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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34)

카지모도 2024. 12. 22.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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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 피를 갚으리라.

 

피걸레가 다 되어 널부러진 만동이와 백단이를 질질질 끌어내 솟을 대문 바깥

에다 동댕이치고는, 왕소금을 쫙 뿌려 버린 노복들이 어금니 무겁게 돌아서는

이기채의 사랑마당에, 두 사람 끄집힌 핏자국이 대빗자루로 쓸고 간 자국처럼

음산하고 쓸쓸한 기운으로 차갑게 남았다.

흐린 날이 저무는 잿빛 땅거미를 빨아들이는 탓인가, 그 참혹한 자취는 마치

검은 비명의 갈포가 갈갈이 찢긴 흔적인 양 귀살스러운 흑적색을 띠고 있었다.

넋이 나가 우두망찰, 정신이 공중에 뜬 아랫것들이 아직도 질린 낯색을 거두

지 못한 채 두 손을 맞잡은 그대로 식은땀을 쥐고만 있는데

"멋들 히여? 후딱후딱 치우제. 수악허그만."

구부정한 안서방이 헛간에서 사납게 닳아진 대빗자루를 찾아들고 나와, 얼른

달려들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박박 소리가 나게 핏자국을 파내듯이 쓸기

시작한다. 흙 속에 스민 피라 부드러운 싸리비로는 어림도 없어 그렇게 몽당대

비 거센 꼬챙이로 땅을 긁는 것이다.

"조께 있다 나와 보시먼 샌님 불호령 내리실 거잉만. 얼릉 티 안 나게 씰어.

이거 원 어디 부정타서 쓰겄냐? 청암마님 상청이 지신디 시방이 피가 웬 말이

여. 피가."

안서방은 흙의 살속을 후비며 못내 언짢아하였다.

꽃니아비 정쇠는 거무티티해진 흙부스러기를 삽에다 쓸어모아 담았다. 그 흙

밥에서는 음습한 비린내가 후욱 밀려 올라왔다.

"아이고, 그걸 떠받치고 어디로 가아? 그게 무신 존 복토라고 집안에 두어?

쩌어그 어따가 안뵈이게 내부러. 대문ㅇ으 고샅에도 말고. 갖꼬 나가서잉? 저마

안치."

안서방이, 흙을 버리려고 사랑 옆구리로 막 돌아가려는 정쇠의 등짝에다 대고

말했다.

웅게중게 둘러선 사람들이 입을 함봉한 채 피범벅이 낭자한 덕석을 맞잡아 들

어 옮기고, 몰매 끝에 부러진 몽둥이며 스산한 백지조각들을 줍다가, 서로 눈이

마주쳐 흠칫한다. 뼛조각이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그 중에는 덕석에 깔려서 바스

라진 것도 있고, 손가락 발가락뼈인가, 자잘하게 나뒹구는 것, 뎅그만 눈구먹이

퀭하게 뚫린 두개골, 이름 모를 부위가 써금써금 삭은 기색 역연한 갈색 부스러

기들이 어둑어둑 슬어 내리는 어둠발을 감고 있었으니.

아무도 그것에 선뜻 손을 내밀려 하지 않았다.

무신 동티가 날라고 저그다가 냉큼 손을 댈 거이냐.

피 묻은 유골이 나한테 콱 접붙어 불먼 앉은뱅이 꼽새가 되야도 될 판인디 어

쩌야 옳당가잉. 참말로. 빗지락으로 쏴악 씰어 불 수도 없고.

노복이고 머슴이고 간에 겉으로 말은 안했지만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두려워

하는 것이 당연하여, 으스르르 떨리는 등때기를 움츠리며 누구 눈치 못 채게 뒷

걸음을 치려는데, 안서방이

"뼉다구는 줏어서 한 간디다가 잘 뫼아 놔."

침울하게 한 마디 하였다.

"멋 헐라고라오?"

허리를 구부리고 뼈다귀조각을 살피고 있던 붙들이가 무로아 마른 것 같은 낯

을 치켜들고 물었다. 그래도 그는 아직 나이 어린데다가 호기심 또한 많은 머슴

애 담살이라 이 경황중에도 입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아 취려서 임자 갖다 주든지 안 그러먼 어따가 묻어 주든지 해야지.넘의 송장

뼉다구를 머에다 쓰겄냐. 아무 디나 내불어서 사방에 궁글어 댕기게 허먼 너 뵈

기에는 좋겄어? .... 그러고... 하늘 무선지 모르고 투장헌 자식놈들이 잘못이제,

이미 죽어서 버실버실 가리가 되는 애비의 뼉다구야 무신 죄가 있겄냐."

안서방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 말에 조금 마음이 놓인 사람들은 주삣거리는 대로 삼태기에 한 조각씩 뼈

를 주워담기 시작하였다.

"죄? 죄가 왜 없어? 천하 상것 불상놈으로 태어난 거이 벌써 죄 아니라고? 상

놈이 머이여, 상놈도 못된 처지제. 홍술이가. 천민잉게. 가진 놈은 무신 짓을 해

서 더 갖든지 그것은 죄가 아니고, 못 가진 놈은 가진 놈 것 눈짓으로 넘어다만

봐도 그게 바로 죈디 머."

뒷전에서 옹구네가 귓속말로 쏙싹였다. 그네 곁에는 꽃니어미 우례가 참담한

낯빛을 찡그리고 서 있었다.

"잘 봤제? 상놈은 저런 거이여. 그렁게로 봉출이 잘 건져."

숨소리로 박아 넣은 옹구네 말에 우례는 대꾸가 없다.

"죽은 부모 뼉다구를 갖꼬라도 요랑껏 어떻게든 신세를 바꽈 볼라고 저 박살

이 나게 터짐서 몸부림을 치는디, 어엿허게 연고 가진 양반의 자식으로 피 돌고

물 돌아 씽씽헌 뼉다구 허여멀금 살어서 무럭무럭 크는디, 왜 지 아배를 못 찾

을 거잉가? 지척에 두고, 내 배 빌려 준 에미 도리로도 그건 꼭 해야제. 해야고

말고."

슬그머니 우례의 소맷부리를 잡아당기며 행랑채 쪽으로 끌어 온 옹구네는 번

들번들 검은 눈을 번득이며, 사랑마당과 우례 얼굴을 홰딱홰딱 번갈아 쳐다보면

서 무지른다. 그 눈꼬리에 흙밥 쓸어담은 삽을 받쳐 들고 솟을 대문 바깥으로

꺼부정히 나가는 정쇠의 뒤모습이 찍힌다. 그 모습을 따라가는 옹구네 눈꼬리가

갈고리 같다.

우례도 망연히 제 서방 정쇠의 뒤꼭지를 바라본다.

"저 사람도 못 살 세상 사는 거이여."

"말 마시오."

"사람의 심정 갖꼬는 못 살제 아먼. 개 돼야지도 지 밥그롯 누가 거들라고 허

먼 콧잔딩이 아그르르 주름 잡음서 막 잡어먹을라고 뎀비고, 꾀약거리고 생난린

디. 암만 껍데기는 종이라도 속은 다 사램이 분명허건만, 두 눈구녁 버언히 뜨고

멀뚱멀뚱, 지 지집 타는 상전 앞에, 나는 눈 없소오. 봉사맹이로 부복허고 있을

라먼, 꼭괭이 낫을 갈어서 거꾸로 치키들게 천불이 나도 열두 번만 나겄능가잉?

거그다가 터억허니 새끼는 낳아 놨는디 아조 상전 찍어다 붙여도 고렇게는 못

탁이게 도신허니... 환장을 헐 노릇이제, 환장을 히여. 시앗을 보먼 질가테 돌부

체도 돌아앉는당만 이건 됩대꼬깔로 상전 오쟁이를 지고 사는 인생속이 오죽이

나 썩어 문드러져 곪았겄능가."

아조 나 저 꽃니아배만 보먼 똑 호성암 부체님이 따로 없능 것 같드라고. 꽃

니아배가 곧 생불이여, 생불. 생불이 따로 있잖에.

"터억허니 눈 내리뜨고 버버리맹이로 입 꾸욱 다물고, 논으로 갔다아 밭으로

갔다가 허청(헛간)으로 갔다아 허능 걸 바아. 저 속에 머이 들었이꼬오."

"그만 허시요예."

"그렁게 갚으란 말이여. 보란 디끼 갚어 주어. 아 머 꼭 꽃니아배만 못 살 세

상 상가아? 우례도 똑같제. 원, 수천샌님을 생각해도 오장이 터지고 꽃니아배를

생각해도 오장이 터져서 찍소리도 못허고 짜부러진 것은 또 누구간디? 썩을 놈

의 세상."

"전생에 죄 많어 그렁게비요. 댜 내가 짓고 나온 거이라 당허는 거잉게. 이 몸

뗑이로 싹 갚고 가먼 인자 내생에는 좀 낫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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