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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6권 (23)

카지모도 2024. 10. 4.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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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렁게 궁리를 해야능 거 아니여? 테머리를 매고."

"아이고, 무단히 언감생심 맞어 죽을 궁리허고 있다가, 새터서방님 덜컥 돌아오

세 불먼 어쩔 거이요? 헛심만 팽기제."

"그렁게 못 오게 해얄 거 아니라고? 아조 못 오게."

"못 오게요?"

우례의 두 눈이 옹구네가 보아도 놀랄 만큼 벌어졌다. 이 무슨 황당하고도 어림

없는 이야기란 말인가. 수천샌님 안픾의 양주는 말할 것도 없고, 제 상전의 댁

청암마님, 율촌샌님, 율촌마님, 그리고 양쪽 집안 대실아씨, 새터아씨들이 날이

새면 까치 우나 감나무를 올려다보고, 밤이 오면 돌아오나, 행여라도 잘새들의

날개치는 소리에 섞여 오는가,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두 서방님. 그들은 두 집

안에서만이 아니라 온 문중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오

지 못하게 해야 한다니. 또 그것을 할 수 있다니. 그것도 우례 같은 일개 계집종

노비 아낙이.

"우선 새터서방님은 뒤로 조께 미뤄 두고, 더 쉬운 일부텀 착수를 해야제. 대박

으 복판 치다 주먹 깨지까 싶응게 옆구리부텀 쳐서 울리게 허드라고. 그럴라먼

대실서방님을 못 오시게 해야 여. 그건 쉬워."

"어뜨케요?"

"대실서방님이 못 오먼 그집이도 아들이 없잉게, 손자 하나 조막만헌 거 클라먼

한참 아닝가이? 봉출이는 철재 데린님보둠 열 살이나 더 먹었고. 아니, 열한 살

더 먹었능가아, 열두 살 더 먹었능가? 아이, 봉출이 자 설 쇠먼 맻 살잉가?"

"열에섯 되마요."

"장개가야겄네? 그런디 서둘지 말어. 종녀르 자식이 장개를 가 밨자 어디로 가

겄능가. 내가 아는 어뜬 사람은 상놈 자식 낳기 싫어서 장개를 안 가겄다 부득

부득 위기데. 상놈이 상년 만나제 당상관의 따님을 만낼 거잉가고, 얼릉 들으먼

억지 같기도 허지마는 곰곰 생각해 보먼 그 속도 알겄드라고. 상놈으 신세가 얼

매나 징그럽고 몸썰이 났이먼 그러겄능가 싶고. 포한이 징게 그런 독헌 맘을 먹

제, 앙 그리여? 그런디 이건 상놈만도 못헌 종의 신세, 내가 아네. 우례 속 내가

알어. 비단옷에 금바누질허먼 멋히여? 빛 좋은 개살구제. 금쪽 같은 자식한테 버

젯이 지시는 아부지 성씨도 못 붙여 주고. 아부지라고 불러도 못 보고. 인간의

심정 갖꼬서야 어뜬 에미가 그 자식 체다볼 안 설웁겄능가. 한 마당으서 왔다갔

다 험서. 그런 신세를 지고 장개를 가 밨자여. 머잘허먼 콩심이고, 안 그러먼 호

제네 딸년들 중에 누구겄제. 그렁게 그렇게 가먼 안되야. 성씨 찾고, 아부지 찾

고, 보란 대끼 육리갖촤 샘현육각 사모관대 떵떵거리고 가야제. 아부지 찾고 장

개 딜이야여. 안 그럴라먼 성씨 찾어 멋 헐 것이여. 실속도 없이. 아부지만 찾어

바아. 그 담에는 시상이 달러지제. 대접이 달러져어."

"그거이사 나도 알제마는."

"장개는 그때 거서 보내기로 허고. 율촌샌님 살림살이 수천샌님이 다 맡어서 대

신허시는디, 내가 잘 모링가는 몰라도 넘들이 보매는 안 그렇다고? 잘은 모르지

만 하이간이 그 살림 속을 꿰뚫고 지신 냥반이 수천샌님이신디, 종손도 어디로

가고, 아드님도 어디로 가고, 두댁이 다 손자들은 에리고, 봉출이는 수천샌님 아

들이 되고, 그러먼 그 담은 어치케 되겄능가잉? 곷 떨어지먼 열매 생기디끼 그

꽃들 떨어진 꼬투리에 봉출이 맺히는 거 손바닥에 손금 아니여?"

"아이고, 무서라."

"무섭제."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마시요잉? 나 지명에 못 죽으까 싶소. 나사 머 어쩐대도

상관없지마는 봉출이 매급시 아부지 찾을라다 구신 되까 겁나네요."

"안 그럴 꺼이여. 사람 기운이 구신보돔 더 독헌 거잉게."

"그런디, 대실서방님 어쩌능 거이 머이 더 어쩐다고요?"

"소문 내. 봉출이 시켜서. 딴 디다 여그저그 안해도 대실아씨한테다. 그러고

오빼미란 년한테도 실쩍 찔러서 수천샌님 귀에 들으가게 허고. 이런 말은 나먼

날수락 좋옹게."

"아이고, 무서라."

"무선 일 저꺼야 큰일 해내제. 안 그럴라먼 펭상에 이러고 살든지. 머 내가 어쩌

라고는 못허지만 말이여."

옹구네는 우례한테, 이 말이 온 문중에 퍼지고, 대소가가 소동이 나고, 오류골댁,

율촌댁이 서로 뒤집어지면서, 결국 강실이가 쫓겨나게 되는 정황을, 마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조근조근 이야기하였다. 그리고는

"베룩이도 낯짝이 있다고는 허지만, 낯짝을 신주단지맹이로 뫼시고 사는 매안 냥

반 서슬 푸른 기오성에, 이런 일 저질러져 어디다 낯 들고나 매안 이가요오, 헐

수가 없게 체면이 쑥밭 된 마당에, 안 그래도 겁이 많어 타국 만리 넘으 땅으로

국경도 넘어서 도망 간 대실서방님이 무신 염치에 무신 담력으로 돌아올 수가

있겄능가. 덕석몰이 몰매 맞어 아조 죽을라고 작심헌 바 아니라먼. 못 와. 못 오

제. 난리가 나먼 도망을 가는 거이 사람이제. 난리통 속으로 대가릴 디밀고 불쏘

시개 될라는 사람은 없능 거잉게에. 대실서방님이 못 오시먼 새터서방님도 못

외겨. 종항간에 한 모둠으로 발 맞촤 갔다가 동생은 띠여 불고 꺼덕꺼덕 성만

돌아오겄능가? 사람 뵈기 챙피허고 면상이 거끄러서? 거그다가 초록은 동색이라

고 같은 물에 몰아서 치도곤이를 맞을 거인디? 그렁게 인자는 오고 자퍼도 못

오게 여그가 시끄러야여. 막 벌집을 쒸셔 농 것맹이로 기양 정신을 못 채리게.

그러먼 그럴수락이 봉출이한테 떨어지는 감이 클 거잉게. 그런 지만 알어."

아이고오, 그렁게 옹구네가 오늘 나한테 맘먹고 옹 거이구나아. 이런 말 헐라고.

참 요상허네. 이 사램이 왜 나한테 요리 파고들으까? 이런 말은 피가 같고 살이

같은 성지간에도 털어놓기 쉽잖을 거인디, 나를 언지부텀 어찌 보고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내 일맹이로 허고 있었이까? 자개 일도 아닌다. 보통 때는 살갑게

허도 않든 사램이. 속으가는 속정이 따로 있었등게비구나. 나는 몰랐지마는. 나

를 안씨럽게 생각고. 오오, 그래서 아까 봉출이랑 꽃니랑 있는디도 개념 않고 이

런 말 저런 말 다들으라고 일부로 그렇게 이얘기를 했등갑다. 아그들보고 욍기

라고.

"꼭지만 건드러 뇌. 그 담은 지절로 터지게 되야 있잉게. 그것도 안허고 무신 소

원을 이룰라고는 말어야제잉? 일이란 거이 공이 들으가야 득이 있능 것 아니라

고? 이런 일 모사는 쥐도 새도 몰라양게 시방 여그서 우리 둘이 헌 말은 우례허

고 나만 알어얄 거이고잉. 애들 알먼 큰일나."

옹구네는 다짐받는 목소리로 말끝을 눌러 홀맺고는

"나 갈랑게."

어둠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그리고 봉출이는 날이 새기 무섭게 콩심이한테로

가 어젯밤에 들은 이야기를 조랑조랑 옮긴 것이다. 아이들 소견이란, 하지 말라

는 일도 기어이 하고야 말려는 경솔함이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하라고 부추기

는 말을 안하고 배기리오. 더구나 돈후, 신중 공경 근신이 몸에 밴 사부가의 자

제도 아니요, 한낯 종의 자식 봉출이었으니. 그것도 '봉출이 오수 갔다 온 일' 같

은, 멍사 모르는 일을 저지를 만한 아이였으니. 왕눈을 껌벅거리며 이야기를 해

나가다 빠뜨린 대목이 있으면 다시 되짚어 끼어 넣어 가며, 그는 옹구네한테 들

은 말을 콩심이한테 건네주었다. 엉겁결에 그 말을 떠안은 콩심이는 차마 떨어

지지 않는 입을 옴질옴질, 몇 번이나 망설이며 침을 바르고 입술을 축이어 겨우

겨우 줄거리만 추려서, 무릅쓰고 토하듯이 효원에게 넘겨 주었다. 느닷없는 이

말에 깊은 칼을 맞아, 소스라쳐 시퍼렇게 질린 명치에 숨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

한 채, 효원은 두 손으로 가슴을 누르고만 있었던 것이다. 내동댁 떡대기, 갓난

손자의 여린 배가 밟혀 터진 것도 참혹 했지만, 효원은 이 난데없이 치받은 바

윗덩이에 가슴이 터져, 폐장이 흩어질 것만 같았다. 그랬구나. 그래서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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