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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6권 (1)

카지모도 2024. 9. 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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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지정무문

 

혼인하면 반드시 따르는 것이 사돈서였다. 이는 일생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부녀자로소 각기 그여아와 남아를 성혼시키고 난 후에, 서로 얼굴도 모

르지만 시 세상에서 제일 가갑고도 어려운 사이가 된 안사돈끼리, 극진한 예절

을 갖추어 정회를 담은 편지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양가의 정의를 더욱 두텁게

하고, 자식들의 근황이며 집 안팎 대소사를 마치 같이 겪어 나가는 것처럼 이야

기로 나누는, 정성과 격식이 남다른 편지였다. 허물없는 친구에게 흉금을 털어놓

는 사신이 아니면서도 자식을 서로 바꾼 모친의 곡진한 심정이 어려 있고, 그런

중에도 이쪽의 문벌과 위신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 푹격을 지녀야 하는 사돈서

는, 조심스러우나 다감하였다. 궁체 달필로 문장을 다하여 구구절절 써내려 가는

이 편지는 신부와 신랑의 어머니인 안혼주들이 나누었는데, 첫 사돈서는 대개

시댁으로 초행가는 신부 편에 신부측의 어머니가 보내는 것이 정례였으며, 그에

대한 답장은 신랑의 어머니가 시집온 뒤 처음으로 친정 어버이를 뵈오러 근친가

는 며느리에게 동봉하여 보냈다. 물론 처음 것은 그리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수시

로 인편이 있을 때마다 편지를 교환했으니, 문장 필재가 뛰어난 부인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었으나, 문필이 버젓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럴 만한 자리

에 가서 부탁하여 대필로 써 보내는 예도 많았다. 편지를 쓸 줄 몰라 그런 사람

도 있었고, 또 혹시 무슨 흉이나 잡히면 어찌할까, 저어한 탓도 있었다. 그래서

글씨 좋고 문장 좋은 부인들의 집에는, 멀리 보낼 사돈서를 써 주시라 청하는

안손님들이 그칠 새 없었으며, 낮의 일과를 다 마친 뒤 등촉을 밝히고 홀로 앉

은 그부인은, 밤을 새워 백지 위에 붓으로 말을 달려 심금을 적어 나갔다. 심지

어 어느 때는 한 장 두 장이 아니라 서너 너덧 한꺼번에 밀리기도 하여 온 동네

사돈서를 도맡아 쓰노라고 밤마다 밤을 밝혀 잠을 못 이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 무엇 하여도 안혼주 자신들이 손수 붓을 들어 먹을 적시고 한 자 한 자 바

늘땸 뜨듯이 적어 나가는 사돈서만한 것이 어디 있으랴. 그런 편지에는 국화 무

늬, 매화 무늬, 용봉보다 섬세하고 찬연한 수가 놓여 정회를 꽃피웠다. 덕문화벌

(덕행이 높은 가문, 세상에 그 이름이 널리 드러난 높은 문벌)을 매양 흠모하여

혼사 맺기 원하던 중, 하늘이 헤아리사 남중호걸 사가에 태어나니 떠오르는 밝

은 해 아침빛을 두르온데, 길일을 맛택하여 혼사를 언약한 후 굴지계일(손곱아

기다리며 날 수를 헤아림) 하얍든바. 혼사 당일 날이 좋아 청색이 조요하고 일기

화락 화창한데, 일행이 무사 행차하시어 만인 좌석에 성동선녀 신랑 신부가 합

환, 교배하온 후, 현서(어진 사위) 자세 뵈오니 맑은 용모 준수하심 늠름하고 현

현하여 우두머리 풍채로서 남 위에 우뚝 솟고,일월 정기 강산 기상 두 눈에 품으

시어 생기돌올 표표발월, 광채영롱 빼어남을 견줄 이가 바이 업더이다. 택서고망

(사위를 맞고자 간절히 고대하던 마음)에 흡족 넘쳐 쾌활 경사 단 이슬을 마시고

하늘에 오르난 듯 기껍사오니, 이 즐거운이 마음을 어디에 비유하오리잇가.

선동선녀 넘노사 꽃 나비 어울리는 양을 보오니, 우리 사형제(사돈끼리 서

로 다정히 칭하는 말)가 누리는 자식 영광 인세지락이 이제서야 다른 이들에 비

등하올 듯. 혼사 초에 가득한 심회를 금할 길이 업삽내다. 날 사이 양춘 일색 봄

빛이 무르익어 먼 산 춘애 아지래이 연 두 버들 어루는데, 기체후 만복 평안하

시니잇가. 슬전에 도령씨 남자 중에 영걸로 자라오심 치하옵사며, 귀문 당내 합

절이며 겻 사돈 가내 친지 두루 무사하옵시고, 각 댁에 여러 친척 화안득하압신

가 색색향회 일일이 여쭈오니, 눌러 짐작 하소서. 차처사제도 근간 재미에 들떠

여간 질병은 감히 침하지 못하난 듯 아플 틈이 업사옵고, 외당께서는 집 떠난

지 해포인데 안신(안부를 묻는 편지. 편안하다는 소식)은 종종 하시나 귀국ㅎ지

못 염려옿며, 슬하 내외 현탈 업사오나 며느리는 사빈고역(바닷가의 땅에 널리

깔려 있는 모래처럼 많은 힘든 일)으로 몸이 허약해져 거동 중난이온데, 유순 부

덕이 한점 부족업난 요조숙녀라 온연 깃브오며, 기차 오남매 충실하고 무탈하여

면면공부 열심이니 홍왕이 진진하온 일 또 깃브옵내다. 여아는 달포 가량 누워

지내는 것이 마음에 걸리오며, 시속 나이사 어리다 하리까만 무무고촌 볼 것 업

는 외딴 마을에 아모 배운 것이 업사옵고 타고난 약골이라, 밧사장 채과안목 높

으신 눈에 근사하지 안으실 일, 너무나 부족하와 부끄러운 얼굴을 둘 곳 업사오

이. 하온데도 우리 현서께서는 노해(언짢은 기색) 업시 만면에 화기 가득하고 덕

성 기품 은은사심이 뵈올사록 그윽하여 유중하나이다. 저희 대택(큰집) 안신은

종종 있고 평안히 계시오나 금번 일에 아모도 못 오시니 엇진 일인지 용려되고,

시외댁과 대소댁 별고 업시 지내시나, 친신(친정 소식)만은 아득하여 구름너머

먼 길 끝에 마음 홀로 헛부오이다. 사형씨요, 보내는 물건(대례 후에 신랑과 상

객 일행이 받은 큰상의 음식을 그대로 고이 싸서 시댁으로 이고 지어 보냄)은

명색일 뿐 이렇다 할 것 흉내도 못 내엇스니 오직 이 같기를 부끄러이 여기업

고, 고등 물가에 일체 아모 생각업시 지나다가 이렿듯 몰몰하와 사돈내 여러 어

른 낙심 섭섭하시올 일 멀리서도 생각하면 우피 참면, 다만 얼굴이 붉어질 따름

이니이다. 널브신 도량이시로 깊이 양찰하옵시기만 간절히 바라오이다. 밧사장께

옵서 머무지도 아니시고 손님갓치 훌훌이 떠나시니, 대접도 못해 드려 죄황하기

그지 업삽내다. 마음에 둔 정담이야 그칠 길이 업사오나, 분주한 중 몇 말씀을

점점 대강 긋자오니, 능문 고견 사형씨의 높으신 혜안으로 눌러 묵상하시옵소서.

을유 삼월 순이일 사제 상장

구구절절 심경을 아로새긴 명문장에 정취 기품이 깃들여진 신부의 모친이 보낸

사돈서를 받은 신랑의 모친은 이에 화답하니. 귀문존가에 진진지의(혼인한 두 집

의 사이좋은 것을 이름)를 맺어 결약한 후 정한 날이 신속하와, 만복 초례를 떠

나 보내압고 먼 길에 일기 행여 엇더할가 사념되더니, 당일 날씨 온화 난만 그

곳 향운 자옥하여 장래 오복이 창홍할 기 가득하니, 상서롭고 댜행한 일 심중에

여겨지더이다. 회편에 보내신 결속 물건, 오신 듯이 받자옵고 상하로 가득 모여

만실 희열 깃븜이 넘치는데, 굉장하신 범절에도 놀라오며 만장정찰(길고 긴 사연

에 따뜻한 정이 가득 어린 편지) 살피오니, 귀한 말씀 우러난 정이 구구이 구슬

이요, 자자이 영롱하니, 비단 위에 꽃이 핀들 이보다 더 고우릿가. 이곳 사제 옥

망기대 흐뭇 넘쳐 우매한 천견에도 황홀하압나이다. 이곳 만보부아(보배로운 며

느리) 성품이 아름다워 선성이 상하로 자자하며 듣는 이 보는 이가 모다 칭찬

칭송하니, 밧주인께서 희색이 만안하여 단순을 더 지 못하시매, 십칠 년 택부고

망(며느리를 맞고자 간절히 고대하던 마음)에 조금도 모자람 업시 흡호 흡만, 세

상 재미와 흥겨움을 혼자다 누리시오이다. 돈아(미련하고 철없는 아들) 오면 다

시 그곳 정곡 정성스레 들을 터이다, (답례로) 보낸 물건 볼 것 업서 신사초 (새

일 머리)에 허무 섭섭 하실 일이 멀리서도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나이다. 차시

춘일이 새로 압고 세상 만물 움이 트는 맹동시에 연하와 기체후 심려 신중 만수

강녕하압시고, 약약 시진처(눈으로 몸을 보아 그 변화로 병을 알아내는 곳) 업사

오신지. 밧사장께압서 해포 이가(집 떠남)하압신 일 위렴시대에 조인 용회(마음)

엇더하시리요. 신사초에 밧사장 집을 떠나 먼 곳에 가시고 여간 허성하실 것이

오나, 새서방님 특출하신 줄 든든히 믿으오며, 슬전의 젊으신 댁 내외분 허다 중

임이신 중 안녕하신지 못재 궁금하온데, 아직 농장(사내아이가 구슬을 가지고 논

다는 뜻. 즉 아들을 낳음)이 천연하심 답답하오나, 신년 길운 늦게야 손자 재롱

만년 농주(아들)를 무릎 위에 안으실 듯. 이곳 천만 가지 보배로도 비하지 못할

부아도 혼례 후에 편안히 지내온데, 옥부(옥같이 고운 살결) 방심(꽃같이 아름다

운 마음)이 수척하지 아니온지, 시어미 무능하여 잘 추스리지 못한 것이 오직 못

내 송구하옵내다. 슬전에 도령씨 삼남매 분 무양(별 탈 없이) 충장(가득 차서 씩

씩함) 심려 업스시며, 면면이 여룡여호 용 같고 호랑이 같으신 난형난제 형 아우

구별이 어렵도록 자라오심 치하 부지(엄지손가락)압고. 지촌(친정 지명) 문후와

용계(외가 지명) 안후는 자로 듣사오시와 심려 업사오시닛가. 신사초에 갓득 향

모 간절하여 부리압지 못하올소이다. 대소 각 댁이며 일가 친지들도 두루 평안

사시온가 여짜오며, 이곳 사제도 누운 통증은 업사오나 일간은 흥이 나고 재미

로와 괴로움을 모랄 듯. 밧주인 승화만득 늦게 얻은 아이를 고이 길러, 이제야

저희들 봉황상을 지어서 슬전에 있게 하니, 죽어도 여한이 없을 듯 밖에서 지내

다가도 조석으로 부아의 아담한 용모 상상 귀해 연가(너인가) 보고저 하시니 겻

보기 든든하옵고 흐뭇하오나, 돈아는 본대 무심할 뿐입내다. 늦게야 저를 길러

무무고촌에 아무 교훈 업시 자라나서, 어리석고 우매하여, 사돈네 현당 안목에

닿지 안으실 일 만망하오나, 장래 오복 기상에는 그닷 염려업스리이다. 둘째 것

무사하나 약한 몸이 말라 걱정이옵고, 숙전 종반 각각분 여전하시니 다행이오며,

시숙 내외분 여전하압신데 질부 내외 무고하여 든든. 하마 여러 종반간에 교왕

하던 중 두루 다 무사하시니 천천만행이옵나이다. 시매 평안 소식 틈틈이 듣자

오니 조이압고, 찬정 소식도 간혹 받자오니 조이오리부오이다. (보내주신 물건과

서찰에 대한) 소위 상답 명색은 모양도 갖초지 못한 것이 무무(무식하고 예절에

어두워 언행이 서투름) 초초(다듬을 새 없어서 거칠고 간략하여 볼 품 없는 모

양)하오니, 사돈 섭섭하실 뿐 아니오나 부아 어린 마음에 낙심할 일 걸리오이다.

장래 오복에 무관하오니 그리 위안하시소서. 설마 물견 업슬가 하다 이덧 하오

이다. 퇴상(혼인 대례 후에 신랑,상객 큰상 물린 음식) 결속은 너모 과렴, 만당첨

시(방안에 가득 찬 사람들이 눈을 휘둘러 봄) 생색이 그지업삽고, 저의 정성 명

색은 이리 초초 무색 참안하여이다. 돈아는 얼마 안여 보내 주시압기 바라오며,

사가 일택이 다 모두 안과태평하시압기 바라나이다.

을유 삼월 염팜일 사제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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