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심이는 고개를 옆으로 꼬고 안서방네는 웃기만 한다.
"체를 이 그녁 뚫린 체를 걸어 노먼 되야. 마당 가운데다가 지드란헌 장대를
높으댄허게 세워 놓고이. 그곡대기다가 이 체를 딱 둘러씌워 놓는 거여.
벙거지맹이로. 될 수 있으면 구녁이 아조 촘촘허고 많은 놈으로."
"크면 더 좋것네? 쬐간헌 것보돔."
"하아, 그렇제이."
"근디, 체가 왜 야광귀 막는 비방이다요?"
그런 이야기는, 철재를 무릎에 앉힌 율촌댁한테서도 나왔다.
집안의 주부로서, 바깥에서 주재해야 하는 일은 효원의 몫이었고, 방안에서
이루어지는 마른 일은 율촌댁이 하는 까닭에, 율촌댁은 손자를 데불고
옛날이야기도 하면서 잠시 재롱을 보는 것이다.
"저도 하늘에서부터 내려오자면 먼 길이라 다리가 아프지 않겄냐. 그래서
마당에 내려앉기 전에 어디 앉을 만헌 데가 없는가아 둘러본단다. 쉴라고.
그래서 장대 끝에 앉은 게야. 넓적헌 물건도 하나 뵈니 오직이나 쉬기에 좋아?
헌데 앉고 보니 이게 생전에 본 일이 없는 것이거든. 테는 동그란데
밑을.....구멍이 촘촘 뚫렸으니. 이게 뭔고. 테 눈이지. 그래서 야광귀는 대체
이 체에 눈이 얼마나 되는가 하고 세어 본단다. 하나,둘,서이,너이, 그런데 체란
것이 눈이 좀 많으냐? 고고마한 그 눈을 세 나가던 이놈이 그만, 어디까지
세었더라? 잊어 버리고 말었네. 그래 다시 처음부터 하나.둘.서이.너이.제기
시작했지. 그러다가 또 모르게 되고, 그러면 다시 세다가 또 잊어 먹고, 몇
번이나 새로 해 봐도 잘 안되니 밤새도록 체를 붙들고 끙끙 씨름을 할 밖에.
그러는 동안 닭이 울고 동이 트면, 할 수 없이 야광귀는 그냥 빈 손으로 하늘로
올라간단다."
이제 이 그믐밤만 지나면 설을 쇠고 한 살 더 먹어 세 살이 되는 철재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재미가 나서 눈을 반짝이다가도 이내 졸리운지 작은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였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자면 안되야. 눈썹 센다."
철모르는 철재는 할머니 말에 초저녁부터 눈을 비비면서도 어찌어찌 가까스로
버티더니, 아까 참에 그만 시르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신원. 혹은 원일이라고도 하는 정월 초하루는 바로 일년이 시작되는 새해의
첫날이니 명절 중의 명절이여, 날 중의 날이라.
정중하고 경건하게 맞이해야 하기에, 며칠전부터 집 안팍을 깨끗하게 치우고,
차례 올릴 준비를 하며, 식구들 설빔도 빠지지 않게 새로 지어야 하니, 이렇게
바쁜 날, 천하 없는 게으름뱅이라도 부지런히 일을 하여 설 준비를 해야 하는
그믐날, 누구라서 잠을 잘 수 있으랴.
그런데도 만약 잠자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눈썹이 하얗게 세어 버린다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잠들지 않으려고 선하품을 하다 하다가 끝내 못 이기어
잠들고 나면, 아침에 정말로 눈썹이 희어져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밤새
장난스러운 누군가가 밀가루를 발라 놓은 것이다.
동지가 막 지나면서부터 석달로 내달아, 이미 그때부터는 온 마을의 집집마다
밤이면 다듬이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이불 빨래·요 빨래와 묵은 옷 빨래들이
마당에 하얗게 널리어, 엷은 겨울 햇발에 눈이 부시었다.
아무리 살림이 궁하고 옹색한 집안이라 할지라도 어른의 세장은 한 벌 짓기
마련이고, 아이들 때때옷도 어떻게든 준비하는 석달은 눈만 감았다 떠도 하루가
지나갔다.
그런 섣달의 스무나흗날.
이날은,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이 하늘로 올라가 한해동안 그 집안에서 일어난
좋은 일과 궂은 일,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낱낱이 고하는 날이라 하여, 집집마
다 주부는 어느날보다 일찍 일어나 부엌에 들어가서 깨끗이 청소하고 부뚜막을
닦았다. 그리고 국솥단지 밥솥단지가 나란히 걸린 부뚜막의 뒷벽 한가운데 턱을
자그맣게 만든 조왕단에 정화수를 올렸다.
"부디 잘한 일은 고하시고, 낮은 일은 다무소서."
어느 해였던가. 문중의 동촌댁은 조왕한테 빌면서, 아궁이에 엿을 철썩 붙였
다고도 하였다. 자기가 잘못한 일이나 집안에서 일어난 좋지 못한 일은, 하늘
로 올라간 조왕이 옥황상제한테 고해 바치지 못하게 그런 것이다. 아궁이에 엿
이 붙어 조왕이 아예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거나, 나왔다 하더라도 입이 붙어
버려 무슨 말을 할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아낙의 소행이리라.
조왕을 섬기는 일만은 부리는 것들이 할 일이 아니라, 효원은 언제나 이른
새벽 맨 먼저 우물로 나가 아직 아무도 들여다본 일이 없는 새 물을 정하게
길어 흰 사발에 정성껏 붓고, 두 손으로 받들어 단에 올렸다.
이것을 단 하루라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
누구를 대신 시키는 일도 없었다.
부엌이 어찌 단순히 밥을 지소, 반찬을 만들며, 먹은 그릇 설거지만 하는
곳인가. 이곳은 성소였다. 한 집안의 생·사·화·복의 근원이 부엌이었다.
인간이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그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 아니면 무엇으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조왕신은 온 가족의 수명을 지켜 주고 다치거나 병들지 않게 살펴
주는 신이며, 불은 곧 재물을 뜻하는 것이라, 조왕님의 조화여하에 따라 집안의
재운이 움직인다고 하였다.
이 부엌의 아궁이에 때마다 끼니마다 붉은 불길 가득하고 솥전에는 더운 김
뿜어나는 것이나, 불 꺼진 재 써늘히 쌓여 빈 솥단지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이 다 조왕신의 바른 뜻에 달린 것이었다.
효원은 정화수를 올리고 나서 아궁이 앞에 단정히 앉았다.
이때는 키녜나 돔바리나, 콩심이, 안서방네, 집안에 일하는 다른 사람 누구도
함부로 부엌을 기웃거려 들여다볼 수 없었다.
주변이 정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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