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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26)

카지모도 2024. 12. 14.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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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몰골을 봇시오. 금지옥엽 귀허디 귀하게 외씨 보손에 볼받어 신고, 방안으

서만 앉은 걸음 선 걸음 놓던 발로 단 십리, 단 오리 길을 걸을 수가 있으며, 성

헌 몸도 아닌디 병든 몸으로 이리 비척 저리 비척 어느 하가에 목적헌 디를 당

도헐 수가 있겄능교? 거그다가 시방 경색이 되야 부렀는디. 사방이 맥헤 갖꼬

숨통조차 안 열링만, 어서 어디로든 들으가 바늘로 좀 손구락 발구락 같은 디를

따야 안허겄소?"

황아장수는 그만 제 숨통까지 막힐 지경이어서, 숫제 그냥 다시 원뜸 종가댁

으로 되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게 당황하였다.

그러나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 비단도 지고 다니지만, 온갖 잡살뱅이 자질구레한 물건을 등에다 지

고 다니면서 등뼈가 굳은 아낙의 산전수전 눈치로, 이번 일이 도무지 예삿일이

아닌 것을 알아챈 황아장수가, 어떻게든 강실이를 효원의 친정 근처 절에까지

배행하여 모셔다 놓는 것만이 상수인 것을 모를 리 있으랴.

그렇지만 그 일이 참으로 난감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런디 좀 물읍시다. 머 허로 어디를 가능 길이요? 죽어도 가얄 길 같으먼

가다가 죽드래도, 등짐은 머리에다 이고, 작은아씨 받어서 등에다 업고 가시오.

안 그래도 될 질 같으먼 죄우간에 어디로 들으가서 얼릉 무신 조치를 해야고,

이러다가 내 등짝이 칠성판 되게 생겠소. 무서 죽겠네 기양. 오금이 제리고. 날

도 춥고오. 한시가 급허그만, 얼릉 말허겨어."

"피병 비접 가는 질 아니요오?"

"비접?"

핑계가 좋아 지름칠을 허겄다. 헤기는 애기 선 것도 병은 병이제. 다아는 병이

라 병 취급을 안해서 그렇제. 애기도 머 기양 애기냐? 병통은 옳게 병통이 생겠

제. 허나, 너는 모를 거이여. 그보단도 더 짚은 병이 골수에 맺혀서 썩고, 삭고,

문드러지고, 골갱이 다 빠져 분 것을.

나는 알제. 나는 알어.

그런디 말이여. 우스뤄 죽겄네. 애기 아배가 코빼기 밑에 엎어져 있는디, 뱃속

으다 애기 담고 어디로 비접을 간당가? 어뜬 사람은 애기 날때 즈그 서방 상투

끄뎅이 안 잡으먼 끝끝내 못 낳는다등만.

옹구네는 속에서부터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약을 내뱉어 상대방한테 올려 줄

수는 없고 혼자서 쇠새김질을 하며 날을 갈았다.

두고 보자. 요년.

"어차피 비접 피병 가는 질이라면, 이 몸을 허고 가다 죽느니 우리집으로 가십

시다. 이 작은 아씨 혼잣몸으로는 걷지도 못헐 거이디, 황아장시가 이고 갈라요

오. 또 그 짐은 어쩌고? 그게 어뜬 짐이라고 . 전 재산인디. 어따가 놓고 갈 수

도 없고. 그렁게 이왕 이렇게 된 거, 지체허먼 더 일만 곤란허게 되겄응게 어서

갑시다. 우리 집이 바로 요 앞인디 머. 가서 일단 이 작은아씨를 뉩헤 놓고, 머

무신 조치를 해서 기운을 채리게 해야 그 다음 일도 있능 거 이니겄소잉? 사램

이 우선 살고 바양게에."

집이라야 참 되야지막 한가지로 누추허지마는 한디보담은 안 낫겄능게비. 거

그서 황아장시도 한 숨 좀 붙이고. 날 새먼 또 새 궁리 해 봅시다. 원 그나저나

참 큰 짐 지게 생겠네이? 이미 져 부렀지마는.

옹구네는 앞장서서, 강실이를 등에 업었는데도 별스럽게 가벼이 걷고, 그 뒤를

따라 강실이 보퉁이까지 같이 진 황아장수는 알 수 없는 무거움으로 어둡게 걸

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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