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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22)

카지모도 2024. 12. 8.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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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데리고 노는 당골네 무당이 뼉다구 하나를 가지고 못 놀으랴, 오냐, 좋

다. 나는 엊저녁 꿈으로 바서 성헌 다리로 이 대문 빠져 나가기는 틀린 모양인

디, 운 좋으먼 둘다 살고, 재수 없으먼 내가 죽든 저 사람이 죽든 하나는 죽을

것이다. 나 죽는 건 섧잖으나, 죽기 전에 한판 놀아 보도 못허고 죽어서야 어디

죽은 원혼 날망제 씻겨 주는 굿판의 당골네 백단이라고 헐 수가 있겄느냐.

기왕에 이렇게 된 일, 다 들켜서 덕석말이 맞어 죽을 일만 남었겄그만, 말을

해도 맞고 안해도 맞을 것 아니냐. 말허먼 죄 있응게 때리고, 말 안허면 말허라

고 때리고.

내가 어디 우리 시아부니 뼉다구 갖꼬 한 번 놀아 보끄나?

사실은 간이 타서 말라붙게 무서운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늦추어 보려고, 백단

이는 자꾸만, 신 내리라. 굿판에서 독경하듯이 염력을 다해 자신에게 그처럼 경

을 읽고 있는 것이었다.

"모르겄는디요오?"

이기채는 뼈다귀 보퉁이를 치켜든 채 벌써 누마루 아래로 내리달으려 하는데,

옆에서 기표가 베옷 소매를 움켜잡았다.

내가 샌님 성품 기혈을 알지라우. 나를 박살낼라고 뛰어낼오시다 곤두박질치

먼 나도 죽을랑가 모리겄지마는, 샌님도 성튼 못허실 거이그만요.

약을 올려 주리라.

너만 부모 있고 나는 부모 없냐?

양반만 부모 중허고 팔천 사천 무당 박수 당골네는 부모도 안 중헌 줄 아냐?

앙 그리여. 그렁 거이 아니여. 너는 시방 느그 부모 묏동 파헤쳐서 욕뵈었다고

길길이 뛰는디, 뛰다가 우리를 쥑일라고 허는디. 나도 우리 부모 유골 한 번 잘

뫼셔 볼라고 밤 잠 못 잔 세월 여러 해 산사램이여어. 그런디 시방 니가 천민의

뼉다구라고 그렇게, 명부에 지셔야 헐 망제 유골을 백주 대낮에 꾀 벳겨 파내

들고, 중인환시리에, 너나 없이 뺑 둘러선 이 자리에서 뱅뱅 돌림서 웃음거리를

맨들어? 그렇게 욕되게 맨들어?

양반은 상놈한테 먼 짓 해도 상관없고, 상놈은 양반 옆에 찌끄래기만 줏어 먹

어도 죽을 죄냐?

아 느그 양반들은 종도 많고 머심도 많고 호제도 많드라? 죽어서 묏동에 파묻

힌 망자도 살어 생전에마냥 종 부리고 머심 부리고 호제 부리먼 안 좋겄냐? 그

렁게 우리 압씨가 느그 어머이 묏동 속에 옆구리 좀차지허는 것도, 솟을대문 안

채 옆에 행랑채 하나 지었다 생각허먼 될거 아니여? 그거이 먼 죄여? 심바람 시

길 일 있으먼 불르기도 좋고.

아 그러다가 춘풍에 도화꽃 피먼 음양이 어우러져 한판 놀아도 보고. 안 좋

냐? 이승 저승은 유명도 달르고 멩암도 달른디. 양반 상놈도 뒤바껴서, 없든 시

상 한 번 살어 보먼 그것도 참 갠찮응 것 아니냐?

기표한테 소매를 붙잡힌 이기채는 사랑 누마루 위에서 연이어 마룻대가 울리

도록 쩌렁쩌렁 호령을 하였지만, 백단이는 한 마디도 듣지 않았다. 안 들으면서

오직 제 말로 제게다가 경을 읽었다.

그리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소 잡어먹은 구신맹이네."

옹구네가 눈도 깜박 안하면서 우례한테 속닥였다.

"이년. 네가, 이래도 몰라?"

드디오 노기가 뻗칠 대로 뻗친 이기채가 뼉다귀 봉지를 두 손으로 움켜잡아

공중 높이 치켜들더니 그대로 내던져 누마루 아래 까마득한 마당으로 동댕이를

쳤다. 마당에 떨어져 부딪친 백지가 터지면서 삭고 썩은 뼈다귀가 박살이 나 산

지 사방으로 산산히 흩어졌다.

마치 백단이의 꿈속에서 손에 들고 있던 종이꽃 꽃심이 빠지며, 꽃부리 꽃잎

들이 하나씩 소리도 없이 낱낱 허옇게 흩어지듯이.

백단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꿈속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무망간에 두 손

을 벌리어 그 꽃잎 잡는 시늉으로, 흩어진 뼈를 주우려 하였다.

어아아, 서러워라.

만동이도 반사적으로 개 떨 듯이 떨면서 뼈를 줍는다.

"저것들을 덕석에다 말어라."

이기채는 칼로 자르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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