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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6권 (18)

카지모도 2024. 9. 2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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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랬구나, 그래서였구나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내동댁 떡애기 손자가 밟혀 죽은 것이다. 참,꿈에도 생

각지 못한 일이 벌어져, 일 당한 사람은 물론이고, 매안의 집집마다 기가 질려

경악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어른이 안 계시니 별 희한한 변괴가 다 일어나는고만. 잡귀들이 등천을 허는가아."

이기채는 급작스러운 사건에 놀라기도 했지만, 청암부인 별세하신 후에 생긴 일

이어서 마음속이 더욱 어수선하고, 불길한 예감마저 드는 것을 떨치기 어려웠다.

수더분한 내동댁은, 가족들이 매안 이씨들 중에는 그래도 수하는 축에 들어서

위아래 안팎으로 아직 궂은 일 별로 안 본 쪽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곳 사람 사는 집이 으레 그런 것같이, 이 집안에도 위로 시부모 계시고 시조부

모 계시며, 나이 어린 시아재 시누이에 젊은 남편 있고, 또 아래로는 이제 막 갓

난애기 하나 강보에 자라나는, 그런 평범하고 무난한 집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제는 이 며느리가 애기를 재워 다락문 바로 밑 아랫목에 뉘어 놓고 무심히 바

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철없는 장난꾸러기 시아재가, 어린 마음에 재미가 나

서 다락 위에 올라가 먹을 것을 뒤지며 놀다가, 그만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고

는, 그 높은 다락에서 훌쩍 방으로 뛰어내리니, 잠든 애기 배 위로 떨어져 참혹

하게도 갓난 것은 죽고 말았다. 놀란 시아재가 비명을 지르며 우는 소리에 며느

리는 혼비백산, 하던 일을 팽개치고 방안으로 달려들어 갔으나....아이는 창자가

터져 버린 뒤였다.

"만일 그 일을 당한 사람이 너라면, 네가 그 며느리였다면, 너는 어찌하겠느냐."

이기채는 봉출이를 시켜 큰사랑으로 불러낸 효원에게 물었다. 효원은 속으로, 이

와 같이 비참한 경우를 예로 드는 말씀이 얼른 마땅하지 않았으나, 이는 필경

자신의 국량을 재어 보려 하는 어른의 뜻이 들어 있는 하문인지라, 순간 머리

속에 떠오르는 아들 철재의 얼굴을 지우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씀을 여쭈었다.

"무릇 부녀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언어 행실이 한두 가지 아니옵지마는, 아이를

기를 때, 바늘을 옷깃에 곶지 않는 것은 혹시 아이가 젖을 먹다 찔릴까 두려워

함이요, 젖 머금은 아이를 그대로 자게 하지 않는 것은 젖을 물고 잠든 아이가

체하기 쉬운 탓이오며, 갓난아이 누일 대 베개를 바르게 해야 하는 까닭은 여린

머리통이 비뚤어질까 염려되어서입니다. 또한 애기를 창 가까이 밝은 곳에 누이

지 않는 것은 눈동자가 서로 모여 사시안이 될까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이토록

아이는 조심 할 일이 터럭보다 많고 섬세하게 살피기 명주올보다 더하온데, 사

람이 오르내리는 자리 다락문 밑에 아이를 재운 어미에게 첫재 불찰이 있겠습니

다. 다락이란 평지의 방이 아니니, 누구라도 한 번 올라가면 뛰어내리게 되어 있

는데, 그 위태로운 곳에 조심성 없이 아이를 두었다고는 하나, 일이 그와 같아서

며느리의 작은 잘못을 나무랄 정황이 아니지만, 한 번 벌어진 일이 돌이킬 수

있는 것이라면 혹 모르겠거니와, 이미 인간으로는 속수무책 어쩔 수 없는 참경

인지라, 우선 겁에 질려 놀란 시아재의 충격을 달래어, 기왕에 명이 그뿐이어서

짧은 날을 마친 아이 일로 시아재 한평생이 멍들지 않도록 너그러운 자애 심정

을 가지며, 이 천만 뜻밖의 사태로 절통 근심하실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효심으

로 위로를 드려야겠습니다. 또한 남편에게는 이 일로 해서 어린 동생을 원망하

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형제 서로 위로하고 살피는 정이 예전보다

배나 더 하도록, 혼연 성심을 기울여야겟습니다."

그때 이기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과시 너로구나."

하고는 다시 침묵하였다.

"나는 네가 그리 대답할 줄 알았다. 장한 마음이다."

그의 음성은 침중하고 낮았다. 그것은 번민이 깊이 섞인 음성이었다.

"본디 유순하고 정숙함은 부녀자의 덕이요, 근면하고 겸손함은 부녀자의 복이라,

그 성품을 선량 정숙하게 가져서 부녀자로서의 몸가짐을 지키며, 순하고 부드러

운 마음으로 남을 섬기고, 정결 성실한 태도를 지니어 조상의 제사 받드는 것이

뭇부인들의 당연한 도리이겠으나, 할 일 많은 이 집안에 장차 네가 맡을 책임이

남과는 다른즉, 언제든지 지금 제가 한 말같이, 무슨 일을 당하든지 우선 너를

접어두고 네 둘레를 먼저 헤아리는 덕성을 부디 잃지 말도록 해라. 언제나 사리

분별을 먼저 하고 감정을 눌러 뒤에 둘 때, 아무리 참담한 지경이 닥치더라도

어지러이 흔들리지 않고, 네 중심을 의연히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비록 아

녀자이나 울 안의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는 사람이니, 네가 반듯하게 서야 집안

이 바로 서고, 이 집안이 바로 서야 온 문중이 안정될 것이니라. 무릇 사내란 일

을 저지르는 존재요, 여자는 안돈하게 사물을 매만져 바로잡는 존재 아니냐....

오직 네가 안여반석 안여태산, 태산 같고 반석 같은 성품과 행실로 네 중정을

굳게 하여, 든든하게 끄떡없이 집안을 이끌어가야 하리라. 내 이제 너를 믿는 마

음이 아들보다 더 하다...."

청암부인을 여의고는 눈에 뜨이게 예전과 달라진 이기채가 전보다 효원을 대하

는 품이 절실 곡진한 것은, 이상하게도 송구스러웠고 어느 한쪽 시름없이 비애

로워 효원은 가슴이 무거웠다.

"내 어찌 너를 모르랴."

이기채는 그늘 그렇게도 말했었다. 효원은 그때 다만 세운 무릎에 두 손을 공손

히 맞잡아 얹은 채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네 혼인에 내가 상객으로 갔던 날.""

효원의 부친 허담이 이기채에게

"내가 운수 비색하여 저 아이를 여아로 두었소이다.""

하고 웃던 말을 효원한테 다시금 되뇌이어 들려주며

"나는 그래도 복이 있어 너를 며느리로 맞이한 모양이다."

말끝을 내리었다. 웬일인지 그 말은 탄식처럼 들려, 요원은 아까보다 더 고개를

수그리며, 당차않은 말씀이란 자세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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