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820

임꺽정 7권 (2)

“재촉해서 두어 술 떠먹구 왔습니다.”“아까 더 생각한다든 건 인제 말하게 됐 소?” “조용한 틈에 말씀하려구 급히 왔습니다.” “대체 무슨 좋은 계책이오? ” “안 뜰아랫방 같은 조용한 데 가서 말씀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밖 에 샐까 봐 염려요? 그럼 이 사랑에 딴 사람을 못 들어오게 하면 되겠구려.” 꺽정이가 밖을 내다보며 “불출이 게 있느냐?” 하고 소리치니 신불출이가 녜 대답하며 곧 쫓아와서 앞 툇마루에 양수거지하고 섰다. “능통이 밥 먹으러 갔 느냐?” “아직 안 갔습니다.” “능통이는 밥 먹으러 가라구 하고 너는 밖에 나가 서서 사랑에 사람을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그러구 너두 내가 부르기 전엔 들어오지 마라.” “두령들이 오시면 어떻게 하오리까?” “내가 사람을 금하랬 다고 말 못 ..

임꺽정 7권 (1)

제 1장 청석골 1 이때 조선팔도에 도적이 없는 곳이 없으되 그중에 황해도가 우심하였다. 황해 도 일경은 변동도적의 소굴이었다. 황해도 민심이 타도보다 사나우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황해도 양반이 타도보다 드세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또 황해도 관원의 탐학과 아전의 작폐가 타도보다 더 심하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건만 황 해도 백성은 양순한 사람까지 도적으로 변하였다. 양순한 백성이 강포한 도적으 로 변하도록 지방의 폐막이 가지가지 많은데 그중의 가장 큰 폐막은 두 가지였 다. 한 가지는 각색 공물이니 나라에 진상하는 물품이 너무 많아서 민력으로 감 당할 수가 없고, 또 한 가지는 서도부방이니 평안도 변경에 수자리 살러 가는 것이 괴로워서 민정이 소연하였다. 황해도의 지광이나 토품이나 인구나 물산이..

임꺽정 6권 (46, 完)

세 사람의 관망과 의복이 준비 다 되엇 인마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차이라, 이 밤에 다른 준비를 다하여 가지고 첫새벽 떠나려고 작정하여 떠날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떠나보낼 사람도 밤을 세우게 되었다. 이튿날 동이 트기 전에 꺽 정이와 막봉이와 능통이가 반 달 동안 숨어 있던 진천 이방의 작은집을 떠나는 데, 이방의 첩은 방안에서 인사하고 어린년이는 마당에 내려와서 하직하고 이방 만 삽작 밖에 나와서 작별하였다. 작별할 때 꺽정이가 이방더러 “아쉰 일이 있 거든 우리게루 기별하구 급한 일이 있거든 우리게루 오시우. ” 하고 말한 뒤 한참 있다가 “내가 상주의 첩을 상관했소. 그러나 나를 배은망덕하는 눔으룬 알지 마시우. ” 하고 말하였다. 꺽정이는 은혜 진 사람의 첩을 상관한 것이 마 음에 궂은 고기 먹..

임꺽정 6권 (45)

이방의 첩이 나이는 삼십줄이나 아이낳이를 못한 까닭에 젊은티가 아직 가시 지 않고 사람이 워낙 나이 들어 보이지 않게 생겨서 이십 안짝 계집같이 앳되어 보이었다. 꺽정이가 이방을 삼씨오쟁이 지우기 미안한 생각도 있고 계집의 꼬리 치는 것을 괘씸히 여기는 생각도 없지 않건만, 계집의 마음을 사두는 것이 좋을 뿐 아리라 얼굴 곱살스러운 계집이 옆에 와서 부니는 것이 마음에 싫지 아니하 여 계집을 손에 넣었다. 큰집에 심부름 갔던 어린년이가 돌아와서 “삽작문 열 어주세요. 삽작문 열어주세요. ” 여러 차례 소리를 지른 뒤에 이방의 첩이 비로 소 건넌방에서 나가서 삽작문을 열어주었다. 어린년이가 해찰하느라고 늦어서 주인에게 잔소리 마디나 좋이 들으려니 하고 왔더니 의외에 주인이 아뭇 소리도 아니하여 고개를 들고..

임꺽정 6권 (44)

꺽정이가 능통이에게 말하는 동안 이방은 꺽정이를 살펴보다가 “손님을 오래 밖에 서시게 해서 마안하우. ” 꺽정이가 영특하게 생기고 위엄스러워 보이는 데 이방은 기가 눌리고 마음이 꺾이어서 인사 차리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능통이는 이방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며 이방더러 “밖에 기 신 손님 한 분을 마저 뫼셔들여야지. ”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방이 손수 계 집아이년의 자던 자리를 걷어치우고 나서 꺽정이를 앉으라고 권할 즈음에, 능통 이가 막봉이를 부축하고 들어와서 꺽정이는 막봉이를 옆에 데리고 앉고 이방은 능통이와 느런히 앉았다. 꺽정이와 막봉이가 이방하고 수인사를 다한 뒤에 능통 이가 이방을 돌아보며 “아랫것들을 어디다가 들어앉힐까? ” 하고 물으니 이방 은 선뜻 “그전 있던 행..

임꺽정 6권 (43)

이때 안성, 죽산서는 큰 난리를 만난 것같이 인심이 소동되어서 각처로 피란 가는 사람이 길에 널려서 남부여대하고 가는 것이 남의 눈에 유표할 것이 없지 만, 근 이십 호 칠팔십 명 사람을 일시에 떠나보내는 것이 부질없어서 능통이가 띄엄띄엄 떠나보내는데 꺽정이가 지시하는 혜음령으로 갈 사람은 먼저 떠나고 가까운 메주고개로 갈 사람은 뒤에 떠나게 하였다. 메주고개 갈 사람이 두어 패 떠났을 때 포도군관이 포도군사들을 데리고 강촌까지 나왔다는 소문이 있었다. 능통이가 졸개들 떠나는 것을 보느라고 동네에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이 소문을 듣고 바로 집에 들어와서 꺽정이를 보고 “포도군사들이 곧 여길 올는지 모른답 디다. 우리두 어디루 피신해야겠습니다. ” 하고 말하였다. “대체 어디루 갔으 면 좋겠나, 여기서 가까..

임꺽정 6권 (42)

6 안성군수가 적변을 겪던 이튿날 군민의 사상자를 조사하여 본즉 전망한 군사가 열세 명이요, 부상한 군사가 서른세명인데, 전망한 수에는 우병방이 가외에 더 잇고 부상한 수에는 죄병방이 한축 끼였었다. 좌병방은 어둔 밤에 목숨을 도망 하다가 돌부리에 채여 엎드러져서 팔 하나 분지른 것을 전장에서 부상한 양으로 군수를 속이었던 것이다. 읍내 백성은 군사로 뽑혀나간 사람 외에 사상이 하나도 없고 가사리 백성은 상한 사람이 열이고 죽은 사람이 열아홉인데, 죽은 사람 중에 사내가 박선달 삼 부자까지 여섯이고 젊은 여편네가 셋이고 그 나머지 열은 모두 세 살 안짝의 어 린아이였다. 죄없는 어린아이가 많이 죽은 것이 쇠도리깨 도적 곽오주의 행실로 드러났다. 군수는 군민의 사상을 자세히 조사한 뒤 곧 급족을 띄워서 포..

임꺽정 6권 (41)

사방으로 나가는 여러 두령들의 기척이 막봉이가 앉은 자리에서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바로 막봉이 눈앞에 사람의 길이 넘는 억새가 흔들리는 것 같으며 조심스럽게 버스럭거라는 소리가 났다. 막봉이 옆에 앉았는 교군꾼들은 바스럭거리는 것이 혹시 큰 짐승이나 아닌가 의심하여 숨들도 크게 쉬지 못하는데, 막봉이가 두 팔로 땅을 짚고 몸을 떼어서 가만 가만 앞으로 옮겨나갔다. 억새 속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히 사람의 기척인 것을 알고 막봉이는 “그놈 여기 있소! ” 하고 고성을 질러 외쳤다. 억새 속에서 별 안간 사람이 뛰어나오며 곧 고개 너머로 도망하려고 하여 교군꾼들이 앞을 막았 다. 그 사람이 다시 뒤로 돌쳐서는데 그 동안 일어선 막봉이가 팔을 벌리며 “ 이놈 어디루 도망할라구. ” 하고 호령하니 그 사람은 ..

임꺽정 6권 (40)

저녁밥들을 먹은 뒤에 꺽정이가 여러 두령들을 보구 잠깐 칠장사를 갔다 온다고 말하니 봉학이가 꺽정이더러 ”형님, 이왕 갈 바엔 나하구 같이 갑시다. “말하고 나섰다. ”나 혼자 잠깐 갔다옴세.“ ”같이 가서 안패될 일은 없지 않소.“ ”낭패될 일이야 없지.“ ”그럼 같이 갑시다. 선생님 불상을 이번에 못 뵈이면 언제 다시 와서 뵈입겠소.“ ”같이 가세.“ 봉학이에게 동행을 허락하는 말이 꺽정이 입에서 떨어지자 ”형님, 나두 선생님 불상을 뵈이러 가겠소.“하고 박유복이가 나서니 꺽정이는 두말 않고 ”그래라.“하고 마저 허락하였다. 세 사람이 동행하기로 되었을 때 배돌석이가 ”여럿이 같이 가면 어떻겠소?“ 하고 꺽정이를 보고 묻는데, 서 림이가 꺽정이의 앞으로 나서서 대답할 말을 뚱겨나 주는 듯이 ”여렷이 ..

임꺽정 6권 (39)

서림이는 여러 두령이 알아듣도록 말하느라고 말을 길게 늘어놓았으나, 말의 요지 는 불과 한두 마디로 다할 수 있었다. 칠장사 가는 것은 파의하고 한시라도 바삐 회 정할 준비를 차리자는 것인데, 언변 좋은 서림이가 이유 서지 않는 말도 이유 서게 할 수 있거든 하물며 이유가 서는 말이랴. 부처님을 새로 뫼시면 가근방에서 구 경꾼이 많이 올 것이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중에 눈치빠른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라 여럿이 몰려갔다가 종적이 탄로되면 설혹 당장은 무사할지라도 반드시 뒤에 탈이 나서 연락 혐의로 중들이 경을 치고 시주 관계로 부처님까지 누를 입 어서 일껀 새로 뫼신 부처님을 관령으로 없애게 되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니 칠 장사 가는 것을 파의하자는 서림의 말이 이유가 서고, 안성 소문이 퍼지는 날이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