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장수 부칠이가 하릴없이 맞장구를 치고 말자 나막신 깎아 파는 모갑이는
이야기하는 사람 앞으로 무릎을 당겨 앉으며 물었다.
"그런디 왜 더 못 살고 기양 와?"
"왜는 왜여? 진의원 마느래 땜이 그렇제."
"마느래?"
"옳제, 투기를 했등게비구나?"
"투기라도 기양 머 첩의 년 머리 끄뎅이나 조께 잡우댕기고, 세간살이 뿌수거
시끄럽게 해 놓는 정도가 아니라, 아조 제대로 했능갑서."
"어뜨케?"
"진의원이 왕진가는 날을 지달르고 있다가잉, 그 마느래 수족 같은 예편네 몇
이서 작당을 해 갖꼬는, 불문곡직 달라들어 질질질 끄집어다 비오리 꾀를 활씬
벳겨서, 터럭이라고는 다 쥐어뜯고 뽑아내 민둥이를 맹길었다대."
"어, 독헌 년들."
부칠이와 모갑이는 머리를 털었다.
"거그서 끄쳤드라먼 그래도 낫었을 것을."
"더 헌 짓이 있었어?"
"하문에다 박달방맹이를 쑤셔 박었드래."
"다들이질...허는...?"
너무나도 끔찍하고 엄청난 말이라 사람들은 더 이상 무어라 덧붙이지 못한 채
모두 얼굴이 흙빛으로 질려, 서로 눈길을 피하며 우물쭈물 하였다.
"진의원이 돌아와서 울어도 쇠용이 없고, 광생당 한약국에 있는 온갖 약재를
다 써서 고쳐 볼라고 해도 이미 될 일이 아니였드라대. 아 저 중국으로끄장 사
람을 보내서 약재를 구해다 써 봤당만그리여. 옆에서 본 사램이, 진의원 정성이
하도 가련해서, 하늘이 다 무심하다 싶드랑만..."
동네 사랑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샘가에 모여 앉은 아낙들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비오리가 못 쓰게 된 것까지는 같은 내용이었으나, 그렇게 누더기로 만든 사
람이, 진의원의 '마느래'가 아니라 바로 비오리를 소실로 데려간 진의원 자신이
었던 것이다.
"아니 암만 질같(길가)에 꽃이라도 맘에 있어 꺾었으먼 애지중지 허든 못헐망
정 그 지경으로 모질게 짓뭉개서 사람 구실도 못허게 맨든당 거이 말이나 되야?
허이구, 참. 세상에나 제대로 앉을 수도 없능갑드라고."
배추거리를 다듬던 아낙이 퍼르르 성질을 돋우었다.
"샛서방을 봤능갑대."
"잉? 비오리가?"
"진의원이 분을 못 참고 기양, 연놈을 잡어 족치다가 미친디끼 비오리한테 달
라들어 쥑일라고 작정을 험서, 못 헐 짓 없이 맹글어 부렀능갑등만. 그때 비오리
안 죽은 거이 천행이라든디?"
"암만 그렇다고 소위 의원이람서 사람의 낯가죽을 쓰고 그럴 수가 있어?"
"아이고매. 찢어 쥑인대도 헐 말 없지 머. 일부종산디."
"첩도 일부종사 해양가?"
"아, 첩은 머 벨 거이여? 여자로 났으먼 헐 수 없능 거이제."
"어이. 수악허다. 참말로."
아낙들은 쌀을 씻고, 배추거리를 다듬으며, 물을 긷는, 저 할 일을 다 마친 뒤
에도 샘가에서 일어설 줄을 몰랐다.
그러나 어느 하루는 떡장수 곤지어미가 새 말을 물어 왔다.
"이런 경천동지를 헐 일이 있능가이? 아이고머니나, 그, 비오리 샛서방이 긍게
진의원 아들이었드라네. 진의원이 벌쎄 마흔 넘었잉게로 그 아들도 한 스무나뭇
이짝 저짝 안되겄다고? 이런 말 욍기는 내 입이 더렁가?"
그 자리에 있던 방물장수 서운이네는 곤지어미 말에 고개를 갸웃하였다.
"진의원으 아들이라먼 나도 본 일이 있는디?"
"어뜨케 생겠등고? 말 딛기로는 즈그 아배를 탁에서(닮아서), 매꼼허고 내노라
허는 할량이라든디. 놀 찌 알고."
"나도 머 방물 짊어지고 그 집이 갔다가 실쩍 지내감서 봐 갖꼬잉. 잘은 모르
겄는디, 기양 시악씨맹이로 뵈이등만, 얌전허게."
"얌전헌 강아지 부뚜막에 올라앉은단 말, 듣도 못 했능가?"
한량이 되었든 숙매이 되었든, 진의원의 아들이 제 아비의 첩과 농탕치게 어
우러졌다는 말은 고리배미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만고에 한량인 진의원 아들이 색태 자르르한 비오리를 보고 그만 앞뒤 분별을
잃었다는 말도 있고, 젊은 비오리가 매일 늙은이처럼 소리선생이나 데려다 주는
진의원한테 별 마음이 없이 시들어가던 중, 어처구니없게도 아들한테 반하여 사
생결단 목을 매고 그를 홀렸다는 말도 있었으나, 누가 직접 본 일이 없으니, 진
위를 어찌 알리. 그러나 이미 그 이야기는 맹렬하게 불이 붙어 걷잡을 수 없도
록 온 마을 고샅 고샅 번져 나갔다.
전에 비오리가 진의원의 마누라에게 도륙을 당하다시피 했다, 하는 말이 돌
때
"나도 님의 마느래지만 본마느래 권세가 그렇게 대단헌 거잉가. 첩도 사램인
디, 어뜨케 차마 그 지경을 맨들 수 있당가."
하고 편역을 들었던 아낙도, 이번에는 한 마디로 잘라서
"참, 상종 못 헐 개상년이로그만."
해 버렸으며. 거꾸로 비오리가 샛서방을 보아 진의원이 물고를 낸 것이라는 말
이 돌았을 때 역시
"사람이 지 분수를 알아야제, 암만 돈이 많다고 나이 생각도 안허고, 젊으나
젊은 첩을, 자식보다 에린 것을 데꼬 살라고 욕심 내다가 낭패를 본 거이제 머.
아 호강도 좋지만 새파랗게 젊은 년이, 어디 먹고 입는 호강만 갖꼬 살 수 있간
디?"
하면서 은근이 두둔해 주었던 사람도 이버 소문에 대해서만큼은
"더러운 년."
이라고 거두절미 단호히 매도하였다.
"추접시러서 어디 고리배미 산다고 말 허겄능가?"
"이래 놓으니, 양반들이 민촌것 민촌것 험서나 우리를 하시하고, 사람 취급도
않는 거이라고."
"헐 말 없지 머."
"개 뒤야지 한 가지로, 에민지 애빈지 구분도 못허고 그저 아무케나 들러붙어
서, 인륜도 없고, 도리도 없고, 못 헐 짓이 없응게."
아무리 술파는 계집이라지만, 한 동네에 머리 두고 같이 사는 것이 창피하다
고, 아낙들은 솔밭 삼거리 주막집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으며, 남정네들도
발길을 끊었다. 동네의 풍속을 더럽힌 년의 집인탓이었다.
"그 주막 술은 구역질이 나고 던지러서 못 먹겄다."
그런데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리배미 토박이로 이 마을에서 남부럽지 않게 농사를 많이 지으며 어른 행세
로 자못 위세를 떨치고 있던 엄병곤이, 이 소문을 듣고는 노발대발하며
"진상을 가려서,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본때를 보여 조리를 돌리라."
고 했던 것이다. 지금껏 웅성웅성 뒷소리만 하고 있던 사람들은 삽시간에 벌떼
처럼 일어나 금방이라도 주막집으로 쳐들어갈 것처럼 사납게 흥분했다.
그러나 결국은 그리하지 못하였다.
부칠이와 모갑이를 비롯하여 떡장수 곤지어미와 방물장수 서운이네, 그리고
비오리를 진의원에게 중매했던 서운이 할미 등 몇 사람이 우선 작당을 하여 선
발대로 노기등등 몰려가자, 뜻밖에도, 반항할 줄 알았던 비오리가 선뜻 덧문을
열어젖히며 방으로 들어오라 하였다. 그리고는 술상을 내왔다.
"내가 신세 처량하게 소박을 맞고 왔더니, 입에 못 담을 소문들이 제멋대로 돌
았능갑습디다잉. 태생이 비천헝게 누가 지내가다 매급시 한대 쥐어박어도 말 못
허고, 아닌 말로 때려도 변명 못허고... 사램이 어디 독(돌)으로 쳐야만 아픈 거
잉가요. 말로 치먼 멍이 더 깊제. 주먹으로 한 대 맞은 멍은 날짜 가먼 풀리지
만, 말로 맞은 자리는 죽을 때 끄장 풀리덜 않고 원한이 되능 거 아닝교? 내가
고리배미로 돌아온 그날부텀 알게 모르게 떠돌던 말, 그게 다 헛소문이요. 나는
날마동 그 말매를 맞고 살었소. 이 멍을 다 어쩌실라요? 안 그래도 서러운 인생,
죽기 전에 풀어 주실라요? 예?"
허기 쉬운 넘으 말이라고 그렇게 막 허능 거 아니그만요잉.
비오리가 하도 찬찬하게 변설을 하매. 우우하니 몰려갔던 사람들이 도리어 무
색하게 공연히 방바닥만 문대여 만지작만지작 하는데, 서운이 할미가 중매 선
연고로, 남들 앞에서 비오리를 씻어 주려고 짐짓 물었다.
"아니 땐 귀뚝에 연기 나라는 속담도 있지마는, 왜 무단히 그런 숭악헌 소문이
다 갖꼬 생사람을 잡는당가. 참말로 그런 일이 없었어?"
"없당게요."
비오리는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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