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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6권 (16)

카지모도 2024. 9. 27.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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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저 뒷산에다가는 밤나무를 심어 보아라. 내가 전에 몇 처례 돌아봤다만,

탄금봉 기슭에 제법 쓸 만한 비탈이 있느니라. 내가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미루

다가 그만 날이 가고 말았어...네 시모댁 친정 동네가 밤으로는 아주 이름이 났

거든, 그래서 율혼 아니냐. 내가 네 시부한테도 일러는 놓겠다만, 그 사람은 그

렇게 몸이 실허지를 못해서 걱정이다. 자기 근력 부지해 주는 것만도 고마워서

이런 저런 일 마음쓰게 허고 싶지가 않어...그러니 차후에라도 그런 의논이 돌거

든 내 말을 꼭 새겨 두었다가.... 율촌 쪽에 사람을 보내 연락해서...묘목을 구해

다가 심어라. 그것도 큰 공사지.. 한 십 년 지나면 밤 추수를 헐수 있을 게야. 토

질이 어쩔란지 잘 모르니 처음에는 그저 시험삼어 한 천여 그루, 사방에다 심어

보아... 그러다가 차츰 크는 거 봐 가면서 늘려 가러라, 나는 이제 아마 일어나기

어려울 게다...내가 힘 있을 때 해 놨어야 너희들이 들 고생할텐테, 그만 게을러

서 이리 됐구나."

"할머님.. 어찌 그런 말씀을 허시는가요. 어서어서 쾌차허셔야지요. 철재란 놈도

저렇게 충실허게 잘 크고 있는데 저것이 장가드는 걸 꼭 보셔야지요. 고손도 보

시고..."

그때 청암부인은 빙그레 웃었다.

"아니다. 내가 젊은 나이에 혼자 되어 천지에 의지할 곳 없이 살던 생각을 하

면... 이만한 복록도 과분....헌 일이다."

"이것이 다 누가 이루신 것인데요."

"내가무슨 한 일이 있겠느냐....세월이 그렇게 해 준 것이지."

"무심한 세월이라고 어디 아무한테나 그렇게 해 주겠습니까. 전에 제가 듣고 마

음에 놓아서 접어 둔 말이 있는데요, 봄바람은 차별없이 천지에 가득 불어오지

만 살아 있는 가지라야 눈을 뜬다, 고 안허든가요."

"좋은 말이로구나. 세상에 있는 삼라만상, 목숨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세월은 모

두 다 그 품속에 안고 키워 주느리라. 들짐승, 산짐승, 물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

를 보아라. 아무도 안 멕여 주지마는 저절로 저 혼자서 맹수도 되고 맹금도 되

어 호랑이 독수리 용맹을 떨치지 않더냐. 산 속의 나무들도 마찬가지고 사람 또

한 그러느니라. 아이들 커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조막만하던 핏덩어리가 나

이 먹으면서 장성허는 것이 어찌 어미 아비가 키우는 것이랴....세월이 키워 준

다....허나 그것은 다 제가 타고난 목숨을 제 몸에 지니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지. 껍데기만 살었다고 목숨이 있는 것도 아니

다. 살어 있으면서도 죽은 것은 제가 저를 속이는것이야. 살어 있다고 믿고 있지

만 실상은 죽어 버린 것이 세상에는 또한 부지기수니라. 어쩌든지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서 목숨을 죽이지 말고 불씨같이 잘 보존허고 있노라면, 그것은 저절

로 창성허느니."

목숨이 혼이다. 혼이 있어야 목숨이야.

"잘 알겠습니다."

어쩌든지 마음을 지켜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 곧 목숨이니라."

"명심하겠습니다."

"마음을 잃어버리면 한 생애 헛사는 것이야."

"예"

"내가 이대로 죽는다 해도 너를 믿고 갈 것이니라. 내가 비록....죽더라도....나는

죽지 않고 살어서, 네 속에 남을 것이다."

부인이 끝내 숨을 거둔 상청에서 이기채는 이기채대로, 효원은 효원대로 스스로

의 격앙된 설움을 가누지 못한 채, 덩클덩클 엉킨 곡을 토해 내고만 있었다. 더

욱이 강실이가 저만큼에 비켜 앉아 소리 죽여 흐느끼는 모습에 효원의 눈이 꽂

히자. 순간 효원은 자신과 강실이 차돌처럼 맞부딪치며 푸른 불꽃을 소름으로

일으키는 것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네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아아, 너는 누구

이냐. 그때 시방에는, 삼베와 명주 이불,그리고 고인의 마지막 옷이 될 수의로,

적삼,속곳,저고리,바지,치마 들을 차곡차곡 접어 받쳐들고, 홈실댁이 청암부인 누

워 있는 시상맡에 앉았다. 소렴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인월댁은 홈실댁이 내

려놓은 수의 위에 검은 공단 악모가 접혀져 얹히어 있는 것을 보았다. 옷을 갈

아입히고 난 다음, 맨 마지막으로 얼굴을 덮을 헝겊이다. 그것을 본 순간 인월댁

은 나뭇가지 꺾이듯 무릎을 꺾으며 주저앉았다. 그리고 통곡을 터뜨렸다. 애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시신을 모신 방에 모여 앉은 문중의 부인들은 그네의

애처러운 등허리를 내려다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네는 울음에 체하여 어깨를

들지 못하고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인월댁의 호곡은 듣는 사람의 핏속으로 저

며드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네의 숙명 대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숙명

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인월댁의 한 생애에 맺한 한의 깊은 소에서 솟구쳐 터

지는 곡성이, 그네 자신의 운명을 울고 있는 소리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도 삭지 않은 원의 덩어리가 덩클거리며 피멍으로 쏟아지는 소리. 흡사 울고 울

어서 몸의 살과 뼈마저도 다 여위어 애통한 곡성 한 가닥으로 남고 말 것만 같

은 소리였다. 어찌 들으면 그 소리는 낭랑하기까지 하였다. 살과 뼛 속의 원과

한이 소리로 씻겨져 투명하게 걸러지면서, 몸 속이 텅 비어 버리는 공명이라고

나 할까. 인월댁은 곡에 휩쓸리고 있었다. 마치 물살이 떠내려가듯이. 강실이는

그 통곡의 물살에 검불로 떠내려가는 것이 바로 그네 자신이라고 여겨졌었다.

그네의 눈에는 모두가 떳떳해 보였다. 그것이 비록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

는 슬픔이요, 설움일망정 드러내어 울 수 있을 때. 그 눈물은 양명하다. 당당한

슬픔. 그러나 강실이는 달랐다. 들키면 몰매 맞을 설움을 홑이불 한 장을 가리운

채, 벌건 대낮에 맨몸으로 나앉은 것 같은 불안이 그네를 거머쥐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염치 좋게 올라와 울고 있는가. 겁도 없이

"네 이녀언."

소리가 금방이라도 쩌렁쩌렁 마룻대를 울릴 것만 같아 숨죽인 채 눈치보듯, 강

실이는 삼키는 울음으로 호곡하였다. 그네의 울음에 새벽이 멈칫했다. 아무리 할

머니 청암부인의 초상이 났지만, 그네는 정말 안 올 수만 있으면 이 자리에 안

오고 싶었다. 큰집 쪽으로는 고개만 돌려도 가슴이 푸르르 떨려 가슴애피를 일

으키지 않았던가. 큰집의 댓돌과 마루, 기둥과 문고리, 그리고 후원으로 나가는

샛문이며 그 너머 텃밭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도 그네는 질리었다. 가시 손바

닥으로 가슴을 쓸고 가는 그 바람소리에는 강모의 그림자가 묻어 있었다. 가시

박힌 가슴을 오그리고 엎드린 영연 앞에서 그네와 맞부딪친 효원의 눈빛은 얼음

장 같았다. 나를 보는 눈빛이 어찌 저러하신가. 그 일을 알 리야 없겠지마는....대

실형님 본시 그 모습이 대쪽 같고 차가우셔서 그렇지...무엇을 알아서 나를 그렇

게 꿰뚫어 보셨을 리야 없겠지마는.... 이미 반이나 자지러져 버린 강실이는 그래

도 진정이 안되어 휘청하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잠시라도 마당

에 내려갔다가 조금 숨을 돌리고 오고 싶어서였다. 공연히 후둘후둘 떨려 효원

의 곁에 더 앉아 있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그네는 아무의 눈에도 뜨이지 않기를

바라며 신을 챙겨 신었다. 새벽이라고는 하지만 겨울날이라 아직도 천지는 검푸

른 어둠에 잠겨 있는데. 다만 여기저기 밝혀진 종이등불과 웅성이는 사람들 때

문에 집안이 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실이는 뼛속이 시려 어금니를

물었다. 그러지 않아도 여윈 어깨가 추위 때문에 더욱 말라 보였다.

"에이구우. 존 날 다 두고 왜 이런 날 죽는당가아. 춥고 맵고오, 동지 섣달 꽝광

얼어붙는 땅 속으로 들으가 누울라먼 오직이나 등짝이 시릴랑고, 땅 파기도 쎄

빠지고, 참말로 성질대로 죽는갑서, 살어 생전 성질을 볼라먼 죽는 날 알어 본단

디. 아이고, 참말로, 요런 부조나 조께허고 가제, 꼭 골라 골라 엄동시안에 깡추

위 쩍쩍 달라붙는 날 죽어 갖꼬오, 성질 그러먼 멋 허냐, 세도고 양반이고 인자

죽어 부렀는디, 아무 짝에도 쓸 디 없제. 부석(부엌) 앞에 불때고 앉었는 내가

낫제. 암만 상년이라도. 살어야 무신 세상을 볼 거 아니여, 긍게."

한데 아궁이 앞에 낯바닥을 들이대고 입을 돼지 주둥이처럼 내밀어 입김을 불어

넣는 옹구네의 안반만한 궁둥이가 위로 쳐들렸다 내려왔다 하는데, 순간 후욱

밀려나온 불길에 매운 연기가 일어, 그네를 덮어 씌우며 눈을 못 뜨게 하는 모

양이었다.

"아이고매. 호랭이 물어가고 자빠졌네."

눈썹을 꼬시를 뻔한 옹구네가 마침 나뭇단을 옆에 내려놓는 춘복이기 한테 착착

감기는 낮은 소리로 내뱉었다. 그 옆에는 춘복이 말고는 없었다. 그러나 옹구네

는 제 뒤에 강실이가 서 있는 줄도 모르고 내뱉은 말이었다. 강실이는 웬일인지

아까와는 다른 속이 떨렸다. 그것은 무슨 노여움이나 분노라기보다는 무서움 때

문이었으리라. 무서움에 대한 예감. 도도하게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범람하는 황

토 흙탕물이 어느새 매안으로 넘쳐들어 청암부인의 관을 덮고, 강실이의 발목을

적시며, 정강이에 오른 것만 같았다. 집안의 굴뚝마다 불 때는 연기가 올랐다.강

실이도 눈이 매웠다. 옷고름을 들어 눈귀에 번지는 눈물을 눌럿지만, 그것은 연

기가 매운 탓이 아니었다. 그네는 연기에 밀리듯 후원으로 난 샛문을 나섰다. 그

대로 뒤안에 서 있으면 연기에 짓눌릴 것만 같았고, 겁없는 옹구네의 말도 무서

웠다. 그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모를 만큼 그네는 거침새가 없었다. 강실

이 들으라고 면대하여 한말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수모를 느낀 그네는 옹구네를

피하여 텃밭으로 나간 셈이었다. 그렇다고 여막에는 더구나 가서 앉아 있을 수

가 없었다. 청암부인의 시신을 모신 시방에도 갈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가까운

동종 부인들로 복을 안 입어도 되는 팔촌 넘는 살람들만 둘러얹아 염을 하고 있

을 것이었다. 강실이는 종질녀로서 유복친이기도 하였지만, 아직 출가 안한 규방

의 처자이니, 아무리 종조모시방이라 해도 습렴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일은 삼가

야 했다. 강실이는 갈 곳도 없이 오로지 두려울 뿐이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그

네의 자리는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설움의 웅덩이라 할지라도 마음놓고 잠겨

있을 자신의 웅덩이는 없었다. 들키면 덕석말이 몰매로 메워지고 말 웅덩이였다.

차리리 그네의 귀에는 곡성조차도 호사스럽게 들렸다. 애끊는 통곡도, 시린 소복

도, 죽음도, 다 당당하게 여겨지다. 그것들은 모두 명패가 있다.... 강실이는 자신

의 발등을 내려다 보았다. 그것은 낯설었다. 마치 자격없는 사람이 쫓겨난 문전

에와 기웃기웃 안을 들여다보며 머뭇거리는 듯한 처연 처량함을, 그네는 제 버

선발 발등 빛에서 느끼었다. 내가 지은 업을 어찌 벗으랴. 내가 지은 죄를 어찌

벗으랴. 강실이는 후원의 토담에 이마를 기대고 소리 죽여 흐느꼈다. 잘리는 울

음이었다. 어디서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한 채 가슴에 얹혀 있던 울음이 흐윽, 흐

윽, 새어 나왔다. 강실이는 여윈 주먹으로 토담을 두드리며 울었다. 어흐으윽. 어

흐...어흐으윽. 겨울의 날을 더디 샜다. 아직도 검푸르기만 한 하늘에 찬 별빛이

영롱한데, 서리 같은 새벽기운이 뼈를 시리게 하건만, 강실이는 손톱을 토담에

박은 채 울음에 체하여 이마만 짓찧고 있었다. 그때, 옹구네가 솔가지를 툭툭 부

러뜨려 한데 아궁이에 넣으며 춘복이한테 내뱉던 말들은, 강실이를 왜 그렇게

무섭게 했던가. 그 발목을 적시고 있던 도도한 흙탕물은 이게 정강이를 넘어 강

실이의 허리를 휘어 감으며 후려치고 있는 것이다. 그대로 맥을 놓으면 소용돌

이의 복판으로 말려들어가 까마득한 어디론지 떠내려가 버릴 것만 같았다. 강실

이는 그 흙탕물에 가라앉으며, 뒤집히며, 떠오르며, 다시 곤두박질치면서 하염없

이 밀려가는 가랑잎 하나였다. 그 떠밀림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가랑잎이 지

금 여기까지 떠내려와 이 정월 대보름 달빛 시린 밤에 힘없이 부스러지고 있으

니. 그 흙탕물살은 춘복이였다. 강실이는 울지 않았다. 이미 울음이 멎어 버린

그네의 얼굴이 검푸른 어둠 속에서 퍼렇게 드러나 보였다. 얼굴이 얼어 버린 것

도 같았다. 잠시 녹아 눈물로 흐르던 그 온기가 다시 얼어붙은 것인가. 강실이는

댓잎자리 언 땅 위에 죽은 듯이 누운 채 대나무 우거진 잎새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사운대는 댓이파리 쏠리는 틈바구니로 달빛이 번뜩

이다 사라진다. 비수 같은 달빛이다. 그러나 다시 비치고, 그랬다가 부서지며 사

라지는 달빛은 달빛의 꽃잎 같다. 그 꽃잎들은 강실이의 흐트러진 머릿단과 식

은 이마, 부스러진 가랑잎 한 조각 같은 흰옷 위에 날리었다. 가물가물 정신이

멀어지는 강실이의 눈 속으로 그것들은 살구 꽃잎처럼 내려앉는다. 눈이 아슴하

도록 가지 끝이 아득하다. 꿈결같이 만발하던 살구 꽃잎들은 바람도 없는데 시

나브로 날리며 떨어진다. 나무 아래 엎드린 초가지붕에도 연분홍 눈이 내린 듯

곷잎이 소복하였다. 토담에 떨어지는 꽃잎은 그대로 다무락에 얹히고, 어떤 이파

리는 토담을 스치며 고샅에 날아 앉는다. 그래서 길목은 맨발로 걸어가고 싶을

만큼 연연한 꽃잎들이, 비칠 듯 말 듯한 분홍빛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강실이

는 그렇게 날리는 꽃잎을 온몸에 맞았다. 그네의 몸은 언 땅 위에 시리게 누워

달빛의 비늘에 찔리고 있는데, 그네의 넋은 홀연 꽃잎 날리는 나무 밑에 서 있

는 것이다. 시집을 갔는가. 검은 낭자며리와 꽃자주 댕기에도, 옥비녀의 물빛 비

녀곡지에도 꽃잎은 내려 앉았다. 그런데 그네의 옷은 새각시 옷이 아니라 눈부

신 소복이다. 동그스름한 그네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가슴으로 미끄러지는 애달

픈 꽃잎 하나가 치마폭 사이로 숨으며 버선발 위로 떨어진다. 작은 버선발에는

어려서 신던 운혜가 신겨져 있다. 운혜의 코와 뒤꿈치에 구름 무늬가 아련히 수

놓여져 있는데, 이 고운 비단신은 제비부리처럼도 보인다. 꽃구름이 일고 있는

하늘 어디쯤을 한 마리의 어린 제비가 날아가고 있다고나 할까. 다시는 돌아오

지 못할 곳으로. 가장 평화롭고 따뜻하여 근심 없던 시절의 구름신을 신고. 강실

이는 발을 떼어 꽃잎을 밟는다. 잘 가라. 내가, 이승을 떠나는가 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샅에 나와 서서 소리 없이 손을 흔든다. 그네의 마음에는 지금 저

뒤에 서서 배웅하는 사람들도 꽃잎인가 싶었다. 하염없이 날아 내리는 꽃잎들이

어찌 저기 나와 서 있는 사람들만이랴. 영좌 앞에서 낭자하게 울고 울던 효원의

곡성이 지등을 흥건하게 적신다. 부연 지등과 삿갓 등의 불빛들이 살구 꽃잎처

럼 날리고 날린다. 하염없는 그 불빛과 꽃잎과 별빛들이 어지럽게 어우러진다.

그것들은 하얗게 춤을 추는 것도 같았다. 어찌 보면 눈보라 같기도 하다. 강실이

는 미어질 듯 취하여 어지럼증에 몸을 내맡기고만 있었다. 단도같이 잘린 달빛

들이, 무수히 부서지는 댓이파리에 날을 갈며 강실이의 온몸에 꽂혀, 푸르게 난

자한다. 꽃잎들은 칼날이었다. 칼날은 참혹하게 난도질한다. 꽃잎을 찢는다. 강실

이는 비명도 지르지 않는다. 좌통우치의 법이 침 놓는 의원에게 있다고는 들었

지만, 참으로 왼쪽이 아프면 오른쪽을 다스려 낫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왼쪽에

통증을 느낄 때, 꼭 그 통증 있는 부위의 정반대 오른쪽 자리에다 침을 놓아주

면, 그 아픔에 놀라 왼쪽 통증에 대한 감각이 순간 무디어져 못느낀다 하였다.

못 느끼다 낫는다 하였다. 그렇다면 오른쪽 아픔이 크면 클수록 왼쪽 아픔은 더

잊을 수가 있는것일까. 일부러 만든 아픔일지라도. 누구인가 그런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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