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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38)

백성들은 병장기 가진 장교를 보고 화적으로 여기는지 초간한 데서는 천방지축 도망질들을 치고 가까운 데서는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들 하였다. 장교 하나가 어떤 여편네를 알아보고 “ 자네 놋점거리 괴똥이네 아닌가?” 하고 물으니 그 여편네가 장교 앞으로 한두 걸음 들어서서 뻔히 보다가 “아이구 이게 누구시오? 우리는 화적놈을 만난 줄 알았소.” 하고 새된 소리를 질렀다. “대체 웬일들인가?” “아이구 웬일이라니 요. 장터에 화적 든 걸 모르시오?” 그제는 여러 사람이 장교들이 묻기를 기다 리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지껄이는데 그중에 “읍내 들어온 화적이 수가 얼만지 모른답니다. 장터는 그 동안 도륙이 났을 겝니다.”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고 “화적이 읍내 들어오며 바루 옥으루 가서 옥 앞에 관군과 접전이 났는..

임꺽정 6권 (37)

환도 든 두령이 결박지운 사람들에게 와서 “주인놈은 어디 갔느냐?” 하 고 묻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모릅니다.” 하고 대답하니 “이놈아, 모르다니 될 말이냐!” 하고 환도 등으로 그 사람의 어깨를 내리쳤다. “아이구 아이구!” “거짓말하면 죽일 테다. 바루 대라.” “작은집에 가셨나 봅니다.” “작은집이 어디냐?” “바루 옆집이올시다.” 첩의 집에 가 있던 박선달이 큰집에 화적 든 것을 알고 급히 낭속과 동네 장정 을 불러모아서 몇은 읍내 관가에 좇아보내고 나머지는 도끼나 몽치나 있는 대로 손에 들려서 큰집으로 들여보냈다. 미련한 촌것들이 천둥인지 지동인지 모르고 선다님의 분부만 어려워서 한떼로 몰려들어오다가 바깥마당에 있는 화적 한 패 에게 혼들이 나는데, 그 패의 두령 둘이 하나는 쇠도리깨를 가지고..

임꺽정 6권 (36)

"녜, 일심정력을 다 들여서 일을 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그럼 오늘부터라두 곧 일을 시작하우." 젊은 중이 꺽정이더러 "이 절 대중에게 초벌 공론은 돌렸지만 절의 막중 큰일을 그렇게 경선히 하는 수 있소. 일 시키는 건 내게 맡기시우.“ 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하여튼 우리는 모레 다시 올 테니 그 안에 다 되두룩 일을 시키우.“ 하고 당부하는데 불상 파는 사람이 고개를 가로 흔들며 ”일을 지금 시작한대두 오늘은 반나절 일이라 모레 다 될는지 모르겠는걸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면 하루 물려서 글피 올 테니 글피는 손이 떨어지두룩 하우.“ ”녜, 글피 저녁때 첫불공을 드리시두룩 하리다.“ ”첫불공이라니!“ ”새 부처님을 뫼신 뒤에 첫불공을 드리셔야지요.“ ”옳지, 그렇겠소.“ 하고 꺽정이가 젊은 중..

임꺽정 6권 (35)

젊은 중은 나이 어린 사미 때부터 대사의 상좌로 대사를 뫼시고 지낸 사람이 라 대사 생전에 한두 번씩 왔다간 봉학이와 유복이와도 면분이 있거니와, 자주 오고 또 와서 한참씩 오래 묵은 꺽정이와는 특별히 교분이 있었다. 젊은 중이 세 사람과 정답게 수작하는 중에 꺽정이를 보고 “그 동안 양주를 떠나셨지요? ” 하고 물으니 꺽정이가 “그건 어떻게 알았소?” 하고 되물었다. “아무리 절 간 구석에서 세상 소문을 모르구 지내기로니 온세상이 다 아는 소문이야 설마 못 듣겠소.” “내 집 이사한 것이 무에 그리 굉장해서 온세상이 다 알두룩 소 문이 났단 말이오.” “여보 고만두시우. 기일 사람이 다 따루 있지 나를 기일 까닭이 무어 있소. 봉물 뺏구 옥 깨구 큰 야단낸 것을 이야기 안하셔두 다들어 서 아우." "선..

임꺽정 6권 (34)

5 칠장사 서쪽 산기슭 편편한 땅에 새로 세운 소도바가 한 개 있으니 이 소도바 에 들어 있는 한 줌 재는 팔십오 세 일생을 이 세상 천대 속에서 보낸 사람이 뒤에 끼친 것이다. 그 사람이 초년에는 함흥 고리백정이요, 중년에는 동소문 안 갖바치요, 말년에는 칠장사 백정중이라 천인으로 일생을 마쳤으나, 고리백정으로 는 이교리의 처삼촌이 되고 갖바치로는 조정암의 지기가 되고 백정중으로는 승 속간에 생불 대접을 받았었다. 생불이 돌아갈 때 목욕하고 새옷 입고 앉아서 조 는 양 숨이 그치었는데, 그날 종일 이상한 향내가 방안에 가득하고 은은한 풍악 소리가 공중에서 났다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이생의 복을 빌고 후생의 원을 세 우는 어리석은 사내, 어리석은 여편네들 중에 대웅전의 부처님을 두고 산기슭 소도바 앞에 ..

임꺽정 6권 (33)

구데기 같은 것들 몇백 명이라도 겁날 것 없다고 흰소리하는 두령들을 서림이가 가지가지 불리한 점을 들어서 설복할 때 꺽정이가 서림이더러 “그러면 어디 가서 목을 지키구 있잔 말이오?” 하고 물으니 서림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며 “서울루 가는 데 양성, 용인으로 바루 갈는지 평택, 수원으루 돌아갈는지 그것두 모르구 미리 어디 가서 목을 지키겠소. ” 하고 대답하였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을 것을 말하우. ” “압상해 가는 일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다가 중로에 서 빼내는 것이 좋을 것 같소. ” “그러면 그 동안에 우리는 어디 가서 묵겠소. ” “읍내 가까운 촌으루 다니면서 어물장사 하지요. ” “우리가 촌으루 다니 는 중에 서울루 가버리면 낭패나지 않소?” “두목 네 사람을 매일 한두 사람씩 읍에 들여..

임꺽정 6권 (32)

“재 이름 출처가 무엇입니까?”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하구 여편네가 넋두리하며 통곡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없나?” “그런 이야기 들은 일 없습니다. ” “그 이야기두 모르면 새원 사람 행세를 말게. ” 이봉학이 박유복이 배돌석이 세 두령이 서림이의 얼굴들을 바라보며 “그게 무슨 이야기요?” “여편네가 달래나 보지 하구 넋두리 를 했다니 이야기가 재미있을 것 같군.” “이야기하우. 들읍시다. ” 하고 이야 기하라고들 졸랐다. “옛날에 어떤 연상약한 젊은 남매가 여름 소낙비 잦을 때 이 재를 넘어가다가 재 밑 무인지경에서 소낙비를 만나서 한줄금을 오지게 맞았 드라우. 여름 흩것이 함씬 젖었으니 몸에 착 들러붙을 것 아니오? 그 사내가 여 편네의 남동생인데 앞서 가는 누님의 볼기짝이 울근불근하는 것을 보..

임꺽정 6권 (31)

“그런 생각을 하기에 한 시각이라두 빨리 올라구 절뚝거리면서 왔지요.” “길두령 잡혀 갇힌 지가 오늘 며칠짼가?” “오늘 벌써 엿새째가 되는가 봅니다.” “그 동안에 혹 죽었는지두 모르겠네.” “옥사가 결말나기 전에 옥 속에서 죽으면 탈 이라구 안성 관가에서 의원 대서 치료해 준단 말이 있습디다.” 돌석이가 근심에 잠겨 있 는 좌중을 돌아보며 “오늘 밤에라두 안성들을 떠나야 하지 않소?” 하고 말하 여 그 자리에서 즉시 안성 갈 일을 의논하려고 먼저 곽오주까지 다시 불러오게 되었다. 오주가 와서 막봉이의 소식을 듣고 대뜸 “그 자식 잘 다녀오지 않구 왜 붙잡혔어. 서장사의 말마감 해줄라구 붙잡혔나.” 하고 서림의 비위를 거니 서림이도 가만히 안 있고 “길두령이 일부러 자청해서 붙잡힌 건 아닌가 보우. ”..

임꺽정 6권 (30)

여러 두령이 미안하게 여기어서 오주 대신 사과 일체로 말들 하는데 상쟁이가 사람이 싹싹하지 못하여 뺨이 부을뿐 아니라 한편 이가 다 솟았다고 엄살하고, 또 오십 평생에 처음 봉변이라고 중얼거리니 여러 두령은 도리어 배알들이 틀려서 “이가 아주 물러나지 않은게 다행이오.” 하고 빈정거리를 사람도 있고 “뺨 맞을 것은 상 보구 모르우?” 하고 씨까스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 서림이는 유독 상쟁이 의 비위를 맞춰 주느라고 “그 사람 성정이 너무 우악스러워서 우리두 잘 가래 지 못하우.” 하고 곽오주를 쳐서 말하니 박유복이가 “여보 서장사, 오주 있는 데선 그버덤 더한 소리를 해두 좋지만 없는데 그런 소리 하는 건 좋지 않소.” 하고 서림의 말을 탄하였다. 서림이가 박유복이를 돌아보며 눈을 끔적거리고 나 서 ..

임꺽정 6권 (29)

“그럼 함부루 지어낸 게지.” 늙은 오가가 천왕동이를 바라보면서 “다른 젖은 몰라도 쇠불알젖만은 자네가 지어낸 겔세. 나는 금시초문일세.” 하고 웃는데 돌석이가 오가를 돌아보며 “장 인 행세 하실라거든 이 장난꾼들을 꾸중이나 좀 하시우.” 하고 말하니 오가가 선뜻 앞으로 나서서 일부러 틀을 지으며 “내 딸 내 사위 고만 들볶게.” 하고 껄껄껄 웃었다. 오가가 말리지 않고 도리어 부추기고 꺽정이가 다른 두령과 같 이 웃고 서서 구경하니, 막봉이와 천왕동이의 짓궂은 장난이 그칠 줄을 몰랐다. 돌석이는 웃고 당하지만 신부는 다부져도 종시 계집아이라 부끄럼을 못이겨서 나중에 눈에서 눈물까지 흘러나왔다. 천왕동이가 신부의 눈물을 보고 “색시를 훔친 사람은 용서할 여지가 없지만 죄없는 색시가 애처로우니 우리 고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