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둥둥 북소리가 났다. 마당이나 마루나 다같이 조용하였다. 무식한 신불출이는
도록책을 펼쳐들고 글자 아는 곽능통이는 성명을 불렀다. “이오종이.” “녜, 등대하
였소.” “김몽돌이.” “녜, 등대하였소.” “최오쟁이.”“녜, 등대하였소.”“안되살이.”
“녜, 등대하였소.” “정갑돌이.” “녜, 등대하였소.” “박씨종이.” “박씨종
이.” “박씨종이.” “신복동이.” “녜, 등대하였소.” “구봉득이.” “녜, 등대
하였소.” “장귀천이.” “장귀천이.” 장귀천이는 귀가 먹어서 못 알아듣고 가
만히 섰는 것을 옆에 사람들이 눈짓 입짓으로 가르쳐 주어서 “녜 녜.” 연거푸
대답하여 뛰어나왔다. “김억석이.” 전에 뒷산 파수꾼 패두이던 김억석이가 아
직까지 다시 오지 아니한 것은 다들 잘 아는 까닭에 곽능통이가 세 번까지 부르
지 않고 다음에 적힌 성명을 불렀다. “화선이.” “녜.” “춘선이.” “녜.”
“산봉이, 산봉이, 산봉이.” “백만이, 백만이, 백만이.” “차돌이.” “녜.” “
쇠돌이.” “녜.” “수동이.” 강수동,차수동이 수동이 둘이 쌍대답을 하였다.
“강수동이.” “녜.” “차수동이.” “녜.” “강득이.” “녜.” “몽득이.”
“녜.” “서노미.” 노미가 서노미,허노미,이노미 서넛이나 되어서 일껀 성까지
껴서 부르는데 허노미는 제가 불린 줄 알고 서노미보다도 앞질러 대답하였다가
다시 서노미 부르는 것을 듣고 뒤통수를 긁었다. 다른 졸개들은 이것을 보고 웃
음을 참느라고 입들을 악물었다. 홍기쪽에 있는 황두령은 가만히 한군데 섰을
뿐 아니라 많이 딴데를 보는 까닭에 졸개들이 소곤소곤 지껄이기도 하고 가만가
만 웃기도 하지만, 청기 쪽에 있는 길두령은 어떤 놈이 혹시 웃나 지껄이나 하
고 큰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까닭에 졸개들이 끽소리도
못하였다. 허노미와 이노미가 다 불린 뒤에 개똥쇠와 작은쇠가 불리고 그 다음
에 덜렁쇠가 불리었다. 덜렁쇠는 이름과 같이 사람도 덜렁이라 녜 대답하고 곧
쏜살로 홍기 쪽으로 건너갔다가 두목에게 볼치 맞고 다시 나와서 현신하고 들어
갔다. 연하여 불리는 이름 중에 존이,출이,녹이,복이,동이 같은 외자 이름도 꽤 많
고 삽살개미치, 자릅개똥이 같은 다섯자 이름도 혹있고 광노, 양필, 맹효 같은
점잖은 관명도 더러 있으나 강아지, 도야지, 부엌개, 마당개, 쥐불이, 말불이, 쇠
미치, 말미치 같은 천한 아명이 제일 많았다. 청기 아래 두목과 졸개가 하나도
남지 아니한 뒤에도 도록에 적힌 성명은 두서넛 더 있었으나 곽능통이가 부르지
않고 표를 질렀다. 해가 늦은 아침때가 지난 뒤에 점고가 끝이 났다. 북소리가
둥둥둥 나며 홍기 아래는 와글와글하였다.
도회청지기 소임을 가진 아이들만 남아 있고 그외는 다들 가라고 꺽정이가 영
을 내려서 두목과 졸개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갔다. 도록에 성명이 적힌 두목
과 졸개는 백 여명이 넘으나 점고받은 수효는 육십여 명밖에 더 아니되었다. 이
때까지 다시 오지 아니한 것들은 종내 오지 아니할 것이고 설혹 오더라도 받아
두지 않는다고 꺽정이가 사람 없는 빈 성명을 모두 꺾자 치게 하였다. 서림이가
곽능통이의 표지르던 붓을 달래 가지고 도록에 표질한 성명을 꺾자 쳐 내려가다
가 홀저에 붓을 멈추고 꺾정이를 돌아보며 “김억석이는 아직 좀 그대루 두구
보시지요.” 하고 꺾정이의 의향을 물었다. “어디루 갔는지두 모른다는 걸 두구
봐 무어하우?” “사람이라도 내놔서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럼 안
온 놈들을 다 찾을테요? 누군 찾구 누군 안 찾겠소.” “김억석이는 다른 놈들
과 다르지 않습니까.” “오, 배두령의 가시아비라구 찾아야 한단 말이오?” “
배두령의 장인두 되려니와 우리 청석골에 유공한 사람이 아닙니까.” “찾을 때
찾더라두 다른 놈들과 같이 꺾자쳐 두우.” 서림이가 꺾정이의 말을 드디어서
김억석이 성명까지 꺾자쳐 버렸다.
꺾정이가 먼저 가고 그 다음에 여러 두령이 각각 헤어져 갈 때 배돌석이가 서
림이와 같이 오다가 “그러지 않아두 나는 요새 집에서 졸려 못살 지경이오. 제
아비 제 동생을 찾아달라구 사람을 오복전 조르듯 하우.” 하고 안해에게 성화
받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일부러 내보낸 이야기를 않구 가만 내버려 두었으면
도망한 걸루 알구서 찾아달란 말두 못할 것인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해들리랍니
까?” “저의 부녀가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 나는 이야기 안하구 덮어두려구 했
었는데 올 정월 초생인가 보우. 싱검쟁이 오주가 놀러왔다가 죄다 이야길 해주
어서 오주 간 뒤에 미리 이야기 안했다구 포달을 떨어서 내가 한바탕 곤경을 치
렀소.” “결자해지루 곽두령더러 찾아다가 주랬으면 좋겠구려.” “우리 집에선
서종사더러 찾아달라구 야단이오.” “김억석이를 못 찾는 날이면 내가 칼침을
맞지 않겠소.” “하는 대루 내버려 두면 벌써 서종사에게 시비를 붙으러 갔을
는지두 모르지요.” “이거 큰일났구려.” 서림이와 배돌석이가 서로 보며 웃었
다. 얼마 앞서 가던 길막봉이와 황천왕동이가 두 사람의 웃음소리를 듣고 둘이
같이 돌아서면서 길막봉이가 큰소리로 “여보 성님, 서종사하구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우?” 하고 물었다.
“자네들은 못 들을 이야길세.” “우리 못 들을 이야기가 무어람?” “못 들
을 이야기라니 굳이 좀 들으러 갈까.” 길막봉이와 황천왕동이가 쫓아들 와서
“무슨 이야기들 했소? 역적모의했소?” 황천왕동이가 먼저 말을 붙였다. “우
리들 밤낮 하는 것이 역적모읜데 무슨 역적모의를 따루 한단 말이야?” “대장
을 들어내자구 하면 따루 역적모의가 되지 않소.” “빈말이라두 큰일날 말을
다하네. 자네가 광복산에서 혼구멍이 나구두 대장이 무서운 줄을 모르나.” “그
런 소리는 듣기 싫소. 고만두우.” “자네가 먼저 듣기 싫은 말을 하지 말지.”
“글쎄 고만두어요.” 길막봉이가 다시 황천왕동이 뒤를 이어서 “무슨 이야기
들 했소?” 하고 물으면서 배돌석이와 서림이를 번갈아 보았다. “배두령이 장
인과 처남을 못 찾으면 내외간 의초가 상하겠다구 나보구 사정 이야기를 하신
끝이오.” 하고 서림이가 웃음의 말로 말하였더니 길막봉이는 그저 들떼어놓고
말하고 황천왕동이는 “사정이 무슨 사정이요, 치사스럽게.” 배돌석이를 핀잔주
었다.
배돌석이가 황천왕동이가 대장 들어낼 역적 모의했느냐고 말한 것이 실없은
말이라도 귀에 거친데다가 또 서림이의 웃음의 말을 곧이듣고 정말 창피한 사정
이나 한 줄로 아는 것이 마음에 불쾌하여 배돌석이는 골이 난 것인데, 황천왕동
이는 배돌석이가 자기 말에 무안을 타는 줄로 짐작하고 풀어 말한답시고 “무안
해할 것까진 없소.” 하고 말하니 “무안하긴 무에 무안해? 별 기급할 소릴 다
듣겠네.”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소린 왜 지르우? 사람 귀청 떨어지겠소.”
“자네가 날 깔보는 모양인가?” “무안에 취해서 골이 났구려.” “글쎄, 내가
무안할 게 무어야?” “그럼 왜 골을 내우?” “골내는 게 잘못인가?” “그렇
게 골낼 것 같으면 내가 잘못했나 보우.” “골낼 것 같으면 잘못했나 보우?”
“잘못했다는데 다시 뇔 건 무어 있소?” “다시 뇌면 어쩔테냐?” “이거 막
쌈을 하러 덤비는구려.” “쌈할 테면 해보자, 너 같은 놈은.” “너 같은 놈이
라니.” 황천왕동이도 얼굴을 붉히었다. 길막봉이가 사이를 타고 들어서며 “이
러다간 참말루 쌈 되겠소.” 말하고 그 다음에 서림이가 “내가 공연히 실없은
말 한마디를 했다가 두 분 사이에 말썽이 되어서 미안하우.” 하고 말한 뒤에
“배두령 고만 갑시다.” 하고 배돌석이의 군복 소매를 끌었다. "도둑질을 해먹
구 살더래두 도둑놈의 의리는 있어야지.” 배돌석이는 황천왕동이를 노려보고
“내가 의리 없는 짓 한 게 무어야?” 황천왕동이는 배돌석이를 노려보았다. “
칠장사 부처님 앞에서 맹세할 때 이렇게 막보기루 했더냐!” “누가 먼저 막보
구 대들었기에 말이야.” “네가 대장 형님 내버리구 어디루 간달 제부터 맹세
를 소중히 안 여기는 줄 알았다.” “그런 웬 되지 못한 수작이야!” “되지 못
한 수작? 나는 된 수작 할 줄 모른다.” 배돌석이가 다시 한 번 “되지 못한 수
작?” 하고 뇌며 곧 서림이 손에 잡힌 소매를 뿌리치고 앞으로 내달아서 황천왕
동이에게 덤비려고 하였다. “이거 왜들 이러우. 글쎄 고만두우.” 길막봉이가
사이에서 가로막고 “졸개들이 보면 창피하지 않소? 고만두고 갑시다.” 서림이
가 뒤에서 붙들었다. 황천왕동이가 다시 아무 소리 않고 있었으면 배돌석이도
그럭저럭 그만두었을지 모를 것을 발끈하는 성정에 “덤비면 어쩔 떼야! 거먹초
립의 버릇이 그저 남아서 아무 데나 덤비려구.” 황천왕동이 뇌까리는 말이 타
는 불에 기름을 끼어얹은 것 같아서 배돌석이는 펄펄 뛰게 되었다. "오냐, 내 밑
천은 역놈이다. 너같이 밑천을 잘 찾는 놈이 어째 지지하천 백정놈 아들에게 누
이를 바쳤느냐! 이놈아, 거먹초립이 어떻단 말이냐. 말 좀 더 해봐라.” 뒤에서
붙드는 서림이를 떠다박지르며 곧 군복을 훌훌 벗어 내던지고 저리고 앞을 풀어
제치고 칼자국에 군살이 더덕더덕 붙은 가슴을 주먹으로 땅땅 쳤다. 앞에서 가
로막는 길막봉이를 밀어젖히려고 하나 잘 밀리지 아니하여 “저리 비켜라!” 소
리를 질렀다. “이거 무슨 짓이오?” “말리지 마라. 내가 오늘 죽든지 청석골을
하직하든지 할 테다.” “여보 좀 참우. 우리 형제들 새에 이래서야 말이 되우?
” “형을 형같이 안 아는 놈하구 형제가 다 무어냐?” “우리 가서 여럿이 모
여앉아서 시비를 따져봅시다.” “아니다. 내가 저놈하구 단둘이 따져볼 테다.
저리 좀 비켜라.” “글쎄 좀 참우.” “너까지 날 막보느냐?” “막보는 건 다
무어요?” “안 비켜 줄 테냐?” “못 비키겠소.” 배돌석이가 길막봉이를 잡아
먹을 것같이 노려보다가 “오냐, 안 비켜 줄 테면 고만둬라. 난 집으로 갈테다.
” 말하고 벗어던진 군복을 주워들면서 “우리 이따가 단둘이 만나자.” 하고
황천왕동이를 별렀다.
배돌석이가 나중에 황천왕동이를 말릴 사람 없는 데로 끌고 가서 단둘이 맞붙
어 톡톡히 해보려고 마음을 먹고 자기 집으로 가려들 때에 박유복이가 뛰어오고
또 뒤미쳐서 이봉학이 외 늙은 오가가 쫓아들 왔다. 졸개들이 어디서 보고 가서
말들을 한 것이었다. 박유복이는 배돌석이를 붙들어 세우고 늙은 오가는 배돌석
이의 군복을 입혀 주었다. “대체 웬일이오? 서종사 본 대루 이야기 좀 하우.”
박유복이 묻는 말에 “두 분 새에 말다툼 난 것이 귀기본하면 내가 웃음의 소리
한마디 잘못한 탓이오.” 서림이가 이야기 시초를 내놓을 때 이봉학이가 손을
저으며 “여기저기서 내다보는 것들이 창피하니 우리 어디 가 들어앉아서 이야
기합시다.” 하고 서림이의 이야기를 가로막았다. “대장댁 사랑으루들 가실까
요?” “아니 대장댁 사랑은 재미 없구 어디루 갈까. 좁더래두 우리 집으루 갑
시다.” 이봉학이가 배돌석이와 황천왕동이와 기외에 다른 사람들을 다 끌고 집
에 와서 계향이 모자를 다른 집으로 보내고 방을 치우고 들어앉은 뒤에 서림이
시켜서 두 사람의 말다툼한 것을 자초지종 이야기하게 하였다. 서림이가 두 사
람 면전에서 이야기를 하는 까닭으로 한편에 치우치지 않도록 말을 극진히 조심
하고 옥신각신한 말을 옮길 때도 연해연방 길막봉이를 돌아보며 틀림이 없느냐
고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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