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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32)

카지모도 2024. 12. 20.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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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싹 눈을 구멍에 들이대고 유심히 유심히 방안을 더듬어 보자니까, 어두워서

무엇이 보여야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사람 형상 분명헌 것이 나란히 누워는

있지만, 자세히는 안 보여.

방안에 자던 사람이 무심코 눈을 뜨고 보았더라면 놀라서 소리를 지르드레, 먹

장 같은 어둠 속 문짝에서 시어머니 눈알만 번들번들, 용을 쓰고 기어이 이 비

밀 실마리를 캐내고 말겠다는 눈빛이니 그랬겄지, 그 눈에 불을 쓰고 살펴보았

더니만, 이건 참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네.

이게 웬일이라냐.

며느리는 자기 품에 전실자식을 안고 자고, 제 자식을 내팽개쳐 문간에서 꼬

부린 잠을 자고 있지 않는가.

그걸 누가 믿어?

"내가 잘못 봤을 테지. 바꿔 봤을 테지."

허나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절대로 잘못 본 것이 아니었어.

몇 번이나 고쳐 보고 또 한 번 더 보아도.

시어머니는 두 눈을 더욱 더 부릅뜨고 마지막 눈정신을 모아서 이 뜻밖의 방

안 광경을 송곳같이 뚫어지게 붙박아 들여다보았더란다.

그런데, 사실이었더래. 하지만 시어머니는 의심을 풀지 않았대. 여시짓에 홀린

면 무슨 착각을 못허랴, 해서.

오늘 밤에는 내가 기어이 네 꼬리를 잡고야 말리라.

그래서 마치 천 년 묵은 지네와 맞서 싸우는 선비처럼, 온몸에 독을 쓰고 며

느리를 노려보았다는구나.

그런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아, 참으로 신기한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란다.

어머니한테서, 그러니까 며느리 말이다. 그 어머니 가슴에서 형언할 길 없이

푸르고 맑은 한 줄기 빛이 뿜어나 뻗치더래.

섬광이라고 할 것이지 아니면 안개라고 할 것인지, 구름 사이를 뚫고 비치는

햇살이라고 할 것인지, 아니지, 그런 말로는 도무지 표현 못할 숭고하고, 부드

럽고, 찬연한 광채로 뻗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서릿발을 세우면서 그 빛은

삼엄하게 솟구치더란다. 공중으로.

시어머니는 그만 자기도 모르게 경건하고 엄숙해져서, 숨을 죽이고 그 광채를

황홀하게 바라보았대.

그런 신묘한 광경은 생전 처음이었거든.

그런데 이 솟구친 광채는 지금 품에 안고 있는 전실자식을 그냥 건너, 저만큼

문간에서 아무렇게나 자고 있는 제 자식한테로 뻗어 가더란다. 그러더니, 고사리

처럼 도르르 그 자식을 감아 안더란다. 마치 그 무엇도 절대로 해치지 못하도록

꿈에서도 보듬어 보호를 하듯이. 꼬옥. 잠든 세상에서도 어머니 기운은 살아서

그렇게 뻗쳐 제 자식을 광채로 감고 있었던 게지.

그러니 생시에 깨어서야.

그 '어머니 생기운'이 자식한테는 진정한 젖줄이라, 깨진 그릇에 보리깜밥을

먹으면 어떻고, 헐벗은 몸에 다 떨어진 누더기 옷을 입으면 또 어떠하냐. 그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참으로 배부르고 참으로 등 따신 것은 산해진미 능라금

수만 가지고는 못 얻는 법.

"생기운을 받어야만 사람은 생기를 얻는 것이다."

오류골댁은 말했다.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였구나.

시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되어진 까닭을 알고 크게 깨달

은 바가 있었대. 그리고 그 빛만은 인력으로는 감히 어찌하지 못할 일이라 더

이상은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더란다.

어머니.

강실이는 목이 메었다.

세상에 나서, 강보에 싸여 지낸 어린 시절의 몇 날을 빼고는 어머니를 기쁘고

이롭게 해드린 일 단 한 가지도 없었으면서, 속 깊은 근심에 상한 얼굴로 시름

시름 앓다가, 이제 이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하여 정처없이 길떠나 온 처지에,

그네는 단말마 신음을 삼키며 어머니의 기운이 부디 제 몸을 고사리같이 감아

올려, 이 참경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시기를 염치없게도 바라고 있다니.

"애기씨, 정신이 조께 드싱기요?"

강실이의 기척에 움칠 놀란 황아장수가 얼른 일어나 앉으며 등잔을 당겨 탁,

부싯돌을 친다. 무명씨 기름에 잠긴 심지를 세우고는 강실이 곁으로 근심스럽게

다가앉는 그네의 얼굴이 부석부석 잠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뒤척이며

눈을 붙이지 못한 것 같았다. 황아장수는 강실이 이마에 젖어 흩어진 머리올을

투박한 손으로 정성껏 쓸어 넘겨 준다. 그리고는 이불깃을 여미어 누른다.

"참 죄송시럽습니다. 이리로 뫼시고 올라고 그렁 것은 아닌디요, 대실아씨 신

신당부 말씀도 있고 해서 어쩌든지 꼭 무사히 대실 안행사끄장 배행을 잘 헐라

고 딱 마음먹고는, 저어그 정그장 앞에요, 거그 둥구나무 밑에서 만나기로 허겼

잖에요? 그래 거그서 지달르고 있었등만, 아, 벨안간 옹구네가 애기씨를 업고 나

타나네요, 긍게. 지가 놀래 갖꼬는 이거이 무신 일이다냐고 그렁게로, 애기씨가

개울을 건널라다가 기양 픽 씨러지시드라고, 그러드니 그 자리서 혼절을 허셌다고... "

강실이는 가물가물 잦아드는 정신을 가까스로 추스리어 그 중에 실오라기 한

가닥을 힘없이 잡는다.

"여그가 시방 긍게 거멍굴 옹구네 집이그만요."

황아장수는 더듬더듬 여기까지 오게 된 정황을 이야기하고는, 겁이 나고 송구

스러워서 차마 말씀 못 드리겠지마는, 장사하는 몸이라 입에 풀칠 하기 위해서

는 헐 수 할 수 없이 내일 아침 날 새기 전에 길을 떠나야겠는데, 강실이도 같

이 나설 수 있을는지 물었다.

"이 예펜네는 어디 갔다올 디 있다고 아까 나갔는디 아직 안 옹만요. 물어 보든

안햇지만 자개가 몬야 앞장서서 뫼시고 업고 옹 걸 보면 메칠 동안은 애기씨 구

완해 디릴 거이여요. 암만해도 그 몸을 허세 갖꼬는 내일 새복차 어디 타시겄능

가요잉? 여그서 남도가 또 얼매라고. 득량이 거 깨나 멀다든디요. 생전에 안 타

본 기차를 타먼 성헌 사람 장정도 막 멀미를 헌다는디, 똥물까지 다 께운다고

겁나는 소리 해 쌓지요왜. 누워서 가는 질이라도 낯설고 먼디, 애기씨는, 암만해

도 내일은 못 가실 것맹이여라우. 무리허시다가는 가다가 질에서 일당허지 싶그

만요잉. 아이고, 참."

내일이 아니고 언제란들, 그곳이 어디라고 이 몸으로 효원의 친정 대실의 언

저리 절간으로 뻔뻔스럽게 얼굴 밀고 갈 수 있으리요.

"차라리 잘되었소. 나는 관계치 말고 길을 뜨시오."

이상하게 가라앉은 음성이 또렷하여 황아장수는 가슴이 섬찟했다.

"인자 메칠만 여그서 잘 조리허고 지시먼, 우선 급헌 불 끄고 숨도 돌리실 수

있을 것 아닝기요? 기운 조께 챙기시고요. 그러먼 지가 늘 댕기는 날짜 있응게

로 꼭 맞촤서 오지요. 그때 같이 가시능 거이 좋겄어요."

강실이는 아무 대답이 없다.

엉뚱한 것에다 금지옥엽의 애기씨 작은아씨를 모셔 놓은 것이 노여운 것일까,

싶어서 황아장수는 두 손을 맞잡아 비빈다.

"애기씨, 거멍굴이랑게 놀래겼지라우? 기가 맥히고 설우셔서 말씀도 못허시

고... 백정 것에 당골네에 소상헌 상놈들만 사는 디로, 저도 참 이게 무신 도깨비

한테 홀린 일잉가 머리가 휘둘려 갖꼬요, 무망간에 옹구네 앞장스는 바람에 따

러오기는 왔는디 말이 안 나옹만요. 그런디요잉. 아까는 어쩔 수가 또 없었그만

요오. 그런디 당최 꼭 죽을 짓 헝 것맹이여요. 원뜸에서 지가 이래논 것 알먼 지

다리몽생이를 가만 두시겄능가요? 하이고오. 대체 이게 무신 일이까아."

황아장수는 황아장수대로 답답한 일이라 한숨만 들이쉬고 내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아귀에 잡혀 갇힌 것만 같았던 것이다.

이노무 예펜네는 어디 가서 시방 머엇을 허고 자빠졌다냐. 죽이 되든 밥이 되

든 기절을 허든, 이 예펜네만 없었으먼 내가 어뜨케라도 해 ㅂ을 거인디. 무단히

설쳐댐서 둘러업고 나타나서 이리 가라, 저리 가자. 넘의 혼을 빼놓고는, 달구새

씨 몰디끼 즈그 집구석으로 몰고 왔으먼 책임을 져야지, 어디 가서 먼 지랄을

허고 자빠졌냐고, 긍게. 코빼기도 안 뵈이고. 사램이 있어야 무신 말을 허든지

의논을 해 보든지 허제.

황아장수는 진땀이 돋아 옹구네가 마실 나간 것에 역정을 냈다.

번언히 애기씨 몸 성치 못헌 병잔 것 암서나, 객들한테 처억 집구석 맡기고

대관절 어디 가서 안 와아. 홰냥질을 허능가아, 밤을 새고 올랑가?에에이 참.

뜻밖에 일이 복잡 답답하게 꼬이는 것이 내심 불길하여 그네는 혀를 찼다 그

리고는 벌떡 일어나 지게문을 콱 밀어젖히고 마루도 없는 오막살이 토방으로 내

려섰다. 숨이 막혔던 것이다 정짓간이 어딘지, 독아지에서 찬물이라도 한 바가지

좀 퍼 먹으면 살 것 같았다.

댓돌에 신짝을 발로 더듬어 꿰고 막 한 걸음 옮기려는데

"누구대?"

고샅에서 분명 그네를 향하여 누가 놀란 소리를 질렀다.

"누구요?"

황아장수가 그 사람보다 더 놀라서 되받아 물었다.

"내가 누구먼 멋 헐라고 그리여? 내가 누가 되얏든지 간에 왜 쥔도 없는 넘의

집에 , 웬 사램이 왔다갔다 허냥게?"

집안으로 들어서지는 않고 바깥에서 소리를 내는 사람은 공배네였다. 기색을

살피는 것이리라. 지금 막 춘복이 농막에서 옹구네와 한판하고 씨근씨근 분이

받쳐 내려오는 길이라 옹구네가 집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인데, 방안에서 불

빛이 비쳐 수상하던 참이었다.

도둑놈잉가?

귀가 비쭉 곤두서는데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사람 나오는 기척이 있어, 흠칫

몸을 숨기며 공배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운 것은 미운 것이고 도둑놈은 도

둑놈이니, 만일 도적이 들었다면 외장을 쳐서 쫓아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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