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서울에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는 그는, 동광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덕분인지, 아니면 팔도에서 온 조선인 말고도 일본인과 중국인, 백계 러시아인들이 섞여 사는 국제 도시의 상인답게 말씨를 다듬어서인지, 평소에는 별로 심한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다만 억양만큼은 평안도식이엇다. "1910년에 합방이 되고, 1911년 봄, 우리 아버지가 봉턴으로 오셧디요. 그러나까 봉천 근교였는데, 친척 일가분이 먼저 여기로 와서 농토를 많이 일궈 가지고 아버질 부른 거예요. 아버지는 목수였습니다. 그때 땅에 나무 뿌리가 수백 년씩 얼키설키 억세게 뒤엉켜서 보습을 대면, 묵어 자빠졌던 땅이니, 황무지니껜요, 나무 뿌리에 걸려 그만 보습이 뚝뚝 부러져 나갔어요. 참, 대단했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들고, 개간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