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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35)

카지모도 2024. 12. 2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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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오, 오지랖도 넓구라. 삼천 리가 좁겄네. 삼생을 넘나들게. 참내. 나 좀

보시겨. 전생 이생 내생이 머 그렇게 복잡헌 거인지 아능게빈디, 내 눈에 다 뵈

이는 거이여, 그게. 왜 그런지 알어? 부모는 내 전생이고 이 몸뗑이는 나 사는

이생이고요잉? 내생은 바로 자식이여. 자식. 그렇게 생각허먼 간단허잖에에? 긍

게 그, 좀 낫겄는 내생을 봉출이한테서 보라 그 말이여, 내 말은."

옹구네는 결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아낙이었다.

눈동자 검은 알맹이가 데구르르 구를 때마다 거기 사물이 부딪쳐, 딱, 수리를

내거나, 가느소롬 눈꼬리 좁히며 깎은 손톱 낚싯바늘을 세우면, 남의 눈에 좀체

로 뜨이지 않을 속내 비늘까지도 착, 낚아챌 수 있는 것이 옹구네라고나 할까.

그런 그네의 성정머리를 아는지라 이쪽 사람이 지레 거기 걸려들지 않으려고

뒷걸음치거나 일부러 도외시하다가도, 그만 어찌 까딱 그 바늘에 꿰어 버리고

마는 일이 한두 가지 아니었으니.

우례도 은연중 언제부터인가, 안 듣는 척하면서 옹구네 바늘로 제 속에다 골

똘히 누비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느질만 한 손이라 사부가의 부녀자 섬섬옥수 부럽잖게 곱구나. 손만 보면야

네가 어디 종이라 하겠느냐. 꽃결 같다."

침비인 덕에, 언감생심 꿈에라도 비교조차 못할 칭찬과 찬탄을 수천샌님한테

들었던 것은 열여섯 살 어린 나이, 그나마 아득히 지나간 날의 일이 되어 버렸

고, 이제는 그 손가락 끝에 잡은 바늘로 상전의 댁식구들 앞앞이 옷을 지으며,

올 사이에 꽂는 바늘만큼 제 속가슴 속창에 시퍼런 먹점 문신을 놓고 있지만.

어느 날에 이르러 무슨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

오늘 같은 끔찍 처참지경을 두 번만 보았다가는 지레 질려 제 숨이 제 목을

누르고 말 것만 같았다.

상놈이 양반을 넘보는 것은 저만이나 무서운 일이로구나.

설령 죽은 자리 한 귀퉁이 남모르게 욕심내는 것마저도.

우례는 부르르 속이 떨렸다.

두렵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였다.

"즈그들은 양반이라고, 멀쩡하게 서방 있는 너므이 각시도 오라 가라, 앉으라

서라, 누워라 엎어져라, 지 맘대로 주무르고 치긋고 차지험서나, 그러다가 어느

하루 지 마음 식으먼 홱 내떤져 붐서나, 아 그까잇 노무 공산에 묏동 조께 살재

기 쑤시고 들으갔대서 저 지랄을 허고 길길이 등천을 헝마잉. 천하에 다시없는

못헐 짓 헝 것맹이로. 경우가 안 그리여? 경우가. 말로 따지자먼. 도독질은 다

똑같은디."

나는 틀린 말은 안헝게.

꼭 우례 대신이라도 하는 것처럼 옹구네가 콕콕 말을 박더니

"아이고, 가 바야겄다."

순식간에 낯색을 천연덕스럽게 바꾸고 옷자락을 털며 휙 돌아선다. 사랑마당

쪽으로 나가려는 것이다. 우례한테는 이만큼 말을 찔러 놓았으니, 이제 저 언저

리로 가서 좀 기웃기웃해야 또 보고 들을 것이 생겨 직성이 풀릴 것 아닌가.

사랑마당에 웅성웅성 사람들 기척이 낮은 소리로 깔리는 한쪽에서, 누가 낡은

베 보자기를 펴는데, 뒷등만 보이는 상머슴이 삼태기에 주워 모은 뼈를 거기 조

심스럽게 쏟고 있었다.

"이거는 방뎅이 뼉다궁갑서. 잉?"

한쪽이 깨져 달아난 채 넙덕한 뼈를 붙들이가 두 손으로 마잡고 이리 저리 들

여다보며, 또래인 깔담살이한테 보여 주었다.

"궁뎅이지 방뎅이냐?"

깔담살이가 농을 쳤다.

"이놈의 자식들이 그냥. 암만 철딱서니가 없다고. 쩟. 이리 내놔, 이렁 것 함부

로 손대고 그러먼 큰일나능 거이여."

안서방이 어느새 다가와서 붙들이 손에 든 것을 빼앗았다.

"사람이 죽어도 아조 다 죽능 거이 아니그덩."

머쓱해진 뒤통수를 벅벅 긁는 붙들이한테 옆에서 안서방네가 탁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타이르듯 말했다.

그저 아아무 원한 두지 말고 가옵소사.

흠도 말고 탈도 말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훠월 훨 떠납소사,.

존 일 적선에, 억울허다 절퉁허다, 이 댁의 이 마당에다 가심 찧지 마옵시고,

그저어 선대에 구원 있어 그렁갑아, 내 다 받고 간다, 씰어서 갚고 간다, 좋은

마음 잡수시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옛다 먹어라고, 이씨 가문 대주님네

온 식구들 무사 무탈허게 보살펴 주옵소서.

적선지심으로 측은히 여깁소사.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저 이 설운 세상 무거운 눈물 다씻어 헹기시고, 개버운 혼 말강물로 개완허

게 극락왕생을 하옵소사.

왕생극락을 하옵실 때, 부디부디 인제 가시거든 제발 덕분에 좋오은 집안의

좋은 자손으로 태어나서, 마른 신 신고 마른 세상을 사옵소사.

아까부터 안서방네는, 마당을 치우는 사람들의 이만큼에 물러서서, 그 유골의

뼛조각들을 향하여 지성스럽게 중얼중얼, 두 손을 비비며 빌고 있었다. 그러다가

허리를 굽히어 절을 하였다.

인연 다 끝난 세상에다가 원한 두면, 그 원한에 발이 묶여서 정작 가벼운 세

상으로 못 간다, 하는 말을 몇 번이고 뇌이면서.

만일에 무부 홍술이의 일이 아니었더라면 이러한 때 마땅히 당골네 백단이가

맡아다 할 원혼이요, 그네가 맡아서 곳을 하고 풀어 주어야 할 넋이지만, 저토록

생뼈가 다 부러지게 너덜너덜 살점 흩어진 백단이가 대문 밖에 내버려져 나뒹굴

고 있으니, 이 순간 어느 누구도 어찌할 방도가 없이 속수무책으로, 요절이 난

뼈를 쓸고 치우고 주워담고 할 뿐인데.

안서방네는 이 집안에 금방이라도 덮쳐 내릴 것만 같은 재앙을 보잘것없는 제

몸으로 받아 박으려는 사람처럼 결연히 서서, 심정을 다하여 성심껏 원혼을 달

래고 있었던 것이다.

솟을대문 바로 문턱 바깥에 동댕이쳐진 만동이와 백단이의 신음이 산 채로 고

지통 얻어맞아 죽어가는 짐승의 소리같이 그억, 그어억, 으어억, 고샅에 울렸다.

피울음.

그 고샅 모퉁이 호제집 들창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거멍굴 백정 택주는, 묵

묵히 피우던 곰방담배를 발치의 돌팍에 탁탁 두드려 털고는, 후우, 한숨을 뱉어

자르더니 투덕투덕 만동이한테로 다가갔다.

백단이를 들치어 업는 것은 대장장이 금생이였다.

황소도 불끈 들어올린다는 칼잡이 택주와 일평생 싯벌겋게 달군 쇳덩어리만

두드려온 금생이가, 각시같이 곱닷한 무당 서방 만동이에 아낙네 백단이 정도야

무에 그리 무거울 리 있으랴마는, 백정과 대장장이 두 사람은, 이 세상에 나서

단 한 번도 이렇게 무겁고 서러운 것은 이고 메어 본 일 없는 것 같은 비통함에

고개를 깊이 떨군 채, 땅에 붙은 걸음을 억지로 떼었다.

이날 펭상에 나, 백정놈이라 내 이 손으로 소도 많이 잡었고 쇠피도 참 어지

간히 진저리날 만큼 주물렀는디, 생사람 선지피는 또 달르구만잉. 참말로 눈뜨고

는 못 보겄고, 심정 갖꼬는 못 당허겄네.

택주는 제 목덜미를 비린내로 적시며 척척하게 엉기어 미끈거리는 만동이 피

냄새에 눈쌀을 모았다. 둘러업은 만동이 머리가 제 어깨에 걸쳐진 채 힘없이 자

꾸 한쪽으로 떨구어지며 쏠리는 것이 덜컥 수상한 탓이었다.

대그빡이 쪼개졌능가.

웬 피를 이렇게 선지로 덩클덩클.

속마음을 짓이기어 밟는 택조의 걸음이 불안하게 빨라진다.

남의 각시를 업었다는 농지거리 따위는 아예 떠오르지도 않는 금생이가 백단

이 궁둥이에 제 손깍지를 끼어 받치고는, 어서어서 이 동네를 빠져 나가자 하며

택주 앞을 지르는데, 그 뒤를 춘복이가 절뚝절뚝 따른다.

춘복이는 워낙 뚝심 있고 힘도 있어 평소에도 이만한 몽둥이질 정도라면 견디

어낼 만하였거니와, 만동이와 백단이처럼 덕석말이까지 당하지는 않은 까닭에,

터지고 물크러진 살덩이 몇 점 떨어져 나간 자리 가지고는 엄살떨 정황이 아니

었다.

눈구녁 빠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부어오른 눈퉁이를 한 손으로 감싸 누

르며, 다른 손으로는 허리띠가 달아나 흘러내리를 괴춤을 틀어쥐고 바짝 추켜올

린 춘복이가, 너펄너펄 바지자락 털럭이는 맨발을 쓰라리게 디딜 때마다, 고샅에

널린 자갈에는 비틀비틀 붉은 피가 찍힌다.

어쿠우.

어이고 주쿠...

춘복이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삼킨다.

그가 삼킨 비명 대신 온 마을 개떼들이 모두 다 기를 쓰고 강그러지게 짖어댄

다. 이 처첨하고 기괴한 피투성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매안 마을 고샅을 지

나가는데, 개라고 그것이 심상치 않은 일인 줄을 어찌 모르랴. 비록 미물이라 하

나 개는 본디 영리하여 이들이 낯선 사람 아니고 도적 놈 아닌 즐도 다 알고 있

겠지마는. 겁에 질린 듯이 뒷발굽을 부르딛고 엉버티며 컹 컹 컹, 왈 왈 왈, 왁

왁, 짖는 개소리들이 마을에 내려앉는 저녁 어스름을 날카롭게 할퀴고 찢었다.

춘복이는 이러한 몰골로 오류골댁에 살구나무 아래 토담 밑을 지날 때, 핏방

울 뚝뚝 떨어지는 대가리를 꼿꼿이 세우고, 먼 데 앞산 등성이 너머 저기 어디

쯤 가늠도 할 수 없는 하늘 끄트머리만 노려보며, 괴춤추킨 주먹을 안으로 더욱

글어쥐었다.

그리고 오류골댁 쪽으로는 일별로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웬일인지 몹시 허탈한 것처럼도 보였다 .

아니면 무엇에 씌인 사람 같이도.

제 혼이 뽑혀 허공에 매달린 것을 망연히 바라보는 넋 껍데기도 같아 기묘한

섬찍함을 느끼게 하는 춘복이를, 사립문 옆구리 토담 곁에 엇비식이 숨어 서서

힐끗 내다본 오류골댁은, 그만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귀신 중에 흉악한 것이 두억시니 야차라고 하더니만 그 형상이 혹시 저렇게

생겼을 것인가.

예전부터, 죄 지어 몰매 뚜드려 맞은 사람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일은

없었는데, 사실 그네가 이 문중으로 시집온 이후 이런 형용을 가까이 코앞에 맞

닥뜨려 직접 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그네는 속이 후들거려 말이 안 나왔다.

시집오기 전에는 물론 규방에만 있었으니 설혹 사랑에서 덕석말이 치죄가 있

었다손 치더라도, 내다보는 것은 그만두고 그런 흉악한 일을 입밖에 내어 주고

받는 것은 행실 있는 부녀자로서는 금기라, 안에서는 모를 수밖에 없었다.

혹 모질고 표독한 부인이라거나 성품이 무자비하고 난폭하여 그 흉포를 감추

지 않는 사람이라면, 뜻밖에도 여인 자신이 몸소 체형을 가하기도 하기는 한 모

양이었지만.

그래서 조선의 정조 임금 때 한문학의 사대가요, 실학자인 아정 이덕무 선생

같은 이도, 수신서 '사소절'에서 마땅히 부녀자가 가져햐 할 몸가짐과 예절을 적

어 가르치며 경고하였다.

그런 극악 무도한 부녀자가 참으로 있었을까 싶게 흉참한 열거지만, 그러나

없는 예를 들었을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한 부류의 사람은 역시 어디에나 있게 마련인지

"사납고 표독스러운 부인은 별 것 아닌 작은 일에도 분통을 터뜨리어 사람을

원망하는데, 한탄하며 분노하고, 그리해도 부족하면 울고, 울어도 부족하면 통곡

하고, 심지어는 손뼉을 두드리고 가슴을 치며 하늘에 하소연하고 귀신을 저주하

는 등 하지 않는 짓이 없다. 나는 이런 사람을 많이 보았거니와, 이는 실로 그

집의 어른 되는 사람이 나약하여, 잘 가르치고 인도하지 못해서, 교만하고 간악

함을 길러 놓은 데 연유가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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