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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6권 (21)

카지모도 2024. 10. 2.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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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샅에서 그를 본 사람들이, 하루 종일 우례가 봉출이 찾으로 다닌 것을 아는지라

"자, 봉출이 아니여? 야, 너 어디 갔다 오야?"

저마다 감짝 놀라 물었다.

"오수 갔다 와요오."

봉출이는 기진맥진 겨우 끌어내는 음성으로 대답하였다.

"아이, 봉출아, 너 한 죙일 어딨었냐? 느그 어매가 아조 죽을 혼났다. 너 찾이로

댕기니라고. 어디 갔었더?"

"오수 갔다가 와요오."

"오수?"아낙이 의아하여 반문하는데 봉출이는 다리까지 절룩절룩하며 발을 지일

질 끌고 걸었다. 그는 몹시도 지쳐 보였다. 그리고 허기져 보였다. 조그만 몸둥

아리가 동그랗게 고부라진 봉출이를 발견한 우례가 그만 우르르 달려들어 대가

리를 야무지게 쥐어박고는, 하루 종일 애가 탄 끝이라 돌아온 것만 해도 반가워,

한마디만 물었다.

"너 어디 갔었냐."

"오수 갓다 왔는디."

"오수?"

"이."

"너 먼 꿈 꾸냐?"

"참말이여어."

봉출이는 저대로 무슨 답답한 일이 있는지 볼멘 소리를 밀어내고는 툇마루에 털

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디를 앉어, 얼릉 큰사랑에 가서 말씀 사뢰야제. 너를 심바람 시키실 일이 있

으곘다는디 암만 찾어도 어디가 있어야 말이제. 아 엊저녁으 실컨 알어듣게 일

르솄다등만 어따가 까먹고 않든 짓을 허냐, 긍게. 늑어매 죽으라고오. 애간장이

다 녹아서 말러 부렀다 기양. 근디 너 밥도 못먹었데? 꼬라지 봉게로 그렇그만

? 똑 동낭치맹이다. 이얘기는 이따허고 얼릉 사랑으로 가바. 후딱. 가서 무조건

잘못했십니다아, 부텀 사뢰. 알었지? 잉? 잘못했십니다아."

우례는 제가 봉출이인 것같이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깊이 수그리며 기어들어가

는 시늉을 해 보였다. 봉출이는 그런 어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터덕터덕 사

랑채 쪽으로 나갔다. 사랑에는 벌써 등잔불이 밝혀져 있었다. 큰사랑 목외로 들

어간 봉출이는 힘없이 주저앉듯 굻어앉으며

"잘못했십니다."

하는 대신에

"오수 갔다 왔는디요."

라고 아뢰었다. 안석에 비스듬히 기대서 기표와 무엇인가를 의논하고 있던 이기

채는, 이게 무슨 소리냐는 시선으로 기표를 한 번 바라보고 봉출이를 바라보았

다.

"오수라니?"

"엊저녁에 저보고 낼 아침 일지거니 오수 갔다 와야겄다고 허계서요, 새복에 일

어나서..."

봉출이의 옹송그린 등허리를 쏘아보던 기표는 눈살을 찌푸리고, 이기채는 짐작

히는 바가 있는지 뜻밖에도, 벼락을 치는 대신

"그래서?"

하고 물었다.

"오수를 갓어라우."

"오수 어디를?"

"네거리요."

"네거리?"

"예. 사람 많이 댕긴 디 가 서 있었는디요?"

"서서 무얼 했느냐."

"기양 사람들을 체다봄서 서 있었어라우."

"사람들은 무얼 하더냐?"

"왔다갓다 허대요."

"너보고 무어라고 안 그래?"

"예 암도 머라고 안해서 그러고 섰다가, 해 넘어갈라고 그러길래 인자 기양 왔어

요."

이기채는 그만 실소를 하고 말았다. 순간 기표의 눈살은 더욱 날카롭게 찌푸려

졌다. 봉출이는 가장 말을 잘 듣는다고, 제 딴에는 일찍 일어나 동도 트기전에

길을 나서서 혼자 타박타박 걸어 시오리 길 오수 역까지 다다라, 그 중 사람이

많이 다니는 네거리 틈 길목에 하루 종일 서 있었던 것이다. 날은 덥고 길은 낯

설어 누구 아는 이 얼굴도 눈에 뜨이지 않는데, 정수리에 꽂히는 놋낱 같은 오

뉴월 댕볕을 불비 맞듯 뒤집어스며, 이글이글 달구어진 지열에 헉, 헉, 숨이 막

혀 목이 탔지만, 혹시 심부름 온 자기를 만나러 누가 올가 봐 자리도 못 옮겼다.

땀으로 멱을 감는 봉출이의 삼베 잔등이는 아예 찰싹 달라붙어 물 솔에 들어갔

다 나온 형국이 되어 버리고, 아침도 못 먹은 뱃속이 노오랗게 훑이면서 고부라

지더니 점심밥도 거르게 되자 휘잉 머리곡지가 어지럽게 돌았다.

"아이고."

봉출이는 다리에 힘이 빠져 그만 쪼그리고 앉았다.

"왜 암도 아무 말도 안허까잉. 참말로 요상허네. 누가 머라고 해야가지. 집이로."

아이구우, 까깝히여어.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 우두고 앉은 봉출이는 이제, 오는

사람 가는 사람도 쳐다보지 않고 오직 땅바닥만 들여다보았다. 땅바닥으로 땀방

울이 투둑, 툭, 떨어졌다.

"에라이, 미련헌 놈 같으니라고. 그냥 오수만 가면 무얼 해? 오수가 어디 손바닥

만헌 마당이냐? 또 그렇게 좁은 데라고 해도 그렇지. 누구한테 무슨 일로 가며

어떻게 하고 와야 허는지를 자세히 듣고, 잘 알어서 댕겨와야지, 이놈아, 무작정

오수만 가면 다냐? 이 편지를 가지고 갔어야 헐 것 아니냐, 이 편지를, 오수 영

창당 약방에, 여기 쓰인 화제대로 약재 보내라는 말을 적어서, 너보고 갖다 주라

허는 것이 갈 때 헐 일이고, 거기서 이 편지를 받어 읽고는 약재를 내주거든 네

가 들고 오는 것이 올 때 헐 일이다. 알었느냐?"

"예."

"내일 아침에 다시 가거라."

"예."

"가 보아라."

"그러먼 오늘은 헛심바람 했능기요?"

"그건 어찌 아느냐. 아주 농판은 아닌가 보구나."

"예에..."

여전히 실소를 머금은 이기채가 손짓으로 봉출이를 나가라 하였다. 기표가 옆에

서 쩟, 혀를 찼다. 그 소리에 봉출이가 흠칠하며 물러섰다. 저 어른이 느그 아부

님이시니라. 어미 우례는 기표의 모습이 비치면 숨죽인 음성으로 그렇게 이르곤

하였는데, 봉출이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었다.

"왜?"

"왜가 머이여? 부모한테 무신 왜가 있어? 내가 느그 어매가 허는디 거가 무신

왜가 있어,왜가. 왜? 너를 낫잉게 나는 느그 어매 아니냐. 저 어른이 느그 아부

님이시고."

"왜 그러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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