얘기랑 고모들과 온천다녀온 얘기랑.

딸 집에서 그토록 바쁘시게 재미있으셔서 내 마음은 좋은데, 어디 한구석 아련한 아픔 하나..

 

엇저녁, 광주청문회 보느라 늦은 잠자리.

민청련 전 회장 이신범.

정의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대할 적에는 코끝이 찡하고 어떤 감동이 엄습한다.

나는 감상쟁이.

늦은 잠자리 덕에 두 육체의 언어... 부부라는 것.

 

이 드디어 내일 연합고사.

 

15280 1988. 12. 8 ()

 

이 용약 출전. 새벽 어둠을 밟고.

민방위 훈련의 새벽, 나도 함께 집을 나선다.

버스타며 헤어지면서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한다.

 

간밤에 비 조금 내린 듯.

물씬한 흙내음, 생산적인 대기의 냄새.

익숙한 이 냄새는 원초적인 어머니 냄새다.

 

김철수 결혼한다고. 홀로 개척하여 헤쳐온 삶, 그의 외면적인 성격이 다소 불유쾌하더라도 그를 매도하여서는 안된다. 삶이란 얼마나 엄숙한 것인가.

 

15281 1988. 12. 9 ()

 

기온 뚝 떨어지다.

 

아씨의 무덤덤함.

잘 치른 건지, 어려웠던 건지 쉬웠던건지 우리 아씨는 그저 무덤덤하기만 하다.

저희 학교 수석도 가능하다고도 하였는데.

우리 아씨는 아비에게 도무지 아기자기하지 않구나.

 

15282 1988. 12. 10 ()

 

새벽3시 기상하여 베란다, 새벽별 보이는 내 방으로 들어서자 싸늘한 추위, 이 방 책상 앞으로 후퇴한다.

시편 1,2.

말라기.

사도행전 앞부분.

기도.

과정을 다 마쳐도 시간은 아직 540.

이 깨우고, 목욕하고 발톱깎고 면도기 소제하고 구두를 닦자.

오늘은 토요일이다.

 

15283 1988. 12. 11 ()

 

어제 도장파트 회식하는데 끼어 늦도록 마시다.

술집의 쑈라는 것- 그 노골적인 성행위묘사의 내용들은 정말 갈데까지 간 모양이다.

 

일요일의 늦잠.

급히 목욕하고 회사 나간다.

현장의 긴박감도 어딘가 한가로와 보이는 휴일의 여유로움.

이호환 술먹고 내 책상 앞에 앉아서 횡설수설, 칼자욱 투성이인 알몸을 드러내고 짐짓 과장된 시위도 해 보인다.

나는 그 배후에 있는 그의 가엾음을 보고 있는데도.

 

회사에 앉아서 에릭 엠블러의 추리소설 '무기의 통로' 완독하다.

극적인 긴박감이나 스파이소설다운 아기자기한 재미는 없으나 노련미 넘치게 썼다.

그런데 거스르는 작가의 시각, 아시아인을 참 우스꽝스럽게 보는.

서양사람들의 아시아인에 대한 근거없는 우월의식.

검사과 시절- MR. BELL 그 거만한 영국인이 나를 대할때도 그런 포즈가 없지 아니하였고, 콧수염과 매력적인 눈빛을 가졌던 로이드 검사관 MR.SALT는 개인적으로 그토록 친했던 것 같지만 그에게는 그런 의식이 없었던것이지...

 

15284 1988. 12. 12 ()

 

이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각양으로 변형시킨 제 주위의 물건들, 녀석에게는 무언가 창조적인 욕망과 재능이 있다. 이를 키워주어야 한다.

이는 요즘 한가하기 그지없구나. 책이나 많이 읽었으면.

 

15285 1988. 12. 13 ()

 

430분 기상, 이 깨우다.

'신학적 측면에서 본 죽음의 이해' 김광식의 논문.

구약과 신약에서 본 죽음의 의미, 교리상으로 본 죽음의 이해 (인간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죽음), 철학적인 죽음의 이해, 조직신학에서 본 죽음의 이해 (유한성으로서의 죽음과 삶의 완성으로서의 죽음)...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실존적 결단으로서의 죽음의 극복.

실로 신앙의 궁극은 죽음의 극복에 있다.

시편 3, 4편 외운다.

 

15286 1988. 12. 14 ()

 

녹화된 '고양이' 본다.

쟝 가방, 시몬 시뇨레 주연.

왕성규가 되게 칭찬한 영화다.

늙는다는 것, 인생, 고독, 허무...

인생의 의미를 가만히 천착케하는 참 좋은 영화다.

 

밤이 되니 바로 내려다 보이는 교회의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 점등.

예전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은 관념적이었지.

연말의 치루어야하는 축제의 감정들...

그러나 이제 장가방과 시몬 시뇨레의 고독이 사무치는,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이 쓸쓸함.

 

15288 1988. 12. 16 ()

 

부쩍 추운 새벽, 오늘이 대입 예비고사 날인데 입시추위란 말이 실감난다.

새벽의 기침. 밤새 잠들었다가 새벽이 되면 스물스물 일어나는 기침벌레.

새벽 눈뜨자 J와의 몸짓, 부부애라는 것은 어찌보면 매우 즉물적인것인지 모른다.

body touch에서 비롯되는 애정과 신뢰감이 전부일수도 있을 것이다.

서양사람들이 시도때도 없이 입을 맞춰대는 것을 보아도 그렇지 싶다.

 

베란다 내 방은 너무 추워 성경과 책과 일기장 들고 이 방으로 후퇴.

사도행전 4장과 5.

시편 62.

기도.

오직 주님이 주시는 평강 그것만으로 묵상하라.

 

15290 1988. 12. 18 ()

 

이의 열심인 교회, 내 아들 때때로 참 속이 깊은 면모가 발견되어 그때마다 내 아들은 뿌듯한 감동을 아빠에게 선물한다.

 

15292 1988. 12. 20 ()

 

커다란 화폭.

푸른 하늘과 흰구름.

넓디 넓은 하나의 충만.

하늘은 가득함이다.

충만의 가득함이며 허무의 가득함이다.

어제 늦도록 마신다. 과우회의 망년회.

3시 넘어 들어 온 모양.

 

15297 1988. 12. 25 ()

 

며칠전 어머니 내려 오시고 성탄전야, 모두 어머니 곁에 모인다.

모쪼록 복되고 단란한 성탄절이어라.

 

김철수 결혼식.

아이들에게 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 만화 한질 선물한다.

 

큰 집의 브리태니카와 바꾼 백과사전 한질.

엉터리, 내용이야 그다지 엉터리일까마는 장정에서부터 덤핑냄새 물씬.

판형을 사서 싸구려 종이에 짝어쩨낀 책.

이것과 바꾼 그 아까운 대영 백과사전.

 

오늘 회사 창립기념일, 회사 나가야 한다.

젯상 차려놓고 고사지낼거고 나는 돼지머리 에다 대고 큰절 올려야 할지 모른다.

하필 예수님 오신 날에.

 

15298 1988. 12. 26 ()

 

고사.

OWNER의 집안잔치, 대선조선은 그 OWNER의 인격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할 것.

그 조직 속에 빌붙어 먹고 산다는 나의 한심함.

 

또다시 월요일.

금년의 마지막 주일이다.

과연 나는 금년에 무엇 하나 이룬 것이 있는가?

변하라. 뚝딱.

영혼이여, 상황이여.

 

15300 1988. 12. 28 ()

 

어제 성규와 그 아내 이영재씨 내려오다.

KH근 이 29일 성당에서의 늦 결혼식.

J와 함께 모두 만나다.

,J,성규,영재씨, PS, 준석엄마, KH,수하나엄마.

JN영 네 빼고 모두 둘러앉아 희희낙낙 우정을 나눈다.

무슨 계 하나 만들기로.

 

사교성이 있다는 것.

나는 결코 사교적인 성격이 되지 못한다.

천성적으로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즐거워야 하는데 나는 사람을 되게 고르는 편이다.

이 세상을 사는데 편리한 도구가 바로 이 사교성일텐데.

 

15301 1988. 12. 29 ()

 

어제 과 망년회.

비용은 전부 화신기업의 김사장 몫. 그는 어제 과용했다.

 

KH근 이, 오후 2시 양정성당에서 혼배 미사.

결혼식 마치고 소연엄마만 빼고 모두 모여 식사와 술.

어울려 밤새 떠들고 싶지만 나는 잠시 빠져나온 회사로 다시 들어가야 하니.

J는 내 친구들과 그 마누라들과 어울리도록 남겨두고 나 혼자 아쉬운 마음으로 회사로 귀환한다.

 

15302 1988. 12. 30 ()

 

이제 무진년 1988년도 내일 단 하루만을 남겨놓고 있다.

해가 바뀐다는건 결국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제도의 것이니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의 매듭과 단위를 나눔으로 개선을 꾀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은 것이다.

 

너무나 사적인 암시에서 벗어나지 못한 올해.

신앙은 타성으로 흐르고.

모든 것들이 닥친 그 순간에는 아무리 타당하고 당위성이 있더라도 지나간 시선으로 돌이켜보니 자기합리화의 비열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수가 무릇 기하일까?

 

15303 1988. 12. 31 ()

 

그야말로 세밑 아침.

아직 밖은 어둠에 잠겨있다.

목욕후 울리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세밑의 마음밭을 쓰다듬어 준다.

기도.

 

올해 많은 사거들이 점철된 듯 보여도 기실 따지고 보면 개선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나는 나의 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였다.

사적인 관심 밖의 영역을 향하여 한웅큼의 애정을 갖어보지 못했을뿐더러, 스스로의 자의식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였다.

내가 형편없는 겁쟁이, 이기주의자, 유물론자라는 것만 확인하여, 인식하여 벗어나려고 몸부림친 흔적만이 그나마 소득이랄까.

그리고 나의 정신은 다소 고상하였는가?

아니다. 자폐적인 쇼비니즘의 전형.

 

변하라. 확대하라. 상승하라.

세밑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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