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연의 몸 한가운데 세로로 내리긋는 살대 꽁숫달도 귓달같이. 위쪽은 단
단하고 강하게 깎고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다듬어 나갔다.
그런 다음 끝으로 연달 중에 제일 가늘고 날렵한 허릿달을 다듬는다.
"사람의 몸에서 제일 유연해야 허는 데가 어디냐? 허리지? 허리가 바르고 유
연해야 몸에 균형이 잡히는 것이다. 연도 마찬가지라. 이 허릿달이 바로 연의 중
심을 잡는 것이야."
이것은 그래서 다른 달의 사분지 일이나 될까 하게 가느롬히 깎지만. 그렇다
고 너무 가늘면 연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올라가지 않고. 또 너무 굵으면 뱅글뱅
글 허공에서 헛맴을 돌게 되니. 이 미세하고 정확한 무게와 흐름을 저울에 달거
나 눈금으로 재 가며 깎을 수도 없는 것이어서. 오직 세월이 묻은 손끝으로 익
숙하게 가늠하여 꼭 알맞은 것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개 어린 사내
아이들이 제 손으로 처음 만든 연들은 서투른 생김새로 바깥에 나와서는 위로
한 번 떠 보지도 못한 채 땅바닥에 직직 끌려가다가 나무 뿌리 솟은 것이나 돌
부리에 무참히 걸리어 애석하게도 찢기어 버리기 일쑤였다. 행여 그렇게 될까
봐 미리 형이나 누가 연을 멀리 가지고 가서 휘이 날려 놓아 주기도 하지만 그
런 마음이 무색하게 연은 그 자리에서 거꾸로 떨어지며 고개를 땅에 박아 버리
기도 하였다. 내 손으로 만든 연을 내가 하늘에 띄울 수 있다아. 간밤 내내 설레
어 잠을 못 이루며. 대오리 깎느라고 칼에 베인 자리조차 아픈 줄 모르게 들떠
있던 소년이 꿈속에서도 제 연을 타고 높이 높이 새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던 그
연을 처음 창공으로 띄웠을 때. 뜻밖에도 비상의 황홀한 기쁨 대신. 찢기고 추락
하는 낙망을 맛보게 되었으니. 어떤 아이는 주먹으로 눈물을 씻기도 하였다. 그
아깝고 슬픔 마음이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여지없이 찢기고 나서야 비로소 모양
을 제대로 갖춘 연 하나가 만들어지고. 어느 날 드디어 그것은 날개를 차며 머
리 위로 가벼웁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아.
탄성을 발하며 제 연을 따라 함께 날던 그 짙푸른 마음이라니.
그런 뒤에 해마다 조금씩 더 익어 가던 손끝이 이제는 어느덧 어른이 되고 또
노인이 되면 눈감고 칼을 밀어도 저절로 알맞게 깎이고 다듬어져. 머리 쪽은 두
터운 이마와 강인한 뼈대를 갖추고 치마 쪽은 가볍고 유연한 연을 만들 수가 있
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훌륭한 연이 다 된 것은 아니었다.
장식이 남아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저마다의 연이 가지는 태깔과 맵시가 달라져. 각기 이름까지도
어엿이 따로 불리는 판가름이 나는데. 이마에 둥근 해와 달처럼 꼭지가 붙어 있
으면 꼭지연. 반달 모양이 붙어 있으면 반달연. 눈이나 코 같은 형상이 박혀 있
으면 박이연. 색지로 머리를 동이었으면 동이연. 연의 아랫도리 치마에 무슨 색
을 칠하였으면 치마연. 그리고 허리에 마치 띠를 두른 것같이 색지를 동였으면
허리동이연. 둥그런 꼭지만 빼고는 온몸에 모두 색칠을 한 초연. 지네발 모양으
로 종이를 오려붙인 발연 들이 서로 자태를 다투었다.
만일 이렇게 종이를 덧붙여 꾸미지 않는다면 날개 갈피마다 정교하고 호화로
운 색깔을 먹인 나비를 그리어 나비연을 만들거나 굽이굽이 굼틀거려 승천하는
황룡을 그린 용연. 혹은 검은 얼굴에 붉은 눈깔이 넷이나 달린 그 모습이 하도
무시무시하여 귀신도 혼이 나 달아난다는 방상시를 도형화하여 그린 눈깔머리
장군연. 또는 허리띠 양쪽에 붉은 눈알만을 그려 넣은 눈깔허리 동이연 같은 것
들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도 아니면. 연달이 갈라 놓은 여덟 개의 세모칸에 알록
달록 다른 색지를 바른 바둑판연. 꼭지 붙은 머리 쪽의 양편 귀때기에 푸르거나
검거나 붉은 색지를 바른 귀때기연. 발톱연. 얼마든지 재미나게 도안할수 있었
다. 연에 쓰는 물감은 적. 청. 황. 흑. 백의 오색이었다. 우주의 근원인 하늘에 띄
워 올리는 빛깔이므로 동. 서. 남. 북과 중앙을 나타내며 음양 오행의 원리를 담
은 오방색만을 썼던 것이다. 이 천지 자연에 순응하는 경건하고 겸허한 마음의
바탕 위에서 오색은 얼마나 찬란하고 눈부시게 어우러지고 또 강렬하게 절제되
어 얼어붙은 창천에 저다지도 현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그래서 그 색깔따라 연
에는 각기 다른 이름이 붙었다. 흰 몸에 둥그런 꼭지가 선연하게 붉으면 홍꼭지.
새까만 먹빛이면 먹꼭지. 푸른 반달을 접어 붙였으면 청반달연. 또 만일 몸판을
삼등분하여 색동으로 물을 들였으면 삼동치마연. 그리고 아름다운 오색 무지개
를 넣었으면 무지개 꼭지연이라고.
허나 만일 연에다 아무 빛깔도 넣고 싶지 않으면 이마에 꼭지만 하나 붙이고
수. 복이나 용자를 먹으로 써서 날리기도 하였다. 이 형형색색의 연들은 매안의
언덕 위에서 바람을 타고 하염없이 떠오르며 흐르듯 날기도 하고. 이마빼기를
느닷없이 후려치는 바람에 호되게 맞아 공중에서 휘청 흔들리기도 하며 자기를
베어 내려고 사기 먹인 실의 날카로운 이빨을 허옇게 드러내며 달려드는 옆엣놈
서슬에 소스라쳐 허릿달이 휘어지게 달아나기도 하다가 그 곤두박질치던 연이
얼레의 퀴김을 받아서 몸을 다시 곧추세워 이번에는 거꾸로 쫓기던 몸을 반공에
솟구치며 쫓아오던 놈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런 광경들은 장관이었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유아를 막 벗은 어린아이가 서투르게 날리는 가오리연말
고는 그 달빛같이 흰 얼굴에 붉은 곤지 찍은 듯 곱고도 요염하여 하늘을 홀리려
는 빛깔이며 엄중하고 위엄에 가득 찬 혹은 위풍이 당당하여 구긴 데 없이 제왕
처럼 떠 있는 아니면 한 마리 매나 솔개마냥 민첩하고 날쌘 또 처연하리만큼 아
득히 높이 뜬 연들은 하나 같이 가슴 한복판이 둥그렇게 뚫려 있었다. 가슴을
도려내 버린 그 자리에는 메마른 연달만이 가슴에 걸린 가시처럼 드러나 있고
그 구멍으로는 하늘이 그대로 푸르게 비치는 것이었다. 애도 창자도 없이 비어
버린 연의 가슴을 푸른 하늘이 대신 채워 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빈 집
을 아무 뜻없이 통과하는 바람처럼 하늘은 비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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