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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21)

꺽정이가 색시 장가를 들어서 새로 살림까지 차렸건만 전과 같이 한첨지 집에서 유숙 하고 식사하였다. 꺽정이는 새집으로 아주 옮겨갈 의사도 없지 않았으나 거처 음식이 불성모양일 것을 염려하여 한온이가 지성으로 붙들어 못 가게 한 것이었다. 그러 나 꺽정이가 매일 밤에 가서 자고 올 뿐 아니라 낮에 가서 앉았다 오는 까닭에 처소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았다. 한온이가 계집에게 성화를 받다 못하 여 색책으로 말하는 것을 계집은 짜장 좋은 도리를 일러주는 것으로 듣고 즉시 꺽정이의 처소로 쫓아왔다. 꺽정이가 마침 처소에 없는 때라 계집이 빈 안방문 을 열어보고 방에 들어가 앉아 있을까 집에 갔다가 다시 올까 주저하는 중에 건 넌방에 혼자 들어 엎드렸던 노밤이가 소리없이 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아주머 니 ..

임꺽정 7권 (20)

"그런데 어째 나이 이십이 되두룩 여위지 못했을까?" "처음에 용인 이승지 영감 의 손자하고 혼인을 정했다가 신랑감이 툭 죽어버려서 까막과부가 되고 그 다 음에 다시 함춘동 황참의 영감의 아들하고 혼인을 정했는데 황참의 영감 상사가 나서 지금 대삼년하는 중이라오." "까막과부에 대삼년에 참말 팔자 험한 색시로 군." "그뿐만이면 오히려도 좋지만 아직 두 번이 더 남았다오." "무에 두 번이 더 남았단 말인가?" "색시의 팔자가 어떻게 험한지 세 번 과부 된 뒤에라야 잘 살 수 있으리라고 한다오. 개가를 큰 험절로 치는 양반의 댁 따님으로 세 번씩 과 부 될 수 있소. 그러니까 까막과부로 팔자 때움을 하는 모양인데 세 번 과부가 팔자에 매였다면 아직두 두 번이 더 남지 않았소." "원판서 내외가 기막히겠네..

임꺽정 7권 (19)

꺽정이가 건넌방 문을 듣고 한온이와 같이 방에 들어와 앉은 뒤에 “산리뭇골에 사람을 보내봤나?” 하고 물으니 한온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며 “ 사람을 보내지 않구 제가 갔다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화재 난 데 가 보 았나?” “선생님 큰일을 내셨습니다. 세력이 충천하는 윤원형이 집 사람이 십 여 명씩 죽었으니 뒤가 조용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일이 감쪽같이 되었으니 까 뒷염려 없을 줄 아네.” “글쎄요, 일이 앞으루 어떻게 벌어질는지 아직은 모 르겠습니다.” “이번에 일을 저지른 건 내 본의두 아닐세.” “그놈들의 뒤를 밟아서 쫓으러 가셨다더니 어떻게 집에다가 몰아놓구 태죽이셨습니까?” 꺽정이 가 여러 사람을 집에 몰아넣은 것부터 대강대강 이야기 하는 중에 방문이 열리 며 순이 할머니의 얼굴이 나..

임꺽정 7권 (18)

이 동안에 차지의 옷자락이 불에 타는라고 연기가 나는데 꺽정이가 불을 끄지 않고 도리어 이불폭, 이불솜 남은 것을 불위에 던져서 얼마 안 있다가 불꽃이 일어났 다. 연기가 방안에 자욱할 때 꺽정이는 마루로 나오고 연기가 방안에서 쏟아져 나올 때 꺽정이는 마당으로 내려오고 또 검은 연기속에 붉은 불길이 넘실 할때 꺽정이는 밖으로 나왔다. 산림골 사람들이 과부 모녀 사는 외딴집에서 불이 난 것을 알고 동이, 자배기 들을 들고 쫓아와서 우선 우물을 들여다보니 둥천에 섰 던 그리 작지도 않은 향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거꾸로 우물 속에 처박혀 있었다. “이 향나무를 누가 뽑아서 처밖았을까.” “이것을 뉘 장사루 뽑는단 말인 가?” “글쎄 이거 별일 아닌가.” “잔소리 말구 얼른 물들 퍼내게.” “박샌네 과댁 모녀가..

임꺽정 7권 (17)

“나이 많다구 파의한다던가? ” “아니오. 내일이라도 곧 주단거래하고 속히 택일 해서 성례하자고까지 말이 됐소. ” “그럼 다 됐네. 고만 가세. ” “내 말씀 좀 들 으시우. 나하고 색시 어머니하고 이야기하는 동안 색시는 방 한구석에 돌아앉았 드니 내가 간다고 일어설 때 얼른 바로 앉으면서 어머니, 저 할머니더러 좀 기 셔 줍시사고 하세요. 아까 쫓겨간 사람이 무슨 흉계를 꾸며가지고 다시 올른지 누가 알아요 하고 말하겠지. 내가 색시말을 들어보려고 이 늙은이가 안 가고 있 은들 무슨 소용 있어. 하고 말하니까 색시는 내 얼굴만 쳐다보고 말대답을 안합 디다. 색시가 사람이 얼마나 슬금하우. ” “그런 염려두 바이없지 않지만 나더 러 들마루에 쭈그리구 앉아 있으란 말인가? ” “색시 어머니가 딸을 데리고 ..

임꺽정 7권 (16)

4 남소문안패와 연락 있는 매파들이 꺽정이의 재물 많은 것과 계집 좋아하는 줄 을 알고 꺽정이 거처하는 처소에 하나둘 오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되어서 여럿 이 드나들게 되었는데 서로들 시새워 가며 이쁜 과부가 있소, 음전한 처자가 있 소, 첩을 얻으시오, 첩장가를 드시오 천거도 하고 인권도 하였다. 여러 매파 중 에 순이 할머니라는 나이 한 육십 된 늙은이가 있는데 사람이 상없지 않은 것 같아서 그 늙은이의 말은 꺽정이가 가장 많이 귀담아 들어주었다. 어느 날 낮에 꺽정이가 마침 혼자 앉았을 때 순이 할머니가 와서 “오늘은 조용합니다그려.”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언제는 조용치 않든가? ” “나는 올 때마다 사람이 있습디다. ” “사람 없는 때 할 말이 있나? ” “꼭 사람 없는 데 할 말이 있 다는 ..

임꺽정 7권 (15)

“그 털보놈이 대체 왠놈일까?” “남소문 안 젊은 오입쟁이 녀석이 어디 가서 데려온 게지. 우리에게 앙갚음하려구.” “남소문 안 젊은 오입쟁이 녀석이 수상 한 놈의 자식이라든데 그 털보두 역시 수상한 놈이 아닐까?” “포도청에서 도 둑놈이라구 잡아다가 치도곤으로 패주어 내보냈으면 좋겠네.” “그랬으면 방구 의 팔목이 당장에 나을 테지.” “여보게 장래 대장, 자네가 춘부영감께 말씀을 잘 여쭤서 해볼 수 없겠나?” 장래 대장이란 이포장 아들의 별명이다. “무어라 구 말씀을 여쭙나? 기생방에서 망신했단 말이 들쳐나면 아버지와 형님네게 잔소 리나 듣게 되지. 아버지는 노인이시라 잔소리하실 연세나 되셨지만 형님네 잔소 리란 사람이 머리가 실 지경일세. 밤에 놀러다니지 말구 무경을 읽어라, 손이 뜨 면 못쓰니 깍..

임꺽정 7권 (14)

“선생님께서 가신다면 뫼시구 가다뿐입니까.”“자네가 내개 청하고 싶다는 일이 무 어냐 말일세.”“말씀하기 황송하지만 노인정패에게 분풀이를 한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분풀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나?”“저의가 당한 것처럼 한번 망 신을 시키면 속이 시원하겠습니다.”“이 사람 나를 기생방 매질꾼으로 내세우 고 싶단 말인가.”“천만의 말씀입니다.”“그럼 노인정에 가서 풍파를 내잔 말 이야?”“노인정에 가서는 사정의 기둥뿌리를 솟쳐놔두 분풀이가 못됩니다.”“ 그러나 기생방에 가서 매질하잔 말이 아닌가?”“선생님께서 매질해 줍시사구는 말씀하지 않습니다. 노인정패에 장사 하나가 있는데 그 장사 하나만 꿈찍 못하 게 해주시면 그 나머지는 저희들이 능준히 해낼 수 있습니다.”“장사라니 힘이 얼마나 세든가?”“제 눈으로..

임꺽정 7권 (13)

노밤이가 이야기를 마친 뒤에 다시 한온이를 보고 “복니를 몸에 올려두시지 않구 잡아 없애실 테면 저를 줍시오. 제가 얼마 동안 이 건너방에 들어와서 자 겠습니다.” 하고 말하니 한온이가 노밤이의 말은 대답 않고 상노아이에게 문서 궤, 세간궤, 보료, 이부자리 등속은 다른 데로 치우라고 이르고 나서 “이는 떨 어 버리든지 죽여 없애든지 맘대루 해라.” 하고 일렸다. 한온이가 상노아이에게 이르는 말이 노밤이에게 반 허락하여 주는 폭이라 노밤이는 곧 “복니를 제게 내주시니 황감합니다.” 하고 허리를 두세 번이나 굽실굽실하였다. 이날 밤부터 노밤이가 드러내놓고 건넌방에 들어와서 자게 되었는데 상노아이더러 “인제는 너두 같이 들어가 자자.” 하고 말하니 상노아이가 “나는 복니 싫소.” 하고 도 리머리를 흔들었다...

임꺽정 7권 (12)

한첨지의 주량이 꺽정이를 당하지 못하여 꺽정이가 아직 술 먹은 것도 같지 않을 때 한첨지는 벌써 거나하게 취하였다. “내가 소시적엔 며칠씩 밤을 새워 가며 술을 먹어두 끄떡없던 사람인데 되지 못한 낫살을 먹은 뒤루 술이 조금만 과하면 술에 감겨서 배기질 못하우.” “우리게 오두령은 나이 육십 줄이건만 지금두 가끔 젊은 사람들하구 술타령으루 밤새임을 하우.” “그자가 계양산 괴 수의 심부름으루 우리게 다닐 때 나이 이십 남짓했었을까. 그런데 벌써 오십이 넘었단 말이지.” “장인의 심부름으루 서울을 자주 왔었다구 오두령두 말합디 다.” “그때 우리는 계양산 졸개 개도치루만 알았었소.” “개도치가 오두령의 이름이오?” “같이 기시면서 이때것 이룸두 모르셨소?” “자기가 말 안 하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