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연의 늪
신라 성골 진평대왕은 기골이 장대하고 위엄이 있어 그 키가 십일 척이나 되
었다. 그래서 곤룡포를 지으려고 비단을 펼쳐 놓으면 방안이 마치 넘실거리는
붉은 바다 같았다.
그리고 늠름한 가슴과 우뚝 솟은 두 어깨에 발톱이 다섯 개 달린 황룡의 꿈틀
거리는 무늬를 금실로 수놓은 용포를 입은 그의 위용은 흡사 붉은 구름 속의 산
악 같았다.
하루는 왕이 창건한 내제석궁 천주사에 거동하여 섬돌을 밟자. 그 힘에 돌계
단 두 개가 한꺼번에 부서졌다.
이에 왕이 좌우 사람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 돌을 옮기지 말고 그대로 두었다가 뒷날에 오는 세상 사람들이 보도록 하
라."
이를 본 사람들은 왕의 힘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 찬탄하며 깊이 흠모하고
우러르니. 이것이 바로 성안에 있는 다섯 개의 움직이지 않는 돌 중의 하나이다.
또한 왕이 즉위한 원년에 홀연 하늘의 사자가 대궐의 뜰에 내려와
"상제께서 내게 명하여 이 옥대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하고 맑은 소리로 말한즉. 왕이 꿇어앉아 친히 이것을 받았다.
하늘이 내려준 이 옥대는 길이가 물경 십 위로 열 아름이고 장식고리가 예순
두 개나 되었는데 찬연한 순금에 푸른 옥으로 새기고 화려하게 꾸민 허리띠였
다. 왕은 이것을 소중하게 받들어 해마다 동지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교와 하지
에 땅에 제사지내는 사, 그리고 종묘의 큰 제사가 있을 때는 언제나 이 옥대를
띠었다.
구름 너머 높은 하늘이 주신 긴 옥대는
임금의 곤룡포에 아름답고 알맞게 둘리어 있네
우리 임금 이제부터 몸 더욱 무거우시니
이 다음날엔 쇠로 섬돌을 만들 것이네
백성들은 모두 칭송하여 이렇게 노래 불렀다. 심지어는 고구려 왕까지도 이를
알고는 신라를 치려 하던 계획을 중지하였다.
이러한 성골이지만 그에게는 아들이 없어. 공주만 셋을 두었다.
그 중 맏이는 어질고 덕망이 높아 훗날 부왕이 후가 없이 붕어하자 백성들의
옹립으로 즉위하여 선정을 베풀고 하늘의 별을 관측하는 첨성대를 세워 우주를
헤아리고자 한 선덕여왕이 된 덕만공주이고, 둘째는 후일 문흥대왕으로 추증된
각간 김용수에게 출가하여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어머니가 된 천명부인이다. 그
리고 셋째는 미염무쌍. 그 자태가 달빛 아래 모란보다 아름답고 어여뻐 감히 그
곁에 견줄 사람이 없는 절세의 미인으로 꽃이 오히려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는
선화공주였다. 거기다가 공주는 마음이 온화하고 얼굴빛은 단정하였다.
이만한 아름다움이라면 인적 없는 궁곡의 민가에 숨은 처녀라도 소문이 나기
마련이어니 하물며 고귀한 신분의 금지옥엽 공주임에랴.
온 나라 안에 자자한 소문은 국경을 넘어 백제에까지 널리 번지었다.
백제의 서울 사비성 남쪽 연못가에 오막살이 집을 짓고 홀로 된 어머니와 함
께 단둘이 살고 있는 그 아들 장도 이 말을 들었다. 그는 일찍이 남편을 여읜
어머니가 어느 날 못 속의 용과 교합하여 낳은 아들이었는데.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지혜로워 꾀가 많고 무슨 일에나 신통한 재주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덕이 있고 너그러운 성품에 도량이 커서 실로
그 속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가난한 고로 항상 마를 캐다가 성중에 파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으니 나라 사람들은 그를 본 이름 대신에 마동이라고 불렀
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가 세상에 드문 미인이라."
는 말을 듣고 마동은 한 꾀를 생각한 후에 머리를 깎아 중의 행색을 하고 가
장 먹음직스럽고 맛있는 것으로만 고른 마를 한 자루 그득 담아 등에 짊어지고
걸어 걸어서 산 넘고 물을 건너 신라의 서울 금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가지고 간 마를 마을 마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니 달큰하고 신기한
맛에 아이들이 기뻐하며 따르는지라. 그는 이내 아이들과 친해졌다. 이윽고 마동
이 가는 곳마다 아이들의 무리가 모여들어 그를 에워싸고 좋아하자. 그는 동요
를 지어 아이들한테 가르쳐 주며 소리 높여 부르게 하였다.
선화공주님은
그스기 얼아 구고
마동방을
밤의 몰 안고 가다
선화공주님은
남모르게 그윽히 어우러 두고
마동 도련님을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네
아이들이 있는 집의 추녀끝과 골목 골목에서 바람을 타고 울려 퍼지는 이 동
요는 삽시간에 온 서울에 가득 차고 넘쳐서 귀 달린 자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
이 없게 되었는데.
드디어는 대궐 안에까지 들리고 말았다.
함부로 뒹굴어 사는 저자의 상것들이라도 만인이 박자 치며 노래를 부르도록
몸을 가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거늘. 그냥 여염의 규수도 아니요. 만백성의 본
이 되어야 할 공주의 몸으로 저엄한 궁금의 법도를 어지럽히고 차마 입에 담기
해괴한 행실을 저질렀다 하니 근거 없는 노래가 어디 있으리.
조정의 백관들이 모두 나서서 왕에게 극간하였다.
이에 왕은 공주를 벌하여 멀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원방의 황막한 곳으로
귀양을 보내라 하였으니 공주의 아버지로 한 나라의 임금이요. 기골도 장하여
신장이 십일 척이나 되며 힘 또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섬돌을 밟으면 한꺼번에
두 개가 으스러져 부서지는 진평왕이 하늘이 몸소 주신 열 발 옥대를 띠고 있으
면서도 이만하신 대왕이 한낱 아이들의 동요에 불과한 소문 한 토막을 이기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음행의 소문이기 때문이었다.
왕의 권세로도 그것은 맞서볼 수가 없었다.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갓난아기 때부터 향기로운 방령에 이르기까지 어여쁘
고 아름다워 부왕에게 귀애받고 만사람들에게는 선망 칭송을 받던 공주가 그 모
든 것을 무참하게 빼앗긴 채 한순간에 더러운 죄인이 되어 내쫓기는 것은 오로
지 다른 것 아닌 '음행'하였다는 '소문'때문이었다.
소문은 연기와 같이 모양도 없는 것이 칼과 창 하나도 쓰지 않고 장수와 재상
과 임금을 점령하여 굴복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선화공주가 남루한 의복으로 먼 귀양길을 떠나 하염없이 걷고 걸으며
홀로 가고 있을 때 숨어서 뒤를 따르던 마동이 길가로 나와 공주에게 절하면서
시위하여 모시고 가겠다고 하였다.
지치고 외로웠던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 누구이며 무엇 하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우연히 만났는데도 믿음직하게 여겨져 그에게 길을 의탁하고 함께
배고로 가다가.
이윽고 사로 마음이 맞아 한자리에 잠통하니.
노래가 그대로 맞고 말았다. 그때야 비로소 공주는 그의 이름이 마동인 것을
알았고 자신이 대궐에서 쫓겨나게 된 연유를 알게 되었다.
이에 그들은 귀양지로 가던 걸음을 돌려 같이 백제로 왔다.
마동은 훗날 백제 제삼십대 왕 무왕으로 등극을 하여 재위 마흔한 해 동안 굳
건한 왕권을 다지고 안정 강성한 나라의 세력을 만방에 떨치었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집요하게 신라를 침공하여 낙동강변으로 진출. 영토를
확장했으며 정복 전쟁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붕어한 뒤에는 무왕 생존시에 막대한 경비와 시간을 들여 동방 최대
규모의 미륵사를 창건하고 장차 궁성이 될 왕궁 평성을 축조하였으며 마침내는
천도하려고 했던 전라북도 익산 땅 팔봉면 신왕리에 비 선화공주와 함께 나란히
묻혔으니.
이름하여 쌍릉이라 한다.
"쌍릉은 오늘도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하고 마동방 이야기는 민간에 널리 설
화처럼 퍼져 있지만 백제의 사비 시대 정치사에 우뚝한 획을 긋는 무왕을 삼국
유사의 서동설화에 연결시켜 단순히 일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
이라고 봐."
강호는 어느 해 설날 강모와 강태 종형제와 함께 마주앉아 담소하며 그렇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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