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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5권 (55, 完)

카지모도 2024. 9. 5.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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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로 허우적이듯 두 팔을 벋는다. 발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것이다. 마음

이 다급해진다. 이윽고 뜬걸음에 오류골댁 살구나무 검은 둥치 이만큼 당도한

그는. 거짓말처럼 눈앞에 흰 달빛을 받으며 흰 그림자같이. 사립문 곁에 붙박인

듯 서서 하염없이 고샅을 내다보고 있는 강실이를 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뜻밖

에도 그네가 밖에 나와 서 있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아니 이거이 헛거이냐. 참

말이냐. 내가 가새 눌링 거 아니까? 어쩐 일이여. 이날 이때 문밖에는 시암질에

도 안 나간다는 작은 아씨가 어쩌자고 이 밤중에 사립문ㅇ에 나와 섰이까. 달마

중을 헐라고 나와 섰능 거잉가. 아디 먼 디로는 못 나강게? 그런디 시방 집안에

는 아무도 없능게빈디. 저렇게 씻은 디끼 죄용헌거이 인기척도 없고 헤기는 오

류골양반 동산으로 달 맞으로 가고 어무이는 다리 밟으로 모다 나갔으먼 그렇기

도 허겄제. 아이고. 이럴 수가 있이까. 달님이 내 기도를 들어줬능게비다. 내가

그렇게도 간절허게 빈 것을. 오냐 알었다. 달님이 들어주셌능게비다. 그렇지 않

고서야. 그런디 작은아씨는 왜 저러고 넋이 다 나간 사람맹이로 저러고 섰이까

잉. 문간에가.

아하. 누구를 지달리능게비구나. 안 오는 사람. 행이나 오능가 허고. 멩질날잉

게. 정월 대보름 멩질날잉게. 어디 먼 디 타관으 갔다가도 멩질에는 돌아옹게.

나는 누구 지달리는지 안다. 아는디. 안 올 거이여. 안 오제. 아먼. 애가 녹게 지

달러도. 살어서 귀신이 다 되게 지달러도.

작은아씨. 그 사람은 안 오요. 안 올 거이요.

이미 떠나 분 사람 아니요오. 멋 헐라고 그렇게 지달리시오.

그 대신에 지가 왔습니다. 작은아씨.

저요. 춘복이.

나는 달을 봤어라우. 달을 봤지요.

정월 대보름 둥근 달을 맨 몬야. 내가 맨 몬야 보고. 나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작은아씨. 작은아씨가 내 사람 되게 해 도라고. 그 말이 맞그만요. 달 보먼 소원

이 이뤄지다드니.

작은아씨. 그 달은 무서웠지라우. 빠지먼 죽을 것 같고. 그거이 덮치먼 죽을

것 같고. 거그 빨려들먼 죽을 것 같었습니다.

그런디. 나는 그 달을 빨어 생켰소.

내 이 한 몸뗑이. 내 뱃속으다가 그 달을 다아. 다아 빨어딜였소.

마지막 한 방울끄장 그 달빛을 그 무섭고 짚은 소용돌이. 누우런 황금 붉덕물

을 그 달빛을 나는 다 빨어 생ㅋ소. 흡월을 했소. 끝내는 그 달뎅이를 통째로.

그래 달이 내 것 되야 부렀소. 달이 내가 되고 내가 달이 되야 부렀소. 작은아

씨 같은 그 달이. 내 속으로 밀물져서 들으와 발 등에 차고. 발목에 차고. 물팍

끄장 차고. 뱃속으로. 모가지로. 가심으로. 머리 꼭대기 정지백이로 그득히 차 올

랐소. 어쩔 거이요. 작은아씨. 내 온몸에 작은아씨가 숨도 못 쉬게 차 올라서. 이

몸뗑이 서러운 육신이 저 보름 달맹이로 목메이게 부풀어서. 내가. 작은아씨를

배 부렀는디. 인자는 어쩔 거이요. 낳야제. 낳야지라우. 나는 이렇게 온몸에 작은

아씨를 달같이 벴응게. 작은아씨는 인자 내 자식 하나 낳아 주시오. 그거이 내

소원이요. 달 보고 빈 소원이요.

아아. 달 같은 작은아씨.

작은아씨. 내 사람 되시오. 나도 새 세상 살고 잡소.

작은아씨도 인자 나랑 새 세상 한 번 낳고 살어 보십시다.

나는 선산에도 댕게왔소.

다아 댕게왔소.

이보시오. 작은아씨.

춘복이는 얼른 담벽 쪽으로 몸을 붙이며 숨을 죽이었다.

그리고 강실이를 향하여 눈빛을 모았다.

마치 꿈을 구다 나온 사람처럼 허망하고 처연한 모습으로. 성에가 허옇게 어

린 저고리의 흰 옷고름 하나 나부끼지 않는 앞섶을 두 손으로 붙움켜 누른 채.

고개를 들어 검푸른 겨울 밤 하늘의 깊고도 깊은 물 속 한가운데 그 무슨 시린

소원처럼 얼음 박힌 달을 우러르며 오래오래 서 있는 강실이. 그네는 윤기 잃어

여윈 머리 위에 달무리를 에이도록 푸르게 두르고 서 있었다.

춘복이는 그네의 희고 푸른 모습을 조금씩조금씩 깊은 숨으로 빨아 들이기 시

작하였다. 마치 아까 거멍굴 무산의 동산 날망 바윗돌 위에 서서. 두 팔을 벌리

어 가슴을 내밀고

"달 봤다아."

함성을 지르며 있는 힘을 다하여 두려운 달을 들이삼키던 그때처럼.

무서운 힘으로 강실이를 흡인하는 춘복이 기운에 삼투되는 것일까. 강실이는

멀리서 보아도 완연 창백해지면서 백지장보다 더 얇고 희게 바래어. 펄럭. 그대

로 쓰러질 것만 같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춘복이는 조금도 눈빛을 늦추지 않고. 제 핏줄의 끝 끝에까지 강실이가 빨려

들어 차 오르도록 숨을 들이켠다. 흡월하듯이.

아아. 무엇 하러 달은 저리 밝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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