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826

<R/B> 부활 (2부, 42) -톨스토이-

42 네플류도프는 그가 찻간에서 미처 나오기도 전에 작은 방울을 여러 개 단 준마를 서너 필씩 단 호화로운 마차가 역 구내에 머물고 있음을 보았다. 비에 젖어 거무스름해진 플랫폼에 내려서자, 일등차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 중에서도 값진 날개깃을 단 모자를 쓰고 비옷을 입은 키가 크고 살찐 귀부인과 사이클 운동복을 입은 후리후리하고 다리가 가는 청년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청년은 값진 목걸이를 한 크고 살찐 개를 데리고 있었다. 그들 뒤에는 비옷과 우산을 든 하인들과 마부가 마중나와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살찐 귀부인을 비롯해서 긴 코트 자락을 한 손으로 받들고 있는 마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신감과 유복함이 엿보였다. 이 일단의 둘레에는 부유한 사람에게 아첨하는 비굴한 사람들로 담이 이루..

<R/B> 부활 (2부, 41) -톨스토이-

41 네플류도프가 탄 찻간은 승객으로 반쯤 차 있었다. 그들은 하인, 직공, 노동자, 백정, 유대인, 점원, 여자들, 그리고 노동자의 아내들이었으며, 군인이 한 사람, 부인 같은 여자가 두 사람 타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자는 젊었고, 또 한 여자는 드러나 보이는 팔뚝에 팔찌를 낀 중년 부인이었다. 그리고 꽃모양의 모표가 붙은 챙 있는 검은 모자를 눌러쓴 위엄 있는 표정의 신사가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자리가 정리되어 안심이 되었다는 듯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해바라기씨를 까는 사람, 담배를 피우는 사람, 옆 사람과 활기차게 잡담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타라스는 네플류도프의 자리를 잡아 두고, 행복스러운 듯이 통로 오른쪽에 앉아서 맞은편에 앉은 단추가 풀어지고 소매 없는 외투를 입은 체구가 큰 ..

<R/B> 부활 (2부, 40) -톨스토이-

40 온종일 햇볕이 내리쬐는데다 사람이 가득 찬 삼등 찻간의 더위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으므로, 네플류도프는 찻간에 들어가지 않는 승강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윽고 열차가 거리를 벗어나 바람이 불어 들어왔을 때에야 비로소 네플류도프는 가슴 가득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렇다. 죽인 것이다."하고 그는 아까 누님에게 한 말을 혼잣말로 되뇌었다. 오늘 받은 모든 인상 가운데서 둘째 번 죄수의 시체의 미소띤 입언저리와 단아한 표정, 깎아서 퍼렇게 된 머리의 아래쪽에 삐져나온 조그맣고 도톰한 귀 등 아름다운 얼굴이 이상스러울 만틈 생생하게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사람이 살해되었는데도 누가 죽였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죽인 것은 사실이다. 다른 죄수들과 함께..

<R/B> 부활 (2부, 39) -톨스토이-

39 네플류도프가 타고 갈 열차가 발차하기까지는 아직도 두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이 사이에 다시 누님을 찾아볼까 생각했으나 아침부터 심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흥분하고 지쳐 있었으므로 일등 대합실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동안 몰려오는 졸음을 견디다 못해 드러눕자마자 손을 뺨에 괜 채 곧 곯아떨어져 버렸다. 연미복 가슴에 배지를 달고 냅킨을 손에 든 급사가 네플류도프를 깨웠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플류도프 공작님이 아니십니까? 어떤 부인이 찾고 계십니다." 네플류도프는 눈을 비비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으며 오늘 아침부터 무슨 일을 겪었던가 하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죄수들의 행렬이며 시체며 쇠창살이 있는 열차며 거기에 감금된 여죄수들이며, 그 중 한 여가가..

<R/B> 부활 (2부, 38) -톨스토이-

38 네플류도프가 역에 닿았을 때는 죄수들은 벌써 전원이 유리창에 창살이 달린 열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열차 가까이로 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탓인지 플랫폼에는 몇 명의 전송객이 서 있었다. 오늘이 호송병들에게는 유난히 성가신 날이었다. 감옥에서 역으로 가는 도중에 네플류도프가 본 두 사람 이외에도 세 사람이나 일사병으로 쓰러져 죽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처음의 두 사람처럼 가까운 경찰서에 수용되었고, 딴 두 사람은 역에까지 와서 죽었다 (1880년대 초에 부트이르스키 감옥에서 니제고르드 역으로 죄수들을 이송하는 도중, 하루 사이에 일사병으로 인하여 다섯 명의 죄수가 죽은 일이 있었음). 그러나 호송병들의 걱정거리는 호송 중에 더 살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죄수가 죽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R/B> 부활 (2부, 37) -톨스토이-

37 보초가 서 있는 소방서 옆을 지나 경찰서(당시 모스크바에서는 소방서와 경찰서가 같은 건물을 사용했다.)에 도착하자, 죄수가 탄 마차는 경찰서 구내로 들어가는 현관 앞에 멈추어 섰다. 구내에서는 소방수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큰 소리로 지껄이면서 마차를 씻고 있었다. 마차가 멎자 몇 사람의 경관이 가까이 와서 마차 주위를 둘러쌌다. 숨이 끊어져 가는 죄수의 겨드랑이와 다리에 손을 돌려 삐걱거리는 마차에서 안아내렸다. 죄수를 실어 온 경관은 마차에서 내리면서 저린 팔을 흔들고 모자를 벗고나서 성호를 그었다. 죽어 가는 죄수는 문에서 층계를 통해 2층으로 운반되었다. 네플류도프는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죽어 가는 죄수를 안고 들어간 좁고 조그마한 방에는 침대가 네 개 놓여 있었다. 두 침대에는 긴 잠옷을 ..

<R/B> 부활 (2부, 36) -톨스토이-

36 네플류도프는 죄수들과 보조를 맞추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는 얇은 옷에다 여름 코트를 걸쳤을 뿐인데도 지독하게 더웠다. 더욱이 거리를 뒤덮고 있는 먼지와 그들의 주위를 감돌고 있는 뜨거운 공기 때문에 숨이 콱콱 막혔다. 그는 2,300미터쯤 걸어가다가 다시 마차를 타고 갔으나 마차가 길 한복판에 나오자 더위가 한층 더 심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어제 매형과 논쟁한 것을 상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침처럼 그렇게 흥분되지는 않았다. 감옥을 떠나올 때의 인상과 이 행렬에서 받은 인상은, 그런 생각을 멀리 떨쳐 버리게 하고 말았다. 아니 그것보다 더위 때문에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울타리 옆의 나무 그늘에서 모자를 벗은 두 실업 학교 학생이 쭈그리고 있는 얼음 장수 앞에 서 있었다. 한 소년은..

<R/B> 부활 (2부, 35) -톨스토이-

35 죄수의 행렬은 꽤 길었기 때문에 선두가 시야로부터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배낭과 병약자를 태운 짐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짐마차가 움직이자, 네플류도프는 기다리고 있던 승합 마차를 집어타고 대열을 앞질러 가라고 일렀다. 그것은 남자 죄수들 속에서 안면이 있는 죄수가 없나 알아보기도 하고, 여자 죄수들 속에서 마슬로바를 찾아내어 그녀에게 보낸 물건을 받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찌는 듯이 무더운 날씨였다. 바람 한점 없었다. 천여 개의 발길이 일으키는 먼지구름은 길 한복판을 걸어가는 죄수들의 머리 위를 뽀얗게 맴돌았다. 죄수들은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에 네플류도프가 탄 마차의 느린 속도의 말로는 쉽게 그들을 앞지를 수가 없었다. 대열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이 낯설고 괴상한 인간들은 ..

<R/B> 부활 (2부, 34) -톨스토이-

34 마슬로바를 포함한 죄수 이송대는 3시에 역을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그 일행이 감옥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같이 역까지 따라가기 위해 네플류도프는 12시 전에 감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날 밤, 네플류도프는 소지품이며 옷과 서류 등을 챙기면서 일기장에서 최근에 쓴 부분을 드문드문 읽어 보았다. 그 마지막 부분은 그가 페테르부르크를 떠나기 직전에 쓴 것으로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카추샤는 나의 희생을 바라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려 든다. 그녀도 이겼고 나도 이긴 것이다. 그녀에게 내면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믿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그녀는 부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몹시 괴로운 동시에 즐거운 일을 경험했다. 그녀가 병원에서 좋..

<R/B> 부활 (2부, 33) -톨스토이-

33 "그런데 조카들은 잘 있나요?" 다소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네플류도프는 누님에게 물었다. 누님은 시어머니와 함께 아이들을 시골에 남겨 놓고 왔다고 대답했다. 남편과 동생과의 논쟁이 끝난 것을 다행으로 여긴 그녀는, 옛날에 네플류도프가 어렸을 때 검둥이라든가 프랑스 계집애라고 이름을 지은 인형을 가지고 놀던 시절처럼, 요즘 자기 아이들도 인형을 가지고 여행 놀이를 하며 논다고 얘기했다. "그걸 다 기억하고 계셨군요." 네플류도프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글쎄, 그 애들이 노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도 너와 닮았는지." 불쾌한 대화는 끝났다. 나탈리아는 마음이 놓였지만 남편 앞에서 동생하고 둘만이 아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세 사람이 다 아는 화제를 꺼내려고, 결투에서 외아들을 잃은 케멘스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