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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12)

한첨지의 주량이 꺽정이를 당하지 못하여 꺽정이가 아직 술 먹은 것도 같지 않을 때 한첨지는 벌써 거나하게 취하였다. “내가 소시적엔 며칠씩 밤을 새워 가며 술을 먹어두 끄떡없던 사람인데 되지 못한 낫살을 먹은 뒤루 술이 조금만 과하면 술에 감겨서 배기질 못하우.” “우리게 오두령은 나이 육십 줄이건만 지금두 가끔 젊은 사람들하구 술타령으루 밤새임을 하우.” “그자가 계양산 괴 수의 심부름으루 우리게 다닐 때 나이 이십 남짓했었을까. 그런데 벌써 오십이 넘었단 말이지.” “장인의 심부름으루 서울을 자주 왔었다구 오두령두 말합디 다.” “그때 우리는 계양산 졸개 개도치루만 알았었소.” “개도치가 오두령의 이름이오?” “같이 기시면서 이때것 이룸두 모르셨소?” “자기가 말 안 하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

임꺽정 7권 (11)

3 남성밑골 노름꾼 한치봉이란 자가 저의 첩을 가지고 미인계를 써서 천량 있은 집 왈짜자식을 올가미 씌구고 노름 밑천을 뺏기 시작한 것이 남소문안패란 도적 패의 생기던 시초이었다. 남소문안패가 처음에는 한치봉이의 동류 사오 명에 불 과하였으나, 하나 늘고 둘 늘고 연해 늘어서 한치봉이 당대에 도록에 성명 오른 부하가 사오십 명 좋이 되었었는데 태반은 양반의 집 종들이었고 이외에 매파, 뚜쟁이와 상쟁이, 점쟁이와 무당, 판수와 태수, 돌파리, 보살할미 등속을 부하와 다름없이 부리어서 한치봉이는 남북촌 대가의 밥끓고 죽 끓는 것을 눈으로 보듯 이 알고 지내었었다. 한치봉이의 뇌물이 몇 손을 거치면 지엄한 궐내에까지 들 어가고 또 한치봉이의 청이 몇 다리를 건너면 당로한 재상에까지 미쳐서 연산 당년에는 후궁 ..

임꺽정 7권 (10)

“그눔이 오거든 너는 아뭇소리 말구 가만히 있거라.” 졸개가 내려온 뒤에 보리밥 한 솥 짓기나 착실히 지나서 노밤이가 혼자 털털거리고 내려와서 꺽정이를 보고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황송합니다." 인삿말 한마디 하고 곧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거짓말투성이로 늘어놓았다. "제가 초립동이를 데리구 고개에 올라가서 초립동이 어머니가 도적에게 붙들린 자리를 찾아가 본즉 그 옆이 바루 큰 솔밭인데 솔밭 속에 젊은 놈 한 놈이 여편네를 자빠뜨려 놓았습디다. 그래서 당장 그놈의 모가지를 돌려앉히려다가 젊은 놈이 얼굴 얌전 한 여편네를 보구 불측한 맘을 먹기가 용혹무괴거니 널리 생각하구 온언순사루 타일러서 보내려구 솔밭 밖으루 불러냈솝드니 그놈이 손에 환두를 들구 쫓아나 와서 제잡담하구 대어듭디다. 선손 거는 놈을 ..

임꺽정 7권 (9)

아침밥이 끝난 뒤에 노밤이가 행장을 수습하여 내버리고 가기 아까운 것이 한 가지 두 가지 차차로 많아져서 부담상자 하나가 뚜껑이 잘 덮이지 않도록 쑤시 어 넣고도 옆에 붙이고 위에 얹을 것이 많이 남았다. 구중에 돗자리와 기직자리 는 함께 돌돌 말았으나 길이가 있어 거추장스럽고 입쌀과 서속쌀은 한 자루에 올망졸망 넣었으나 무게가 묵직하여 이 두가지를 노밤이는 졸개에게 떠맡길 생 각으로 “자네 짐은 내 짐버덤 휠씬 가볍지?”하고 졸개에게 말을 붙였다. “왜 그래? 가벼우니 짐을 바꾸어 줄까?” “자네가 그런 선심이 있다면 제법이게. 건너다보니 절터가 환한걸.” “내가 난생 처음 선심을 좀 써볼랬드니 제법 소 리가 듣지 창피해서 고만두겠네.” “짐을 바꾸면 자네는 선심 있는 사람 되구 나는 염의 없는 사람되..

임꺽정 7권 (8)

“저놈이 성한 눈깔 마저 멀구 싶은가?” “이놈아 악담마라. 내가 판수 되면 네가 먹여살릴 테냐?” “이놈아 네가 악담했지 내가 악담했어!” “나는 이날 이때까지 악담이라구 한번두 해본 일이 없다” 졸개가 또 대꾸하려구 입을 벌릴 즈음에 “기탄없이 떠들지 말구 짐이나 지구 나서라” 꺽정이가 꾸짖어서 졸개 가 입을 다물었다. 노밤이는 이것을 보고 저의 볼기짝을 두들기며 “아이구 고 소해라”하고 웃다가 꺽정이가 별안간 “무에 고소하냐!”하고 큰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목을 움칠하고 입을 딱 벌렸다. 졸개가 짐짝을 지는 동안에 노밤이는 내 던진 칼을 찾아가지고 와서 앞서서 저의 집으로 인도하였다. 노밤이의 집이란 것이 후미진 곳에 외따로 묻은 움집이라 집 전체가 곧 방 한 간인데 그 방에 거적을 매단 문이 있고 ..

임꺽정 7권 (7)

"그럼 철원 일은 모르겠구려." "무슨 일을 모른단 말이오?" "무슨 일이든 지." "고향에서 사는 형님네와 왕래가 잦은 까닭에 고향일이 쇠배 어둡진 않소." "임꺽정이란 사람이 철원 땅에 산다는데 철원 어디서 사는지 혹시 아우?" "임꺽 정이라니 도둑놈 아니오?" "그렇다는갑디다." "집두 절두 없는 도둑놈이 붙백여 사는 데가 어디 있게소." "도둑놈이라두 몸담아 있는 곳은 있을 것 아니오." "바 위 밑에 굴을 파구 굴 속에서 산답디다. 가까이 있으면 한번 찾아가서 힘겨룸 좀 해볼 생각이 있소." "힘겨룸할라구 일부러 도둑놈을 찾아간단 말이오? 별 양 반 다보겠네." "철원 가서 물으면 임꺽정이 있는 굴을 알 수 있겠소?" "그놈이 올 봄에 살인하구 관채에게 쫓겨서 타도루 도망했다는데 그때는 황해도루..

임꺽정 7권 (6)

서림이가 마침 이봉학이, 박유복이 두 두령들과 같이 꺽정이 사랑에 앉아 있다 가 여탐꾼의 보하는 말을 듣고 “그것 보십시오. 장효범이가 그만 꾀에두 넘어 가지 않습니까.” 하고 꺽정이와 및 두 두령들을 돌아보니 꺽정이는 “서종사 일 요량하는 게 무던하우.” 서림이를 칭찬하고 이봉학이는 “평산부사가 얼뜬 자식이오.” 장효범이를 비웃고 박유복이는 “김가 부자가 무사하게 되었을까.” 억석이를 염려하였다.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인제 황두령을 신계 가라구 이 르시지요.” 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지금 곧 불러다가 이르겠소.” 하고 사람을 보내서 황천동이를 불러왔다. 황천동이가 와서 평산 관군의 걷혀간 이야기를 들은 뒤에 곧 서림이를 돌아보며 “강음 관군두 걷혀 들어가게 됐소?” 하고 빈 정대는 말투로 물으니 서..

임꺽정 7권 (5)

꺽정이가 화가 나서 쑥덕공론하는 사람의 본보기로 안해를 도회청에 끌어내다 가 혼구녕 내고 싶은 생각까지 났었으나 꿀꺽 참고 “소갈찌 없는 기집년이란 할 수 없다.” 하고 혀를 쩟쩟 차며 사랑으로 나왔었다. 안해에게 난 화가 채 가 라앉기도 전에 박유복이가 곽오주를 데리고 와서 곽오주와 서림이의 싸움질한 것을 이야기하여 꺽정이는 화가 벌컥 도로 나서 박유복이의 이야기도 다 들어주 지 않고 곽오주를 호령질하여 쫓은 뒤에 일변 서림이를 부르러 보내고 일변 좌 기령을 놓았었다. 그러나 꺽정이가 곽오주를 죽일 마음은 없던 까닭에 도회청에 나가기 전에 오가를 불러다가 문의하게 되었는데 오가의 이야기로 황천왕동이와 길막봉이의 간련 있는 것도 미리 알았고 두 사람이 곽오주와 같이 죄를 당하려고 나서거든 어떻게 곽오주와..

임꺽정 7권 (4)

곽오주와 길막봉이는 전날 밤에 황천왕동이를 만나서 관군을 피해 다른데로 가기 쉽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날 새벽에 박유복이를 만나서 대장 말씀을 거스리 지 말라고 당부를 받은 까닭에 꺽정이가 군령을 내리는 동안 고개들을 푹 숙이 고 앉아 있었다. 도회청에서 흩어져 갈 때 황천왕동이가 넌지시 곽오주더러 “ 아침 안 먹었거든 내게루 같이 가세.” 하고 말하니 곽오주는 고개를 끄덕이다 가 “어린애.” 하고 손을 내저었다. “어린것은 업혀서 밖으로 내보낼 테니 염 려말게.” “이쁜 아주머니에게 공연시리 미움 바치게. 어린애 없는 막봉이 게루 갈라우.” “그럼 내가 아침 먹구 막봉이게루 내려갈 테니 기다리게.” “그렇게 하우.” 곽오주가 길막봉이를 따라와서 꺽정이의 군령이 창피하다고 괴탄하고 앉았는 중에 황천왕동이가..

임꺽정 7권 (3)

“미리 저녁을 두 번 먹어둘까요?” 서림이는 소리를 내어 웃고 꺽정이는 빙그 레 웃었다. 꺽정이가 불출이를 불러들여서 불을 켜놓고 저녁상을 내오라고 일렀 다. 불출이가 청심박이 대초에 불을 당겨서 촛대에 붙이는 중에 꺽정이가 불출 이더러 “그 동안에 어느 두령이 왔다 갔었느냐?” 하고 물으니 불출이는 초를 얼른 다 붙이고 일어나서 “그 동안에 황두령과 곽두령이 오셨는데 곽두령은 곧 도루 가시구 황두령은 지금 안에 기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외에는 왔 다 간 사람이 없느냐?” “대장쟁이 박가가 왔다 갔습니다.” “철편을 가져왔 더냐?” “철편이 아직 조금 덜 되어서 내일 갖다 바치겠다구 말씀 여쭈러 왔다 구 합디다.” “어제는 오늘 가져온다구 말하던 놈이 또 내일이야.” “너무 무 거워서 드다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