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허공의 절벽 이야기는 좀체로 쉽게 끝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문밖 출입이 거의 없는 남평 이징의까지 근심스러운 걸음으로 올라온 종가댁 큰사랑에는, 중참이 기울 무렵, 어제 일이 하도 놀라워서도 그렇고, 오래간만에 강호가 왔다는데 얼굴도 볼 겸 바깥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듣고자 문중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절이 흉흉허니 나라에나 집안에나 전고에 없던 일이 연이어 꼬리를 물고, 만징패조가 그치지를 않는구만, 도무지 살아 있다는 것이 욕이 돼서... " 이기채는 그 한 마디를 겨우 깨물어 넘기듯 말하고는 아까부터 시종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어머니를 여읜 것만 해도 원통한데, 치장한 지 몇 날 되지도 않은 어머니의 청청하신 몸 옆에, 말 그대로 "웬 놈의 뼈다구인지도 모를 뼈."가 나란히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