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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29)

카지모도 2024. 12. 17.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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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동이 백단이는 죽은 사람 멩당 쓰니라고 애썼지만, 나는 산 사람 멩당을 시

방 썼제. 좌춘복이 우강실이로 내가 청룡 백호를 삼고, 인자 두고 봐라, 우리 집

안방 아랫목이 연화도수 멩당자리 꽃 벌디끼 벌어지게 허고 말 거잉게. 내 손아

구 양손에다 동아줄 칭칭 매서. 내 허란 대로 느그는 살 수밖이 없도록이 맨들고

말랑게.

그럴라고 내가, 지 발로 걸어나가는 시앗을 꽃가매 태우디끼 등짝에 다 뫼셔

서 업어온 거이여. 시앗? 그렇제. 시앗이제. 니가 내 서방인디, 저년은 시앗이제

그럼. 비록 느그가 찬물 갖춰 육리 올리고 귀영머리 마주 푼대도 순서는 순서여.

나는 절대로 내 밥 안 뺏길 텡게. 춘복이 너, 열 지집 거나리는 것은 내가 너를

호걸로 쳐서 바 준다고 해도, 내 밥그릇에 밥 덜어낼 생각은 꿈에도 허지 말어.

단 한 숟구락에 밥티 한 개라도. 나는 내 껄 꼭 찾어 먹을랑게. 지금까지 살든

것보돔 더 챙겨 먹을랑게.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머리 속이 버르르 불 당긴 것처럼 확, 더워지더니, 그만

옹구네는 온몸을 가눌 수 없도록 격렬하게 떨었다.

쥑일 테여, 쥑이고 말 테여어.

걸음을 뚝 멈추고 벌겋게 선채로 주먹을 부르쥔 그네의 턱이 이빨 부딪치는

딱, 딱, 소리를 날카롭게 낼 만큼 떨렸다.

그네는 짐승같이 포효하는 대신 두 발로 땅을 굴렀다.

견딘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이랴.

그대로 땅바닥에 나뒹굴어 엎어지면서 손톱이 머조리 패어나가도록 긁어 파며

울부짖고 싶고, 꼭 그만하게 춘복이한테로 달려들어 와드득, 할퀴어 놓고 싶고,

강실이를 홀랑 꾀벗기어 거꾸로 매달아서

"이 뱃속에 애 들었냐?"

"이 뱃속에 저 사나 애 들었어?"

선혈이 낭자하도록 덕석말이만큼이나 몽둥이질을 해 주고 싶은 질투와 증오를

옹구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농막이 몇 걸음 안 남은 어귀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그네는 더 참지 못하고

고샅에 자빠져 있는, 확독만한 돌덩어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아 번쩍 치켜 올렸

다. 그러고는 박살을 내듯이 내리쳤다. 돌이 많은 고샅이라 바윗덩이 같은 돌덩

어리가 돌 위에 떠어져 깨지는 소리는 동네를 까무라치게 울리며 밤의 복판 정

수리를 쪼갰다.

그렇게라도 안하면 도저히 이 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무신 소리여?"

농막 문짝이 벌컥 열리면서 공배네가 고개를 내밀었다.

옹구네 눈이 어둠 속에서 벌어지며, 아까 돌덩어리 메칠 듯 펀쩍펀쩍 부딪쳐

튀어 오르던 불꽃처럼 파랗게 인이 돋는다.

"저 예펜네가 꼭 저렇게 아조 음란 상호로 타고나서, 성질은 변덕스러 갖꼬 하

루에도 열두 번 피딱 패딱 허는디다가, 까무잡잡헌 낯바닥에 도화색은 발그로옴

돋아나고, 입솔이는 물었다 논 것맹이로 도톰 촉초옥헌 거이 저게 벌세 사나 잡

을 상호라. 그거뿐이여? 입솔이 복판에 꺼믄 쩜끄장 찍은 디끼 콕 백헤 갖꼬는.

눈웃음 잘잘 흘림서 텍아리 위로 타악 치키들고 허리 꼬아 무신 말헐 적에 그

눈을 보먼 자르르 물끼가 안 흘릅디여? 지집의 눈빛이 그렇게 물에서 막 건진

것맹이로 물끼 너무 번들번들 광채나는 것도 팔짜 도망 못허는 눈인디."

공배네가 언젠가 공배한테 한 말이었다.

"아앗따아. 말 잘허네? 유식허고. 배우도 안헌 관앵찰색을 어찌 그리 찰헝고?

선무당 헐랑가?"

공배는 그때 반은 조롱이요, 반은 놀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무당 당골네 일 해 주로 댕기먼 보고 듣는 말이 관상 사주요, 점괘 들인디,

서당 개 삼년이먼 풍월을 헌다고, 그러먼 한 이우제서 맻 십년씩 삼서나 그것도

몰른다요?"

"그렇게 장허다고 안히여? 그런디 보다가 다는 못 봤네. 그 예펜네 눈에 번들

번들헌 그 광채가 기양 색기 아닌 독기를 품어 보라제. 비얌보돔 더 무서라. 등

골이 놀래잖이여?"

공배는 언제 그렇게 놀랐었는지 말만 하면서도 윗몸을 어드득 떨었다. 바로

그 눈이 지금 막 문짝 열어제치는 공배네를 부싯돌 쳐 쏘아보는 것이었다. 오냐,

너 왔냐, 하는 적의와 불괘가 범벅된 눈빛이었다.

"누구여?"

공배네가 재차 묻는다.

낮의 일에 혼이 나간 밤이라 목소리에 질린 겁기가 있었다.

옹구네는 대답 대신 심호흡을 깊이 한 번 하고는 걸음을 떼었다.

공배네는 검은 아낙이 추벅추벅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는 이제, 옹구네인 줄

알았지만, 아무리 밉다고, 다시 안 볼 것도 아닌데 사람 오는 것 버언히 보면서

문을 닫아 버릴 수는 없는지라, 문고리 잡고 문짝 열어제친 그대로 옹구네가 다

오기까지 불 밝히는 급사 사정이 마냥으로 맞이하듯이 기다리고 있는 꼴이 되어

버린다.

"멋 허로 와? 이 밤중에 잠 안 자고?"

"성님은 멋 허로 외겼소?"

"나는 춘복이가 아픈게로 왔제. 내가 어뜨케 안 와? 조께 디다바야제. 숨이나

붙었능가 어쩠능가, 옷도 갈어입히야 허고."

"아재는?"

공배를 묻는 말이다.

"내동 여가 지키고 있다가 더 못 보겄능가 잘란다고 집으로 내리갔어."

"성님도 내리가기요."

"머?"

공배네가 아까부터 애써 눅이고 있던 심정을 더 누르지 못하고 툭, 터뜨린 말

이라 음성이 칼로 토막치듯 단호하고 높았다.

"아 지무시야지이, 그러고 밤 샐라요? 노인이, 나이를 생각허겨어."

"이렇게 다 죽어가는 사람을 혼자 빈 집에다 방쳐 두고, 어디 가서 무신 잠을

자? 내가."

"아 왜 혼자 빈 집에다 두어요오? 나는 머 뽄으로 놀러 왔간디? 내가 있을랑

게 어서 내려가시요예."

"아니 왜 자네가 여그서 넘의 총각, 남정네 수발 구완을 헌당 거이여? 넘부끄

럽도 안헝가? 염치도 없이. 아무리 낯 두껍고 뻔뻔허다기로 남녀가 유벨헌디, 조

께 너무 심허지 않응가? 춘복이는 아직 장개도 안갔는디. 숭악헌 소문이라도 나

먼 어쩔라고."

"그러먼 머 성님은 남녀 유벨에 남이시오? 넘 말 허싱마잉. 처지가 똑같은디

왜 나만 몰아세워? 나도 다 성님허고 똑같은 맘으로 여그온 사램이여어. 성님은

백옥맹이고 이년은 구정물맹이요? 막말로 성님이 저 사람을 난 친어매요오, 안

그러먼 오누남매지간이요, 안 그러먼 인척 친척으로 숙모요오 형수씨요? 앙껏도

아니잖이여? 성님도. 그저 있다먼 정리 하나 아닝게비? 그 정리 나한테도 있다

그 말이요."

방안으로 오기가 나게 버티고 들어가 윗목에 오돔하게 앉은 옹구네는 웬일로

거치는 것 없이 차복차복 공배네를 닦아세웠다.

공배네는 낯빛이 흙빛으로 질린다. 지금까지 다른 것으로는 옹구네가 입찬 소

리를 못 참아 대들기도 많이 하였지만, 춘복이와 얼크러진 일만큼은 저도 속이

있는지, 양부모라 할 공배 내외한테는 면구스러운 시늉을 했던 것인데, 아니, 이

런, 이런.

"아 남녀가 유벨헌디 왜 성님은 여가 지셔도 되고 나는 안됭가아? 성님이 저

사람 클 때 밥 좀 맻 끄니 멕에 줬다고 부모 유세 헐랑게빈디요. 성님은 밥 멕

에 줬소? 나도 저 사람 멕에 준 거 있소. 성님보담 더허먼 더했제 못헐 거 없는

것 멕에 줬소."

"아니 이 예펜네가 시방 어따가 대고."

"나도 유세헐라요. 나도 인자 머 더 감추고 말 것도 없고, 성님이고 아재고, 온

동네 다 알고는 있었겄지만, 내놓고 말들은 안허고 쑤군쑤군 귓속 쑤신 거 나도

알제. 근디 인자 그러지 마시오. 내놓고 말히여.나도 말헐랑게. 성님, 나 저 사람

허고 사요. 산 지 오래되얐어요. 찬물 한 그릇도 못 떠 놨지만 엄연히 음양이 만

나 저 사람은 양이고 나는 음노릇허고 사는디, 그 동안은 숨어서 살었지만 인자

는 그럴 거 없겄어. 아니 마느래 없는 사나허고 오래 같이 지냈으먼 나도, 문서

는 없지만 마느래나 한가지 아니요? 재격이. 성님이 부모 문서 없지만 낳도 안

허고 부모 노릇 허싱 거이나 같을랑가, 틀릴 거 한나 없지 머, 아니, 내가 조꼐

더 유세를 헐만 헝가아."

공배네가 억장이 막혀 입시울만 푸들푸들 달싹거릴 뿐 단 한 마디도 말을 못

하는데, 옹구네는 천연스럽게 춘복이한테로 다가가 살갑고도 구슬프게 춘복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손으로 멍들어 부은 자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더니 공배네

가 보거나 말거나, 아니 꼭 보라는 것처럼, 그의 머리를 두 팔로 감싸안으며 젖

먹이는 어미처럼 제 가슴으로 그 얼굴을 보듬어 덮는다. 그렇게 하는 양이 어떻

게나 지극하고 부드러운지 평소 보던 옹구네 탯거리가 아닌 것만 같았다.

옹구네는 이윽고 보듬었던 팔을 풀더니 이번에는 춘복에 어깨를 그렇게 감싸

안으면서, 제 뺨을 춘복이의 멍들고 찢어져 떠진 뺨에 하염없이 부비어 어루다

가 그 귓바퀴에 대고 무엇인지 옆에 사람에게조차 들리지도 않게 소근소근 속삭

이는 것이었다.

"에라이, 더러운 년."

공배네는 드디어 침 뱉듯이 방바닥을 차고 일어서 버린다.

"가실라요?"

옹구네가 고개를 들어, 말갛게 씻은 낯빛으로 묻는다.

"에라이, 더러운 년."

공배네가 방문을 탕, 밀어젖히고 나서려는 발치에, 피뭉텅이가 되어 시뻘건 걸

레며, 벗겨 놓은 옷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공배네는 그것들을 발길로 걷어차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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