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08 1991. 10. 2 (수)
비디오 '죽은 시인의 사회' 감상.
좋은 영화, 이 영화의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은 타당하다.
마지막 장면의 감동.
앤더슨이 책상 위에 올라서 'Oh, Captain. My Captain.'하자 노란 교장의 당황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연이어 책상 위에 올라서서 존경하는 스승을 향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 때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키딩 선생은 애정담긴 젖은 눈빛으로 제자들을 바라본다. "Thank You Boys, Thank you.'하고 중얼거리며.
나는 俊이에게 키딩의 흉내라도 내야 하건만.
영화에 나오는 라틴어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
오늘은 가장 귀중하다. 오늘을 즐겨라...
그것은 존 덴버가 부른 팝송 'Today'와 상통한 내용인가.
어제 할머니 忌日 모임.
형의 관계에 대한 Detail은 어린아이.
어머니, 거의 8시30분이 되어서야 가야숙모와 돌아 오신다.
예배.
16309 1991. 10. 3 (목)
화요일, 마천공장 외주 사양.
신입사원 받는다. 해양대 출신, 박영범.
퇴근하며 이덕찬씨와 마신다. 맥주.
튀김닭 사들고 비디오 '시네마 천국' 빌려 돌아 오다.
개천절 아침의 늦잠.
TV 다큐멘타리 '압록강'
조선족의 삶, 옛 이조의 소박함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압록강 중국쪽에 사는 사람들.
산업화와 자본이 침투하지 않은 그곳에는 인간 사이의 정이 물씬 풍기고, 자본의 눈으로 보면 가난한 삶일지 모르나 결코 인간으로서는 가난하지 않은 삶을 영위하는 그들이 부럽다.
그러나 필경 그곳에도 이 맘몬의 흉칙한 발톱은 침투할 것이다.
자본사회의 이 꼬라지들.
개별화, 개인화된 듯 하지만 더 커다란 덩어리의 속박에 목이 매여 있는 이기주의의 노예들.
俊이 내일 시험이라고 제 방에서 천후와 공부중.
英이는 학교로, 딸네미 얼굴 본지가 참 오래 된듯하다.
가엾은 내 딸.
J는 안방에서 취침중.
가을 오전, 볕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저 공간.
16310 1991. 10. 4 (금)
이태리 영화 '시네마 천국'의 비디오, J와 함께 보다.
언젠가 꾸었던 꿈이 떠오르고, 가슴 저리는 회억에 잠기게 하는 영화이다.
이탈리아는 한국의 옛 소박하였던 시절의 살이들과 어쩌면 그렇게 분위기가 같을수가 있을까.
전후 이태리 시골 마을, 오직 영화만이 유일한 오락이었던 시절, 살바토르의 '영화'라는 개념은 곧 고향과 유년이라는, 성장의 메타포이다.
아, 고향. 그 풍경이며 사람이며 관계들이여.
밤의 거리를 걷다가 어딘가 낯익은 골목 어귀를 발견한다.
그 골목으로 접어들면 타임마쉰을 타고 과거로 돌아 간 듯, 내 유년의 세계가 그곳에는 고스란히 살아있다.
정릉, 로타리, 지용이 집 2층의 공부방, 약수터로 가는 고갯마루, 세파드 죤, 미도극장이며 동도극장, 개천가의 서커스와 가설무대의 연극. 그리고 외갓집이 있는 내수동, 책방이며 규청이 형네집과 대청마루. 그 곳 어디선가 외가집 친척 어른 한분 나를 보고는 '상헌이 너 왔니?'하신다.
'나의 왼발' 짐 쉐리단 감독,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
뇌성마비의 화가, 왼발로 그림을 그리고 타이프를 두드리고.
인간승리의 감동보다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뛰어난 불구 연기로서 그 내면의 고독과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어머니의 위대한 역할은 감동적.
새벽, 내 방 책상 앞 앉아 사도행전 읽는다.
그리고 어거스틴 '고백'을 다시 읽기 시작, 첫구절부터 감동.
불끄고 기도, 경건을 회복한다.
멀리 여명이 터오고 터키 국기의 초생달, 그 옆에 별하나.
16312 1991. 10. 6 (일)
어제 J, S형 어머니 동광약국 M어머니와 함께 지리산 실상사 갔다오다.
S형 어머니가 모는 차 타고.
S형 어머니의 낯선 것에 대한 도전적인 자세와 공부하는 자세는 가히 凡婦가 아니다.
16313 1991. 10. 7 (월)
때로 갑갑함이 엄습하여 미칠듯한 때가 있다.
일종의 폐쇄된 공간에 갇혀있는듯한 느낌이 일요일 오전에 내게 엄습한다.
곧 미칠것만 같은 답답함에 심장은 벌떡거린다.
J와 산에 올라 비로소 진정시킨다.
2시간에 걸처 함짓골 꼭대기까지 가서 차가운 샘물을 길어 온다.
'어비스'라는 스필버그에 버금가는 환상적인 영화를 보고 8시경 잠자리 누웠으나 다시 밀려오는 그 답답함, 이런 것이 협심증이라는 건지..
벌떡 일어나 불을 켠다.
최귀라의 찬송을 울리게 하고, 고린도 후서를 소리내어 읽는다.
악한 영이여.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를 떠나거라.
너 비록 내가 양육한 것일지라도 예수에 속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감히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여 신앙고백한지 어언 5년이 지났건만.
그러나 주여, 진부함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위선적인 자기합리화에 급급함은 결국 죄의식을 유발하고, 육신이 추구하는바 그것은 절제 아닌 쾌락과 낭비와 안일이며, 모든 신앙의 몸짓은 형식주의이니.
오, 주여! 이 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아무 것도 새롭게 되지 못하였고 오히려 갈수록 후패하는 이것이 어찌 예수의 제자라 할수 있겠습니까.
새벽. 고통스런 비몽사몽간에 밤을 지샌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구원하소서, 구원하소서.
16314 1991. 10. 8 (화)
괴로움, 예리한 신경 바늘은 잠을 그르치고, 그예 영육의 컨디션을 나락으로 밀어 버린다.
혓바늘과 그 표현못할 아릿한 두통과 관절 마디마디마다 서걱거리는 모래와, 거기다 미친년의 눈처럼 광기를 띠고 히번득이는 카오스의 눈 하나.
이 신경을 죽이기 위하여 J에게 호소하여 봐야 아무런 조처도 취해주지 않을 것.
그녀는 도무지 이러한 상태를 이해할수 없을 터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약국에 가서 사인하고 신경안정제 두알을 구한다.
정과장의 바보스러움에 트라블까지 겪어낸 일과를 겨우 마치고 소주 사들고 온다.
술에 잠들라, 올빼미여!
새벽.
난삽한 꿈, 글쎄 혓바늘은 다소 가라앉은듯도 한데.
16315 1991. 10. 9 (수)
어제 승진자 발표.
역시 최태용, 강창원은 탈락하였다.
최태용은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강창원은 울그락 불그락.
정과장의 좁디 좁은 사고의 틀은 요지부동이고.
무언가 쇄신이 필요한 부서이다. 내 부서는.
불면의 밤.
꿈, 꿈.
옛날 여사환 김미라 자살, 회사의 청소원인 그녀의 어머니도 회사의 숙소에서 목매 자살. Sh씨 설치고. 최석교와 자전거타고 한바퀴 도는 미군부대.
깨어 난 머릿 속은 깨어질 듯 아프다.
모타가 고장이 나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
모처럼 목욕탕에 갔는데, 그 답답함에 미칠듯하여 물만 축이고 도망하듯 나와 버린다.
폐쇄 공포- 나는 요즈음 이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바람이 몹씨 부는 가을 아침.
기도.
길게 볼 것, 기다랗게..
시련, 크리스찬의 시련이란...
16316 1991. 10. 10 (목)
간 밤 모처럼 숙면 이루다.
아, 이제 터널을 빠져 나왔는가.
아침, 이부자리가 너무나 포근하여 빠져나오기 싫은 아침은 얼마나 숙면의 충만감에 가득찬 시간인지.
솜처럼 포근하고, 구름처럼 아늑한.. 잠, 잠이여.
너 진정 고마웁다.
완연한 가을, 높푸른 하늘에 새털 구름.
추색은 온 누리에 충만하다.
어제 사무실에 뇌졸중으로 그만 둔 옛 직장 김명오씨 방문.
이제 지팡이 없이도 유연하게 걷는다.
그의 풍성한 인간성, 이제 가난하여 더욱 자유롭고 두텁게 보이는 넉넉한 인상.
기다란 눈으로, 좀 더 긴 마음으로 주 나의 하나님을 묵상하라.
16317 1991. 10. 11 (금)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간 밤에 편한 잠 이루다.
그러나 꿈은 있었다.
가을 차츰 깊어간다.
아침 저녁 서늘하나 한낮의 기온은 올라가 일교차가 심하여 감기가 유행중.
새벽기상.
여명의 새벽 바다.
아치섬의 그림자와 평원 같은 바다의 모습이 그림같이 떠오른다.
사도행전, 어거스틴 '고백'.
불끄고 어둠 속에서 두 손을 모은다.
"주께서는 모든 것을 형성하시고 모든 것을 당신의 법칙대로 정리하시는 형식중의 형식이십니다. 당신께 이미 부르짖는 저희를 자유롭게 하시고, 아직 당신을 부르지 못하는 이들로 하여금 당신을 부르게 하시고 그들을 자유롭게 하옵소서" -고백-
16318 1991. 10. 12 (토)
어제 2공장 야적장에 불.
쓰레기 하치장 위에서 BARGE 해체작업을 하던중 절단 불씨가 폐유에 옮겨 붙어 검은 연기가 온 청학동을 뒤덮는다.
소방차가 오고, 해수를 끌어올려 퍼 부었으나 중량물에 깔린 쓰레기더미의 은폐된 불길은 잡히지 않는다.
하는수없이 하룻밤을 그대로 타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날이 새면 CAPACITY가 큰 크레인을 빌려다가 BARGE를 들어내고 소화하는수 밖에 방법이 없다.
어제 성규 내려온 모양.
모두 서면의 PS곤 가게에서 만나기로 하였다는데 나는 참석치 못하다.
16319 1991. 10. 13 (일)
잠자리가 투명한 대기 속에서 맴 맴 맴을 돈다.
풀벌레 소리, 푸르르게 높다. 하늘.
황금빛 염색, 잎새들.
J와 산에 오르다.
소나무 숲속 너른 터에는 남녀 젊은 학생들 둘러서서 기타에 맞춰 찬송가를 부른다.
16320 1991. 10. 14 (월)
4시 기상.
오주혜 박사의 신앙의 글.
"우선 믿으라, 그러므로 안다.
신앙이 지식의 전제조건이다.
지식은 자주 신앙을 점검한다. 신앙을 이성적으로 도출하려고 한다. 그 결과 신앙이 부정되고 남는 것은 단지 신앙에 대한 타산 뿐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에게 있어서 '믿는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상호일치 한다.
이 일치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불가능할뿐더러 동시에 불필요한 것이다."
아치섬 뒷편으로 아침놀 붉다.
기도.
말의 말, 말의 마음, 말하는 마음.
그 본질을 하나님은 알고 계실 것이다.
내가 아뢰고자하는 심층의 그 진실을 하나님은 모두 꿰뚫고 계시다.
그것이 이방인의 외식하는 기도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내용의 진실을 모두 간파하고 계시다.
아, 말이란 얼마나 헛된 것이랴.
성경에 있어서도 그것이 단지 언어의 나열이라면 그 또한 헛될 것인데, 그곳에는 언어가 아닌 살아 숨쉬는 생명력이 있음으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16321 1991. 10. 15 (화)
나는 때때로 스스로의 총명함에 놀랄때가 있다.
어떤 사물에 있어서 금새 그 본질을 간파해 버리는 능력. 어떤 인격의 가식 뒤에 숨은 진면목, 어떤 복선이 깔린 사안에 대한 형안.
자랑치 말라.
이것은 사물에 대한 불신이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일단 대상을 의심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제 박세동과 술 마시고 그의 집까지 가서 컴퓨터 시스템 구경하다.
6시 넘어 기상.
俊이 오늘 산성으로 소풍.
J의 솜씨, 김밥과 유부초밥, 맛있다.
16322 1991. 10. 16 (수)
어제 수영 요트계류장의 KOMARINE 행사 관람.
조선 해양 기자재들의 눈부신 발전상이 널려있다.
밖으로 나와 정박된 요트들 바라본다.
환타지아호 소나타호... 어느 부자의 소유일까?
VAN도 보이고 무시로 헬리콥터도 뜨고 내리는 그 곳.
청색의 가로 줄무늬 셔츠를 입은 외국인 요트맨이 서성거리고.
영화에서 본 지중해의 풍경이다.
저녁에는 해운대 조선비치호텔의 세미나 참석.
진부한 내용의 세미나보다 호화로운 호텔에서 내다보는 해운대의 풍광이 좋다.
반달형으로 길게 뻗어있은 백사장에 줄지어 늘어선 불빛과 파도의 포말.
세미나 끝나자 칵테일 파티.
연이어 호화판 뷔페.
사슴고기와 캐비어라는 음식의 생소함.
부르조아의 아웃사이더로서의 하루.
16324 1991. 10. 18 (금)
감정의 끈은 팽팽하게 당겨져서 조금의 여유도 없고, 마음밭은 사뭇 황폐하다.
요즘 매우 건조한 나날, 에스프리 한줌 있을리 없다.
일상에 허덕허덕 끌려다니는 상태.
그리하여 잠시라도 풍요로와 질때에는 일순의 도취에 탐닉하게 될 때, 그러나 그것은 또하나의 권태를 잉태하여 절망을 답습한다.
소각로건등 업무가 도무지 풀리지 않아 더욱 그러하다.
어제 결근.
너 정신아, 굴복치 말라.
상승하라.
저 높은 곳 보오들레르의 불을 마셔라.
영감과 상상, 그 찬연한 불꽃을 꿈꾸어라.
가을, 금요일.
회색수면으로 오른 쪽 눈 뒷편 두개골 어딘가의 욱시근거리는 아주 불쾌한 느낌 하나.
16326 1991. 10. 20 (일)
아주 기분나쁜 통증, 오른쪽 눈부근으로 해서 뇌에 이르는 기분나쁜 증상.
더불어 혓바늘 조짐까지.
토요일이라 버티어 낸 일과.
J는 S형 어머니와 팔공산행.
한낱 돌부처에라도 빌고 싶은 어미의 마음들.
俊이 혼자 집을 지키는 토요일 오후2시.
쏘련배에서 얻어온 연어를 썰어서 후라이 판에 튀겨서 俊이 점심먹이고 나는 맥주로 오후를 떼운다.
일요일 아침 7시 기상.
불면의 통증.
16328 1991. 10. 22 (화)
이상하게 마음이 우와좌왕 하는 월요일의 일과.
뚜렷한 이유도없이 안정되지 못하여 서성인다.
그러구러 일과를 마친다.
연어 한아름 들고 포도 사들고 어머니께 가다.
미장원 가셔서 맥주 마시며 한참을 기다렸다가 뵙고 온다.
일본서 친구들 다녀 갔다고 공연히 즐거우신 척하는 그 얼굴은 이제 부쩍 늙으셨다.
16329 1991. 10. 23 (수)
용화기업의 재하청업자, 2공장의 정문 앞에서 웃통을 벗어 부치고 누워 뒹굴며 난동을 부린다.
손해보았으니 도급자인 회사에서 책임을 지라고.
어떤 농촌 청년은 나이트 클럽에서 촌놈이라고 무시한다고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르다.
어떤 젊은이는 혼자 죽기 억울하다고 여의도 광장에서 이리저리 미친 듯 차를 몰아 수명을 치어 죽이다.
급속하게 분열되고, 객체화 되고 있은 자본주의의 사회. 계층구조의 의식 분열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상대적 박탈감은 각 개인의 실존에다 치유할수 없는 세균을 배양한다.
간밤 꿈은 요란하였으나 모처럼 숙면이었던 듯.
선듯한 새벽 가볍게 일어난다.
명징한 의식으로 경건을 끄집어 내 세우려 한다.
오래 오래 참아 주시는 하나님.
16330 1991. 10. 24 (목)
옷 속을 파고드는 싸늘한 기운, 계절의 싸늘함은 명징한 이성을 일깨운다.
옛날 겨울철, 폐부를 찌르는 차가운 바람 맞으면서 영도다리를 걸어오면서 '나는 이 겨울을 사랑한다. 이 날카로움이 스스로 침잠하여 천착케 하는 이 겨울을 나는 사랑한다'고 젊은 나의 입술은 중얼거렸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명징함을 아직도 사랑하는지, 명징한 이성이 사랑을 만들었는지.
새벽, 차가운 새벽 하늘에 아주 강한 硬度를 느끼게 하는 금강석같은 별하나 박혀있다.
사도행전, 죽음으로부터의 삶, 고백 읽는다.
스스로 쌓아올린 성벽은 너무도 높고 두껍습니다. 모든 문제가 내게 있음을.
주 나의 아버지시여. 이 성벽을 깨뜨려 주소서.
성 밖으로 좇아나가 밖에 있는 모든 것들을 무한한 자유로써 껴안게 하소서.
아, 나의 주님이시여. 성의 음습한 지하실에 널려있은 무의식의 잡동사니들을 몽땅 끌어내어 불태워 주소서.
오오, 나의 하나님, 전능하신 나의 창조주시여.
나를 새롭게 하소서. 새로움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후패한 이 영혼을 세탁하여 주소서.
16331 1991. 10. 25 (금)
오른 팔목의 통증이 도지도록 어제는 미우라의 매뉴얼을 번역하여 입력하고 출력하여 현업 교재를 만들다.
어줍잖은 내 일본어실력이 그나마 생산부서 에서는 낫다.
돌아와 내 방에 앉아 '갈매기의 꿈'. 닐 다이아몬드의 노래 'Be'를 들으며, 마음을 조나탄 리빙스턴 시걸이 날고있는 창공으로 띄우며 술을 마신다.
옛 일기 뒤적이며 반추하는 옛날의 처연한 자화상.
그러나 마음의 어느 곳, 그 곳에서 빙그레 웃고 계신 그 분은 나의 주님이시다.
16333 1991. 10. 27 (일)
토요일, J는 S형 어머니, Hw 선생님, 민이엄마, 성근엄마등과 S형 어머니의 차를 타고 울산 장안사행.
英이, 어제 저녁 제 진학문제에 관하여 제법 진지하고 솔직하게 얘기를 꺼낸다.
제 실력의 정체에 대하여도 고백한다.
아, 이만해도 다행이다. 저는 저대로 얼마나 커디린 중압감을 안고 있었을까.
부모의 과도한 기대가 더욱 그 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였음직 하다.
이제 1개월 보름 남짓 남겨놓은 시점에서 부모짜리도 英이 자신도 현실적인 상황을 직시하자.
어느 대학, 무슨 전공을 하던지 저 하기 나름 아닌가.
이제 英이의 강박의 짐을 벗게 하고, 차분하게 최선을 다할수 있도록 하여 주면 되는거다.
16334 1991. 10. 28 (월)
일요일, 사직동 JN영 의 집에서 부부동반 모임.
자동차, 가게 얘기등 우리 모임 역시 황금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당연하다.
몰라보게 자란 아이들, KH근 이는 울산 과외 마치고 늦게 도착.
별로 술은 마시지 않은채 소영엄마가 차려 놓은 추어탕서껀 맛있게 먹다.
16335 1991. 10. 29 (화)
어제부터 기온 뚝 떨어지다.
회사의 화장실에서 다시 읽는 'Y의 비극'.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은 너무나 작위적이다. 추리를 위한 복선. 복선을 위한 복선.
등장인물의 캐릭터 역시 너무 인위적으로 꾸며 놓아 사실성이 떨어진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자연스레 우러나는 서스펜스도 없고, 더시 해미트나 맥도널드의 냉혹한 문장기법으로 소름끼치게 느껴지는 현대상도 없다.
글쎄, 추리소설은 이러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단지 조각그림 맞추기와 같은 건조한 수수께끼 풀이의 품격 정도로만 느낄 뿐이다.
어제 TV '인간시대'
인신매매범들에게 납치되어 실종된 딸.
그 가족들은 서서히 무너져가고 그 어머니는 서서히 미쳐간다.
인신매매범- 열다섯살 이상이면 모두 상품으로 보이고 열일곱이 넘으면 이미 영계가 아니다.
이 악몽과 같은 현실이 뻐젓이 횡행하고 있는 이 나라. 이게 무슨 나라인가.
이것은 미필적 고의의 살인행위이다.
대로상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딸을 잃은 가족을 생각해 보라.
아니 찢겨지는 딸을 상상하는 부모의 마음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곧바로 죽음이 아닌가.
16336 1991. 10. 30 (수)
그 분과의 약속으로 며칠째 술의 유혹을 뿌리친다.
꿈- 휴가 전일의 회사, 도크 부근에서 김우중이 티코를 타고 찾아오다. 그 차를 타고 시청부근에 있는 집에 돌아가려고 영도다리를 건너는데 쫙 깔려있은 전경들.
안면있은 전경이 내게 발포하고 나를 짐승처럼 끌고간다. 고문, 나는 어느 감방에서 마치 기계처럼 벌죽벌죽 웃고 있다. 나는 피부와 뼈대는 없어지고 그것이 기계로 조립된 강철인간의 모습...
회색수면.
오늘 한때 정전이 예정되어 있는 회사.
구덕체육관의 부흥회, 박옥수 목사의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에 가 보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는다.
16337 1991. 10. 31 (목)
박옥수 목사의 설교 들으려고 회사를 빠져나가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구덕체육관으로.
시간이 늦어서 바쁘게 도착하였으나 찬송가들 부르며 있다가 11시가 다 되어서야 박옥수 목사 등장.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닷새 계속되는 설교인데 공감하는바 크다.
죄를 사함받고 거듭났다는 확신없는 신앙인, 단지 안일하고 진부한 교회인은 그래서 늘 강박을 갖고 시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내가 과연 죄사함은 받았나? 과연 지금의 나는 거듭 난 것일까? 하고.
죄의식은 깊은 마음 속에 그대로 남겨 놓은채 그저 범죄한 사실만을 고하고 끊임없이 죄의식에 시달리는 교회인의 상태.
피상적인 느낌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확증된 사상과 느낌으로서 거듭남을 획득해야 한다.
들으면서 어떤 정신분석적 차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박목사의 설교집 책 한권 사들고 회사로 다시 돌아오다.
퇴근하여 내 방에 앉아 박옥수목사의 설교집을 읽으면서 모처럼 소주마신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라는 것.
肉的, 心的, 靈的인 피조물.
기독교는 그래서 생물학, 심리학, 종교학의 세분야로서 어프로치할수 있다.
그런데 나는 심리학과 종교학의 확연한 구분에 있어서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종교학이란 심리학적으로 규명할수 있은 그 무엇이다하는 쪽에 기울어 있는데 이것이 말하자면 내 신앙의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닌가 한다.
아마 에리히 프롬의 영향일 것이다.
"물론 迷惑되어 있던 내 파토스는 성경의 보이지 않는 지혜에 대항하여 일어섰고 나의 통찰력이 성경의 내부에까지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방법은 어린이와 함께 자라는데 있습니다. 어린이가 된다는 것은 내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교만한 마음이 부풀어 올라 스스로 어른인 듯 행세하였습니다." -어거스틴 '고백'-
발가벗어라.
모든 존재를 걸어 승부를 決하고자 하는 생명의 도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