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38 1991. 11. 1 (금)
선미 위주의 화물선 건조방식으로의 과감한 공법 전환문제 때문에, 박상무의 등살에 밀려서 정과장 만들어 놓은 전 신조선 공정을 모두 뜯어 고친다.
어느 구석에선가에서 열렬히 손을 벌리는 음주에의 유혹을 뿌리치고 최상천의 차타고 돌아온다.
새벽의 냉기.
英이 이제 1개월여 남았을 뿐이다.
16339 1991. 11. 2 (토)
Sh씨가 딴에는 감동을 받았는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썼다는 '시련응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책을 대량 구입하여 각 부서마다 배포하였다.
정주영-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적극적으로 어프로치하는 자세, 그 자세가 행운을 만들어준다는 그의 철학에 감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룬자로서 부자의 결과론적인 논리임을 또한 부정할수 없다.
16340 1991. 11. 3 (일)
어제 SB-384 TOWING TEST.
넘쳐나는 소련 사람들.
한 때 세계의 한 축을 호령하였던 이 슬라브인들은 이제 물질에 궁하고 자본주의에 얼이 빠져서 조선소 안에서 갖가지 추한 일들을 행하고 있어서 모두들 그들을 폄훼하고 멸시하고 있다.
언제부터 한국인이 부자들이 되었다고, 쇼비니즘의 썩는 냄새.
현대에 1300억원의 추징금, 범부로서는 감득할수 없는 안개 속의 정치판의 어떤 꿈틀거림...
英이, 현재의 학력지수로는 부산대학의 하위과마저도 아슬아슬.
그러나 정작 英이는 조금의 초조한 빛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생각하여 보면 오히려 英이의 이런 낙천주의가 고맙가도 하다.
16341 1991. 11. 4 (월)
일요일 회사 나가다. SB-383 FINAL DOCKING.
차가 정비공장에 들어가 기동력이 없음에도 박상무는 택시를 타고서라도 어김없이 나오는 휴일.
집에는 장인,장모,작은처남,큰처남댁,T기 ,J기 ,S기 등 오다.
통신판매로 주문한 라이프 센스라는 잠잘 때 쓰는 눈마개 소포가 와서 어제부터 그것을 두르고 잔다.
기분이 그래서 그런지 효과가 있어 좀 숙면을 취한 듯도 하다.
그러나 잡다한 꿈은 여전.
미망의 자의식- 보생의원, 마약에 취하여 혼미한 어머니, 내 고통과의 투쟁, 나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어머니는 나를 살해한다. 가을 빛 쓸쓸한 어는 도시의 뒤안길, 나는 망태기 걸머진 거지가 되어있다. 내 뒤를 최태용이 졸졸 따르고, 이기수 반장이 고물상 관리인이다. 내가 살해한 어머니는 어느새 박상무로 둔갑하여 있고, 나는 고물상 사무실에서 그에게 넝마를 판다.
꿈- 나처럼 현란한 꿈의 창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월요일 새벽.
英이를 깨우는데, 英이는 조금쯤 긴장한다거나 초조로운 모습을 보여 주어도 좋을텐데 그런 맛이란 조금도 없다.
천하태평의 따님...
새벽 냉기 속에 앉아 기도.
16342 1991. 11. 5 (화)
기온 급강하, 중부 이북은 영하의 날씨.
일본출장 가는 박상무의 자료만든다.
일어가 전혀 되지 않는 그를 위하여 일어로 작문하고 우리말의 음으로 토를 단다.
오랫동안 어머니 뵙지 못하다.
가끔 지겨운 시간, 싫은 시간이 닥첬을 때, 그만 시간이나 세월이 훌쩍 뛰어 넘어가 버렸으면하고 바랄 때가 있지만, 이것은 곧 어머니의 이제 더욱 압축된 소유시간의 감소, 곧 생명시간의 감축를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면 이 또한 큰 불효가 아닐까.
英이, 마지막 배치고사 끝나다.
그 배치고사가 끝났다는 사실의 해방감이 그저 좋은 英이의 포즈에는 차라리 웃음이 나온다.
우리 딸네미에게서 이제 제 인생의 아주 중대한 순간에 맞닥뜨린다는 반짝반짝 빛나는 긴장감과 설레임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일까?
16343 1991. 11. 6 (수)
컴퓨터의 WORD PROCESSOR의 매력.
문장을 구성하고, 도치시키고, 치환하고, 열을 맞추고, 글자를 선택하고 글을 저장하는 기능들.
깨끗이 쓴 단정한 원고지보다 더 깔끔한 글.
창작의욕이라도 자극할 만한 기능들이 아닌가.
어제 俊이 시험.
내가 간절하게 마라는바 그것은 俊이의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 바른 자세, 바른 생각, 바른 언행.
그런데 俊이가 갖고있는 가족에 대한 그 진한 애정의 念.
내 지난 시절 혼자 짝사랑하고 열렬하게 마음을 기울였던 그 念 하나를 俊이는 갖고 있다.
내 아들.
16344 1991. 11. 7 (목)
英이 배치고사 끝나다.
과연 어느 대학 무슨 과가 英이에게 가장 합당한 것인가.
뚜렷한 목적의식과 자신의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의식과 신념, 그리고 자신이 즐겁게 몰두할수 있는 분야에서 성공적인 삶을 창출케 할수 있다면 까짓 대학이야 어딘들 무슨 문제랴.
16346 1991. 11. 9 (토)
SB-383 공시운전, 바람 다소 불다.
퇴근하여 이른 잠자리.
서정윤의 시 '홀로서기'를 낭송하는 테이프를 들으면서 가물가물 잠 속에 빠져 들어가면서도 '참 유치한 시'라는 생각이 들다.
英이 성적표.
10월에는 학력지수가 231, 11월에는 219.
어떻게 된 셈인지 갈수록 떨어지는 판이다.
수학은 그렇다 치고 국사, 불어, 화학등에서도 바닥을 맴돌고 있다.
부산대학은 과연 무리일까?
간절한 기도.
16347 1991. 11. 10 (일)
1) 230 군- 부산대 : 화학, 도시공, 의류, 분자생물, 섬유공, 수학, 미생물, 건축, 토목, 식품영양, 지질.
2) 220 군- 부산대 : 생물, 해양과학 동아대: 전자공, 기계공 수산대: 전자공, 식품공학, 어병, 냉동공 해양대 : 제어계측, 전자통신
3) 215 군- 부산대 : 조선공 동아대 : 건축, 전기, 수학 수산대 : 미생물, 전자계산, 수산교육, 해양환경, 기계, 대기과학, 응용수학 해양대 : 선박기계공
4) 207 군- 동아대 : 의류, 화학, 산업공, 조경, 금속, 토목, 화학 수산대: 화학, 식품영양, 해양생물, 생물양식, 정보통신 해양대 : 항해, 해양공, 해양재료공
5) 200 군- 동아대 : 물리, 도시공, 가정관리, 자원공, 환경공
이상이 英이가 갈수 있는 대학과 학과의 범위이다.
英이에게 품었던 기대감은 의외의 학력수준에 참담하게 추락하는 아비의 심정을 만든다.
참담함- 이것은 자식에게 걸었던 아비가 하지 못하였던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 또는 중학교 때까지의 英이의 우수한 자질을 향한 환상, 결코 낮지않은 英이의 두뇌에 대한 신뢰감이 무너지는 소리다.
혹은 남들처럼 과외다 학원이다하여 공부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자괴감, 또는 아이의 말만 믿고 英이의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의 기회를 냉철하게 판단치 못한 어리석음, 또는 또는 또는....
그러나 이 시점에서 더욱 냉철해야 한다.
남의 시선이나 기대따위의 체면의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 딸네미 인생의 최선, 다시 드날리는 英이의 인생이 되기 위한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한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진지하게 제 엄마와 英이와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꿈- 어제 파마하였고, 파마한 그 머릿속에는 온통 英의 대학문제만이 그득하게 담겨있고, 토요일 이른 잠자리의 꿈 속에서도 英이 대학관련 스토리는 난무를 한다.
그예 3시도 못되어 몸을 일으키고 목욕을 한다.
내 방 새벽에 잠겨 성경을 오랜시간 소리내어 읽는다.
사도행전,에베소서,빌립보서,시편, 이사야서...
잔잔히 울려오는 바울의 말씀- 오직 예수님께 사로잡힌 영혼이 그 예수님의 모습을 내 심장에 심어주려고 저토록 열렬하게 팔을 벌린다.
나는 그 팔에 기대어, 예수 그리스도를 껴안고, 또한 예수님께 껴 안긴다.
불끄고 어둠 속에서 기도드린다.
어느새 바다 위 저쪽 하늘은 벌겋게 물들면서 아치섬이 그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곧 새벽 산을 오르리라.
16348 1991. 11. 11 (월)
'천국엔 새가 없다' 완독.
리키는 정말 정신분열이었을까?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는 20여년 동안 자신의 딸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채, 오류의 수렁 속으로 끌고 다닌다.
결국 리키는 완치되지만 그 病因은 종장에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정신병-그 복잡미묘한, 난해한, 복합적이고 다양한, 각가지 이론이 난무하는 밀림 속의 정신분석 기술이 어떻게 한 실존의 숨겨진 무의식 한오라기를 쉽게 찾아낼수 있으랴.
나는 의사를, 특히 정신과의사를 불신하기로 한다.
한 인간의 영혼을 그들은 총체적으로 파악하기를 거부한다.
미시적이며 지엽적인 연관관계에서만 파악되어 질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의 실존이란.
기능적이고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서만 파악되는 종류가 아니다.
일요일 오후 英이를 곰곰 생각하면서 술을 마신다.
그러다가 옛날 성규가 선물한 화집을 펼쳐 보다가 마르크 샤갈의 그림 하나를 본다.
그 환상적인 아름다움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다.
유화 '센강의 다리'
화폭의 오른 쪽 하부에 청색의 남녀가 나체로 누워있고, 그 위로 녹색의 염소가 달린다.
왼편에 비스듬한 구도로 붉은 옷으로 몸을 감싼 성모 마리아같은 여인이 아기를 안고 하늘로 오르고, 그 뒤에는 피닉스같은 새 한 마리가 아래로 부리를 향하고, 파리의 시가는 흑색과 녹색으로 조감되어 있다.
예전에 보았을 때는 왜 이런 충격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았던 걸까?
너무나 아름다운 환상적인 그림이다.
샤갈....
16349 1991. 11. 12 (화)
날씨 부쩍 싸늘하여 졌다.
P상무일본행, 16일 귀국예정.
시어머니 없는 며느리의 자유로움.
컴퓨터의 프로그램 익힌다.
그 능률성, 정확성, 논리성에 흠뻑 빠져있는 동안 어제의 샤갈 그림 속의 감동은 어디 숨어있을까.
과학의 논리성에 대한 감동과 예술 작품의 비논리적인 카오스의 감동.
그 둘은 전혀 배리된 근원을 조상으로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과학과 예술을 보라.
전자는 외형적인 인간관계의 투명한 정립의 방법론이라면 후자는 내면의 고독한 존재에게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어떤 것이다.
어린이 유괴 살해, 철저한 개인주의의 늪, 가치관 상실의 아수라장, 황금을 맹주로 삼는 복마전.
새벽 기도.
결단코 나는 신앙인임에 틀림없다.
16350 1991. 11. 13 (수)
어제도 사무실에서 나는 종일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다.
어떤 利器라도 그 FUNCTION을 완벽하게 활용하지 못한다면 낭비다.
나의 성격의 일단은 그렇다. 파악하여 이해하고 인식해야만 만족한다.
자식들의 대학 진학.
극명하게 드러나는 자식들의 학력 수준.
자식을 대학에 진학시키는 아비들의 대화에서 어떤 이는 자랑 가득, 어떤 이는 다소 의기소침.
16352 1991. 11. 15 (금)
사무실 난방 가동, 한결 견딜만 해 지다.
컴퓨터에 미친 요즘 일과.
英이, 英이.
어디가 최선의 선택일까.
좌우간 12월 17일의 시험.
한달 동안 최선을 다하는 딸네미이기만 빌 뿐이다.
16353 1991. 11. 16 (토)
계속되는 회색수면으로 육신의 컨디션은 썩 좋은 편이 아니지만 사무실에서 P/C에 집중함으로 느낄 겨를이 없다.
몰두할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농밀한 순간이냐.
어떤 과제가 있다면 우선 그 대상에서 무언가 흥미를 끌만한 요소를 먼저 찾아내고 몰두할수 있어야만 매우 현명한 어프로치이다.
오직 자신만이 느낄수 있는 흥미 유발요소를 먼저 찾아낼 것, 그리고 흥미에 이끌려서 몰두할수 있을 것.
공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맞아 떨어지는 공부의 정석이 어디 있겠는가.
개인적인 취향이나 관심 대상은 제각각일 것인데.
수학이면 어디 숫자와 공식 뿐이랴, 영어라면 또 문법 뿐이랴...
반드시 흥미를 끌만한 어떤 부분은 있게 마련이다. 그 흥미 유발 요소를 깃점으로 서서히 빠져 들어가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 아닐까한다.
교수방법 역시 개인마다의 흥미 유발 요소를 찾아내어 적용시키는 것.
아이들에게 나는 이 점을 깨우치도록 하여야 한다.
또 회색수면- 어제도 그제도 술은 마시지 않았는데, 오히려 뱃속은 영 거북하고, 요즘의 변비는 자심하여 일을 볼때면 해산하는 여자처럼 용을 쓰기 일쑤이다.
3시 기상.
안 방에 불 밝혀 앉아서, 누워있는 J도 들어준다는 생각으로 소리내어 로마서 읽는다.
기독교리의 틀은 이 로마서에서 이루어 졌음을 느낀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에 대한 개연성이 뚜렷이 부각되어, 신학자 바울은 온 존재를 바쳐서 강론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英이- 딸아이의 여러 문제- 진학, 성격, 덕성, 품성.
여러 모습으로 명멸하는 英이 장래의 영상이 요즘 내 눈앞을 어른거리고 있다.
16354 1991. 11. 17 (일)
토요일 오후, 장진고가 모는 차타고 정체된 도로를 겨우 빠져나가 김해공항으로.
동경에서 출발하여 도착한 박상무를 겨우 PICK UP하여 그 집까지 모셔드리고 돌아온다.
극심한 피로감.
그 피로는 극심한 교통체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괴정 넘어서니 온통 파헤치고 세워놓고 쌓아놓고하여 5분에 약 10M 씩 전진하는 차창으로 바라보이는 그림은, 살벌한 파괴의 현장이다.
도시의 역동성이라고도 하는 사람이 있을것이나 나는 이런 파헤침이 싫다.
나의 딸- 英이는 저급한 품성의 여성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성인의 문턱에 이르러... 덕성- 여성다운, 현대인다운, 자기계발과....
16355 1991. 11. 18 (월)
英이 대입 시험 꼭 1개월 남겨두고 있다.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11시에 돌아오는 英이, 가엾기도 하지만 과연 열심은 내고 있는겐지.
마음 속에는 무슨 생각들이 도사리고 있으며, 장래에 대하여는 무슨 작정을 하고 있는겐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진지한겐지, 그저 아직 어린애일 뿐인지.
부모의 어떤 진지한 어프로치를 간섭이라고 신경을 날카롭게 대응하는 英이.
이 지혜없고 게다가 게으른 아비짜리는 딸네미의 진정한 정체를 도무지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그나마 버티고 앉아 영도를 풍부하게 하여주는 봉래산.
새벽에 오르면서 보니 그곳 역시 온통 파헤치고 깎아내고 있다.
밤낮없이 덤프 트럭이 줄을 이어 파낸 토사들을 실어다가 앞 바다 매립지에 쏟아 붓고 있다.
아, 싫다.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고.
아무리 경제를 생각하고 현대화를 부르짖고 산업발전을 주창하고 공리민복을 꾀한다 할지라도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고 변형시키는 것은 결코 백년 대계의 짓거리는 되지 못한다.
일요일, 사무실 나가서 박상무와 일본의 조선소들 얘기 나누고 돌아와 며칠만의 술 마신다.
추리소설에 흠뻑 빠진 俊이.
독서삼매경에 빠진 아들 녀석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뿌듯하냐.
많은 독서, 바른 자세, 올바른 학습방법, 부단한 자기계발...
나는 거듭하여 네 당나귀는 네가 훈련시키기에 달려있다고 俊이에게 되뇌이고, 俊이는 마음이나 정신이라는 것은 육체를 훈련시키는 주인이라는 이 이원론을 잘 이해해 줄 것이다.
월요일 아참.
샛별, 금성은 늘 나의 새벽에 나를 맞는다.
이사야서.
16356 1991. 11. 19 (화)
어떤 관능적인 이미지에 사로잡혀 버렸을 때, 엑스터시를 향한 욕망은 그 끝을 모른다.
상상력이 동원되고, 드라마가 꾸며지며, 영상화를 기도한다.
아,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英이, 담임선생은 수산대학교 재료공학과 지목하여 제시하였다고.
여성으로서의 장래성, 유망한 직종.
식품영양학과, 환경공학과, 제어계측과....
오늘 J가 학교 올라가서 英의 대학은 결정된다.
16357 1991. 11. 20 (수)
英이 수산대학 미생물학과로 결정.
올해는 특히 하향지원이 예견된다고 하니 그 곳도 미상불 불안한건 마찬가지다.
지원학과가 결정되었다는 안도감인지 싱글거리며 웃고있는 英이는 덩치 큰 어린아이일 뿐이다.
아비가 간절하게 희망하는바 英이의 그것은, 목적의식을 갖는 자기계발의 삶, 전문지식으로 자신있게 개척하는 삶, 부단한 깨달음과 자기 향상의 삶.
요는 이 혼탁한 산업사회를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는 방법을 익혀 놓고 시작하는 삶.
이런 가치들이 英이를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지 못한 결코 되돌릴수 없는 그 황금같은 기회들.
지금 그런 기회를 살고있는 내 딸은, 자신의 놓져 버린 기회를 안타까워하고 있는 이 아비가 두 눈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허랑하게 제 인생을 흘려 보내게 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단언컨데 이것은 절대 보상심리 따위가 아니다.
英이 그 아이의 행복을 간구하는 아비짜리의 마음이다.
새벽, 커텐을 조금 열고서는, 늘 샛별에 가장 먼저 인사한다.
안방에 앉아, 이사야서 3-6장, 에레미아 애가 1장, 베드로 후서 소리내어 읽고ㅡ, 어둠 속에 앉아서 기도드린다.
16361 1991. 11. 24 (일)
겨울, 초겨울의 비가 흩뿌리는 토요일, 간밤의 회색수면으로 곤비한 상태이나 그냥 버티다가
3시에 짐에 돌아와 俊이와 함께, 고기튀김 하나 시켜 놓고 고량주마시면서, J가 녹화해 둔 '그날 이후' 감상한다.
미, 소 양대국은 그렇게 핵 단추를 누르고, 이윽고 섬광.
아인슈타인이 말했다던가.
"제3차 세계대전의 무기는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제4차 대전의 무기는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것은 돌도끼와 돌칼일 것이다."
내일이면 英의 원서 접수.
16362 1991. 11. 25 (월)
일요일 온종일 TV와 씨름.
녹화된 영화 '브로드캐스트 뉴스'
전문직업인- 방송기자, 앵커맨, 프로듀서의 프로필들.
첨단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면모.
그리고 개성시장에서 자기를 팔아야하는 방법론과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
괜찮은 영화.
월요일, 기온 뚝 떨어지다.
중위권 대학 접수 주춤.
오늘 英이 원서 접수한다.
16363 1991. 11. 26 (화)
회사를 빠져나와 시청앞에서 J와 英이 만난다.
택시타고 수산대학으로.
미생물학과 접수.
그리고 셋이서 대학 캠퍼스를 둘러본다.
생기, 젊음의 생기 넘치는 곳, 대학.
우리는 모두 수산대학의 평활하고 너른 그 분위기에 만족한다.
그리고 또한 미생물학과는 유전공학이 포함된 기초학문이다.
또한 英이로서는 한참 하향지원한 것이므로 합격을 자신하고, J는 욕심을 부려 학비면제의 장학생까지 꿈꾸고 있다.
나중에 보니 수산대 미생물학과는 2 : 1.
英이에게는 다소의 자극이 될만한 적정의 경쟁률이다.
16364 1991. 11. 27 (수)
이문열 '사색' 구입.
분명 이 시대 빼어난 작가일시 분명하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어딘가 서걱거리는 느낌, 美文은 美文인데 그것에는 매끄럽지 못한 그의 상투성, 주지주의적인 관념화된 상투성이 때로는 너무나 거슬린다.
16365 1991. 11. 28 (목)
어제 SB-388 진수.
역시 조선의 꽃은 고정대 위를 춤추듯 미끄러 내려가는 수천톤 무게의 거대한 덩어리를 보는 순간일 것이다.
아주 편한 잠 이루다.
어제의 음주로 6시30분 넘어서야 겨우 일어나다.
그래도 화장실 독수리 잡고, 머리감고 세수하고 면도하고 아침밥까지 챙겨 먹는다.
차마 기도하고 일기를 끄적거릴 시간의 여유까지는 마련치 못하고 나선다.
PP갑 의 차로 출근하여, 신문의 묵은 기사들을 모두 읽고, 품의서 한건 기안하고, 회의실에 들어와 문을 잠궈 걸고, 옛날 군대시절에 받았던 쬐그만 성경으로 시편 2편을 읽는다.
그리고 사도신경을 외우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고개 숙여 나의 주, 나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다.
16366 1991. 11. 29 (금)
미치도록 탐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불같은 욕심.
곁에서 굶어 죽어가는 이웃이 있을지라도 무슨 상관이랴.
소유코자하는 열렬한 이기심 이외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깃들 여지는 없다.
옳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결코 자신의 행위로서 의를 이룰수는 없는 것이다. 은혜로서만 이루어지는 義.
버스 속에서, 마음의 탐욕에 이끌려 그 마음에 대하여 부르짖으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3일째 목욕하지 못한 몸뚱아리.
간밤에는 맹렬하게 코를 곯았던 모양이다.
잠 속에서도 J의 짜증이 기억난다.
기도드리는 써늘한 새벽.
고린도 후서 읽는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후패함을 생각지 말자.
날로날로 새로워지는 내 속사람을 생각하자.
16367 1991. 11. 30 (토)
11월도 막다른 골목.
英이의 시험은 이제 17일이 남았을 뿐이고, 곧 세밑의 어수선함.
어디 초연한 자 있어 해가 가고 해가 오는 이것에 덤덤할자 있으랴.
간밤에도 일찍 누워 잠 속에 빠진 듯 하였으나 난삽한 꿈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나의 심층의 창고 속에 저장되어있은 기억들은, 슈퍼에고의 검열이 무서워서 나름대로들 데포르마숑된 드라마를 만들어 꿈 속에서 잔치를 벌인다.
또한 현재의식의 어떤 강박과 육체의 상태, 특히 뱃속 腸쪽의 상태도 이 드라마의 출연진으로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토요일, J는 오늘 S형 어머니와 팔공산 갈 예정.
그곳 갓바위가 그렇게 영험하다고.
갓바위와 질투가 많으신 여호와 하나님..
이런 이미지의 대비는 맞지 아니하다.
종교다원주의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어떤 염원의 대상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편 1편.
내일은 부서장모임의 산성 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