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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34) -톨스토이-

34 마슬로바를 포함한 죄수 이송대는 3시에 역을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그 일행이 감옥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같이 역까지 따라가기 위해 네플류도프는 12시 전에 감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날 밤, 네플류도프는 소지품이며 옷과 서류 등을 챙기면서 일기장에서 최근에 쓴 부분을 드문드문 읽어 보았다. 그 마지막 부분은 그가 페테르부르크를 떠나기 직전에 쓴 것으로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카추샤는 나의 희생을 바라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려 든다. 그녀도 이겼고 나도 이긴 것이다. 그녀에게 내면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믿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그녀는 부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몹시 괴로운 동시에 즐거운 일을 경험했다. 그녀가 병원에서 좋..

<R/B> 부활 (2부, 33) -톨스토이-

33 "그런데 조카들은 잘 있나요?" 다소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네플류도프는 누님에게 물었다. 누님은 시어머니와 함께 아이들을 시골에 남겨 놓고 왔다고 대답했다. 남편과 동생과의 논쟁이 끝난 것을 다행으로 여긴 그녀는, 옛날에 네플류도프가 어렸을 때 검둥이라든가 프랑스 계집애라고 이름을 지은 인형을 가지고 놀던 시절처럼, 요즘 자기 아이들도 인형을 가지고 여행 놀이를 하며 논다고 얘기했다. "그걸 다 기억하고 계셨군요." 네플류도프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글쎄, 그 애들이 노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도 너와 닮았는지." 불쾌한 대화는 끝났다. 나탈리아는 마음이 놓였지만 남편 앞에서 동생하고 둘만이 아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세 사람이 다 아는 화제를 꺼내려고, 결투에서 외아들을 잃은 케멘스카야 ..

<R/B> 부활 (2부, 32) -톨스토이-

32 네플류도프는 하숙으로 돌아와서 책상위에 놓여 있는 누님의 편지를 보자, 곧 그녀의 호텔로 찾아갔다. 저녁 때였다.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별실에서 쉬고 있었기 때문에 나탈리아 이바노브나만이 동생을 맞았다. 그녀는 허리가 잘록한 검은 비단 야회복을 입고 까만 머리를 지져 유행하는 헤어스타일로 높이 틀어올리고 있었다. 같은 연배의 남편에게 좀더 젊게 보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동생을 보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옷자락을 살랑거리면서 종종걸음으로 그를 맞았다. 남매는 키스를 나누고 미소를 지으면서 물끄러미 서로 바라보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롭고 의미심장한 진실이 깃들인 시선을 주고받았으나, 그들은 진실이 깃들이지 않은 말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남매는 어머니가 별세한 이후 한..

<R/B> 부활 (2부, 31) -톨스토이-

31 마슬로바가 끼여 있는 죄수 이송단은 7월 15일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그 날 그녀를 따라갈 준비를 했다. 출발 전날 밤 네플류도프의 누이와 매형이 동생을 만나러 시골에서 올라왔다. 네플류도프의 누님인 나탈리아 이바노브나 라고진스카야는 동생보다 열 살이나 위였다. 그는 어느 정도 누님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누님은 그가 어렸을 적부터 사랑했고 그 후 출가하기 전만 해도 같은 나이 또래처럼 의좋게 지냈었다. 누님은 스물다섯 살의 처녀였고, 그는 열다섯 살의 소년이었다. 그 당시 그녀는 그의 친구 니콜렌카 이르체네프를 사랑하고 있었다. 남매는 둘 다 니콜렌카를 사랑했는데, 그들은 그에게서나 자기들에게서나, 모든 사람들과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그 무엇을 발견하고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 ..

<R/B> 부활 (2부, 30) -톨스토이-

30 마슬로바가 제 1호송대에 끼여서 이송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네플류돌프는 출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서 아무리 시간이 많다 하더라도 도저히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이라는 것이 이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전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했고, 또 일의 흥미도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플류도프 한 개인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단시에는 일의 흥미 여부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일이건 모든 것이 그 자신에게는 조금도 상관 없는 것이고 남에 관한 일뿐일지라도 모든 것이 흥미로울뿐더러 열중할 수 있었고, 더욱이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던 이전의 일들은 언제나 화가 나고 짜증이 ..

<R/B> 부활 (2부, 29) -톨스토이-

29 모스크바로 돌아오자 네플류도프는 만사를 제쳐놓고 우선 대심원이 재판소의 판결을 인정했으므로, 시베리아로 떠날 채비를 해야한다는 슬픈 소식을 마슬로바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감옥의 부속병원으로 달려갔다. 변호사가 써 준 황제 앞으로의 청원서를 지금 마슬로바이의 서명을 받기 위해 감옥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었으나, 그는 별로 희망을 걸지 않았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지금에 와서는 그 청원이 허용되기를 바라지 않게 되었다. 시베리아로 가서 유형수나 징역수들과 함께 생활할 것만을 생각했고, 만일 마슬로바가 석방된다면 자기의 생활과 마슬로바의 생활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 것이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는 미국 작가 도로우의 말을 상기했다. 미국에 아직도 농노제가 존재하고 있을 무렵, 그는 농노제가 합법화되고 보호되..

<R/B> 부활 (2부, 28) -톨스토이-

28 네플류도프는 그 날 밤 페테르부르크를 출발할 수도 있었지만, 마리에트와 극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으므로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약속한 것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기로 했다. '그런 유혹을 이겨 낼 수 있을까?'하고 그는 약간 불성실한 기분으로 자문해 보았다. '마지 막으로 더 시험해보자.' 그는 연미복으로 갈아입고, 연중 무휴 상연되는 춘희의 제 2막이 진행되고 있을 때 극장에 도착했다. 극장에서는 외국에서 온 프랑스 여배우가 폐병을 앓다 죽어가는 장면을 새로운 연출법으로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극장은 초만원이었다. 바깥 복도에 서 있던 예복을 입은 하인이 마치 친숙한 손님을 대하듯이 머리를 숙인 다음 문을 열어 주었다. 마리에트와 좌석을 묻자, 그는..

<R/B> 부활 (2부, 27) -톨스토이-

27 네플류도프를 페테르부르크에 붙잡아 둔 마지막 용건은 분리파 교도들의 사건이었다. 황제에게 바칠 청원서를 연대 시절의 옛 동료였던 시종 무관인 보가트이레프의 손을 빌려서 낼 작정이었다. 아침 나절에 보가트이레프를 방문한 그는 마침 출근 시간이긴 했어도 자택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날 수가 있었다. 보가트이레프는 작달막한 키에 떡 벌어진 몸집으로 편자도 구부릴 수 있을 정도의 보기 드문 장사였는데, 친절하고 정직하고 강직한 자유주의자였다. 이러한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궁정과 밀접한 관계에 있어서 황제와 그의 일가를 사랑했으며 이 최고의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그 좋은 면만을 보고, 좋지 않은 일에는 일체 개의치 않는 비상한 재주를 터득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남을 비난하거나 남이 하는 일을 비판..

<R/B> 부활 (2부, 26) -톨스토이-

26 "정말 젊은 사람에게는 그 독방 생활이란 무서운 것이에요."하고 아주머니가 머리를 흔들며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요."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아니, 누구나 다 같지 않아요."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진정한 혁명가에게는 도리어 휴식처도 되고, 안정도 된다고 남들이 말하더군요. 법을 어긴 사람은 항상 불안과 가난과 공포 속에서 살고 있지요. 자기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또 대의를 위해서 공포 속에서 살고 있어요. 그러므로 일단 수감이 되면 모든 것이 끝나고, 그런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는 셈이지요. 다만 가만히 쉬고 있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잡히면 그야말로 기쁘다고 말을 하더군요. 그러나 죄 없는 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 언제자 리도치카와 같이 아무 죄도 없는 순..

<R/B> 부활 (2부, 25) -톨스토이-

25 이튿날 아침, 네플류도프가 눈을 떴을 때 처음 느낀 것은 어제 무슨 추악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저것 돌이켜 생각해 보았으나, 별로 추악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으며, 또 나쁜 일을 한 것도 없었다. 그러나 확실히 나쁜 생각을 했었다. 이를테면 지금 그가 계획하고 있는 것, 즉 카추샤와 결혼하는 것도, 농민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는 것도, 모두 실현하기 어려운 공상일 뿐, 자기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모두 인위적이고 부저연스러운 것이므로, 전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행동이야 없었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것이 있었다. 나쁜 상념은 그러한 길로 완전히 끌어넣는 것이다. 어젯밤 자기가 했던 생각을 되살려 보고, 네플류도프는 잠시나마 자기가 어떻게 그런 것을 믿을 수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