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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3권 (完, 54)

카지모도 2024. 4. 27.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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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또 그렇다 하더라도, 소작인은 소작지를 애호하고, 조금이라도 지력 소

모를 가져올 것 같은 것을 경작하지 않음은 물론, 모두 귀사의 지도에 따라 전

심으로 농사 개량에 정려하고 이를 열성, 충실히 실행하겠다고 하는, 말 같잖은

말 같은 것에는 어이가 없다 못해 숨이 다 막혔다.

하늘 아래, 내 땅이야 있건 없건, 농사꾼이 농사를 지으면서 누가 제 자식 같

고 어버이 같은 땅을 아끼지 않겠으며, 또 어느 누가 열심을 다하지 않겠는가.

말하지 않고도 너무나 당연한 것까지 위압적으로 적어 놓은 그런 항목들은, 순

리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농사라는 차꼬를 차고 앉아 오도 가도 못하게

갇혀 버린 징역살이 같은 생각이 들게하여, 소작인의 며가지를 조이는 말이 아

닐 수 없었다. 그리고, 말이 좋아 '지도'지 사실은 '감독'인, 동척의 유사 행차도

참으로 못 당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또 백 보 양보해서 아무래도 좋았다.

집조지, 그러니까 도조 세 잡을 땅의 소작료는 총 수확의 백분지 오십, 말하자

면 오할로 하되, 그 집조지가 수리조합 구역 내에 있다든가 혹은 개량 공사를

시행할 토지일 경우에는 소작료가 총 수확고의 백분지 오십을 초과하여도 이의

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것만은, 그야말로 두 눈깔이 튀어나올 노릇이었다.

"그렁게 순 날강도지, 날강도. 뻬 빠지게 농사 지어 갖꼬 딱 절반을 뺏깅게 두

눈꾸녁 번언히 뜨고 날강도를 당허는 거이여."

"절반? 전부 다제. 그거이 어찌 절반이여? 껍데기만 냉기고 다 갖다바치는디."

그것도, 수리 조합이 있는 구역 내에서는 물세를 포함하여 소작료 육할을 거

두어 갔다. 열 가마 거두면 다섯 가마나 여섯 가마를 소작료로 내야 하니, 동척

의 농사 지도원이

"검견."

하겠다고 구두로 통지를 해 오면, 사람들은 머리 속이 아찔하게 휘돌리며 다리

에 힘이 수르르 빠지는 것이었다.

소작료를 매기려고, 논에 서서 눈을 가무스름하게 뜬 채로 휘이휘이 사방을

둘러보는 유사의 얼굴을 헐끔헐끔 바라보는 작인의 허옇게 메마른 입술은 애가

타다 못해 다닥다닥 딱지가 앉아 있곤 하였다.

이렇게 해서 매겨진 소작료는, 동척이 지정한 기일에 지정한 장소로 가서 바

쳐야 했는데 만일 기한 내에 내지 못하면, 그 미납액에는 월 이푼의 과태료를

물렸다. 그리고 만일 소작료가 체납되어 소작 해제를 당하는 경우에는 해당 토

지의 작물을 모두 무조건 내놓아야만 했다. 혹시 이것에 대하여 보상을 할 경우

에 그 평가액은

"귀사 사정에 따르겠다."

고 계약서에는 박혀 있었다. 그러나, 소작료를 못 내서 빼앗기는 작물에 보상을

해 주는 일은 거의 없어서 다만 허울뿐인 구절이었다.

그 대신

 

15. 소작료는 곡물 검사규칙대로 하여 한 가마니 미만의 우수리일지라도

가마니에 넣어 납입하겠음.

 

이라고 되어 있으니, 다만 몇 되, 몇 홉일지라도 모두 깡그리 훑어 빼앗아 가는

이것이 바로 야차나 두억시니가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그 모습이 흉칙 추악하고 어두운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을 해친다는, 잔인하

고 혹독한 귀신 염마졸도 이보다는 덜 악착스럽고, 더 인정이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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