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난중일기 (3.3.1)

카지모도 2024. 1. 17. 06:34
728x90

 

-독서 리뷰-

 

<난중일기>

-이순신-

 

***동우***

21.01.01 05:25

 

이순신의 '난중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젊었을적 문고본(을유문고였던가)으로 읽었던 난중일기.

군더더기없는 문장.

그 때, 그 칼끝같은 리얼리즘에 어린 가슴에도 서늘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세월 흘러 김훈을 만났지요.

'칼의 노래' (오래전 리딩북에 올린).

 

한 인간의 운명.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다하여 군인으로서의 기능적인 삶을 지향할수 밖에 없는.

스스로의 허무와 남을 향한 연민의 극복.

公께서는 그토록이나 엄청난 고뇌 속에 살다 가셨습니다.

김훈은 이순신의 칼처럼 단호하게 이순신의 내면을 보여주었었지요.

 

차츰 지껄이기로 하고.

일단 난중일기를 번역한 노산 이은상의 글을 먼저 올립니다.

 

이순신의 지극한 순정함으로 엄정하고 지극한 단호함으로 단순한, 난중일기 함께 읽어요.

 

***동우***

21.01.01 05:27

 

시절이 하 수상하여도,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벗들이여.

모쪼록

강건합시다.

행복합시다.

 

***동우***

21.01.03 05:33

 

오늘 올린 글. '리더십의 원천을 찾아서'.

이순신에 대하여 다소 상투적이고 어찌보면 관료적인 느낌의 글입니다.

긂쓴이가 법률가여서 그럴까싶습니다만.

 

이순신이라는 신비한 인물의 내면.

김훈의 '칼의 노래'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오래 전 리딩북에 올린 '칼의 노래'와 병행하여 '난중일기'를 읽는다면 좋을듯 합니다.

 

***동우***

21.01.06 07:23

 

'칼의 노래'에 실려있는 충무공 연보를 올립니다.

'난중일기'를 읽을 적에 많은 도움이 될겁니다.

 

아래는 김훈이 '칼의 노래' 책머리에 쓴 글입니다.

 

++++

[책머리에]

 

2000년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내 적막은 아주 못 견딜 만하지는 않았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 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서 겨우내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 듯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 나는 자주 아팠다.

 

눈이 녹은 뒤 충남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여러 번 갔었다. 거기에, 장군의 큰 칼이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놓은 날 내 마지막 바다 오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으로 적을 맞으리.

 

다시, 만경강에 바친다.

 

-2001년 봄 김훈-

++++

 

***동우***

21.01.11 05:40

 

본격적으로 이순신의 난중일기, 연재 시작합니다.

公께서 쓰신 月別로 나누어 60회 정도 될것 같습니다.

함께 읽어요.

 

***동우***

21.04.03 03:27

 

작가 '김훈'과 '난중일기'의 만남.

 

김훈 작가는 그때 『난중일기』도 만났다.

 

그를 뒤흔들고 변화시킨 또 하나의 결정적인 장면. 그 책에는 희망이 없고 절망만 가득했다. 『난중일기』를 처음 만난 청년 김훈의 단상이었다. “대단히 훌륭한 책도 아니요, 단지 매일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장수의 병영일지였다. 절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통과하는 이순신의 모습이 있었다. 위대한 장군이 아니라, 매일의 싸움을 뚫고 나가야하는 인간의 모습을 봤다.” ‘성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

 

이순신, 『난중일기』를 만났던 때가 3학년1학기. 다음 학기, 37개월의 현역으로 입대했다. 그것으로 학교와는 안녕이었는데, 전방 보초를 서면서 그는 『난중일기』를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어느 날, 돌연 연필을 들고 『칼의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난중일기』이후의 간격을 나름대로 완성해가는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난중일기』는 책을 읽은 뒤 35년, 혹은 이순신 장군이 일기를 적은 시대로부터 400년 후에 태어난 젊은이의 책을 바꾼 책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안에는 아름다운 문장이 있는 게 아니다. 매일의 싸움을 감당해낼 수밖에 없는 무인이 있을 뿐이다. 문장가도 아니요,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고 아군을 지키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 그럼에도, “그분의 문장이 무척 좋았다.”

 

일기의 한 대목. 진주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적은 글이다. 해군은 그 전투에 직접 관여할 수가 없었고, 전령을 통해 그 소식을 전달받았다. 속수무책의 이순신 장군. 일기를 썼다. 철저히 사실만.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를 했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슬픔, 비통함이 적지 않았을 것이나, 무인의 고통이 그 문장 안에 다 있다. 깔끔하고 냉엄한, 무인이 칼 한 번 휘두른 것 같은 문장이다.

나는 그런 문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칼의 노래』에서 그 문장을 흉내 냈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를 죽이는 날도 선명하게 글을 썼다.

무자비한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해야 했던, 그는 장군이었다.

 

“(일기에) ‘거듭’이 나오면 무서웠다. 거듭 군율을 어겼다. 이런 식이다. 그러면 죽을 거거든. 그분은 부하를 베었다, 라고만 썼다. 딴 말이 없다. 그리곤, 저녁에 바람이 불었다, 로 끝났다.

그 글이 미치도록 아름답게 느껴졌다. 해군은 바람이 불면 뻘 위로 배를 올려놔야 한다. 배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그러니 개인 정한이나 원한이 없다. 저녁에 바람이 불었다, 에는 말하지 않은 슬픔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 나는 그런 문장을 지향하고자 했다.”

 

김훈 작가는, 소설을 써야 했다.

 

『난중일기』는 완전하지 않았다. 불완전과 혼란에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그 책을 읽는 사람에게 또 다른 길을 찾게끔 만들었다고 그는 생각한다. 책에 세계의 완전함이 있었다면, 그는 무엇이 됐을까. 그는 말한다.

“소설가가 아닌 성직자가 됐을 것이다.”

미완성, 불완전에 의지해서 또 다른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소설을 써야 했다.>

 

난중일기, 내일 마지막 분입니다.*

 

'내 것 > 잡설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지만 확실한 행복>(3.3.1)  (0) 2024.01.17
<아우라지 가는 길> (3.3.1)  (0) 2024.01.17
탁류 (3.3.1)  (0) 2024.01.14
부활(3.3.1)  (0) 2024.01.14
백범일지 (3.3.1)  (0) 2024.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