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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8)

“우리 성주받이 구경이나 가세. ” “뉘 집에서 성주를 받는다든가? ” “어물전 주인 살림하는 집 문 앞에 황토 펴놓은 것 보지 못했나? ” “황토를 펴놓았기루 꼭 성주를 받는지 어떻게 아나? ” “내가 아까 이 집 주인에게 물어봤네. ” “이 집 안주인이 어딜 가구 없나 했더니 성주받이 구경갔다네그려. ” “우리 가보세. ” 하고 행인들끼리 지껄인 다음에 “성주받 이 구경 안 가실라우? ” “우리 가서 무당년의 낯바대기나 보구 옵시다. ” “ 자, 갑시다. 일어들 서시우. ” 하고 장교들을 끌었다. 행인 중의 늙은 사람 하나 와 장교 중의 조심 많은 사람 하나만 떨어지고 그 나머지 행인과 장교가 다 성 주받이 구경을 가는데, 짐꾼, 말꾼 몇 사람까지 함께 묻혀 갔다. 늙은 행인이 남 은 장교를 보고 “..

임꺽정 6권 (7)

“소인까지 마저 잠이 들었더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이놈이 객주 주인의 동생이 란다. 객주루 끌구 가자.” 김양달이 도적을 장교들에게 내맡기고 장교들의 앞을 서서 객주에 와서 보니 대문밖에 짐꾼, 말꾼들이 웅끗쭝끗 나섰는데 객주 주인도 그 틈에 끼어 섰었다. 김양달이 장교들을 돌아보며 “형놈두 도망하지 못하게 잡아놔라.” 이르고 사처방으로 들어왔다. 앉아 있 는 예방비장이 김양달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말 한마디를 아니하여 김양달은 주저주저하고 섰다가 자리에 펄썩 주저앉아서 예방비장의 찌푸린 상을 바라보며 “놀라셨지요?” 하고 먼저 말을 붙였다. “여보게 김여맹. 밤중에 어디 갔다 왔 나?” “잠깐 밖에 나갔었습니다.” “장교들의 말을 들으니까 초저녁에 나갔다 는데 지금 정밤중이 지났는데 무슨 놈의 잠..

임꺽정 6권 (6)

2 섣달 초생에 평안 감영 예방비장은 서울 보낼 세찬을 분별하느라고 여러 날 동안 분주하였다. 세찬 보내는 곳이 많아서 촛궤와 꿀항아리만 서너 짐이 되고 이외에 또 초피, 수달피, 청서피 같은 피물이며, 민어, 광어, 상어 같은 어물이며, 인삼, 복령, 오미자 같은 약재며, 면주, 면포, 실, 칠, 지치, 부레 같은 각색 물종 이 적지 않아서 세찬이 모두 대여섯 짐이 되는데, 여기다가 상감과 중전께 진상 하는 물건과 세도집에 선사하는 물건을 함께 올려보내자면 봉물짐이 굉장하였 다. 세찬을 다 봉해 놓은 뒤에 예방비장이 감사께 들어가서 세찬 봉물 끝마친 사연을 아뢰니 감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인제 일간 곧 올려보내도록 해보세.” 하고 말하였다. “진상 봉물두 함께 올려보내시렵니까?” “그럼 함께 보내려구 ..

임꺽정 6권 (5)

손가는 곧 서림이를 불러서 박유복이에게 인사를 시킨 뒤에 박유복이와 길막 봉이의 뒤를 따라 오가의 집으로 왔다. 손가가 서림이를 사랑 바깥마당에 세우 고 먼저 사랑에 들어가서 오가를 보고 다시 서림이의 일을 이야기하니 오가가 박유복이와 길막봉이를 돌아보며 “우리 그자를 불러서 말을 한번 자세히 들어 보세.” 말하고 곧 손가더러 불러들이라고 일렀다. 서림이가 사랑에 들어와서 오 가에게 절인사하고 무릎을 꿇고 앉으니 오가가 편히 앉으라고 말하고 나서 바로 “노형 뒤에 큰 재물이 있다니 그 재물이 지금 어디 있소?” 하고 물었다. “차 차 말씀하오리다.” “차차 말한다구 사람이 갑갑증이 나게 하지 말구 얼른 이 야기 좀 하우.” “그 재물이 지금은 평안 감영에 있습니다. 그러나 섣달 보름 안에 서울루 올라옵니..

임꺽정 6권 (4)

서림이가 막봉이를 향하고 공손히 절하는데 엎드리고 일어나는 것을 작은 손 가가 거들어주었다. 막봉이가 서림이의 절하는 것은 본 체 만 체하고 작은 손가 를 바라보면서 “그대루 보내지, 왜 데리구 왔어 보따리를 찾아 달라든가?” 하 고 물으니 작은 손가가 고개를 가로 흔들며 “아니오. 사례하러 오셨소. 아주머 니하구 나하구 집으루 가시자구 말하니까 두령께 와서 죽이지 않은 은혜를 사례 하구 가신다구해서 아주머니만 먼저 집으루 가시게 하구 나는 이리 뫼시구 왔 소.” 하고 대답하였다. “사례는 고만둬두 좋지.” 막봉이 말끝에 “죽게 된 건 내 잘못이구, 살려주 신 건 두령의 은덕입니다. 나를 낳아준 이두 부모요, 나를 살려준 이두 부모라니 두령은 곧 나의 부모신데 내가 정신을 차리구서야 먼저 와서 보입지 않..

임꺽정 6권 (3)

서림이는 도적들을 막을 힘이 없는 까닭에 하릴없이 보따리를 벗어놓았다. 물 건을 빼앗기는 것도 아깝거니와 헌옷가지라고 거짓 말한 것이 뒤가 나서 속으로 조급하였다. 속으로 조급할수록 겉으로는 더욱 태연한 체하고 도적들이 앉히는 대로 쪼그리고 앉아서 보따리 푸는 걸 보고 있었다. “피물 아닌가.” 한 도적이 겉에 싸인 수달피를 잡이 헤치니 “옥돌 보게.” 다른 도적이 속에 잇던 옥노리 개를 집어들었다. 도적들이 서림이를 돌아보며 “이것이 헌옷이냐?” “고따위 입에 발린 거짓말을 우리가 곧이들을 줄 알았느냐!” “너 같은 멀쩡한 놈은 성 하게 보내지 않을 테다.” “다리 마등갱이를 퉁겨줄 테다.” 하고 둘이 받고채 기로 역설하는데 서림이는 대꾸 한마디 않고 직수굿하고 있다가 도적들이 보따 리 속을 다 뒤져보..

임꺽정 6권 (2)

서림이가 예방비장의 말을 들은 뒤에 한번 남몰래 옥부용과 만나서 사정을 이 야기하고 옥부용의 집에 발을 끊고 상종 않는 표를 남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친 한 기생 도화의 집에 가서 숙식하고 있었다. 옥부용은 간간이 서림이를 생각하 여 한번 병 핑계하고 집에 나와서 서림이를 만나자고 밤에 계집아이를 보냈더니 서림이 계집아이더러는 먼저 가라고 돌려보내고 나중에도 오지 아니하여 옥부용 이는 “도화에게 반해서 벌써 나를 잊었구나.”하고 서림이를 원망하고 “안 만 나두 고만이다. 어디보자.” 하고 서림이를 벼르기까지 하였다. 어느 때 창성서 초피.수달피를 많이 구해 와서 좋은 것은 진상품으로 따로두고 그 나머지는 선 사품으로 집어둘 때 서림이 감사 몰래 선사품에서 수달피 한두 장을 훔쳐내다가 도화를 주어서 도화가 ..

임꺽정 6권 (1)

제7장 서림 1 을사년에 십이 세 된 어린 왕이 등극한 후 윤원형이 왕대비의 동기로 권세를 잡기 시작하여 한 해 두 해 지나는 동안 발호가 차차로 심하여져서 주고 빼앗는 것은 차치하고 살리고 죽이는 것까지 거의 임의로 하게 되니 조정이 왕의 조정 이 아니요, 곧 윤원형의 조정이라 왕이 연세가 이십이 가까우며부터 내심으로 윤원형이를 몹시 꺼리었다. 그러나 대비가 엄하기 짝이 없어서 왕이 조금만 뜻 을 거슬려도 곧 화를 내며 “네가 오늘날 임금 노릇을 하는 것이 뉘 덕이냐? 내 오라버니와 내 덕이 아니냐!“ 왕을 너라고 하고 야단칠 뿐 아니라 심하면 두들 기까지 하여서 효성 있는 왕이 대비께 승순하기를 힘쓰므로 윤원형의 권세를 빼 앗을 가망이 없없다. 왕은 윤원형의 권세를 갈라나 보려고 생각하고 갈라 줄 만..

임꺽정 5권 (50,完)

“누구더러 년이래?” “네년더러 년이라구 못한단 말이냐!” “사람이 살려니까 별꼴을 다 보겠네.”하고 하님이 혼잣말하는 것을 봉학이가 “무엇이 어째! 이년, 다시 한번 말해 봐라!”하고 호령할 때 마친 궐내에서 재상 하나가 퇴궐하여 나오니 봉학이와 하님이 다같이 한옆으로 비켜서서 재상의 나오는 길을 틔워 놓았다. 재상이 문밖에 나오자 비켜섰던 하님이 앞으로 쫓아 나오며 “아이구 미동 대감마님, 쇤네 좀 보십시오.”하고 소리를 질러서 그 재상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네가 영부사댁 정경부인 시녀 아니냐?” 하고 하님을 알아보았다. “대비마마 저녁 수라에 드릴 찬을 가지고 왔는데.” 하님의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재상이 “수라간 찬보다 좋은 찬이 무엇 이니?”하고 물었다. “찬은 좋지 않아도 정경부인 마님이 ..

임꺽정 5권 (49)

봉학이가 전주 와서 책방을 작별하여 보내고 계향이는 서울 전접하는 동안 있 으라고 떼어놓고 꺽정이와 같이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길을 돌아 죽산 칠장사에 들어가서 팔십 노인 선생을 뫼시고 수일 지내고 다시 꺽정이와 같이 떠나서 서 울로 올라왔다. 꺽정이가 양주집으로 내려간 것은 말할 것 없고 봉학이는 서울 입성하여 곧 이윤우댁을 찾아가서 문안하고 다음날 비로소 궐하에 숙배하고 또 그 다음날부터 의흥중위인 외소에 출사하였다. 전란이 없는 평시에는 오위 각소가 다 일없는 마을들이라 봉학이가 마을일을 알게 되자마자, 곧 자기 벼슬이 재미가 없어서 이우윤께 이 뜻을 말씀하였다가 벼슬이란 재미를 취해서 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꾸중을 듣고 다시 두말 못하였 다. 봉학이는 벼슬이 한가한 덕에 말미 얻기가 쉬워서 서울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