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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6권 (51)

카지모도 2024. 11. 8.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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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네?"기표는 칼침 꽂는 음성으로 안서방네 말을 다잡아 되받았다.

"갔다가 기양 저물엇그만이요."

"참 한가한 사람이로구만. 오늘 저녁에 집안 우환이 있었는가 보든데. 무슨 정신

에 아랫몰까지 마실을 다닐 수 있는고? 암만 종이라고 심정 스는 것이 그래 가

지고서야."

기표는 못박는 소리를 뱉었다. 그럴 것까지는 없었으나 일부러 그처럼 모진 말

을 한 것은, 혹 그 말을 듣고 욱성이 치밀어 억울한 김에 어떤 엉뚱한 속내 이

야기를 털어놓을 수도 있으리라는, 계산이 깔린 일침이었다. 아무래도 안서방네

기색이 어디 한들한들 마실 갔다 오는 사람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또 안서방네

는 그렇게 밤 이슥한 시각에 삼경이 가깝도록 놀러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

럴 수도 없는 처지여서 기표는 내심 수상쩍게 생각한 것이다. 집 안팎 대소가와

문중은 물론이고 아랫것들이며 마을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결코 허술히 보지 않

는 것이 기표였다. 그는 사람을 마나면 누구라도 그저 스치는 듯 지나치면서도

날카롭게 일별하여 기색을 살피고 그 행동거지를 눈여겨 보아 두었다. 그럴 때

그의 눈빛에는 섬뜩하게 푸른 비늘이 일엇다. 사람들은 대개 기표의 그 찌르는

듯 차가운 시선을 맞바로 못 보고 우물쭈물 피하거나 두려워하였다. 그런 기표

가 안서방네와 마주친 것이다. 가슴이 갈고리에 찍힐 것처럼 불안하게 툭탁툭탁,

뛰는 것을 가까스로 누르며, 흔연한 척 허리를 굽히고 있는 안서방네 등골에 식

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다행히도 기표는 더 이상 무슨 말을 묻거나 채근하지 않

고 휙 소리가 나게 그네를 지나쳐 고샅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다행일 수만은 없

을 것이, 기표가 수천댁으로 가려다가 오류골댁 사립문간을 들여다볼 수도 있기

대문이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안서방네는 얼른 대문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기표의 뒷모습을 숨죽이어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고샅으로 내려가던 기표가 홱

몸을 돌려

"너, 무엇 보고 있느냐."

고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꿰뚫어 노려볼 것만 같아서, 더는 거기에 서 있

지 못하고 후들후들 다리가 떨려 그만 행랑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무사히, 그저

무사히. 천지신명이 굽어살피사 그저 오늘 밤만 조께 아무 탈 없이 지내가게 해

주옵소사. 그네는 중얼중얼 빌었다. 어째서인지. 이 불길한 오늠 밤의 저 측은

참혹한 정경만 들키지 않는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무슨

수가 날 것만 같았던 것이다. 날 밝아 해 뜨면 온갖 재앙도 악운도 마치 몹쓸

꿈 악몽에서 깨어나듯, 한순간에 스러지고 없어질 것만 같았으나. 기표는 안서방

네 염려했던 대로 오류골댁 사립문간에 발을 멈추어 섰다. 오늘 저녁 뜻밖에도

강실이가 큰집 장독대에서 쓰러져 혼절했었다는 말을 이기채의 사랑에서 들은

터라, 궁금도 하고 걱정도 되어, 만일 아직 잠들지 않았다면 잠시 들여다보고 갈

것이요, 불이 꺼져 있으면 그냥 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류골댁 방문은,

방문마다 불이 꺼져 집안이 먹장 같은데, 기응이 살구나무 둥치에 머리를 부딪

뜨려 박으며, 우우우웅. 무엇인가를 견디지 못하여 몸부림으로 오장에서 틀어오

르는 울음을 억누르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놀란 기표가 강실이 얼굴을 펀뜻

떠올리며

"이 아이가 죽었는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가, 캄캄한 방문짝을 밀어젖히고 오류골댁이 더듬더듬

댓돌 위에 벗어 둔 신을 꿰어 신더니 기응에게로 다가왔다. 사태가 심상치 않아

기표는 얼른 마당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주저하였다. 어둠 속에 보아도 오류골댁

이 처연히 흐느끼며 속으로 울고 있는 것을 그는 느낄 수가 있었다. 허, 이게 대

관절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이냐.

"왜 이러시요오. 진정을허계야지. 이런다고 무슨 일이 된답디여."

오류골댁이 눈물 머금은 음성을 낮추며 기응의 손을, 붙안고 있는 나무둥치에서

억지로 뜯어 내었다. 그리고는 잣니의 등을 돌려 둥치에 대고, 기응을 두 팔로

막는다. 기응은 오류골댁을 밀어내려 하였으나 오류골댁도 전력을 다해 버티고

있어 뜻대로 안되니, 기응은 그만 땅바닥에 허물어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는 숨길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울음을 두 무릎에 묻는다. 그 옆에 웅크리고 따라

앉은 오류골댁은 아무 말이 없다. 다만, 그에 함께 우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은

몹시 비밀스럽고 은 상처를 입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무슨 일이 난 것일까.

저토록 처절하게 괴로운 일이라면 한밤중 아니라 더한 시각일지라도 큰집 사랑

이나 자기 기표한ㅌ로 달려올 것인데, 그러지도 않으면서 내외 서로 울고만 있

다면. 아직 죽지는 않았으나, 입에 담기 끔찍하게 무서운 무슨 병에 걸린 것일

까. 도저히 회생할 수 없는. 하마터면 기표는

"크으흠."

기침 소리를 내며 오류골댁 마당으로 들어설 뻔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 기응이

침음하여 탄식을 토하였다.

"참......사람이 살다가 이런 일을 당허지 말어야 하는 것인다......자식 키워서 이런

꼴을 보자면 도대체 어뜬 시러베아들놈이 자식을 낳고 기르겄는가.....뼛골 녹게

딸자식 기른 보답으로 이런 날을 보네 그려. 자식이 아니라 웬수라더니, 웬수라고

어디 이런 웬수가 또 있을까."

허이구우, 기응은 고개를 쳐들고 별들마저 빛을 숨긴 음 이월 구름 덮인 밤하늘

을 넋빠진 사람처럼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청천에 벽력이 이런 것인가......."

오류골댁이 겨우 그 한 마디를 대꾸하고느 더 말을 못 잇는다.

"저걸 죽여야지 어찌 살려 놔. 여기서 무슨 골을 더 볼라고......"

기응의 목소리에 심지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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