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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4권 (2)

카지모도 2024. 4. 29.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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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잠깐 다른 생각이온데, 그 고리배미 송림이 타고난 제 값을 못하는 것

은, 그 주변 경관 탓도 있지 않을까요? 만일, 금 송곳으로 돌을 쪼고 학의 부리

로 무래를 그은 것 같은 절묘한 풍관 속에 그 수풀이 앉았더라면, 그런 무지몽

매한 대접을 받을 리 있겠습니까? 고리배미야 그저 민틋한 동산 아래 두리두리

멍석을 펴 놓은 것 같은 마을일진대, 송림 홀로 울연 창창하다 하나, 그런 범하

지골의 풍경 속에서는 제격이 제대로 드러나기도 어렵고, 심지어는 개발의 편자

처럼 제 격을 갖추었다 하기도 어렵겠습니다."

"옳다. 내 그래서, 그 붉은 용의 무리 같은 육송들을 바라보면서 한탄했더니라.

어쩌다 저만한 귀골의 씨앗들이 이런 민촌으로 날아와 떨어졌을까. 그 풍향의

곡절은 알 리 없었으나, 자리를 잘못 앉은 것만은 분명하고, 애석했었다. '삼밭

의 쑥'이라고 옆구리로 기어 크는 구불구불한 쑥도 곳곳하게 위로 크는 삼밭에

들면, 저절로 반듯하게 자라나지만, 거꾸로 쑥밭에 떨어진 삼씨는 제 본성도 다

잊어 버린 채 쑥을 따라 구불구불 땅바닥으로 크는데, 그것이 하찮은 풀뿌리라

서만 그렇겠느냐. 아무리 크고 좋은 유자라도 강을 건너 다른 나라 땅으로 가면

탱자가 되고 만다 하더라. 그래서, 저 적송, 귀문의 종자들이 한미하고 변변치

못한 민촌 어귀에 잘못 앉아, 하릴없이 그 격으로 되고 말았구나 싶었다. 주위

경관하고 격에 맞게 어우러지지도 못하고, 누가 제대로 알아보는 이도 없어, 자

연히 마땅한 대접조차 못 받으니, 저 무성한 군송의 기개와 풍자가 참으로 속절

없지 않으냐, 하였다. 사람이라고 무엇이 다르랴.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있

지만, 용은 개천에서 살 수 없다. 개천에 빠진 용은 제 비늘도 다 못 적시는 개

골창 물 속에서 뒤척이며 몸부림치다 죽든지, 아니면 굳이 그렇게라도 살아야겠

으면 미꾸라지가 되어야 하리. 눈에 보이는 세상살이도 그렇지만 안 보이는 정

신 자리, 사는 자리도 똑같다. 그것을 천한 곳에 두면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다. 그러니 사람이 내 마음을 추리고, 추리고, 또 추려서 균형을 잡고, 훌륭한

스승의 지도를 받아 그 자리를 밝혀 가는 수련을 하는 것이 바로 '공부'니라.

부디 이 갈고 닦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오직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숨

쉬는 일처럼 몸에 익어 일상이 되도록 자신을 건사하고, 이재를 하듯이 정신을

관리해야만 정신의 토양이 비옥해 질 것이다."

그리고는 한동안, 세운 무릎 위에 한 손을 얹은 채, 청암부인은 허리를 곧추세

우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말했다.

"하기는 무엇이 귀한 것이고, 무엇이 천한 것이랴. 또한 양반은 무엇이고 상놈

은 무엇이겠느냐. 귀천에, 반상에, 격조와 운치를 아는 풍류나, 도무지 그런 것

이라고는 모르는 몰풍이나, 모두다 사람이 만들어 낸 편견이요 생각의 오랜 관

습일 뿐, 본디 그 사물이 가진 본성과는 거리가 먼 것인지도 모르지. 소나무는,

그 종자가 무엇이든, 그것이 어디에 떨어져 어떻게 뿌리박고 서 있든, 그저 오

직 소나무일 따름, 저한테 단아하고 어여쁜 정자를 지어 주든 소똥 깔고 앉은

황소를 누렇게 매어 놓든, 거기 따라 소나무 자체의 본성이 변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또 사람대로 천연인으로서 다만 사람일 뿐, 무

슨 무슨 분별이란 다 헛된 것이 아니겠느냐."

청암부인은 이기채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하오나, 소나무라 하지만 그것도 하나하나보면, 해송, 육송, 적송, 백송, 거기

다가 다박솔. 성질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데, 사람 또한 조상 따라 근본이 다

른즉 후에 태어난 자손도 다 달라서 분별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씨가 다르

니..."

"씨라. 그 씨의 근원은 또 무엇일꼬. 어느 누구라도 선조를 따져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애초에 미련한 선조가 어디 있겠느냐. 허나, 어진 현조의 자손들은 그 조

상이 밝힌 정신의 등을 받어서 불을 댕기어 다른 등으로, 또 다른 등으로 연방

옮겨 붙여 고금에 이어 내려오면서 훤하게 불울 밝힌 집안을 이루겠지만, 아닌

경우에는 상어오는 중간에 못난 사람이 생기고, 무식해지고, 선대와의 끈도 끊

어지고 집안가지들도 흩어져 각동백이가 되면서 빈곤해지면, 발등 비출 등불조

차 어두워져 상놈들이 되겄지. 그러다가 죄를 짓고 등불이 아주 꺼지는 일을 당

허면 천인이 되고 말아 그 인생이 깜깜한 밤중을 헤맬 것 아니냐. 저 하나만 그

러고 마는 것이 아니라 대대손손 엄하고 혹독하게 서러운 굴레를 써야 하니, 불

행히도 그런 사람을 선조로 둔 후손은 누구를 원망할 것이냐. 상고에서는, 살인

한 죄인을 참수하고 그 처자를 몰수해서 노비로 삼었다는데, 백제에서는, 간음

한 여자를 노비로 만드는 형법이 있었다더라."

그러니 죄의 씨가 종인가.

이렇게 죄를 지어 그 벌로 한번 노비가 되면 그는 종의 조상이 되었다. 그리하

여 그 신분을 물려받은 신분 노예가 생기고, 또 다른 곳에서는 지은 빚 때문에

몸이 잡힌 부채 노예가 생겨났으며, 나라가 멸망하면서 끌려 간 포로들이 노예

의 멍에를 쓰기도 하였다. 또한 역모를 꾀한 자의 집안 가솔들도 공천,사천노비

로 곳곳에 박히었다. 심지어 몹시 곤궁한 집에서는 제 가족을 노비로 팔기도 하

였으며, 일반 양인의 붙이라 할지라도 어쩌다 가족을 잃고 저 혼자 떨어져 궁글

어 다니다가, 할 수 없이 누구네 종으로 주저앉는 경우도 있었다. 그 연우 곡절

이야 어떤 것이든, 한번 사내 종 노와 계집 종 비가 되어 신분에 낙인이 찍히면

그들은 그날로 저의 주인 상전의 마소나 전답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리고 세

습되었다. 백 년, 이백 년이 아니고, 천 년, 이천 년만이 아닌 기나 긴 세월을

두고, 일찍이는 고조선에서 만든 법인 범금팔조에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을 상하게 한 자는 곡물로써 보상하며

남의 물건을 도독질하면 그 주인의 노예가 되는 것이 원칙인데,

만일 속죄하고자 한다면 매인당 오십만 전을 내놓아야 한다.

고 밝힌 그때로부터, 노비의 수가 크게 늘어난 고려에 이르러, 원래 양민이었다

가 노비로 된 자를 해방시켜 주려는 노비안검법에, 해방되었던 노비들을 다시

노비로 만드는 노비환천법이 엎치락뒤치락 하던 시절을 지나 조선 시대에 이르

기까지, 노비 제도는 깊고도 오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조선의 노비는 칠반천

역, 팔반사천에 드는 천민으로, 칠천,팔천 중에서도 가장 낮은, 이름만 사람일

뿐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이들을 다시 공노비인 공천과 사노비인 사

천으로 나뉘었다. 장례원에서는 이들의 호적을 철저히 조사하여 노비안을 작성

해 두었는데, 공노비는 장례원에서 직접하고, 사노비는 지방의 수령이 삼 년마

다 속안을 만들어 변화 정황을 적은 뒤에, 이십 년마다 정안을 기록하여 본조,

의정부,장례원,사섬시,본사,본도,본읍에 보관하였으니. 이렇게 숨통을 조이는

신분의 족쇄로부터 달아난다는 것은 주먹속에서 뛰는 벼룩과 같은 일이었다. 그

래도 집안에 묶인 노비로 꼼짝못하는 사천보다는, 밖에 나가 살면서 제 식구와

가계를 꾸려 갈 수 있었던 공천은 처지가 좀 나았다. 궁중에서 쓰는 미곡,포목,

잡화와 노비 들을 맡아 보는 내수사에 속하였다 하여 내노비, 혹은 궁노비라 부

르던 공노비를 비롯하여 관아에 소속된 관노비, 역에 박힌 역노비, 그리고 향교

에 딸린 교노비, 또 고려의 사찰에 있었던 노비들을 조선 초기에 나라를 세우면

서 모조리 몰수하여 공누비로 만든 사노비들은 공천이었는데, 이 공노비 공촌

중에서도 선상노비와 납공노비는 서로 일이 달랐다. '선상'은 서울에 있는 각

관아의 사역에 종사시킬 사내 종을 지방 관아에서 뽑아 바치는 일이었다. 일년

에 여섯 달씩 교대로 고되게 노역하는 이 경중 공천 선상 노비는, 일년에 일곱

번씩 교대하는 지방 관노보다 훨씬 무거운 일을 하는 셈이어서, 이들에게는 시

중드는 봉족 두 명을 붙여 주었다. 이 봉족꾼은 선상 노비를 위해서 해마다 두

필씩 포를 바쳐야만 했다. 입역이 고달픈데다가 선상 노비들을 대부분 지방에

늙은 부모와 그리운 처자식을 떼어 놓고 온 처지라서 몹시 괴로워하던 끝에 죽

음을 무릅쓰고 도망을 하거나, 포 열두 필에서 열다섯 필이나 되는 막대한 선상

대립가를 치르고 피역을 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금액이어서 아

주 특별한 노비의 경우 말고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몸으로

신공을 바치던 선상 노비가 아닌 납공 노비는 신역 대신 매년 자신이 노비인

값, 노비공을 사섬시에 현물로 바쳤다. 이 납공 노비가 짊어진 부담은 실로 무

거워서, 해마다 사내 종이 포 한 필에 저화 스무 장이고, 계집 종이 포 한 필에

저화 열 장씩이었다. 저화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 불환 지폐인데, 정화와 바꿀

수 없는 이것을 사람들이 기피하여 나중에는 저화 석 장에 쌀 한 되로까지 그

가치가 떨어졌지만 처음에는 한 장에 오승포 한 필이나 혹은 쌀 두 말에 맞먹는

값이었으니, 저화 스무 장이면 오승포 스무 필이거나 쌀 네 가마에 해당하는 것

이었다. 제 몸뚱이 가릴 베 조각 하나 변변치 못하고, 제 입에 넣을 좁쌀 한 숟

가락 넉넉지 못한 노비들에게는 연자맷돌같이 무거운 납공이었지만, 피할 수 없

이 목을 조이고 있는 톱니이기도 하였다. 선상,납공말고도 공노비들은 제가 속

한 관아의 음식을 만들어 올리는 공궤를 담당해야 했고, 노비 공물외의 부가세

로 작지를 납입해야만 했다. 작지는 호조나 광흥창같은 수세창고에서 징세 사무

를 보는 데 필요한 종이를 마련하기 위하여, 공세를 받을 때, 공세미 한 말에

종이 다섯 장, 열 말에는 스무 장이 한 권인 종이책 두 권씩을 덧붙여 내게 하

였다. 세금으로 내는 공세미에만 부과시키던 작지는 때로 논밭이나 임야, 가옥,

노비들을 사고 팔 때 증명 신청자로부터 수수료로 밭기도 했는데, 나중에 무당

한테는 무격세, 산간의 화전민한테는 화전세같은 잡세와 더불어 공사노비공에도

부가 징수 하던 세목이었다. 이런 것을 못 견대어 도망하는 노비들은 추쇄도감

을 두어 철저히 잡아서 막았는데 사노비, 즉 사천은 공노비보다 그 수가 훨씬

많았다. 사액서원에 딸린 원노비와 양반가에 딸린 반노비도 사천이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노비는 저의 주인인 상전의 집안에 붙박여 살면서 대를 물려 가내노

복으로 잡살뱅이 온갖 일을 다 하였다. 사노비는 자신의 호적단자를 따로 가질

수가 없었다. 입적자는 반드시 호적을 가져야 하는 법령을 따라 삼년에 한 번씩

호구 조사를 할 때, 각 호의 가장은 본인의 거지와 성명, 본관, 나이, 직역, 그

리고 부의 직역과, 위로 사대조에, 외조부의 성명과 본관을 적은 다음, 처의 나

이와 본관, 처의 부,조부,증조부,고조부,사대조와 외조부를 쓰고, 그 옆에 함께

거느리고 사는 자녀의 나이와 이름을 적은 뒤. 말미 아래 한쪽 귀퉁이에 가내노

비의 나이, 이름을 소상히 적은 호적단자를 관아에 보냈다. 관아에서는 이 단자

대장을 정리하여 호조,한성부,본도,본읍에 비장하였는데, 노비의 호적은 장례원

의 노비안에 올랐다. 신분이 미천하여 이름 하나 사람답게 얻지 못한 채, 키가

건드렁하니 크다 하여 '키녜', 작달막하고 톰방하게 생겼다고 '돔발이', 얼굴이

넙적한 생김새 그대로 '넙댁이'라 불리던 노비들은 단자에 발음이 비슷한 글자

'기래', '동발', '여덕' 등으로 적히기도 하였다. "어미가 종이면 그 소생은,

아버지의 신분이 무엇인가를 묻지 않고 어미의 신분에 따라 종으로 삼는다." 는

종모법을 따라 세습되는 노비의 이름은 어미 아래 낳는 대로 적히었으니, 아들

은 노가 되고 딸은 비가 되었다. 매안 이씨 선대의 문서에 적힌 종의 이름은 이

백 년 세월이 흘렀으나 아직도 먹빛이 선명하다.

솔 비 귀매 년 경인생

일소생 노 영득 년 경신생

이소생 비 영근 년 갑인생

삼소생 비 삼매 년 계해생

사소생 노 귀득 년 병진생

오소생 비 계덕 년 계유생

경인생인 계집종 귀매가 낳은 소생은 아들 둘, 딸 셋 다섯으로 이들은 모두 종

이 되었다. 그 첫 번째 소생은 사내종 영득으로 경신생이며, 두 번째 소생은 계

집종 영근으로 갑인생, 세 번째 소생은 역시 계집종 삼매로서 계해생이다. 네

번째 소생은 사내종 귀득으로 병진생이며, 다섯 번째 소생은 계집종 계덕으로

계유생이다. 그 중에 둘째 배에 낳은 갑인생 계집종 비 영근이 비부를 얻어 다

시 자식을 낳으니, 그의 소생은 모두 또 종이 되었다. 그러매 숨 한 칸 쉴 틈도

없이 바로 이어서 그 새끼의 이름을 단자 끝에 촘촘이 단필로 적어 나갔다.

비 영근

일소생 비 명금 년 병신생

이소생 노 명길 년 을묘생

삼소생 비 명분 년 갑신생 부 사노 박흥대

계집종 영근이의 첫 번째 소생은 계집종 명금이로 병신생이며, 두 번째 소생은

사내종 명길이 을묘생이고, 세 번째 소생은 계집종 명분이로 갑신생이다. 명분

이는 사내종 박흥대를 비부로 얻었다. 그러니 '귀매'라 하는 계집종 하나의 뱃

속에서 다섯 노비가 나왔고, 노비의 자식은 또 노비가 되는 법을 따라, 귀매의

딸 영근이 한테서 낳은 자식 셋까지 모두 종이 되어, 새끼 종만 여덟으로 불어

났다. 문서에 적히지 않은 나머지 종들은 여러 자손들이 분가하거나 출가할 때

딸려 보내 노나 주었을 것이다. 어미와 딸이 제 소생들을 데불고, 대를 물려 함

께 한 집에서 종을 살고 있는 이 이름들 아래, 또다른 노비의 가족이 비끌어맨

발목을 붙들고 있다.

비 선임 년 경술생

일소생 노 일룡 년 갑신생

이소생 노 후룡 년 병술생

비 양례 년 갑인생

일소생 비 다옥 년 신묘생 부 사노 유승진

노 시능 년 무술생 비 만업 년 갑신생

계집종 선임이는 경술생인데, 그 첫 번째 소생은 사내종 일룡이로 갑신생이며,

두 번째 소생은 사내종 후룡이로 병술생이다. 또한 계집종 양례는 갑인생으로

그 첫 번째 소생은 계집종 다옥이 신묘생이고 다옥이의 비부는 사노 유승진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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