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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5권 (24)

카지모도 2024. 8. 1.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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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봤다아."

춘복이는 거멍굴 동산의 꼭대기 바위 날망에 올라 두 다리를 장승마냥 뻗치고

선 채로 두 팔을 공중으로 번쩍 치켜 올리며 부르짖었다.

그 소리는 사나운 산짐승이 달을 보고 잡아먹을 듯이 응그리며 무서운 용틀임

으로 으르렁거리는 것같이 들렸다. 아니면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오래 참고 참

아 온 울음을 한 목에 터뜨리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달 봤다아야."

비명에 가까운 춘복이의 고함소리가 동산을 뒤흔들며 공중에 울릴 때 함께 올

라온 거멍굴 사람들은 달을 향해 넙죽이 큰절을 올렸다.

소원을 비는 것이다.

해가 지기도 전에 일찌감치 할랑거리며 고리배미로 앞서 간 옹구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백정 택주네 붙이들과 당골 백단이네 푸네기, 그리고 공배네

내외, 평순네들이 우줄우줄 뒤섞인 거멍굴 동산은 떠오르는 보름달 아래 검푸른

인광을 띄우며 술렁술렁 흔들렸다.

남들이 다 하는 대보름 달맞이여서 춘복이도 어려서부터 정월 보름날이면 으

레 마을 사람들을 따라 동산 위에 오르고 또 몇 번인가는 호기심에 장난 삼아

달 봤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만 한 번도 절실하게 소원을 빌어 본 일도 없었

고 빌 만한 소원 또한 없었다. 또 만일 소원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달이

무슨 힘을 가져 그것을 이루어 주리라고 믿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달맞이가 어디 오늘 같았으랴.

춘복이는 마음에 먹은 일이 있어. 힘이 되기만 한다면 풀뿌리, 바윗돌, 지나가

는 바람한테라도 절절히 빌고 싶은 심정이었으며 꾀를 빌릴 수만 있다면 사람은

그만두고 들짐승, 날짐승한테라도 엎드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며칠 전부터 옴짝도 하지 않고 제 오막살이 농막에 웅크린 채, 그는 오직 한

사람 강실이를 생각하며 궁리에 궁리를 기웠다가 뜯어냈다 뒤척이던 끝에 오늘

달맞이에 일의 성패를 건 미친 사람처럼 단걸음에 내달아 누구보다 먼저 동산

위의 날망에 올라선 심정이야.

그리고 드디어는 이렇게 달을 보고 만 것이다.

달을 차지하고 만 것이다.

춘복이는 숨이 막혀 지레 가슴이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작은아씨를 내 사람 되게 해 주시오."

북받치는 이 말을 속에 삼키고 달을 향하여 그는 어금니를 윽물었다.

"언강생심 그런 일을 생각이라도 허는지 알먼 그대로 끄집어다가 덕석몰이 두

드러 패고 종당에는 뼈다구 뿐질러서 동구 밖에 패대기칠 거인디? 어 매안냥반

들 하루 이틀 저꺼 봐? 더군다나 이게 무신 과부 보쌈도 아니고 금쪽 같은 양반

댁 시집도 안 간 처녀를 날도적질해 오는 일인디. 살기를 바래?"

하고 오금박으며 조근조근 덤벼들던 옹구네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목심이 서너 개 되는게비네잉."

하던 말도.

"상민으로서 양반을 욕되게 하는 자."

는 오랜 향약의 규범에서도 무거운 극벌에 처하는 것을 아무리 근본 없는 춘

복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아니 근본이 없는 상놈이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

도 이 조목만큼은 더욱 명심해야 될 것이었다.

"양반 세도 말해서 멋 헌다냐? 무단히 입만 아푸제."

공배도 전에 그렇게 말했었다.

"아. 너 그 새비젓 장시 이얘기 몰르냐? 머 얼매 되도 안헌 이얘기다. 그게. 새

비젓통 지게 욱에 똥그람허니 지고는 그놈이 목청이 컸등가 왜가리 소리를 험서

매안골을 고샅 고샅 댕기는디. 부지런도 했등갑서. 이른 새복부텀 새비젓 사라고

외치등게비드라. 모두 집집마동 아침밥들 허니라고 귀뚝에서 연기가 나쌍게

로 한 접시라도 더 팔고자퍼서 그랬겄지맹. 새비이저엇. 멩라안저엇. 어리굴저엇

있어요오. 허고는 젓장시들은 외고 댕기지 왜. 아 그런디. 아랫몰 지내 중뜸 지

내 원뜸 미처 못 갔는디. 머심이 하나 오드니 시끄럽다고. 샌님께서 글 읽으신디

소란허다고 죄용히 허라신다고 헌단 말이여? 새복 정신이 산란허다고 동네 복판

에서 어떤 불상놈이 저렇게 외장을 치냐고. 여그가 어딘디. 굳이 새비젓을 꼭 팔

아야겄으먼 죄용죄용히 사겄단 집이나 들으가서 소리 없이 팔 거이제. 저 무신

해괴헌 짓이냐고 꾸지람이 대단허시다. 그랬단 말이제. 근디 이노무 새비젓 장시

가 먼 물정을 몰랐든지 안 그러먼 심사가 뒤틀렸든지 하이간에 그 말을 금방 듣

고도 또 새비젓 사라고 외치네. 새비이저엇. 맹라안저엇. 어리굴저어엇 있어요

오."

"잘했구만."

"머이 잘했냐. 이놈아. 샌님이 진노를 허계서 그 새비젓 장시를 번쩍 들어다가

젓통째 지게째 기양 방죽으다 패대기를 쳐부렀단다. 괘씸허다고 왜 그 원뜸 조

께 미처 못 가서 있는 둠벙 말이여, 거그다. 그거이 솔찮이 짚지."

"샌님이 기운도 좋등갑소. 발 개고 앉어서 글만 읽는디 먼 심으로 젓장시를 지

개째 들어요? 젓통이 또 얼매나 무건디."

"아. 그런 일을 머심이나 종 시기제 어뜬 양반이 직접 나선다냐? 체신없이 아

까왔든 그 머심이랑 종이 달라들어서 했제."

"아앗따아. 체신? 그 점잖은 체신에 새비젓은 어뜨케 먹능고? 그것조께 팔어

서 목구녁에 풀칠이라도 헐라고 허는 인생을 불쌍허게는 못볼망정 젓 사란 소리

시끄럽다고 방죽으다 처박음서."

"그게 매안냥반들 성깔 아니야. 대쪽 같고 쇠꼬챙이 같고."

"그 대쪽으로 대관절 얼매나 상놈을 후려치고 그 쇠꼬챙이로 또 얼매나 상놈

들 인생을 찌르고 못박었으꼬. 상놈은 상놈 된 죄로 그 짓 다당허고 그래서 어

뜨케 된다요? 그 젓장시."

"머이 어뜨케 되야? 풍덩 빠져서 허우적거림서 살려 도라고 어푸어푸 빌고 지

게는 벗어져. 젓통은 엎어져. 새비젓이 둥둥 떵댕겠지."

"썩을 놈. 칵 죽어 불제."

"누가?"

"어뜬 놈이든지."

"야 좀 바. 너 시방 누구보고 허는 소리냐?"

"누구먼 멋 헐라요?"

춘복이는 공배의 다음 말을 미리 짐작하고 있는 터라 미리 무질러 말을 잘라

버리고 말았지만, 물에 빠져 젓국물을 뒤집어쓰고는 살려 달라 애원하는 젓장수

가 가엾고 안됐다기보다는 그만한 일로 그렇게 당했다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진

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대로 빠뜨려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격렬하게 느꼈었다.

그 젓장수의 남루한 무력함이라니.

그렇게 살라먼 차라리 죽어라.

죽어 부러라.

그리고 그보다 더 가눌 수없이 격력하게 끓어오르는 것은 매안의 샌님에게 느끼

는 증오의 살의였다.

글 읽으신디 소란허다고? 새복 정신이 산란허다고? 어뜬 불상놈이 동네 복판

에서 저렇게 외장을 치냐고? 여그가 어딘디?

대관절 글이 머이간디. 대관절 양반의 새복 정신이 머이간디. 어뜬 놈은 꼭두

새복 넘 다 자는 시간에 짠내 찌들은 젓통 짊어지고 한 종재기라도 더 팔아 보

겄다고 목이 쉬게 외장을 침서 휘청걸음을 걷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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